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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의 권위와 성서 해석의 전통종교개혁과 성서 ⑶
최영 소장(기독교장로회 목회와신학연구소) | 승인 2021.09.04 16:18
▲ 독일어 마틴 루터 번역본 성서 ⓒGetty Image

윌리엄 칠링워드는 “성서, 성서만이 개신교의 종교이다”라고 말했다. 이 17세기 영국의 개신교인의 유명한 말은 성서에 대한 종교개혁의 입장을 요약한다. 칼빈은 동일한 원칙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이것이 우리의 확실하고 자명한 원칙이 되게 하자. 먼저 율법과 선지자들, 다음으로는 사도들의 글을 제외하고는 어떤 다른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회에 받아들여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교회에서는 모든 것을 이 말씀의 규정과 법도에 따라 가르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개혁자 칼빈에게는 복음에로 돌아가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복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리고 그는 교회와 사회의 모든 제도와 법규를 성서의 토대 위에 정초시키려 했다:

“나는 오직 하나님의 권위 위에 세워지고 성서로부터 도출된 이러한 인간적 제도들만을 승인한다.”(1)

또한 그는 모든 교리가 말씀에 의해 검증, 증명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츠빙글리는 1522년 『하나님의 말씀의 명료성과 확실성에 관하여』라는 소책자에서, “우리들 종교의 기반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 즉 성서이다”라고 천명하고 있다. 이러한 견해들은 개혁자들이 성서에 대해 내렸던 현저히 높은 평가를 말해준다.

성서의 정경성

‘정경적’이란 말은 흔히 성서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 ‘규칙’이나 ‘잣대’를 의미하는 헬라어 canon에서 유래한 이 말은, 성서본문의 한계가 그어졌다는 것을 뜻하는 말이기도 하다. 성서본문은 기독교 공동체의 의견일치에 의해, ‘성서적인’ 것으로, 그래서 기독교 신학에 권위 있는 것으로 간주될 수 있었다. 로마 가톨릭과 개신교 신학자들은 오랫동안 ‘외경’으로 불리는 더 추가된 본문의 지위에 관해 논쟁해왔다.

중세의 신학자들에게 “성서”는 불가타에 포함되어 있는 문헌들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개혁자들은 이러한 판단이 의심스럽다고 여겼다. 신약성서의 모든 문헌들이 정경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던 반면에, 일군의 구약 문헌들의 정경성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었다. 개혁자들은 제롬을 따라서 성서의 정경에 속한다고 간주할 수 있는 문헌들은 원래 히브리어 성서에 포함되어 있는 것들뿐이라고 주장했다.

이렇게 하여 “구약성서”와 “외경”(Apocrypha)이 구별되었다. 전자는 히브리어 성서에서 발견되는 문헌들로 구성된 반면, 후자는 헬라어나 라틴어 성서에서는 발견되지만 히브리어 성서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문헌들로 구성된다. 일부 개혁자들은 외경이 유익하지만, 교리의 근거로 사용될 수 없다는 것에 대해 일반적인 합의가 이루어져 있었다.

그러나 중세의 신학자들은, 그리고 이들을 따라 1546년의 트렌트 공의회에서는 “구약성서”는 “헬라어와 라틴어 성서에 포함되어 있는 구약의 문헌들”이라고 정의함으로써, “구약성서”와 “외경”의 구별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로써 “성서”가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문제에서 가톨릭과 개신교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생기게 되었다. 이러한 차이는 오늘날까지도 계속되고 있다.(2)

성서의 권위

개혁자들은 성서의 권위를 하나님의 말씀과의 관계 속에 정초시켰다. 어떤 사람들에게 이 관계는 절대적 동일성을 뜻했다: 성서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다른 어떤 사람들에게 이 관계는 약간 완곡한 것이었다: 성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포함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고 계신 것처럼 성서가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데는 의견의 일치가 있었다. 칼빈에게 성서의 권위는 성서의 기자들이 “성령의 대필자들”이라는 사실에 근거했다.(3) 하인리히 불링거에게 성서의 권위는 절대적이고 자주적인 것이었다: “성서는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본래 그리고 스스로 합당한 지위와 신빙성을 갖고 있다.”

