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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만드실 미래, 희망을 창조하다그 날의 시작(이사야 29,18-21; 마가복음 7,31-37)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 승인 2021.08.26 16:13
▲ 듣지 못하던 사람을 치유하신 예수님의 기적을 묘사한 성서 삽화 ⓒGetty Image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안에 들어와 희망으로 우리를 흔들고 우리를 미래로 향하게 합니다. 우리는 약하지만 우리를 그 자리에 머물게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작고 약한 자에게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십니다. 상한 갈대도 꺾지 않고 꺼져가는 등불도 끄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그러한 분이 우리를 불러 그 앞에 세우십니다. 말씀과 사랑으로 우리를 흔들어 낡은 것을 털어내고 우리 속을 새롭게 하십니다. 우리 속에 희망의 등불을 밝히십니다. 우리는 더 이상 어둠 속에 있지 않고, 더 이상 목표 없이 떠돌지 않습니다. 우리의 희망은 우리의 시간을 뚫고 들어오시는 하나님의 시간에 있습니다. 은총의 시간이요 변화의 시간입니다.

이사야는 주께서 말씀하시는 희망의 그 날을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레바논이 기름진 밭이 되고 기름진 밭이 숲으로 여겨질 날이 곧 올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이 말에 담긴 변화의 폭이 큰 것도 사실이지만, 더 놀라운 것은 레바논이라는 말에 있습니다. 레바논은 숲과 나무로 유명하고 레바논의 향기라는 말이 있을 만큼 아름다운 곳입니다.

그렇다면, 이사야의 말은 레바논이 불모지가 되었음을 전제하고, 그것이 어떻게 회복되어 가는지를 이야기합니다. 그러므로 그 날은 회복의 날입니다. 무너지고 황폐화된 것들이 본래의 모습을 되찾는 날입니다. 현재의 위기가 아무리 파괴적일지라도 그것은 모든 것의 끝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더 큰 시작을 그 안에서 준비하고 계십니다.

그 새로움은 모든 예상을 뛰어넘는 것입니다. 그 시대는 잠들게 하는 영이 지배하여 말씀이 소통될 수 없게 된 시대입니다. 그때는 말씀을 읽어줄 사람이 없어 듣고 싶어도 들을 수 없었는데, 그 날에는 못 듣던 사람이 책의 말씀을 들을 수 있게 되고, 어두워서 아무도 볼 수 없는 곳에서 못 보던 사람이 볼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때는 단순한 과거의 회복을 위한 때가 아니라 창조 때의 온전함이 회복되는 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사야는 이러한 미래를 35장에서 다시 한 번 이야기합니다. 광야와 메마른 땅이 샘과 못이 되어 생명의 땅으로 바뀌고 못 보던 자와 못 듣던 자와 저는 자가 보고 듣고 뛸 것입니다. 그 때에는 그들을 해치는 ‘맹수’가 없을 것입니다. 새창조의 온전함이 사람과 자연에서 실현되고 화해의 사건이 전우주적으로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나 새창조는 그것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그 변화가 약자와 의인을 괴롭히고 억압하던 질서의 종식에까지 이르고 있음을 동시에 증언합니다.

이러한 시대의 도래를 상상하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우리를 들뜨게 하고 우리의 가슴을 벅차게 만듭니다. 그런데 이게 그저 아름다운 꿈일까요? 하나님의 손길이 우리 역사 안에서 빚어낼 미래가 단지 듣기 좋은 말에 불과한 것일까요?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과 계획을 믿고 그의 말씀을 지키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새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은 오늘의 상황이나 우리의 경험에 비춰볼 때 우리에게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들이고 따라서 기대할 수 없는 일일 지도 모릅니다. 그러한 생각이 든다면, 그것은 아마도 우리가 하나님을 우리의 사고 한계 안에 가두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만들어낸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물론 우리는 하나님이 그 계획을 언제 어떻게 실현시켜 가실지 모릅니다. 우리는 우리 한계 밖에서 오시는 하나님을 기대하고 맞이해야 합니다.

새세상의 희망과 예수 그리스도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두로와 시돈에서 갈릴리를 지나 데가볼리 지역으로 가셨습니다. 그때 사람들이 듣지 못하고 말을 더듬는 사람을 예수께 데려와 안수해주시기를 부탁합니다. 익명의 그 사람들이 눈길을 끕니다. 예수의 소문이 그 사람들 마음속에 희망을 준 것 아닐까요? 그 희망이 그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이렇게 드러낸 것일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희망은 행동을 낳습니다. 행동을 낳지 못하는 희망은 희망이 아닙니다. 희망은 행동을 낳는 힘입니다. 그들의 부탁에 예수께서도 행동으로 답하셨습니다. 그를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데려가신 예수께서는 그를 고쳐주십니다. 그의 치료 과정 속에 언급된 행위는 우리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하지만 그 자체가 치료행위라기 보다는 예비행위였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고침은 그가 하늘을 올려보시며 탄식하고 말씀하셨을 때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에바다! 이 말씀이 현실을 만들어냈습니다. 그의 귀가 열리고 굳었던 혀가 풀려 듣고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탄식을 들으시고 그의 말씀에 응하셨습니다.

이 놀라운 사건은 제한적 사건이지만, 그 의미는 제한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사건이 이사야가 말했던 그 약속과 희망이 실현된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게 볼 때 그 희망 그 약속은 새로운 미래를 얻습니다. 책 속에 갇혀 한낱 꿈에 불과한 이야기로 치부될 수도 있었을 그 희망은 예수의 이 사건과 함께 새로운 동력을 얻습니다. 예수를 통해 그 희망의 일부를 실현시키신 하나님은 또다시 역사 속에서 그 희망을 모두 실현시킬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희망이 다시 우리 속에서 꿈틀거리며 솟아나기 시작하는지요? 그렇기를 빕니다. 그 희망은 우리에게 행동하게 하는 힘이 될 것입니다. 못 듣고 못 말하던 사람의 동료들이 그의 현실에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그를 예수께 데려왔던 것처럼, 그 희망을 나눌 것입니다. 어둠의 시대에 그 희망을 외쳤던 이사야처럼 그 희망을 노래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오늘 우리를 향해 에바다 하고 말씀하신다면, 우리의 열린 눈은 말씀에서 하나님의 약속와 계획을 보고 희망을 품을 것이며 우리의 열린 입은 그 희망을 이야기하고 우리의 몸은 행동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오늘 우리를 향해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못보고 못듣고 못걷던 이들에게, 억압당하던 약한 자들에게, 신음하는 자연에게 세세상의 희망을 손에 들고 오시는 하나님을 맞이하고 그 희망으로 우리의 삶을 새롭게 만들어갑시다. 그것이 바로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그 날의 시작입니다. 그 날을 오늘 시작하는 우리가 되기를 빕니다.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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