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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블랙 위도우>, 몰라뵈서 죄송합니다!최병학 목사의 <인문학으로 영화 읽기>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 승인 2021.08.17 15:29

* 먼저 ‘찐반성’합니다

정말 ‘아는 만큼 보입니다!’

나름 영화에 대한 이해도가 있다고 생각했건만, <블랙 위도우>(2021)를 보고 그다지 쓸 말이 없었습니다. 사실 저는 좋은 영화를 보면 글을 쓰고 싶은 생각이 들고, 또 글도 잘 나옵니다(잘 쓴다는 말이 아니라, 하고 싶은 말이 많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개봉 첫날 <블랙 위도우>를 본 후에는 글 쓸 생각도 들지 않았고, 그저 그런 영화라고 평하며 그냥 지나쳐 왔습니다. 그런데, 거의 한달이 지나, 영화의 내용이 가물가물할 때, 오지은 작가의 글, ‘드디어 편한 신발 신고 썸타지 않게 된 영웅’(시사IN2021.8.10.)이라는 글을 읽고 머리에 번개가 번쩍 쳤습니다. 정말, ‘찐! 아는 만큼 보입니다.’

오지은 작가는 이 영화를 세 가지 정도 관점으로 읽습니다. 이 글을 읽으며 ‘안산 선수에 대한 페미 논쟁’, ‘MZ 남성들의 여성에 대한 불편한 시선’ 등이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의 사고였는지, 얼마나 어리석은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남성들은 절대 여성들이 받아온 차별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아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다시 어머니의 태로 들어가 다시 태어나야 하기 때문입니다(물론 성령으로 거듭하면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럼 오지은 작가의 영화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먼저 영화 <블랙 위도우>의 간략한 줄거리입니다. 오지은 작가는 다음과 같이 세 가지 관점으로 영화를 읽습니다.

“자아가 비대하고 추한 특정 성별의 중년이 어떻게 세상을 망가뜨리는지, 그리고 그가 물건으로 사용하던 희생자가 살아남아서 어떻게 자신을 구하고 다른 피해자들을 구하는지에 대한 이야기이자, 이놈의 집구석 너만 탈출하고 바깥세상 나가서 영웅 소리를 들으니까 좋냐? 집에 남은 내 생각은 나지도 않더냐? 하고 동생에게 비난받는 장녀 서사이자, 자기 행복만 생각하면서 소소히 살아도 되는데 타인과 세상을 위해 불구덩이에 들어가는 초인의 이야기였다.”

물론 이 영화의 감독 케이트 쇼틀랜드도 여성이고, 주연배우이자 제작자인 스칼릿 조핸슨도 여성입니다. 따라서 오지은 작가는 감독과 주연배우에 감정 이입하여 영화를 설명합니다. 필자는 이것을 다음과 같은 세 가지로 소개하고자 합니다.

1. 페미니스트 세대론

먼저 페미니스트 세대론입니다. 오지은 작가는 영화에서 엄마 멜리나를 1세대 페미니스트, 주인공 나타샤를 2세대, 동생 옐레나를 3세대 페미로 간주합니다. 먼저 멜리나와 나타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 멜리나

“멜리나는 자신이 쳇바퀴 안에서 태어난 쥐라서 빠져나올 수 없다고 말한다. 나타샤는 쳇바퀴 안에서 태어난 건 당신 탓이 아니고, 무엇보다 당신은 쥐가 아니라고 말한다. 우리는 왜 이런 세상을 물려줬냐고 윗세대를 쉽게 비난하지만, 사실 그는 그 세대에게 허용된 최대한의 범위로 애써온 것일 수도 있다. 해독약도 멜리나 세대의 위도우가 만들어둔 것이다.”

1세대 페미니스트가 남성 가부장적 사회의 쳇바퀴에서 고통스럽지만, 해결책을 제시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것을 2세대 페미니스트들이 알아줘야 합니다. 왜냐하면 시대적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3세대 페미니스트인 동생 옐레나는 어떤가요? 사실 옐레나는 최근 주목받는  MZ세대와 비슷합니다. 오지은 작가의 말입니다.

▲ 옐레나

“동생 옐레나는 아직 자신을 찾고 있는 천둥벌거숭이다. 다 부수고 싶지만, 방법도 모르겠고 무엇보다 헬리곱터를 빌리거나 무기를 준비할 연줄이 없다. 하지만 그런 천둥벌거숭이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언니와 동생의 관계도 재미있는데, 동생은 언니를 동경하면서도 좀 촌스럽다고 생각한다. 특히 착지할 때의 시그니처 포즈가.”