몇 가지 사항들이 “오직 성서만”의 원리의 중요성을 지시한다. 첫째, 개혁자들은 교황, 공의회 그리고 신학자들의 권위가 성서의 권위에 종속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말은 그들에게 권위가 없다는 뜻이 아니다. 실제로 개혁자들은 교부시대의 어떤 공의회나 신학자들의 진정한 권위를 인정한다. 그러나 개혁자들은 그 권위가 성서에서 나왔으므로 성서 아래에 있다고 주장한다.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성서는 교부와 공의회보다 우월하다고 여겨야 한다. 칼빈은 말한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의 판단을 초월하며, 교부들과 공의회는 말씀의 규칙과 일치하는 한도 내에서만 권위가 있다고 우리가 생각하지만, 우리는 교부들과 공의회에 고귀한 지위와 명예를 부여하며, 이들이 그리스도 바로 아래에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여긴다.(4)

둘째, 개혁자들은 교회 내의 권위가 직분자의 지위로부터가 아니라, 이들이 섬기는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도출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통적인 가톨릭 신학은 직분자의 권위를 직분 그 자체에 정초시키는 경향을 갖고 있었다. 예컨대, 주교의 권위는 그가 주교라는 사실 그 자체에 있다는 것이다. 또한 주교라는 신분이 사도 시대와 갖는 역사적 연속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개혁자들은 주교들(또는 이에 상응하는 개신교의 직분들)의 권위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이들의 신실성에 정초시켰다. 칼빈은 말한다:

우리와 교황주의자들과의 차이는 다음과 같은 점에 있다. 그들은 교회가 말씀을 관장하지 않으면 교회가 진리의 기둥이 될 수 없다고 믿는다. 그러나 우리는 진리가 교회에 의해 보존되고 교회에 의해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것은 바로 교회가 스스로를 겸손하게 말씀에 복종시키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5)

역사적 연속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신실히 선포하는 데 있어 별로 중요하지 않다. 종교개혁을 통해 분열된 교회들은 분명히 가톨릭교회와 역사적 연속성이 없다. 어떤 가톨릭의 주교도 그들을 성직에 임명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개혁자들은 주교의 권위와 기능이 궁극적으로 하나님 말씀에 대한 신실성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마찬가지로 주교들의 결정(또한 공의회와 교황들의 결정)은 성서에 충실한 한 권위와 구속력을 갖는다.

가톨릭이 역사적 연속성을 강조한 반면, 개혁자들은 동일하게 교리적 연속성을 주장했다. 개혁자들과 초대 교회의 감독들 사이에는 단절되지 않은 역사적 고리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초대교회의 감독들과 동일한 신앙(중세 교회의 왜곡된 복음이 아니라)을 믿고 가르친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오직 성서만”의 원리는 교회의 권위가 성서에 대한 교회의 신실성에 근거한다는 주장을 함축하고 있다. 그러나 개혁 반대자들은 어거스틴의 말을 인용한다: “만일 내가 가톨릭 교회의 권위에 감동받지 않았다면, 나는 복음을 믿지 못했을 것이다.” 결국 그들은 무엇이 “성서”인지를 확정한 것을 교회였으며, 이것이 교회가 성서 위에, 그리고 성서로부터 독립적인 권위를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1519년의 유명한 라이프치히 논쟁에서 루터의 논쟁 대적자였던 존 엑크는 “교회의 권위가 없이는 성서가 진정성을 가질 수 없다”라고 주장했던 것이다. 이 말은 명백히 성서와 전통과의 관계에 관한 문제를 야기시킨다.(6)

전통의 역할

“오직 성서만”의 원리는 개신교 신학에서 전통에 대한 일체의 언급을 배제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것은 개혁자들이 기독교신학은 성서 위에, 그리고 오직 성서 위에 세워져야만 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개혁자들은 전통을 아주 긍정적으로 이해했다.

