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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꾸는 사람들“너희 중에 누가 이 일에 귀를 기울이겠느냐”(이사야 42:18-23)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 승인 2021.08.17 15:09
▲ 통일전망대에서 바라 본 해금강 ⓒ이상중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나요? 평안은 우리 내면에 존재합니다. 그렇기에 ‘평안을 누리고 싶습니다.’라는 용의를 내면 기꺼이 주어진 이 평안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날마다 선물로 주어진 이 참 평안을 누리시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주중에 저의 머릿속에서 성경의 한 구절이 계속해서 떠올랐습니다. 수요일 나누었던 말씀 가운데 있는 문장인데요. “이런 일이 있은 뒤에, 바울은 마케도니아와 아가야를 거쳐 예루살렘으로 가기로 마음에 작정하고 ‘나는 거기에 갔다가, 로마에도 꼭 가 보아야 하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사도행전 19:21에 나온 사도 바울의 고백입니다.

‘이런 일이 있은 뒤에’라고 기록한 이후에 바울은 ‘로마에도 꼭 가 보아야 하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나오는 ‘이런 일’이란 자신이 2년간 에베소라는 도시에서 보고, 경험한 하나님께서 이루신 놀라운 사건들을 말합니다.

자신이 겪은 변화, 말씀으로 인해 변하여진 사람들과 도시를 바라보며 사도 바울은 다음 단계에 대한 비전을 꿈꿉니다. ‘로마에도 꼭 가 보아야 하겠습니다.’ 에베소 보다 더 큰 도시, 어쩌면 자신들을 지배하고 있는 나라의 심장부라고 할 수 있는 곳으로 가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보겠다!’라는 고백입니다.

‘에베소에서도 함께 하시고 나보다 앞서 가시며, 먼저 일하신 하나님께서 로마에서도 함께 하시며, 일하시지 않겠습니까!’라는 사도 바울의 믿음의 고백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말처럼 사도 바울은 결국 로마로 향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의 이 비전이 저를 사로잡았습니다. “이제, 로마에도 가 보아야 하겠습니다.” 너무 대단하고, 멋진 고백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시리즈 영화라면 1편을 보고 난 후 2편을 기대하게 만드는 예고편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이들은 그 자리에 머무를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처럼 다음 단계에 대한 꿈을 꾸기 때문입니다.

오순절 다락방에서 성령을 받고 사람들이 자신들의 말로 성령이 시키는 대로 방언을 했을 때, 이 현상을 두고 베드로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사도행전 2:14-18의 말씀입니다.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일어나서, 목소리를 높여서, 그들에게 엄숙하게 말하였다. "유대 사람들과 모든 예루살렘 주민 여러분, 이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내 말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지금은 아침 아홉 시입니다. 그러니 이 사람들은, 여러분이 생각하듯이 술에 취한 것이 아닙니다. 이 일은 하나님께서 예언자 요엘을 시켜서 말씀하신 대로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마지막 날에 나는 내 영을 모든 사람에게 부어 주겠다. 너희의 아들들과 너희의 딸들은 예언을 하고,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꿀 것이다. 그 날에 나는 내 영을 내 남종들과 내 여종들에게도 부어 주겠으니, 그들도 예언을 할 것이다.’”

성령을 받은 사람들의 예언, 환상, 꿈은 자신들이 이루고자 하는 목적이나, 미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이루고자 하시는 것들을 보고, 듣고, 말하게 됨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참 은혜’를 경험한 이들은 나와 함께 하시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하나님 나라를 향한 봉사를 하게 됩니다. 나를 기쁘게 하는 일이 아니라, 나를 안심시키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일과 기도를 하게 됩니다.

오늘 이사야의 본문의 내용은 암울합니다. 22절을 보시면, “그러나 지금 그의 백성은 약탈과 노략을 당하였으며, 그들은 모두 구덩이 속에 갇혀 있고, 감옥에 갇혀 있다. 그들이 약탈을 당하였으나, 구하여 주는 자가 없고, 노략을 당하였으나, 노략자들에게 ‘돌려주어라’ 하고 말해 주는 자가 없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약탈당하고, 노략 당하고, 구덩이 속에 갇히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이런 자신들을 구하여 주는 사람도, 대변해 주는 사람도 없다고 했습니다. 총제적인 난국입니다. 어쩌다가 이런 상황까지 놓이게 되었을까요?

18-21절의 본문입니다. “‘너희 귀가 먹은 자들아, 들어라. 너희 눈이 먼 자들아, 환하게 보아라. 누가 눈이 먼 자냐? 나의 종이 아니냐! 누가 귀가 먹은 자냐? 내가 보낸 나의 사자가 아니냐!’ 누가 눈이 먼 자냐? 주님과 언약을 맺은 자가 아니냐! 누가 눈이 먼 자냐? 주님의 종이 아니냐! 그는 많은 것을 보았으나, 마음에 새기지 않았다. 귀가 열려 있었으나, 귀담아 듣지 않았다. 주님은 백성을 구원하셔서, 의를 이루려고 힘쓰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리하여 주님께서는 율법과 교훈을 높이셨고, 백성이 율법과 교훈을 존중하기를 바라셨다.”

