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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다가올지 모를 메타버스 속 교회기도하는 공동체(야고보서 5:13-16)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 승인 2021.08.29 15:58
▲ 메타버스 속에 등장할지 모를 교회의 모습 ⓒGetty Image
13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니라 14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15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16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며칠 전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신학위원회에서 코로나 이후의 교회에 관한 세미나를 진행했습니다. 앞으로의 교회는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만 할지, 지금의 교회는 어떤 형태를 취하고 있는지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습니다.

온라인 강국이라는 한국 교회의 특수한 상황도 있겠지만, 코로나 이후 교회는 유튜브와 같은 온라인 영상 플랫폼으로 떠밀려갔습니다. 온라인 영상 플랫폼을 이용하는 일이 옳은가 그른가, 그것을 교회라고 부를 수 있는가 없는가의 논의는 결국 결론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시대에 교회가 어떤 방식으로건 온라인을 중심으로 변화되고 발전할 것이라는 점은 대부분 동의하는 듯 했습니다.

세미나 중 온라인 영상 플랫폼과 함께 언급된 것이 메타버스(Metaverse)였습니다. 제게도 상당히 낯선 단어였기 때문에 이 명칭 자체가 생소하신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기존의 가상현실(Virtual Reality, VR),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 AR)을 넘어 온라인상에서 놀이, 업무, 소통이 가능하게 만들어진 가상의 공간을 뜻합니다.

메타버스라는 단어 자체는 최근에 유행하고 있지만, 이런 공간들은 이미 예전부터 게임을 통해 제공되고 있었습니다. 이미 20년 전에 출시된 심즈(The Sims)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최근 유행하고 있는 네이버의 ‘제페토’도 이와 크게 다르지는 않다고 생각하는데, 가장 큰 차이라면 현실 세계를 가상공간에 그대로 구현하려는 방식이라고 봅니다.

게임이 주목적인 가상공간에서 사람들은 현실 세계와 똑같은 모습을 구현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가상의 공간이기 때문에 현실에서 누릴 수 없는 호화로움이나 특이함을 만들어냅니다. 하지만 최근의 메타버스는 현실에서의 만남과 소통을 대신할 목적이 강하다보니 현실 세계를 그대로 옮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네이버 제페토를 이용한 가수 블랙핑크의 팬사인회나 한국관광공사에서 만든 한강공원, 석촌호수 등이 그 예입니다.

어느 순간이 되면 교회도 이런 메타버스 안에 예배당을 만들고 그곳에서 예배를 드리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예배가 예배인지, 그곳을 교회라고 부를 수 있는지의 문제는 뒤로 하더라도, 또 하나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온라인 공간에서 모인 사람들을 교회의 구성원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의 문제입니다.

메타버스까지 도입된다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현재 유튜브와 같은 온라인 공간에 모인 사람들을 하나의 공동체라고 부르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공동체가 구성되려면 그 구성원에게는 책임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공동체를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책임의식입니다. 그런데 클릭 한 번으로 구독할 수도, 구독을 취소할 수도 있는 유튜브 공간에서 책임의식을 갖기란 쉽지 않습니다.

사실 코로나 상황이 시작되기 전에도, 온라인 공간의 활용도가 높아지기 이전에도 개인적으로 이에 대해 고민해왔습니다. 우리를 하나의 교회로 묶어주는 책임의식, 교회의 교인이라고 부를 수 있는 책임의식은 어디에서 나오는가에 관한 고민입니다. 매주 주일 예배에 참석하고 출석 교회에 헌금을 낸다면 책임감 있는 교인이 되는 것인지 고민스러웠습니다.

지난주에 이어 오늘도 야고보서의 말씀을 읽습니다. 야고보서의 말씀은 어떤 사람들의 모임이 교회인지를 보여줍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초대교회 안에서 교회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신앙지침을 전달하기 위해 기록되었겠지만, 그 안에서 교회와 성도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고난당할 때에 기도하고, 기쁠 때에 찬송하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이것은 개인의 신앙 문제입니다. 이런 그리스도인들이 하나의 교회를 이루기 위해서 필요한 일은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의 모임, 서로의 기쁨에 함께 기뻐하며 찬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교회입니다. 누군가 아플 때에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이들의 모임이 교회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과거 사회에서 행해졌던 치유 의식이 포함되어 있기는 합니다. 병든 사람의 가족이나 이웃이 교회의 장로들을 청하고, 그들이 병든 사람에게 기름을 바르며 치유를 위해 기도하는 의식입니다. 저는 이 본문에 나타난 질병을 더 큰 개념으로 생각했으면 합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질병이나 죽음에 가까운 이들을 위한 치유 의식이 아니라 고통과 아픔을 가진 이들을 위한 기도로 생각했으면 합니다.

기도는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습니다. 같은 공간에서 기도할 수도 있지만, 서로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기도할 수 있습니다. 흔히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상대방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할 때, 우리의 마음은 그 사람에게서 멀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기도함으로 마음과 마음이 더욱 굳게 연결됩니다.

지금의 비대면 사회 속에서 우리를 하나의 교회로, 교인으로 묶어줄 수 있는 것은 서로를 향한 기도입니다. 바꿔 말하면, 기도는 하나의 교회를 이루기 위한 구성원들의 의무이자 책임입니다. 우리는 늘 서로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를 교회라는 이름으로 묶어줍니다. 더 나아가 같은 교회에 속하지 않은 누군가를 위해서도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 기도의 대상도 우리를 위해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때 그리스도인의 연합이 일어나고 교회의 연합이 일어난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의 시대 속에서 교회의 형태, 예배의 형태가 어떻게 바뀌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만약 지금과 같은 방식의 온라인 영상 플랫폼이 주류가 되거나 메타버스 방식이 주류가 된다 하더라도, 그 안에서 기쁜 일이 있을 때 함께 찬양하고,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서로 기도할 수 있다면, 그곳은 교회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곳이 함께 기도하며 함께 찬양하는 공간이 아니라 그저 예배를 관람하기 위한 공간, 나는 예배를 ‘봤다’며 만족하는 공간에 그치게 된다면, 그곳에는 결코 교회가 세워질 수 없습니다.

이는 비대면이 아닌 대면 공간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예배당이라는 공간에 모여서 함께 예배드릴지라도 서로에게 관심이 없고 그저 ‘보는’ 예배에 그친다면 그곳은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는 기도라는 책임을 진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이들의 모임입니다.

기나긴 코로나 시대를 지나가면서 우리는 서로 물리적으로 거리를 둘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순간에도 늘 서로를 위해 기도하기에, 한 사람 한 사람이 서로를 생각하며 아끼며 기도하기에 마음은 하나로 묶여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더욱 든든한 교회를 세워갈 수 있습니다. 늘 기도합시다. 의인의 기도는 역사하는 힘이 크다는 그 말씀을 기억하며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며 귀한 역사를 이루실 줄 믿습니다.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joey8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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