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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주 로고스가 사르크스가 되다!: 주리론과 주기론(잠 8:22-31; 골 1:15-20; 요 1:1-14)창조절 첫째 주일(9월5일) 재일동포선교주일/개척선교주일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 승인 2021.09.02 23:25

1. 삼위일체교회력 둘째 해, ‘하나님의 생명’

삼위일체교회력은 한 해의 시작이 창조절입니다. 8월의 무더위가 지나고 9월 선선한 바람이 불어올 때, 맑고 푸른 가을 하늘과 더불어 하나님의 천지 창조로 한해가 새롭게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기독론 중심으로 절기가 진행되는 ‘개정공동성서정과(RCL, The Revised Common Lectionary)’도 그렇고, 삼위일체 하나님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삼위일체교회력도 3년 주기로 순환됩니다.

삼위일체교회력은 해마다 각각 주제가 있습니다. 첫째 해(가해)는 ‘하나님의 은총’이라는 주제로 세본문 말씀이 구성되어있고, 둘째 해(나해)는 ‘하나님의 생명’, 마지막 셋째 해(다해)는 ‘하나님의 섬김’이라는 주제로 세 본문 말씀이 절기별로 펼쳐집니다.

오늘은 둘째해인 나해 창조절 첫째주일입니다. 작년 이맘때인 첫째 해 창조절 첫째 주에는 창세기 1장 말씀을 중심으로 하나님께서 온 우주를 창조하셨음을 살펴보았다면〔설교제목: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 1:1-25; 계 4:1-11; 요 1:1-5)〕, 이제 둘째 해에서는 요한복음의 말씀을 중심으로 창조주이시자 생명의 주님이신 예수님을 소개합니다. 이것은 둘째해의 전체주제인 ‘하나님의 생명’에 관점을 두고 있는 것입니다.

먼저 복음서 말씀을 통해서 우주의 이치이신 말씀, 곧 로고스의 천지 창조를 보여줍니다. 또한 이러한 로고스가 사르크스, 곧 육을 입어 이 땅에 오셨다고 선포합니다. 그리고 구약 잠언의 말씀은 로고스를 지혜로 연결합니다. 지혜가 바로 창조자라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서신서 말씀 역시 만물의 창조주로 교회의 머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합니다.

특별히 오늘은 재일동포선교주일이자 개척선교주일입니다. 우리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는 매년 9월 첫째 주일을 ‘재일동포선교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일제가 저지른 식민지 범죄 행위에 대한 책임을 묻는 행위를 잊지 않고 지속하고자 함입니다. 현재 일본 정부는, 1910년 일본제국주의 당시 대한제국, 곧 조선을 침략한 이후(한일합병조약을 통한 국권피탈), 우리 땅에서 자행했던 학살과 수탈, 강제 징용과 성 착취 등에 대해 단 한 번도 공식적으로 사과한 일이 없습니다.

특히 1923년 9월 1일 일본의 관동 지방에서 대지진이 일어났는데, 당시 자연재해보다 더 끔찍한 일이 며칠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그것은 일본 정부와 군대, 민간자경단들이 일본에 이주하여 살고 있던 재일 동포 6천 6백여 명을 집단학살한 사건입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초창기 당시, 괴담이 퍼졌죠?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도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규모 8이 넘는 큰 지진, 그리고 곧바로 발생한 화재로 사망자가 10만명이 넘었고, 도쿄의 가옥 중 60%가 불에 탔습니다. 당시에는 TV나 라디오가 존재하지 않았고, 불바다가 된 시가지에서 신문을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였습니다. 지진 피해의 전모를 파악하기는커녕, 극심한 혼란 속에서 여진, 화마와 투쟁해야 했던 사람들의 공포가 극에 달했습니다.