하나님이 알려주셨고, 보여주셨지만 마땅히 듣고 보아야 할 이들이 귀담아 듣지 않고, 마음에 새기지 않아 하나님이 선택하신 백성이 절망 가운데 놓이게 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계속해서 “들어라! 환하게 보아라!”라고 애타게 자신의 종을 찾으셨지만, 누구도 응답하지 않았습니다. 왜 응답하지 않았을까요? 보지 않은 것도 아닙니다. 듣지 못한 것도 아니라고 오늘 본문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응답하지 않았을까요? 

하나님이 뜻하신 것보다, 자신들이 세운 것이 더 좋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삶보다, 자신들이 이루어 놓은 삶이 더 좋았기 때문입니다. “이젠 내 뜻대로, 우리 뜻대로 살겠습니다!, 내 마음대로 하겠습니다!”의 태도였기에 결국 절망적인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삶’에 집중합니다. 그래서 내 삶이 평안하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걱정거리가 없으면 신앙생활 잘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는 그것으로 만족하며 안주합니다. 하지만 여러 번 말씀드렸지만, 고이면 썩게 되어 있습니다. 은혜도 흘려보내지 않으면 그 은혜가 썩어 악취를 풍기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 좀 경험했다는 사람들을 보면 오히려 시간이 지난 뒤에 악취를 풍기는 경우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하나님은 계속해서 비전을 보여주시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 주시는데, 보지 않은 것처럼, 듣지 못한 것처럼 살아갑니다. 왜일까요? 더 이상 모험을 하고 싶지 않아졌고, 이정도로 충분하다고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성령은 특정한 어떤 사람에게가 아니라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에게나 꿈을 꾸게 하십니다. 특정한 어떤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에게나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며 살도록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이 보여 주시는 꿈을 듣게 되거나, 보게 되면 우리는 반드시 그 길을 향해 걸어가야 합니다. 회피하거나 거슬러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빌립보서 3:12-16 “나는 이것을 이미 얻은 것도 아니며, 이미 목표점에 다다른 것도 아닙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나를 사로잡으셨으므로, 나는 그것을 붙들려고 좇아가고 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나는 아직 그것을 붙들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가 하는 일은 오직 한 가지입니다.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향하여 몸을 내밀면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부르신 그 부르심의 상을 받으려고, 목표점을 바라보고 달려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성숙한 사람은 이와 같이 생각하십시오. 여러분이 무엇인가를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께서는 그것도 여러분에게 드러내실 것입니다. 어쨌든, 우리가 어느 단계에 도달했든지 그 단계에 맞추어서 행합시다.”

빌립보서에 기록된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로잡으시고, 계속해서 도달해야 할 단계를 제시해 주십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향해 몸을 내밀면서 그 단계에 맞추어서 행해야 합니다. 내가 하고 싶은 거, 되고 싶은 거, 이루고 싶은 거, 가지고 싶은 거 이런 거 말고, 하나님이 지금 나에게 무엇을 요구하시는지를 듣고,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듣고, 본 것을 실천해야 합니다.

그럼 어떻게 됩니까? 우리를 사로잡았던 일, 문제라고 여겼던 일들이 어느 순간 정리되어 있음을 경험케 되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를 그토록 흔들었고, 그래서 매달리게 만들었던 문제들이 해결되는 것은 그저 은혜의 부스러기에 지나지 않음을 저와 성도님들은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믿음의 어느 단계에 이르면 또 다른 단계가 반드시 보입니다. 그럼 그 단계를 향해 나아가시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성도님들은 이번 2020 도쿄올림픽을 보셨나요? 이번 올림픽에서 저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선수는 국군체육부대 소속으로 높이뛰기 종목에 출전해서 4위를 한 우상혁 선수입니다. 우상혁 선수가 2m35라는 높이의 한국 신기록을 작성하기는 했지만, 매달을 따지는 못했습니다. 우상혁 선수가 매달은 따지는 못했지만 이런 감동적인 이야기들을 인터뷰 중에 했습니다.

“정말 오늘 밤 높이 날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습니다.”, “2m39에 도전할 수 있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훈련 때도 뛰어보지 않은 높이, 정말 내게는 말도 되지 않는 높이였는데, 이제 현실이 됐습니다.”, “2m39 뛰어보니까, 더 높이 뛰고 싶어졌습니다.” 우상혁 선수는 “더 높이 뛰고 싶어졌다.”라는 꿈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불가능이라 여겼던 영역을 이제는 현실로 여기며, 할 수 있다고 여기는 단계로 올라서게 되었습니다. 이런 일이 가능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요?

자신에게 처음 주어진 비전, 꿈을 이루어냈기 때문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처음 주어진 비전을 향해 도전했기 때문입니다. 방송으로 본 우상혁 선수는 뛰는 내내 즐거워 보였습니다. 실패해도 “괜찮아. 괜찮아.”를 연발했고, 관중들의 환호와 박수를 이끌어내며 경기에 임했습니다.

