▲ 지난해 3월 전국적으로 팬데믹이 확산되던 시기, 광주시장 등 공무원 2500여 명은 ‘오늘은 가정예배를 부탁합니다’, ‘우리 모두 마스크를 착용합시다’ 등이 적힌 어깨띠를 두르고 교인들에게 집합 예배 자제를 요청했었다. ⓒ광주시 제공

25. 감염병 확산의 재난 가운데 있는 한국교회의 현재 상황을 내우외환의 위기라고 표현합니다. 내부로는, 그 동안 지켜 온 교회 공동체의 삶의 방식들과 관계 형식들이 일시에 작동을 멈추는 상태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에 따라 신자 수와 헌금의 감소로 인해서 교회의 관리구조를 지탱해 온 인적 물적 토대가 붕괴할 수 있는 위기에 처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외부로부터는 바람직한 변화를 선도하기보다는 사회의 변화를 가로막고 서는 시대착오적 권위 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집단, 반공주의를 포함한 지배적이고 억압적인 문화를 비판하기보다는 가장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집단, 차별과 혐오와 배제의 독단적 이념을 전파하는 집단, 극우 정치와 결합하여 인종적 성적 차별을 영속시키는 집단이라는 비판에 직면해 있습니다. 특히 일부 교회들이 감염병 확산의 진원지가 되면서도 대면예배를 강행하고 온갖 음모론과 유언비어를 날조하여 위기와 재난의 진실을 호도하고 있는 상황을 바라보면서, 교회를 향한 우리 사회의 시선은 차갑기 짝이 없습니다.

26. 이 내우외환의 위기를 예상치 못한 바이러스의 확산에 기인한 우발적 사태로 설명하는 것은 무의미하고 무책임하다고 생각합니다. 팬데믹이 그런 것처럼, 지금 한국교회가 직면하고 있는 위기도 예측 불가능하고 통제 불가능한 우발적인 요인으로부터 비롯된 어쩔 수 없는 사태가 아니라고 봅니다. 한국교회 안에 오랫동안 잠복해 왔던 문제들이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재난과 만나서 퍼펙트스톰처럼 문제를 가장 파괴적으로 증폭시키고 있는 상황이 위기의 실상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27. 지금까지 교회가 교회 밖의 세계와 맺어 왔던 관계에 많은 문제가 있어왔다는 것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가 교회 밖의 사람들과 세계와 창조물들을 바라보는 눈과 그들과 맺는 관계 행태는, 결국 교회와 신자들이 가지고 있는 익숙한 자기 이해에 기초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28. 그런데 예배 강행 논란에서 이제 확연하게 드러나는 것은, 신자로서 혹은 교회로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의식이 사회적 요구와 정면으로 충돌할 뿐만 아니라, 재난을 더욱 증폭시키는 요인, 다른 사람들과 다른 피조물들의 삶을 위협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29. 대면예배 모임이 집단 감염의 진원지가 될 수 있고, 누군가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는 행위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교회가 모를 수 없습니다. 대면예배의 강행이 사회적 비판을 받을 수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웃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리고 교회 밖으로부터 오는 비판적 시선을 알면서도 대면예배를 강행하겠다고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30. 현실적 경제적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고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면예배를 강행하는 교회가 모두 같은 현실적 문제를 안고 있었다고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교회 내부의 조직적 요구라는 관점에서 문제를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31. 대면예배가 교회와 신자들의 자의식을 형성하고 유지하는 가장 핵심적인 장치로 작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 내부를 지배하고 있는 질서와 의사결정 구조, 구성원들 사이의 교육적 목회적 관계 형식들, 더 나아가 교회가 예산이나 재정을 운영하고 관리하는 체계가, 대면예배라는 고도의 상징적 행위를 통해서 뒷받침되고 있는 것입니다.

32. 그러므로 한국교회의 대면예배 강행 의지는 곧 외부로부터의 비난을 감수하더라도 현재의 한국교회를 지탱하고 있는 교회 내부의 정치적, 사회문화적, 경제적 질서를 지키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풀어서 말하면, 교회 내부의 체제와 질서의 유지 문제가 교회의 공적, 사회적 (선교적) 책임의 문제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는 셈입니다. 교회 그 자체를 유지, 관리, 성장시키려는 목적이 창조세계의 화해를 위해 부름받은 공동체로서의 선교적 소명 의식을 집어삼켜 버린 상황인 것입니다. 한국교회가 가지고 있는 교회론과 하느님의 선교의지가 충돌하는 상황입니다.

33. 무엇보다도 먼저, 하느님은, 만물의 회복과 화해를 위해서(사도 3:21), 곧 자신과 피조물 사이에 그리고 인간을 포함한 모든 피조물 사이에 화해를 이루기 위해서, 교회가 있기 이전에도 창조 세계와 함께해 왔고, 지금도 교회라는 울타리에 구속당하지 않고 활동하신다는 확고한 믿음 안에서 교회를 이해해야 합니다. 기독교 신앙이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확신은 교회는 사람들이 자신의 한계와 울타리를 넘어서 하느님의 뜻과 일을 찾아서 참여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것이지, 교회가 먼저 만들어지고 그 교회를 통해서만 하느님의 일이 이루어지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입니다.