스칼렛 조핸슨은 인터뷰에서 자기가 그 시그니처 포즈를 각인시키기 위해 10년을 고생했는데 플로렌스 퓨가 단숨에 박살냈다며 웃었습니다. 신세대가 나타나면 구세대의 가장 멋진 부분이 단숨에 촌스러워지는 것입니다. 오지은 작가는 이것을 “씁쓸하지만 멋진 일이다.”라고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여성들이 남성, 곧 아버지 레드 가디언을 대할 때 극명하게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 레드 가디언

“엄마는 웃으면서 받아주는 듯 비꼬고, 큰딸은 진저리를 치고, 막내딸은 얼굴에 펀치를 날려버린다.”

2. 남성 빌런의 ‘무’매력

오지은 작가는 빌런에 관해서도 한마디 합니다. 영화에 나오는 빌런인 드레이코프 이야기입니다. 한 마디로 쉰내가 나서 돌아버리는 줄 알았다고 하는데, 인용을 해 보겠습니다.

▲ 드레이코프

“드레이코프는 비겁자답게 위도우들이 절대 자신을 해하지 못하게 암시를 걸어놓는다, 전투 능력이 한없이 0에 가까울 드레이크프가 나타샤에게 손을 올리자 인간 흉기인 나타샤는 9세 여자아이처럼 몸을 움찔거린다. 영화 속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가정폭력을 당하는 피해자들에게 지금도 일어나는 일이다. 아 참, 드레이코프가 한 말 중에 ‘어둠을 지배하는 자가 세상을 지배하는 거다 큭큭…’ 여기서 쉰내가 나서 돌아버리는 줄 알았다.”

지금 대선 주자들을 보는 MZ세대 여성들이 느끼는 감정이 이와 같을 것입니다. 그러나 조심스럽게 제안해 본다면, 쉰내 나서 돌아버리지 말고, 유권자 절반인 여성들을 대표하는 여성을 뽑으면 되지 않을까요? 블랙 위도우와 같은 여성 예비 후보도 있습니다. 비록 지지율은 미비하지만! 그러나 이것이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고부 갈등’처럼 여성들의 적은 여성이고, 여성은 같은 여성을 영웅으로 받아들이기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영화를 보면, 나타샤가 해독제를 맞기 전 여성 위도우들에게 두들겨 맞는 장면이 나옵니다. 나타샤는 그들을 해치고 싶지 않지만, 해독제를 맞기 전의 여성들에게 나타샤는 죽여야 하는 적입니다. 오지은 작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건 앞에 서는 여성에게 일어나는 슬픈 일이다. 나와 같은 피해자에게 미움받는 일!” 플라톤도 동굴의 비유에서 소크라테스와 같은 선각자가 죽임을 당하는 이유를 비슷하게 비유한 적이 있습니다. 이는 여성도 마찬가지입니다.

▲ 위도우들

3. 힐에서 편한 신발로, 썸타는 여성에서 세상을 구하는 영웅으로!

마지막으로 <어벤저스> 시리즈에 나온 나타샤의 모습입니다. 나타샤는 2010년 영화 <아이언맨 2>에서 블랙 위도우로 처음 등장했고, 그 후 ‘어벤져스 세계관’ 영화에 총 여덟 번 출연했습니다. 그런데 나타샤는 이 어벤져스 시리즈에서 늘 힐을 신고 싸웠습니다(도대체 이게 가능한 걸까요? 영화를 보는 남성 관객의 입장이 지독하게 반영된 것입니다). 또한 시리즈마다 썸을 탑니다. 기막힌 것은 썸을 타는 대상도 매번 바뀌어 함께 출연한 남자 배우들에게 공개적으로 조롱당하기도 했습니다. 오지은 작가는 이렇게 반문합니다. “업계에서 일한 지 30년이 넘는 스칼릿 조핸슨은 어떤 생각을 하며 버텼을까?”

그러나 드디어 이번 영화에서 스칼릿은 편한 신발을 신고 싸움을 하고 누구와도 썸을 타지 않습니다. 저도 몰랐고, 남자들은 알 수 없는 여성들의 ‘다른 목소리’입니다. 오지은 작가의 말입니다.

“블랙 위도우가 혼자 시간을 보내는 장면은 그간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놀랍지 않은가? 어떤 집단에서 여성의 존재가 누군가의 썸 상대로만 취급되는 건 흔한 일이다. 여자는 다 형수님 아니면 제수씨라는 농담을 들어왔던 시간이 떠올라 괴롭다.”

아, 정말 괴롭습니다. 이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는 왜 이런 것들이 보이지 않았을까요? 어쩔 수 없는 남성의 시각과 가치관이 저에게 잠재되어 또 다른 ‘하나님의 형상’이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창 2:23)’인 여성들을 몰라뵀습니다. 그러고도 사랑스런 세 딸의 아버지라니 부끄럽습니다.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hak-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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