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마가톨릭교회의 유일한 성서였던 라틴어 성서 불가타 ⓒGetty Image

성서는 기독교의 황금시대로 기억되는 초대 기독교 시대부터 기독교 신학과 교회의 바탕과 규범으로 작용해왔다. 그러나 중세에 들어서면서 로마 가톨릭교회는 성서가 신학과 교회의 바탕과 규범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동의했다. 하지만 실제적으로는 교황의 말과 이익을 다른 모든 사람들의 성서이해보다 우선시하기 시작했다.

교리와 개인들 그리고 교회의 삶에 대해 성서가 어떻게 이해되어야 하는지는 로마 교황과 그의 위임을 받아 군림하는 교도권만이 독단적으로 결정했다. 그리고 이 교도권은 사실상 성서를 멋대로 다루었다. 이미 오래전에 동방 교회들에 의해 배척당했던 이 로마의 권위주위가 이제는 서방 기독교계 안에서 심각한 도전을 받게 된 것이다.

개혁자들은 그들의 위대한 슬로건 중의 하나인 “오직 성서만”(sola scriptura)의 원리를 통해 교회의 관습과 믿음을 저 기독교의 황금시대로 기억되는 초대 기독교의 관습과 믿음에로 되돌려놓고자 했다.(1) 이러한 이유로 “오직 성서만”의 원리는 ‘종교개혁의 내용원리’로 일컬어지는 “믿음 만에 의한 칭의의 교리”(2)와 비교되어 ‘종교개혁의 형식원리’로 일컬어진다. 종교개혁 운동의 모든 분파들은 츠빙글리가 『하나님의 말씀의 명료성과 확실성에 관하여』(1522) 말한 것을 확신하고 있었고, 성서를 자신들의 이념과 실천의 원천으로 여겼다. 우선 성서에 대한 개혁자들의 이해를 중세 후기와 르네상스 시대의 사상적 지평 안에서 살펴보자.

성서와 전통

초대교회의 신학자들에게 성서는 기독교의 가르침을 위해 내용적으로 충분한 원천이었다. 바꿔 말하면, 그들은 기독교 신앙을 위해 본질적 중요성을 가진 모든 것들이 성서에 포함되어 있다고 보았기 때문에, 다른 어떤 곳에서 기독교 신학에 내용상 중요성을 가진 것을 찾을 필요가 없다고 간주했다. 물론 성서가 말해주지 않는 문제들도 있지만, 이러한 문제들은 성서가 함축하고 있는 것을 풀어서 해명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초대교회 내부에서 다양한 논쟁들이 발생하면서, 특히 영지주의의 위협에 대응하여 성서의 어떤 구절들을 이해하는 방식에서 소위 “전통적인” 해석 방법이 발달하기 시작했다. 리용의 이레네우스와 같은 2세기의 교부들은 성서의 어떤 구절들을 해석할 때 공인된 방식의 이념을 적용하기 시작했고, 그는 이러한 해석방식이 사도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성서는 아무렇게나 해석되어서는 안 되며, 기독교회의 역사적 연속성이라는 맥락 속에서 해석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H. A. 오버만은 전통에 대한 이러한 이해를 “전통1”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전통은 단순히 성서를 해석하는 전통적 방식을 의미한다.

그러나 14, 5세기에 이르러 전통에 대한 약간 다른 이해 방식이 발달하게 되었다. “전통”은 이제 성서에 더하여 성서로부터 분리되고 구별된 계시의 원천으로 이해되었다. 예컨대, 중세 후기 이후 로마 가톨릭 교회는 성서와 분리되고 구별되는 어떤 계시의 원천을 갖게 된 것이다. 이제 본질적인 중심 곁에 부차적인 중심이 놓이게 되었다. 성서와 나란히 교회의 교리전통이 있고, 그리스도와 나란히 사도 베드로와 오류 없는 교회가 있으며, 하나님의 존재와 나란히 피조물의 존재가 있었다. 칼 바르트는 이것을 가톨릭의 “숙명적인 이원론”이라고 부르고, 그 전형적인 형태를 피조적인 존재가 신적 존재의 유비로 서 있는 “그리스도‘와’ 마리아”에게서 본다.(3)

