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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안드로진 조상들 이야기퀴어성서주석을 이야기 하다 ⑵
박미소 | 승인 2021.08.23 16:13
지난 4월 무지개신학연구소가 『퀴어성서주석: I. 히브리성서』 (퀴어성서주석 번역위원회 옮김)를 출간했다. 출간 전부터 화제를 낳았고 출간되자마자 많은 이들의 환영을 받았다. 하지만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속된 말로 위험한 책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에 에큐메니안은 『퀴어성서주석』를 각 책별로 간단하게 소개하는 연재를 시작한다. 미래의 독자들에게 어떤 책으로 다가갈 수 있는지를 소개하는 차원이다. - 편집자 주

안녕하세요. 저는 한신대학교 대학원에 마지막 학기를 남겨두고 있는 학생입니다. 낯섦에서 오는 두려움의 감정으로 인한 혐오를 하지 않도록 우연히 계속해서 퀴어에 대한 공부를 하고, 마주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창세기>는 Genesis, 기원, 창시라는 이름 그대로 시작에 관한 책입니다. 창세기 속에는 인간의 행실로 인해 하나님과 인간의 영역이 나뉘게 되었으며 이러한 패턴은 이스라엘의 기원이 되는 가족 이야기가 반복되어 나타납니다. 이 비극적인 원인론적 특성은 이스라엘 조상들의 가족이 약속의 땅에서 자리 잡는 이야기로도 드러납니다. 결국 그들은 약속의 땅 밖에서 머무는 것으로 끝나고 창세기의 이야기들은 이어지는 이야기들의 예시가 됩니다.

마이클 카든은 이 책에서 창세기를 익숙하지 않게, 낯설고 새롭게 읽으려고 시도합니다. 창세기의 많은 이야기들이 젠더와 성에 관해 보수적으로 해석하는 데 이용되어 왔기 때문입니다. 주석을 통해 그리스도인 독자들에게 창세기의 낯섦을 고조시키고자 하고, 창세기는 그리스도인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상기시키려합니다. 창세기가 주는 대답은 모순으로 생기는 질문을 다룰 때 최초의 안드로진에 대한 고대 신화를 사용합니다.

곧 남성과 여성을 모두 보유하고 있고, 세계의 근저에 있는 최초의 연합체/단일체를 반영하는 최초의 인간에 대한 신화입니다. 이러한 시도를 통해 창세기의 모호하고 여러 목소리를 가진 특징으로 현대의 억압적인 해석을 허물기를 시도하고, 창세기를 도덕, 신학, 영성에 대한 불변의 진리를 얻기 위함이 아닌 모호함을 포용하고 즐기고 질문하고 도전하고 도전받기 위해 읽기를 주장합니다. 

창세기는 첫 부분에 담고 있는 창조 이야기부터 모호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모습으로 우리의 형상에 따라 인간을 만들자…’라고 말씀하시며 하나님은 인간을 그의 모습으로 만들었습니다. 아일버그-슈바르츠(Eilberg-Schwartz 1991)는 하나님은 몸이 있으신가? 그렇다면 하나님은 남자인가, 여자인가, 아니면 둘 다인가? 하나님은 어느 성인가라고 묻습니다. 또 다른 질문은 창세기는 두 가지 성만이 있는 제도를 정하는가? 창세기는 생식을 하는 섹슈얼리티만을 유일한 것으로 정하는가?

이에 대한 답으로 마이클 카든은 앞서 이야기했듯이 안드로진을 이야기합니다. 최초의 인간은 안드로진이었고 후에 하나님이 두 가지 성으로 나누셨다는 것입니다. 창조이야기를 시작으로 유대교가 섹슈얼리티에 대해 경고하는 이야기로 사용해 온 홍수 이야기에 대한 새로운 해석, 이스라엘의 기원이 되는 아브라함과 사래의 이야기, 사라와 아브라함에서 나오는 하갈과 롯의 이야기, 마지막으로 야곱과 요셉의 이야기까지 마이클 카든은 우리에게 여태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해석을 통해 도전하고 있습니다.