▲ 관동 대학살 시신과 대학살을 그린 북한 기록화

이때 지진이 발생한 날 밤부터 “조선인들이 방화를 한다.”라는 헛소문이 돌기 시작하더니,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 “조선인 수백명이 집단으로 공격에 나섰다.”라는 식으로 이야기가 심각해졌습니다. 극도의 불안감과 스트레스에 사로잡힌 일본 사람들은 스스로 조직을 꾸려 조선인 색출에 나섰고, 실제로 이 자경단이 수많은 조선인, 중국인 혹은 조선인으로 오인된 일본인을 잔인하게 살해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도 진실규명이 이루어지지 않았죠? 지금부터라도 반드시 진실을 규명하고 사과를 받아내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최근 들어 ‘재일동포선교주일’이 창조절 첫째주일과 맞물려 유명무실해지고 있는데, 새로운 창조는 이전 것의 참다운 회개라는 바탕 위에서 이뤄지고 한일관계 개선 역시 가해자인 일본의 진심어린 사과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우리는 꼭 이 재일동포선교주일을 기억하고 지켜야 할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창조는 두 가지 방식으로 소개되는데, 먼저 구약의 세상 만물 창조와 더불어 신약에서는 성령께서 세우신 교회를 통한 하나님의 창조로 이뤄집니다. 따라서 개척선교주일은 창조절 첫째주일의 의미와 잘 맞아떨어집니다. 이렇게 하나님 나라의 선교 사명을 감당하고자 새롭게 교회를 개척한 모든 교회 위에, 또한 일본에 있는 우리 재일동포들 위에, 하나님의 생명이 풍성히 넘쳐 새로운 창조와 부흥의 역사가 임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2. ‘말’씀, 로고스, 주리론(主理論)

먼저 복음서 말씀부터 볼까요? 오늘 복음서 본문 말씀에서 사도 요한은 태초에 계신 말씀, 만물을 창조하신 생명과 빛으로 예수님을 증거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신성과 선재성을 뜻합니다. 이것이 다른 세 복음서(공관복음서)와 다른 요한복음의 관점이자 특성입니다. 굉장히 철학적인 사유로, 그 당시 그리스 철학에 정통한 헬라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소개하고자 함이었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요 1:1-4)

여기서 말씀으로 번역된 헬라어 ‘로고스(λόγος)’는 원래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 ‘우주의 이치나 질서’를 의미하는 말이었습니다. 그 이치가 인간 속에 들어오면 ‘이성(理性)’이 되죠? 곧 ‘사물의 이치를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능력’이 됩니다. 따라서 로고스가 사르크스(σάρζ), 곧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말은 그리스 사람들에게는 우주의 이치가 인간의 이성 속에도 있다는 말로 받아들여집니다. 복음의 핵심 메시지가 유대 지평에서 헬라 지평에 토착화되는 것입니다.

지금은 기독교, 불교, 유교, 이슬람교 등 다양한 종교가 자유롭게 종교의 자유를 보장받아 믿고 있지만, 고려 시대는 불교가 국교였고, 조선 시대는 유교가 국가 종교이자 이념이었습니다. 특히 12세기 남송의 주희(朱熹, 1130-1200)가 집대성한 주자학, 곧 성리학(性理學)이 조선에 전해져 조선 시대의 통치이념이 됩니다. 조선 시대를 움직이는 주류 사상이 된 것입니다.

성리학은 이(理)와 기(氣)의 흐름을 우주의 중심 원리로 보고 우주와 자연, 인간과 사회의 존재에 대한 이치를 설명하는 철학 체계입니다. 요한복음에 나오는 로고스(그리스도 예수의 신성)가 바로 이(理)이고, 사르크스(그리스도 예수의 인성)가 기(氣)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무튼 성리학에서는 “이와 기는 서로 떨어질 수 없으나, 서로 섞이지도 않는다(理氣不相離 理氣不相雜).”라고 이(理)와 기(氣)의 상호관계를 설명하는데, 이러한 성리학의 우주론적 세계관을 윤리와 정치 영역으로 확장한 이가 바로 퇴계 이황(1501-1570)과 율곡 이이(1536-1584)였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서로 견해가 달라 논쟁을 하였습니다.

▲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

율곡보다 35년 연상인 퇴계는 이치(理)를 중시한 이념 중심의 ‘주리론(主理論)’의 입장에 서 있고, 율곡은 이념은 물론 현실도 중시하여 ‘주기론(主氣論)’의 관점에 서 있습니다. 기독교 신학적으로, 퇴계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중시했고, 율곡은 그리스도 예수로 신성과 인성을 동시에 중시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 사단칠정론

아무튼 이러한 우주의 이치를 윤리로 적용하면(수행론), 퇴계는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있는 순수한 선인 사단(四端, 4가지 바름)을 이(理)가 작용한 결과로 보았습니다. 그리스 사람들이 우주의 이치가 인간의 이성 속에 있다는 것과 같습니다. 따라서 남의 고통을 불쌍히 여기는 착한 마음인 측은지심(惻隱之心), 자기의 이익을 포기하고 남에게 양보하는 마음인 사양지심(辭讓之心),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거짓을 미워하는 마음인 수오지심(羞惡之心), 옳고 그름을 가리는 마음인 시비지심(是非之心)인 사단, 이를 축약해서 ‘인의예지(仁義禮智)’라고 하는데, 이러한 4가지 바른 마음은, 결국 우주의 이치가 우리 인간을 움직여서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서양 철학은 이를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다.”라는 말로 요약합니다.

