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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을 얻게 하는 지혜내게로 오라(마태복음 11:28-30)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 승인 2021.08.15 16:55
▲ 엔리케 시모네, 「그가 우셨다」 ⓒGetty Image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쉼의 조건

오늘 본문은 여러분께서 많이 들어보셨고 너무나 잘 아실 것이고, 또 외우고 계신 분들도 많이 계실 본문입니다. 예수님께 와서 쉬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쉼을 주시겠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크게 어려운 말씀이 아니기에 그냥 그렇게 이해하셔도 크게 문제는 없습니다만, 그래도 오늘 본문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대해서 조금 더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은 마태복음에만 나옵니다. 앞선 25-27절은 누가복음 10장에도 동일하게 나타나지만 오늘 읽은 본문은 마태복음에만 나오는 말씀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에서 사용된 단어 중 ‘수고하다’는 ‘코피아오(κοπιάω)’로 열심히 노동을 한 후 지친 상태를 의미합니다. ‘무거운 짐 진’은 ‘포르티조(φορτίζω)’로 ‘무엇인가를 옮기기 위해 짊어지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겁다’라는 말은 원어에는 없습니다만, 30절에서 ‘가볍다’라는 뜻의 ‘엘라프로스(ἐλαφρός)’가 사용되었기 때문에 대조적으로 그렇게 번역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원어의 의미 속에서 예수님께서 말씀을 선포하신 대상은 당시 실제로 노동을 하던 사람들입니다. 당시 유대인 대부분이 일용직 노동으로 먹고 살던 사람들임을 생각한다면, 이 말씀은 그들을 향한 말씀임이 분명합니다. 이 말씀을 지금 시대에 맞게 바꾼다면, 꼭 육체노동이 아니더라도 하루하루를 살아가기 위해서 수고하며 일한 사람들을 향한 말씀입니다. 추상적인 표현이 아니라 실제적인 표현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정말로 하루하루의 삶으로 인해 지쳐있는 사람들을 향해서 내게로 와서 쉼을 얻으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향해서 ‘내게로 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그냥 오기만 해서는 쉼을, 안식을 얻지 못합니다. 29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조건을 제시하십니다. 조건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예수님의 멍에를 지라’고 하십니다. 두 번째는 ‘내게 배우라’라는 것입니다. 무엇을 배워야 합니까? 예수님의 마음을 배우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멍에를 지고 예수님의 마음을 배우면 예수님께서 안식을 주신다고 하십니다.

말씀의 흐름상 먼저 이야기 드린다면, 우리 성경에는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라고 되어 있습니다만, 원어는 영혼, 프쉬케가 쉼을 얻으리라고 나타납니다. 마음은 우리가 예수님을 통해서 배우고 채워야 할 것이고 쉼을 얻는 것은 우리의 영혼입니다. 우선 마음에 대해 먼저 살펴보려고 합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어떤 마음입니까?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입니다.

온유함은 ‘프라우스(πραΰς)’이고 겸손함은 ‘타페이노스(ταπεινός)’입니다. 프라우스는 겸손, 신중, 온유 등으로 사용되는 단어이고, 타페이오스는 낮음이라는 의미입니다. 둘 다 어느 정도는 유사한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즉 겸손히 낮아짐을 배우라는 말씀입니다. 이 낮아짐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 낮아짐이라는 기본적인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만, 뒤에 멍에와 연결해서 그 의미가 무엇인지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마태복음은 사람들의 마음에 대해서 상당히 많은 이야기를 합니다. 그렇기에 다른 복음서에는 없는 예수님의 말씀을 굳게 붙들고 복음서에 기록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마태복음이 말하고 있는 우리의 지금 마음, 예수님의 겸손하고 온유한 마음을 배우기 전, 우리의 마음은 어떤 상태입니까? 마태복음 15장 19절에 보면 명확하게 이야기합니다.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말하는 장로의 전통에 대해서 비판하시면서 하신 말씀이지만, 이 말씀은 결국 예수님의 마음을 배우지 못한 모든 사람에게 적용됩니다. 우리의 마음에는 악한 생각, 살인, 간음, 음란, 도둑질, 거짓 증언, 비방, 십계명을 모두 어기는 생각들로 가득 차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결코 쉼을 얻지 못합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악한 것들이 너무도 가득차 있기에, 하나님의 계명을 몸으로는 실천한다고 말하면서도, 실제 마음은 그 반대의 생각들을 품고 있기에 우리는 쉴 수가 없습니다. 몸과 마음이 반대로 되어 있기 때문에 쉬지 못하고 더욱 힘들게만 살아가게 됩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마음을 배우라고 하셨습니다. 겸손히 낮아지는 마음을 배우라고 하십니다.