세상의 목표를 향해 가는 삶도 즐거울 수 있는데, 하물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비전을 주시고, 비전을 이루기 위해 우리와 함께 하시며 이끌어 주시는데, 비전을 이루어 가는 삶은 얼마나 더 즐겁겠습니까?

성도님들에게 광고시간에 말씀드린 DMZ국제평화대행진이 어제부로 18박19일의 일정을 마무리 했습니다. 19일간 걸은 인원은 대략 30명, 부분 참여한 인원까지 합하면 500여명이 참여한 행진이었다고 합니다. 하루하루 어떻게 행진을 했는지, 어떤 도움을 받았는지 이 행진의 대표인 조헌정 목사님이 개인 SNS에 과정을 올려주셔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있지 않았다면 언제라도 끊길 수 있는 행진이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과북의 평화 통일이라는 한 가지 소망으로 걸은 400km의 여정은 한 마디로 기적이었고, 은혜의 행진이었습니다.

저희 교회가 이 행진에 작지만 물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었고, 첫 날 행진 때 지쳐 있는 공동체에게 첫 쉼터로서 공간을 제공할 수 있었음이 참으로 감사했습니다.

이런 행진이 필요한 이유는, 이 행진으로 말미암아 다시 한 번 ‘평화통일’이라는 주제가 많은 이들에게 알려질 뿐만 아니라 이런 과정속의 기도가 통일이 앞당겨지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무더위와 비 그리고 코로나라는 여러 가지 악 조건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일궈낸 대단한 성과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함께 걷지는 않았지만 매 주 기도를 부탁하며 중보 했기에 우리 교회가 함께 이루어낸 성과라고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평화대행진을 위한 전 날 저녁에 명파해수욕장 캠핑장에서 이 모든 일의 시작이 된 조헌정 목사님에게 한 가지 질문을 했습니다. “목사님, 어떻게 이런 계획을 하셨나요?” 그랬더니 목사님께서 하신 대답이 저를 놀라게 했습니다. 본인은 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의 버킷리스트 중의 하나가 DMZ길을 걷는 것이었고 그래서 사소하게 혼자서 걸으실 생각도 있으셨는데. 한 회의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듣던 분이 “목사님, 좋은 생각인데요!”라는 말을 시작으로 일이 착착 진행되어졌다고 하셨습니다.

기간, 일정, 모든 부분에 있어서 본인이 관여하신 것보다 민간단체에서 주도적으로 일을 처리해주셨고, 그래서 지금과 같은 행진이 가능해졌다고 하셨습니다. 조헌정 목사님은 다만 의도를 내셨을 뿐이었습니다. 이렇게까지 표현한다면 조금 과장될 수도 있겠지만, 저의 시각에서는 일이 알아서 굴러간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자신의 삶에 큰 부분을 차지하는 ‘통일’이라는 소망을 가진 조헌정 목사님의 기도는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는 한 부분입니다. 그래서 이 소망과 기도가 자연스레 하나님의 뜻과 인도하심 가운데서 이루어져 가고 있다고 믿습니다.

하나님을 만난 이들은 이처럼 꿈을 꾸고, 그 꿈을 향해 나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자신의 안녕과 목적을 넘어 하나님 나라에 봉사하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 안에 이루어진 하나님 나라가 삶을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묻습니다. “23 너희 가운데 누가 이 일에 귀를 기울이겠느냐? 누가 앞으로 일어날 일을 주의하여 듣겠느냐?” 

오늘은 광복절입니다. 나라를 되찾기 위해 수많은 이들이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았습니다. 많은 믿음의 선배들도 광복을 위해 순교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보여주신 비전, 광복이라는 꿈을 향해 나아간 이들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삶이 가능해졌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3년, 초도제일교회에 부임해서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하나님은 저에게 초도제일교회를 통해 평화와 통일을 꿈꾸게 하셨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이 꿈을 성도님과 나누는 과정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첫 해 다함께 통일전망대 군 교회에 가서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부르며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과거의 이 이벤트가 저와 성도님들의 여정에 끝이 아니라고 믿습니다.

제가 그리고 저희 가정이 최북단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지난 2주간 11팀이 저희 집, 교회, 지역을 다녀갔습니다. 제 평생에 이런 일은 없었습니다. 그저 놀고 즐기는 게 아니라 제가 그리고 교회와 성도님들이 이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고, 해야 하는지를 알릴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교회에 주신 비전을 위해 사람들을 이곳으로 계속해서 보내주고 계신다고 저는 믿습니다.

안주하지 않고, 계속해서 다음 단계로, 다음 단계로 나가며 은혜와 사랑을 흘려보내기를 소망하고 실천한다면 우리 초도제일 믿음의 공동체는 더 많은 놀라운 일들을 이루어 낼 것이라 저는 확신합니다. 왜요? 하나님이 이끌어 가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공동체에 알려 주시는 꿈에 귀를 기울이고, 환상을 보고, 예언을 하면서 푯대를 향해 나아갑시다. 그리고 이 길의 과정 속에서 저와 성도님들 우리 교회가 어떻게 변화해져 있을지, 어떤 축복과 은혜를 경험했을지 지켜보며 감사할 수 있게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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