그런데 이성적 ‘동물’이라고 했죠? 인간에게는 동물의 본성, 곧 인간의 이성이 아닌 감정도 있습니다. 감정은 잘 변하죠? 이를 동양에서는 ‘칠정’으로 이야기합니다. 퇴계는 이렇게 선할 수도 있고 악할 수도 있는 사람의 감정인 칠정(七情, 7가지 감정)을 기(氣)의 작용으로 보았습니다. 곧 사람의 마음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희(喜, 기쁨), 로(怒, 분노), 애(愛, 사랑), 락(樂, 즐거움), 애(哀, 슬픔), 오(惡, 미움), 욕(慾, 욕망)의 일곱 가지 감정인 칠정(七情)을 기(氣)에서 일어난다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사단이 칠정을 제어해야 한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예수의 신성만 인정하고 인성은 거부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이것은 이성이 욕망을 절제해야 한다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 이래 서양 철학의 흐름과도 같습니다. 이렇게 우주의 기본원리인 이(理)가 사단을 불러일으켰으니, 이(理)를 통해 칠정을 제어해야 한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이러한 성리학의 입장을 주리론(主理論)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이(理)에 관련된 사람들이 임금과 지도층, 곧 양반 사대부들이죠? 그리고 기(氣)에 관련된 사람들이 양민과 종들입니다. 철저한 신분제를 우주와 인간 세상의 이치로 본 것입니다.

그러나 율곡은, 이 세계의 일체 존재는 이(理)와 기(氣)로 되어 있고, 그 형태는 ‘기(氣)가 발하면, 기(氣) 위에 이(理)가 올라타 있는 상·하의 구조로 보았습니다(氣發而理乘之).’ 따라서 사단칠정이 모두 상하 구조로 함께 있는 이기(理氣)에서 초래한다고, 곧 ‘이기이원론적일원론(理氣二元論的一元論)’을 주장하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통합적인 노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 조선의 붕당정치 흐름

아무튼 사상은 정치의 실현으로 구현됩니다. 당시 정치적으로 영남학파(동인)와 기호학파(서인) 간의 당파 갈등이 시작되어 국정이 혼란스러웠을 때, 율곡의 이러한 통합적인 사상은 좋은 화합의 계기가 됩니다. 따라서 율곡은 자신의 사상으로 당쟁을 완화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율곡은 효과적으로 당쟁을 조정하지 못했고, 당시 퇴계가 속한 동인과 자신이 속한 서인 모두에게 비판을 받았습니다. 이후 조선은 지속적인 당쟁, 곧 당파 싸움의 소용돌이에 휘말립니다. 주목해 볼 것은, 선조 임금 당시, 47세에 문인으로 병조판서에 임명된 율곡이 ‘십만 양병’을 주장하지만, 당쟁에 몰두한 신하들에게 호응을 받지 못했죠? 이후 9년 뒤 임진왜란이 발발합니다.

아무튼 퇴계가 생각했던 주리론, 곧 우주의 이치, 사단을 낳은 바른 진리가 곧 로고스입니다. 그리고 우리 기독교에서는 그 이치를 ‘말씀’으로 번역한 것입니다. 말씀은 ‘말’의 ‘씀’이죠? 말은 곧 창조주의 말, 곧 우주의 이치입니다. 요한복음에서는 ‘빛’이라고도 표현합니다. 그런데 그 말이 쓰여졌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세상에 육화되었다는 말이죠?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성육신입니다. 오늘 본문에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인 세례 요한이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합니다. 이 예수는 말의 쓰여짐, 곧 로고스가 사르크스(육)를 입고 이 땅에 왔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볼까요?