낮아지는 마음

그런데 마태복음, 특히 오늘의 본문이 조금 재미있긴 합니다. 말씀의 배열을 살펴보면 그렇습니다. 성경은 아무런 이유 없이 쭉 나열된 글이 아닙니다. 분명한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말씀들을 배열하고 그 배열 속에서도 의미를 만들어냅니다. 마태복음은 다른 복음서들에 비해서 특히 더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이 나오기까지 11장의 시작은 세례요한의 제자들로부터 시작됩니다. 세례요한의 제자들은 예수님이 오실 메시아이신지를 묻습니다. 그들에게 예수님께서 대답하신 말씀 중에 마지막 비유의 말씀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16-19절 말씀을 보면,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까 비유하건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슬피 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하매 그들이 말하기를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기뻐도 기뻐할 줄 모르고, 슬퍼도 슬퍼할 줄 모르는 사람들, 세례요한이 금식할 때에는 금식한다고 비난하고 예수님께서 먹고 마실 때에는 먹고 마신다고 비난하는 사람들, 조금 더 생각해서, 세례 요한의 때는 금식의 때였다면 예수님의 때는 먹고 마시는 때임에도 시대를 분간하지 못하고 그저 비난만 하는 사람들에 대한 말씀입니다.

20-24절에서는 회개하지 않는 도시들을 보시며 그들을 향한 심판의 선언을 하십니다. 회개하지 않는 도시들은 앞선 시대를 분간할 줄 모르는 사람들과 같은 의미를 갖습니다. 이제 오늘 본문의 단락인 25절로 넘어오는데, 25절, 26절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지혜롭고 슬기있는 자들에게 이것을 숨기셨다고 합니다. 이것이라함은 시대를 분간하며 회개할 수 있는 행함의 지혜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어린아이들에게 나타내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어린아이들은 좋을 때는 웃고 춤추며 놉니다. 반대로 슬플 때는 울지 말라고 해도 웁니다. 그렇기에 지혜롭고 슬기로운 자들보다 어린아이들이 그 사실을 더 잘 알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복잡해 보이지만 정리해보자면, 기쁠 때 웃고, 슬플 때 우는 게 참된 지혜입니다. 그것이 어린아이들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마음, 낮아지는 마음은 여기에서 간단하게 연결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말씀에도 그대로 나옵니다. 마태복음 18장 4절입니다.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어린아이와 같이 낮아진다는 의미는 어린아이와 같이 기쁠 때는 웃고 슬플 때는 울 수 있는 마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멍에는 ‘크래스토스(χρηστός)’ 친절하고, ‘엘라프로스(ἐλαφρός)’ 가볍습니다. 웃어도 되고, 울어도 되기에 친절하며 가볍습니다. 또 여기에는 한 가지 의미가 더 있는데, 앞서서 요한의 제자들에게 예수님께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요한은 금식하였으나 나는 먹고 마신다. 이는 대조적인 표현으로 그냥 ‘먹고 마심’을 뜻하기보다 잔치의 모습을 연상시킵니다.

요한의 때와 예수님의 때의 구분은 금식과 잔치로 대조됩니다. 금식은 슬퍼할 때에 하는 것이고 잔치는 기쁠 때에 하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이후에는 이제 기쁨의 잔치의 때라는 말씀입니다. 잔치의 순간이기에 울기보다는 웃어야 할 일이 더 많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멍에는 가볍습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는 하루 동안 지치고 수고하여 일했던 사람들과 빵을 먹고 포도주를 마시면서 그들을 위로하시고 그들과 식탁을 나누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제 우리에게 그 기쁨의 잔치를 누리라고 하십니다. 그게 예수님의 멍에입니다.

말씀을 정리해보자면 이렇게 됩니다. 세상 속에서 열심히 일하고, 지금으로 말하자면 세상의 수많은 일로 인해서 지쳐있는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내게로 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 와서 예수님의 멍에, 금식이 아닌 먹고 마시는 잔치를 즐기는 그 멍에를 지라 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낮아지는 마음, 어린아이와 같이 기쁠 때에 웃고 슬플 때에 우는 마음을 배우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우리의 영혼이 쉼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들께서 예수님의 마음을 배우시기를 원합니다. 주님 앞에서 기뻐할 수 있고, 슬퍼할 수 있는 그 마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멍에는 무거운 짐이 아니라 친절하고 가볍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의 멍에를 진 사람들에게는 슬픔보다는 기쁨의 잔치 자리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 멍에를 또한 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영혼에 쉼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지금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마음은 착잡하고 무겁기만 합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4차 대유행도 우리를 힘들게만 합니다. 누군가를 맘 편히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복이었는지를 느끼게 하는 시기입니다.

코로나로 인해 경제적 손해를 입으신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2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는 고립에 가까운 상황으로 인해 마음에 상처를 입으신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이런 순간에 예수님께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삶은 여전히 힘들고 어려울지 몰라도 예수님 안에서 영혼의 안식을 얻으시고, 영의 쉼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우리 삶에서 얻는 소소한 기쁨, 짧은 순간의 안식이 아닌, 끊이지 않는 기쁨과 평안을 얻으시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joey8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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