34. 하지만 역사 속에서 교회는 끊임없이 교회와 하느님의 위치를 역전시켜 왔습니다. 창조세계의 화해를 위한 하느님의 선교가 아니라 교회 그 자체의 성공을 위한 선교에 모든 것을 걸고 있는 교회는 모아서 가두는 것을 목표로 삼는 교회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가둔 사람들을 더욱더 철저하게 그 교회 발전을 위해서 봉사하도록 관리할 수 있는 성직자 중심적인 관리 질서를 장착하게 되고, 그와 같은 내부의 동원 질서를 정당화하기 위해 예배와 건물로 대표되는 강력한 상징질서를 만들어 내 온 것입니다.

35. 그런데 이처럼 자기 내부의 결속과 외부를 향한 자기 확장을 목표로 하는 교회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물질적이고 상징적인 가치와 질서를 땅끝까지 확장해야 한다는 과도한 자기 확신을 내세우고, 정복적, 승리주의적, 식민주의적 선교 실천을 통해서 자신의 울타리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고 싶어 합니다. 교회들이 거룩한 도시 혹은 거룩한 국가를 향한 배타주의적 정치적 상상을 계속 생산해 내고, 그와 같은 자신들의 도착적 이상을 위협할 가능성이 있는 교회 안팎의 적들을 이단시하고 배척하는 배제와 혐오의 논리를 끊임없이 생산해 내는 것도 결국 같은 자기중심적 욕망에 의해서 추동되고 있는 것입니다.

36. 한국교회가 직면하고 있는 위기의 근본 원인도 이와 같이 하느님의 화해 의지를 외면한 교회의 자기중심적인 삶의 행태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안에서 만들어져 온 배타적 자기 이해, 그리고 그것을 지탱하기 위한 왜곡된 선교와 사목과 예배에 대한 이해, 나아가 교회 내부를 구성하는 불평등하고 권위적인 관계 질서 등등이 코로나와 만나서 퍼펙트스톰의 재난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입니다.

37. 이렇게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지금까지 교회가 지켜온 물질적 상징적 질서가 결국은 창조 세계를 향한 폭력이 될 수 있음을 분명히 드러내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상황은 교회가 다소간 공적인 역할과 기여를 강화한다고 해서 치유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철저하고도 근본적인 신학적 반성과 변화가 없다면 치유가 어려운 병증이라고 봅니다. 이와 같은 병증의 깊이를 무시한 채 적당한 신학 이론이나 장치로 위기의 근본 원인을 은폐하려 한다면, 그래서 때가 되면 위기는 지나갈 것이고, 과거의 예배와 질서는 반드시 회복될 것이라고 말한다면, 그 자체가 이미 불경이며 신성모독일지도 모릅니다.

38. 교회됨에 대해서, 신자됨에 대한, 보다 깊은 성찰과 반성이 요구되는 때라고 확신합니다. 교회 내부에서 교회를 구성하는 관계질서를 전적으로 변화시킬 때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교회의 밖으로 드러난 얼굴만이 아니라, 내부의 질서부터 새롭게 변화시키기 위한 노력이 그 어느 때 보다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동행 (연대)에 대한 새로운 상상
39. 바울은 "모든 피조물이 이제까지 함께 신음하며, 해산의 고통을 함께 겪고 있다는 것을"(로마 8:22) 안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재난이 있기 전부터 다른 생명들의 고통과 눈물이 있었습니다. 재난의 가능성을 알면서도,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비용처럼 여기며 무시해왔던 사람과 자연의 고통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문제와 고통이 임계점에 이르러 퍼펙트스톰으로 터져 나온 것이 재난의 진실인 것입니다.

40. 교회의 위기도 다르지 않습니다. 신앙을 빙자하여 질문 자체를 허용하지 않았던 많은 문제들이 잠복상태에 있다가 임계점에 달하여 최악의 경우로 결합하여 나타나는 것이 지금의 위기라고 봅니다. 한국 사회와 교회의 재난 경험을 이렇게 설명하는 이유는 그 재난이 생태학적이거나 생물학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이고 사회적이고 경제적이며, 종교적이고 신학적인 재난임을 말하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재난으로 드러난 그 임계점은 결코 과거에 경험했던 것과 같은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41. 교회의 코이노니아가 피조물의 화해와 회복을 위한 하느님의 선교의지와 충돌하는 상황에 우리가 서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나누는 관계가 교회 밖의 모든 피조물들과의 관계를 왜곡하고 있는 상황인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지금까지 우리가 불러온 하느님을 문제삼는 상황입니다.
42. 하느님과의 관계는 물론이요, 그 하느님 안에서 모든 피조물이 함께 나누는 상호의존의 의미에 대해서, 사람과 사람 아닌 것들 사이에, 그리고 생물들과 무생물 사이에, 그리고 우리 공동체 안에 나와 이웃들 사이의 관계에 대한 지금까지의 상상력을 철저하게 반성하고 성찰할 것을 요청하는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중심주의의 극복)

43. 아직도 어둠 속입니다. 아직은 앞길이 분명치 않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이 팬데믹이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섣부른 찬양이나 긍정 보다는, 지금까지 우리가 가지고 있던 확신에 문제가 있음을, 아니 그 확신이 가리고 덮어 온 것들을 발견하면서, 새롭게 다 알지 못함을, 모름을 경험하는, 그래서 그렇게 알고 있는 것을 무너뜨리고 부정하는 경험 속에서, 하느님의 새로운 부름을 새롭게 듣는 기회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44. 교회와 신앙이 추구해야 할 뉴노멀은 그런 깊은 회심의 과정을 통해서 오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양권석 교수(성공회대)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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