앞에서 우리는 중세 후기에 “전통 1”과 “전통 2”라는 전통에 대한 두 가지 판이한 개념이 퍼져 있었다는 사실을 살펴보았다. 여기서 A. 맥그래스는 전통을 일체 배제하는 것 같은 신학적 이해를 가리키는 것처럼 보이는 “오직 성서만”의 원리를 잠정적으로 “전통0”이라고 명명하자고 제안한다. 그러면 성서와 전통의 관계에 대해 16세기에 유포되었던 세 가지 이해가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성서와 전통의 관계에 대해 16세기에 유포되었던 세 가지 이해

전통0: 급진적 종교개혁
전통1: 관 주도적 종교개혁(7)
전통2: 트렌트 공의회

놀라운 것은 여기서 “오직 성서만”의 원리가 개혁자들이 아니라 토마스 뮌처나 쉬벵크펠트 같은 전통 0에 속하는 “재세례파”들과 관련되어 분류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문자 그대로의 “오직 성서만”의 원리를 철저하게 적용한 종교개혁 그룹은 저들 급진주의자들(루터는 “열광주의자들”이라고 불렀다)이었다. 그들은 모든 사람은 성령의 인도를 따라 자신이 원하는 대로 성서를 해석할 권리를 가졌다고 주장했다.(8)

이렇게 하여 개인의 사적 판단을 교회의 공동의 판단보다 우위에 놓는 개인주의의 길이 열리게 되었다. 급진주의자들은 유아세례를 비성서적인 것(신약성서에 명백한 언급이 없기에)으로 배척했고, 마찬가지로, 삼위일체나 그리스도의 신성과 같은 교리들 역시 부적절한 성서적 토대에 근거하고 있다고 보고 거부했다. 이들은 전통을 위한 자리를 전혀 갖지 않았다.

이와 대조적으로 개혁자들은 신학적으로 상당히 보수적인 견해를 갖고 있었다. 개혁자들은 일반적으로 교부들을 신뢰할만한 성서 해석자로 여기고, 그들에게 호소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은 개혁자들이 오직 성서만의 원리를 제대로 관철시키지 못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을 말하면, 그들의 관심은 성서의 증언에 인간이 첨부한 것이나 왜곡한 것을 제거하는 것에 있었다.

전통 1에 속하는 개혁자들은 소위 “교리의 단일 근원” 이론을 채택했다고 볼 수 있다. 예컨대, 신학은 성서에 근거를 두고 있고, 전통은 성서를 해석하는 전통적 방법을 가리킨다. 종교개혁의 주된 흐름은 이 접근을 채택했고, 그 해석이 성서와 일치하는 한, 삼위일체 교리나 유아세례의 관습 같은 성서의 전통적 해석이 보존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관 주도적 개혁자들은 개인주의의 위협을 뼈저리게 의식했고, 교회의 전통적 성서해석을 강조하며 이 위협을 피하려 했다.

그리고 교리적 비판은 가톨릭 신학과 관습이 성서를 위배했거나 성서와 모순된다고 보이는 부분에 집중되었다. 이 잘못된 발전의 대부분이 1200년에서 1500년 사이의 중세 후기에 발생했기 때문에 개혁자들은 이 시기를 개혁되어야 할 “부패의 시대” 또는 “타락의 시대”로 간주했고, 반면에 그들은 초기의 교부들을 신뢰할만한 성서 해석자로 의지했다. 이 점은 특히 중요하지만,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하였다.

