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족속의 멸망은 땅을 혹사시킨 결과였다고 말씀하신다. ⓒGetty Image

이스라엘은 오랜 시간 온갖 일을 겪으며 광야생활을 했습니다. 그 생활의 시작과 끝이 흥미롭습니다. 처음에 하나님은 마라의 쓴 물을 단 물로 ‘고치시고’ 이스라엘에 물을 공급하시며 자신을 그들의 치료자 하나님으로 나타내셨습니다.

광야생활을 마치고 가나안 여정을 시작한 직후 이스라엘은 이번엔 에돔 땅을 돌아서 가는 길 때문에 마음이 상했고, 하나님을 원망했다가 불뱀들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백성들의 간구에 따른 모세의 중재에 하나님은 장대 위에 놋뱀을 달고 그것을 쳐다보는 사람은 낫게 하셨습니다. 처음에 하신 말씀에 따른 것일까요?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광야생활 처음과 끝에 자연과 사람의 치유자로 행동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이러한 모습이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착과 관련해서는 어떻게 나타날까요?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착 과정은 단순하지 않습니다. 싸워야 할 때도 있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었습니다. 원주민을 제압한 곳도 있고 그렇지 못한 곳도 있습니다. 이런 사정을 감안하면, 위의 본문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요?

이스라엘은 요단 동쪽 모압 평지를 기점으로 정착 행진을 시작합니다. 그 지역은 목축에 알맞은 여건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때마침 가축이 많았던 갓 부족과 르우벤 부족은 그 땅이 탐났습니다. 그들은 모세에게 자신들은 여기 살았으면 좋겠다고 하며 요단을 건너지 않게 해달라고 청원을 합니다.

공분을 사기에 부족함이 없는 말입니다. 이에 모세는 격분해서 너희는 가나안 정탐사건으로 광야에서 몰락한 조상들의 죄를 물려받은 죄인들이라고 질책합니다. 이에 두 부족이 이스라엘의 선봉이 되겠다고 하자 모세는 그렇게 하라고 하며 위와 같이 말합니다.

정복되어 있다는 말은 전쟁의 결과이기 때문에 타당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상태는 조금 달리 이해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야훼 앞에’라는 말 때문입니다. 이는 그 땅의 상태가 야훼의 요구에 부합해야 함을 말할 것입니다. 레위기 18장은 그 땅의 원주민들이 그 땅을 더럽혔기 때문에 그 땅에서 쫓겨나니 이스라엘도 그 땅에서 쫓겨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그러면 야훼의 요구에는 그 땅을 깨끗하게 유지하고 보존해야 한다는 것이 포함되어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정복되어 있다는 말이 창세기 1,28에서는 처음 창조된 인간에게 땅을 ‘정복하라’는 명령으로 나옵니다. 그 땅은 아직 사람이 발을 들여놓지 않은 땅이니 더러울 리는 없습니다. 마치 정복되어 야훼 앞에 있는 땅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제 그 땅을 밟고 하나님의 뜻에 맞게 그 땅을 사람이 살 만한 곳으로 바꾸어가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땅을 ‘정복하라’는 말의 속뜻일 것입니다. 땅은 전쟁의 상대가 아닙니다.

지금의 땅은 하나님 앞에서 어떤 모습일까요? 정복하라는 말을 잘못 이해한 사람들의 폭력적 행태들 때문에 땅은 신음하고 있습니다(롬 8,22 비교). 희년을 기다리는 땅이라고 해도 될 것입니다. 땅을 이제는 ‘하나님 앞에서’ 생각하고 사용해야 하지 않을까요?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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