그러나 로마 가톨릭 교회는 성서가 많은 점들에 대하여 침묵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러한 결핍을 보충하기 위하여 섭리로써 계시의 제2원천을 준비하셨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사도들에게 거슬러 올라가는 기록되지 않은 전통의 흐름이며, 이러한 전통이 교회 내에서 세대를 통해 전승되어왔다는 것이다. 오버만은 전통에 대한 이러한 이해를 “전통2”라고 부른다. 개혁자들이 주된 비판을 가했던 것은 교리가 상당히 구별되는 두 원천, 즉 성서와 기록되지 않은 전통에 근거한다는 바로 이 교리의 이중 근원 이론이었다. 따라서 중세 후기의 핵심적 쟁점은, 교회가 성서에서 발견하거나 추론할 수는 없지만, 전해진 전승들 가운데서 그 권위와 사도적 진정성에서 정경(canon)과 동등하다고 추정되는 신념들을 회중에게 선포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그렇다고 했고, 마르틴 루터와 훌드리히 츠빙글리, 그리고 존 칼빈, 하인리히 불링거 같은 개혁자들은 강하게 거부하면서 성서 이외에는 다른 어떤 계시의 원천이 없다고 주장했다.(4)

중세의 불가타역 성서

중세 신학자에게 ‘성서’는 4세기 후반과 5세기 초에 제롬이 번역한 특정한 라틴역, 즉 textus vulgatus(문자적으로 ‘평범한 본문’이라는 뜻)를 의미했다. 그러나 이 불가타 성서는 다양한 형태로 중세에 전수되었기 때문에, 11세기 이후에 지적 활동의 새 시대가 활짝 열리기 시작했을 때 사람들은 불가타 성서의 표준판을 절실히 요구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불가타의 서로 다른 판본들에 기초한 신학들은 혼란을 일으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표준화의 필요성에 따라서 1226년 몇몇 파리 신학자들과 출판업자들이 공동의 모험적 사업을 감행하였고, 그 결과 불가타 성서의 “파리 판”이 출현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파리 판”은 순전한 상업적 기획의 결과였다. 이 파리 판은 번역상의 치명적인 오류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 파리가 유럽에서 신학의 주도적 중심을 차지하고 있었던 까닭에 성서의 “표준판”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제 중세 후기의 신학자들은 자신의 신학을 성서에 정초시키려고 할 때 이 “파리 판”을 사용하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인문주의자들은 본문비평의 방법과 언어학적 도구들을 통하여 불가타와 히브리어/헬라어 본문 사이의 불편한 불일치를 드러냈고, 마침내 교리적 개혁의 길을 열어 놓았다.(5)

중세의 성서 국역판들

중세 후반에 다수의 국역판 성서들이 출판되었다. 위클리프 판(14세기)은 이러한 번역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 번역판은 영국 러터워스에서 위클리프 주위에 모인 일군의 학자들에 의해 시도되었다. 다른 곳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 그들은 영적이고 정치적인 동기를 가지고 성서를 영어로 번역했다. 평신도들이 이제 하나님의 말씀에 직접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는 영적이었고, 교회의 가르치는 권위에 은연 중 도전하게 되었다는 점에서는 정치적이었다. 이로써 평신도들이 성서의 이상적 교회와 현실의 영국교회 사이에서 분명한 차이를 느끼게 되었고, 이렇게 개혁 프로그램을 위한 일정이 확립되었다.

그러나 이 시기에 출판된 모든 국역판 성서들은 단순히 불가타에서 번역한 것들이기 때문에 은 국역판 성서들의 중요성이 과장되어서는 안 된다. 보다 이후에 개혁자들이 훨씬 더 정교한 본문비평과 언어학적 도구들의 적용을 통해 모국어로 번역하면서부터 종교개혁의 교리적 개혁이 가능했다는 것이 바로 중세의 성서 국역판들의 명확한 한계를 보여준다.(6)

성서의 해석

성서를 해석할 궁극적 권위를 누가 갖고 있는가 하는 문제는 중세 후기까지는 그렇게 심각한 문제가 아니었다. 성서는 교회에 의해서 해석되었고, 성서의 권위는 그 해석자인 교회의 권위에 의해 보증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세 후기에 들어서면서 이 문제는 결코 자명하지 않게 되었다. 교황인가? 공의회인가? 아니면 혹은 누가 주장한 것처럼, 성서를 잘 알고 있는 경건한 개인인가? 실제로는 그러한 권위를 가진 자는 당대의 교황이라고 여겨졌지만, 15세기 후반에 들어서서는 이 문제에 관한 한 다원주의가 사실상 만연하게 되었다.

최영 소장(기독교장로회 목회와신학연구소)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