책에서 새로 읽어내는 창세기의 이야기는 아브라함과 사라는 최초의 안드로진 짝을 표상하며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초점은 사라에게 맞춰져 있으며 하나님이 사라에게 직접 대답하십니다. 또한 동성애 혐오에 가장 대표적인 근거로 사용되는 소돔과 고모라의 이야기를 그렇게 해석하는 것은 지배적인 여성혐오적 질서에서 오는 강간을 합의에 의한 동성애와 동성 간의 사랑과 혼동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늘 나쁘게 말하는 롯의 아내도 결혼한 딸들이 뒤따라오는지 돌아본 것이 아닌 하나님에게 미움 받는 사람들, 자신들을 구원할 믿음이 없던 사람들에 대한 연민으로 돌아본 것입니다. 침묵하고 힘이 없던 롯의 딸들은 나름의 힘을 발휘한 행동으로 인해 모압과 암몬의 여자 조상이 되고 오히려 하나님이 딸들의 공모자가 되어 포도주를 두셨다고도 이야기합니다. 모든 주석들을 풀어낼 수 없지만 책에서 다르게 읽어내는 창세기는 여태까지 자연스럽고 아무렇지 않게 혐오를 바탕으로 해석된 것을 향한 도전입니다.

아브라함에게만 초점이 맞춰져있던 성서해석을 하나님이 사라가 낳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에서 사라에게 주목하고, 그들이 사실 안드로진이라는 책의 이야기는 흥미롭고 낯설기도 합니다. 또한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해서 아이를 갖는 죄로 여겨지는 이야기는 딸들은 오히려 그들이 힘을 발휘해 여자 조상이 되는 기회로 삼은 것이며 하나님이 도와주신 것이라고도 하는 것은 익숙한 해석에 안일하던 독자들에게 불편함까지 줄지도 모릅니다.

저 또한 약간의 그런 마음이 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느꼈다면 책이 의도한 바대로 된 것입니다. 애초에 책은 창세기를 낯설고 새롭게 읽으려했고 여태까지 안일하게 창세기를 읽고 해석했던 그리스도인들에게 전유물이 아닌 것을 상기시키려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읽었다면 책이 의도한 대로 잘 읽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가 가부장제 세계를 가지고 있지만 창세기의 여자들은 조용히 종속되어 있거나 천막 안에 고립되어 있기만 하지 않습니다. 여자들은 자신 있게 말하고 행동합니다.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여자들은 모든 가부장제의 표준을 깨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리스도인들이 창세기로부터 만들어낸 이념들은 가부장적이고 여성혐오적이고, 동성애혐오적인 생각, 관습이라는 것입니다. 창세기를 이렇게 해로운 목적에 사용하는 것은 우리에게 해로운 이념들을 논박하는 새로운 방식의 해석을 요구합니다. 그러한 시도를 이 책에서 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은 여성들로 하여금 신선하고 정력적이고 열정적으로, 그리고 장난스럽게 읽으라고 부탁하고 애원한다. 남성들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랍비들은 토라에 대해 말한다. ‘그것을 돌려라, 돌려라. 모든 것이 그 안에 있기 때문이다.’ 그밖에도 랍비들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발견하도록 만드신 모든 의미를’ 의도하셨다고 말한다.”(Ostriker, 1994: xiii).

성서 내러티브에 종종 존재하는 공백을 유대인 독자와 해석자는 아주 초기부터 자유로이 메워왔고 성서 이야기들을 확대하고 발전시켰습니다. 유대인들은 미드라쉬라는 방식으로 이야기들을 다시 말하고 확대했고 이러한 확대는 귄위 있는 성서의 일부가 되어왔습니다. 미드라쉬가 근본적으로 유대교적이지만 책은 위의 언급한 오스트리커가 묘사한 의미에서 미드라쉬를 사용하며 책은 퀴어 미드라쉬를 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지금까지 성서는 목소리를 가진, 힘을 가진 사람들이 만들어내고 싶은 이념을 뒷받침해주기 위해 사용되어져 왔습니다. 내부의 공동체를 단단하게 하기 위해, 외부의 적을 만들기 위해서 사용되어져 왔고 목소리를 가진 사람들이 좀 더 편하게 공동체를 다스리기 위해서 사용되어져 왔습니다. 그러한 사용을 멈추기 위해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요구를 기꺼이 응해야합니다. 더 이상은 성서가 누군가에게 무기로 사용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발견하도록 만드신 의미를 마음껏 발견해야합니다. 해로운 목적에 사용되지 않게 하기 위한 신선하고 열정적인 도전은, 그것을 해야 하는 것을 알게 된 우리에게 오늘부터 주어진 숙제입니다.

박미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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