3. 말‘씀’, 사르크스, 주기론(主氣論)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요 1:5-8)

▲ 로마와 조선의 신분제도

그러나 말씀이 되신 진리, 곧 빛이신 예수님을 어둠이 깨닫지 못합니다. 어둠은 이 세상이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로마 제국의 황제가 다스리는 세상은 퇴계의 생각처럼 철저히 로고스와 사르크스가 구분된 사회, 양반과 천민, 곧 로마 시민과 이방 노예들이 구분된 사회였습니다. 따라서 로고스가 사르크스가 되었다는 것을 당시 그리스·로마 사람들은 믿지 못합니다. 주리론에서 주기론으로 나가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은 그를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누립니다. 로고스가 사르크스가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말씀을 볼까요?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요 1:9-13)

오늘 서신서 말씀에서 사도 바울도 비슷한 말씀을 전합니다. 만물의 창조주로서 예수님을 소개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볼까요?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오,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이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골 1:15-17)

사실 골로새서는 성경에서 가장 그리스도 중심적인 말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론’의 핵심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골로새서와 쌍둥이 서신이라고 볼 수 있는 에베소서가 ‘그리스도의 교회’라고 한다면, 골로새서는 ‘교회의 그리스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론과 그리스도론이 이 쌍둥이 서신을 통해 묶이는 것입니다. 아무튼 골로새서는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데, 교리 부분(1-2장)과 실천 부분(3-4)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교리적인 부분으로 그리스도가 탁월하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만물 중에서 가장 먼저 나셨고, 만물의 으뜸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은 그리스도 안에 뿌리를 박고 있으며 그 안에서 살고 그 안에서 보호받으며 그 안에서 온전하게 자라가기 때문에, 그리스도 없는 삶을 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우월성, 곧 교회의 머리요, 구속주요, 만물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는 화목주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창조주이심을 소개한 것입니다. 구약의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지혜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고 있죠? 말씀을 볼까요?

“여호와께서 그 조화의 시작, 곧 태초에 일하시기 전에 나를 가지셨으며 만세 전부터, 태초부터, 땅이 생기기 전부터 내가 세움을 받았나니, 아직 바다가 생기지 아니하였고 큰 샘들이 있기 전에 내가 이미 났으며 산이 세워지기 전에, 언덕이 생기기 전에 내가 이미 났으니, 하나님이 아직 땅도, 들도, 세상 진토의 근원도 짓지 아니하셨을 때에라.”(잠 8:22-26)

사실 잠언 8장은 참 지혜가 지닌 탁월성과 생명과 은총으로 이끄는 지혜의 유익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지혜의 소중함과 귀함을 강조하기 위해 금은보화를 얻는 것보다 지혜를 얻는 것이 더 나으므로 지혜 찾기에 전력을 다하라고 권면합니다(잠 8:10-11). 그리고 이 지혜가 바로 ‘창조자’라고 합니다.

“그가 하늘을 지으시며 궁창을 해면에 두르실 때에 내가 거기 있었고 그가 위로 구름 하늘을 견고하게 하시며 바다의 샘들을 힘 있게 하시며 바다의 한계를 정하여 물이 명령을 거스르지 못하게 하시며 또 땅의 기초를 정하실 때에 내가 그 곁에 있어서 창조자가 되어 날마다 그의 기뻐하신 바가 되었으며 항상 그 앞에서 즐거워하였으며 사람이 거처할 땅에서 즐거워하며 인자들을 기뻐하였느니라.”(잠 8:27-31)

4. 하나님의 창조 목적

다시 서신서 말씀으로 돌아가 볼까요? 바울은 이러한 창조주이신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여 교회의 머리가 되심도 이야기합니다. 말씀을 볼까요?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오,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골 1:18-29)

하나님의 창조 목적이 잘 나와 있습니다. 땅과 하늘에 있는 모든 것이 예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고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피조물이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또한 우주의 이치이신 로고스, 곧 말씀이 우리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 가운데 거하십니다. 그 안에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합니다. 사도 요한도 이렇게 고백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앞서 사단(四端, 4가지 바름)을 이(理)가 인간을 움직여 나타난 것이라고 말씀드렸죠?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생명이 우리 가운데 임하면 우리가 남의 고통을 불쌍히 여기고, 자기의 이익을 포기하고 남에게 양보하며,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거짓을 미워하고, 옳고 그름을 가릴 수 있게 됩니다. ‘인의예지(仁義禮智)’죠? 여기에 유교는 오상(五常)이라고 인의예지에 신(信)을 더합니다. 믿음을 더하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행하셨던 인의예지를 따른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창조주 하나님의 이러한 놀라운 은혜와 진리가, 지금 이 시간 여러분들에게 함께하시기를 소원합니다. 특별히 새롭게 시작되는 창조절기에 여러분들의 가정과 삶의 자리 위에, 또한 재일동포들과 하나님의 선교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오늘도 섬김의 사명을 감당하는 이 땅의 모든 개척교회 위에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hak-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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