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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없다』를 둘러싼 광풍내 생애에서 잊지 못할 순간들-자전적(自傳的) 고백(告白) ⑸
오강남 명예교수(캐나다 리자이나 대학교) | 승인 2021.08.27 17:15
▲ 『예수는 없다』 ⓒ현암사

저술과 관계된 말을 하면서 특별히 『예수는 없다』 출간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캐나다 최대의 개신교 교단인 캐나다연합교회(United Church of Canada)에서 새로 빌 핍스(Bill Phipps)라는 총회장을 선출했는데, 이분이 1997년 11월 2일 일간지 Ottawa Citizen과 인터뷰를 했다.  이 인터뷰에서 예수가 부활했다고 믿는가 하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내 속에 살아계신 예수가 중요하지 역사적으로 부활했다는 예수는 믿지 않는다고 하고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믿는가 하는 질문에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이지만 당신과 나도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식으로 대합했다. 성경의 근본적인 진리는 하느님이 우리와 세상을 조건 없이 사랑하신다는 것이라고 강조하는 등의 발언을 했다.

이 발언에 대해 캐나다 연합교회 본부에서는 우리 총회장이 그런 발언을 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하고 환영할 일이라 했지만 캐나다 극보수파 교회들에서, 특히 캐나다의 한국 교회에서는 야단이 났다. 토론토에서 나오는 한국 신문에 이를 반박하는 이들의 글이 올라 왔다. 나는 이런 것을 보면서 한국 교포들이 캐나다에 살면서도 아직 기독교가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 하는 것에 대해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감지하고 현재 기독교의 흐름에 대해 간단히 소개했다.

그랬더니 한국 보수 교회 목사인가 장로인가 내 글을 반박하는 글이 올라왔다. 나는 이 기회에 새로 등장하는 기독교를 본격적으로 소개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고 교포 신문에 글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글 내용은 1) 신앙은 계속 자라나야 한다는 것, 2) 성경을 문자대로 읽으면 곤란하고 그 뒤에 있는 깊은 뜻을 알려고 노력해야 된다는 것, 3) 우리만, 혹은 우리 편만 사랑하는 ‘부족신관(traibal God)’이나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장하는 ‘관여하는 신(interventionist God)’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초월과 내재를 동시에 강조하는 범재신론적 신관(神觀)을 가져야 한다는 것, 4) 빌기만 하면 다 들어주는 예수는 없다. 또 우리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를 믿기만 하면 된다는 대속신앙이 아니라 예수님이 가지고 있던 믿음과 같은 믿음을 갖도록 해야 한다는 것, 5) 오늘 기독교가 할 일이 사람들을 끌어 모아 독립적 사고를 고사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웃 종교들과 대화하고 협력하여 함께 더욱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예수님이 당부하신 ‘의식의 변화’(metanoia)가 가능해지도록 힘쓰고 나아가 이 세상을 위해 도움이 되는 일을 하자는 것 등이었다.  일종의 신앙의 계단, 성경관, 신관, 기독론, 선교관 등을 내가 가르치는 대학교 저학년들에게 이야기하듯 일반인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쉽게 써내려 갔다.

한참 연재를 하고 있는데, 목회자들이 광고 탄압으로 신문사에 압력을 가해 더 이상 쓰지 못하게 되었다. 마지막 회에 글을 더 이상 못쓰게 된 사연을 이야기하고 앞으로 좀더 보완해서 책으로 내겠다고 약속하고 글을 접었다. 그리고 신문에 났던 글을 다듬고 보완해서 완성된 원고를 한국 현암사에 보냈다. 현암사에서는 원고를 받고 한국 기독교 실정에 맞을까 염려와 두려움 때문에 망설이다가 드디어 2001년 5월30일자로 책을 냈다.

처음 내가 생각한 책 제목은 유대인들이 바벨론으로 포로가 되어 가서 예루살렘을 생각하며 울었듯 나도 내 잔뼈가 굵은 기독교를 생각하며 충정의 글을 쓴 것이라는 뜻에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시편 137:1)였다. 그러나 출판사로부터 그러면 무슨 수필집 같아서 곤란하다고 하며 다른 제목을 생각하라고 했다. 가능한 제목 열 개 정도를 보냈더니 그 중에서 『예수는 없다』가 편집부 만장일치로 결정되었다고 했다.

덜컹 겁이 나서 “그런 예수는 없다”로 하면 어떻겠는가 했지만 그렇게 하면 ‘김이 빠진다’고 하여 그것을 넣지 않기로 했다. 그 대신 영어 제목은 “No Such Jesus”로 하고 첫 장을 넘기면 왜 ‘그런 예수가 없다’인가 하는 해설을 달았다. 그런데도 책 뒷면에 몇 줄짜리 추천사를 써준 어느 교수는 이런 불경한 제목을 단 책에 자기 이름을 올릴 수 없다고 하여 빼 드리기까지 했다.

출판되자마자 놀랍게도 책에 대한 반응이 대단했다. 어느 신문에서는 전면으로 서평을 싣고, 기타 신문사에서도 길게 기사화해 주었다. 마침 그 여름 안식년을 맞아 서울대로 가르치러 가는데, 나가는 길에 미국 LA에 들려 불자들과 기독교 교인들 각각 150명씩이 모인 집회도 열게 되었다. 한국에 도착하자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다. 어느 날은 4대 일간지에서 한꺼번에 이 책에 대한 서평이나 인터뷰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이메일을 통해서도 독자들, 목회자들이 반응을 해 왔다.  신학교나 교회나 기독교 계통의 모임에서 뿐 아니라 불교 계통의 사찰이나 모임으로부터의 강연 요청도 많았다.

정양모 신부님과의 대담, 김경재 목사님과의 대담, 문경 한산사 월암 스님과의 대담 등 대담 기사도 나왔다. 향린교회 고 홍근수 목사님은 「인물과 사상」이라는 잡지에 서평도 쓰시고 나를 불러 설교단에 세우시기도 했다. 몇몇 목사님들은 목사들이 이 책을 기피할 것 같지만 다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고 싶다며 이메일을 보내기도 하고, 어느 어느 목사님은 책을 사서 교직들에게 다 나누어 주었다고도 했다. 책에 빨간 줄을 긋고 노트를 만든 것을 내게 보여주는 목사님들과 신학 교수들도 있었다. 미국의 어느 유명 신학교 한국인 교수는 자기도 내 생각과 많은 부분 일치하지만 자기는 그걸 글로 쓰면 파면이라 쓸 수 없을 뿐이라고 말해주기도 했다.

대부분은 이 책으로 눈뜸을 경험했다는 식이었는데, 보수 기독교에서 새길교회 등 열린 교회로 교적을 바꾸었다고 하는 사람, 기독교를 버리려다가 새롭게 이해하고 교회에 나가게 되었다는 사람, 종교를 바꾸었다는 사람, 심지어 순복음교회에 다니다가 비구니가 되었다는 사람도 있었다. 나로서는 우연한 계기로 쓰게 된 이 책이 이런 반향을 일으켰을 뿐 아니라 이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을 발견하고 계속 놀라는 순간이었다.

오강남 명예교수(캐나다 리자이나 대학교)  soft103@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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