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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으로 내려가라내 생애에서 잊지 못할 순간들-자전적(自傳的) 고백(告白) ⑹
오강남 명예교수(캐나다 리자이나 대학교) | 승인 2021.09.02 23:28
▲ 십우도의 마지막인 입전수수 ⓒGetty Image

내가 리자이나 대학에서 가르친 과목 중에 Mysticism in World Religions(세계 종교에서 찾아보는 신비주의)라는 과목이 있었다. 한국에서 ‘신비주의’라고 하면 뭔가 부정적인 면이 연상되는 것이 보통이다. 연예인들이 대중 앞에 나타나기를 꺼려한다거나 사이비 종교에서 이상스런 행동으로 사람들을 기만하는 것쯤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신비주의란 세계 여러 종교에서 나를 잊어버리고 절대자와 내가 하나 되는 것을 강조하는 가장 심오한 가르침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신비주의라는 말의 부정적 오해 때문에 ‘심층종교’라는 말을 대신 쓰고 있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갑자기 종교를 불교, 기독교, 유교, 이슬람, 유대교, 힌두교 등 각각의 전통에 따라 분류하는 대신 이 모든 종교의 심층에서 발견되는 가장 심오한 차원의 ‘심층 종교’를, 복을 빌어서 복 받으려는 것을 주 관심으로 여기는 기복적 차원의 ‘표층 종교’와 대비시키고, 이를 간단명료하게 정리해서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리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전에 내가 30대에 쓴 책에서는 종교를 ‘열린 종교’와 ‘닫힌 종교’로 분류했는데, 이보다는 더 실감나게 ‘심층 종교’ vs. ‘표층 종교’로 나누고 이 둘의 차이를 구체적으로 명시하여 사람들에게 열심히 말하는 것이 내 은퇴 후의 사명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표층 종교와 심층 종교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간결하고 이해하기 쉽게 정리해 보았다.

가장 두드러진 차이 몇 가지를 들면, 첫째, 표층 종교는 지금의 나를 위하는데 최대의 관심을 기울이는 종교인데 반해 심층 종교는 지금의 나를 죽이고 내 속에 있는 참나를 찾으려는 것을 목표로 한다. 둘째, 표층 종교는 무조건적인 믿음을 강조하고 심층 종교는 이해와 깨달음을 중요시한다. 셋째, 표층 종교는 신이 하늘에 있고 인간은 땅에 있다고 하여 신과 인간을 분리하지만, 심층 종교는 신의 초월과 함께 우리 속에도 있다고 하는 내재도 강조하고 내 속에 있는 신이 결국 나의 참 나라고 생각한다.

넷째, 표층 종교는 경전을 문자대로 읽지만 심층 종교는 경전의 문자 너머에 있는 속내를 알기 위해 힘쓴다. 다섯째, 표층 종교는 자기 종교만 진리라고 주장하지만 심층 종교는 모든 종교를 진리를 찾아 가는 길벗이라 여긴다. 여섯째, 표층 종교는 현세에도 복을 받고 내세에도 영생복락을 누리겠다고 하지만 심층 종교는 지금 여기에서 풍성한 삶을 사는 것을 중요시한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캐나다 몬트리올에 있는 맥길(McGill) 대학, 토론토 대학 내의 임마누엘 (Immanuel)대학, 오하이오 주립대학(Ohio State University), 밴쿠버 신학대학원(Vancouver School of Theology) 등에 가서 강연이나 강의도 하고, 1994년부터 코로나19가 퍼지기 전까지 매 여름마다 밴쿠버 <길벗모임>에서 길게는 10주, 6주, 4주 연속 강의를 계속했다. 은퇴 후에는 한국에서 <지식협동조합 경계너머 아하!>를 설립하여 봄과 가을 학기에 정기적으로 강의하고, 그 외에 서울대 등 몇몇 대학교, 신학교, 신학대학원, 교회, 불교 사찰, 불교단체, 불교평론, 천도교 집회, 원불교 원음방송, 국회, 고려대 경영대학원, KIST, 몇몇 도서관, 대전시립박물관, 김영사, 광주 GIST, 성공회 모임, 참여연대, 서울시민대학, 기타 시민단체, 한국종교발전 포럼, 나비 등 독서모임, 전남여고 동창회 공부모임 등에 초청되어 서울은 물론 부산, 광주, 경기도 광주 대전, 대구, 순천, 창원, 거창, 원주, 제주, 포천, 춘천, 강릉, LA, 토론토, 호주 시드니, 일본 등지에 가서, 길게는 매주 한 번씩 몇 년, 몇 달간, 짧게는 주말 집회나 하루 모임, 이런 내용을 강연이나 강의를 통해 알리고, 책이나 기타 신문 잡지 칼럼이나 기고문으로 이런 생각들을 개진해 오고 있다.

처음에는 다섯 가지 정도만 쓰려고 했는데 길어졌다. 쓰다 보니 열 가지가 되었다. 마지막 열 번째 글을 쓰고 나니 십우도(十牛圖)의 마지막 그림, 동자가 저자 거리로 나가 도움의 손을 편다는 입전수수(入廛垂手) 생각이 난다. 물론 내가 9번까지의 단계를 다 거쳐서 이른 결과라고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내가 깨달아 안 것을 다니면서 일반 사람들에게 전하려고 애썼다는 뜻이다.

아무튼 오늘의 내가 있게 된 정신적 여정의 대략이 그려진 것 같기도 하고, 나의 오늘에 이르도록 해준 징검다리들을 다시 두드려 보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읽어주시고 응원해주신 독자들에게 감사한다.

오강남 명예교수(캐나다 리자이나 대학교)  soft103@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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