개혁자들이 교부들, 특히 어거스틴의 저술들을 높이 평가했던 이유들 중 하나는 그가 단지 성서에 근거한 신학을 발전시키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물론, 당연한 일이겠지만, 개혁자들은 세부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새로운 본문비평 방법과 언어학적 도구들을 통해서 교부들을 수정하기도 했다. 이 점에서 개혁자들에게 “오직 성서만”의 원리는 무엇보다도 모든 기독교 신학과 관습이 궁극적으로 성서에 근거해야 한다는 확신을 나타내는 것이 되었고, 이렇게 성서는 기독교 신학의 유일한 규범적 근원으로 작용하게 되었다.(9)

가톨릭교회는 1546년에 트렌트에서 이중 근원 교리를 다시 확인함으로써 종교개혁의 위협에 대처했다. 공의회는 다시 구약성서를 ‘헬라어, 라틴어’ 성서 안에 포함된 구약성서의 작품들로 규정했고, 이리하여 구약성서와 외경의 구분을 제거했다. 가톨릭은 기독교 신앙이 성서와 글로 쓰이지 않은 전통이라는 두 근원을 통해 모든 세대들에 전달된다고 선언함으로써, 이 성서의 외적 전통이 성서와 동일한 권위를 가진 것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트렌트 회의는 1546년 4월 8일 토의를 마친 제4회기에서 개신교에 대해 다음과 같은 대응안을 수립했다.

첫째, 성서를 계시의 유일한 근원으로 여길 수 없다. 전통은 필수적인 보충인데 개신교는 이를 무책임하게 부인했다. ‘모든 구원의 진리와 행동규칙은 글로 쓰인 책과 글로 쓰이지 않은 전통에 실려 있으며, 이는 그리스도 자신이나 사도들 자신의 입으로부터 받은 것이다.’

둘째, 트렌트는 개신교의 정경목록이 부족하다고 규정했고, 권위 있는 것으로 받아들인 저술들의 목록 전체를 공표했다. 여기에는 개신교 저술가들이 배척했던 외경 전부가 포함되었다.

셋째, 성서의 라틴어판이 믿을 만한, 권위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 회기에서는 ‘수세기 동안 사용되고 있는 오래된 라틴어 불가타판이 교회의 승인을 받았고, 공적인 강의논쟁, 설교 또는 해석에서 참되므로 옹호해야 하며, 어떤 경우든 누구도 그것을 감히 배척해서는 안 된다’고 선언했다.

넷째, 트렌트 공의회는 교회가 성서를 해석할 권위를 옹호했는데 이는 개신교 해석자들 사이에 만연한 개별주의에 대항한 것이었다: ‘무분별한 영들을 제지하고자 이 공의회는 어느 누구도 기독교회에 관한 신앙과 도덕에 있어 (자신의 생각대로 성서를 왜곡하여) 자신의 판단에 따라 감히 성모께서... 하신 뜻에 대항해 성서를 해석할 수 없음을 공표한다.’(10)

미주

(미주 1) A. E. 맥그라스, 소기천 외 2인 옮김, 『신학의 역사』 (서울: 지와 사랑, 2002), 275.
(미주 2) Ibid., 276-7.
(미주 3) 칼빈이 성서기자들을 ‘성령의 대필자’라고 말하고 있다고 해도, 우리는 그가 후대 칼빈주의/정통주의자들의 축자영감설 같은 것을 말하고 있다고 할 수 없다. 곧 살펴보겠지만, 칼빈은 성서의 확실성 또는 신빙성을 축자영감설을 통해 증명하려고 하지 않았다.
(미주 4) A. E. 맥그라스, 『신학의 역사』, 278.
(미주 5) Ibid., 279.
(미주 6) Ibid., 279 이하.
(미주 7) “관 주도적 종교 개혁”(magisterial Reformation: 개혁의 과정에서 세속 권력의 적극적 지원을 받은 제도권 내 개혁운동), 혹은 “주류적 종교 개혁”(mainstream Reformation)이라고 알려진 개혁운동, 다시 말해 루터파와 개혁파를 지칭하는데 사용된다.
(미주 8) 성서와 성령의 관계에 관한 이 같은 재세례파의 주장은 개혁자들, 특히 칼빈의 그것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칼빈의 신학과 사상에서 성서에 관한 한 말씀과 성령의 본질적 연대관계는 신학적으로 전제된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성경과 성령이 분리될 수 없다는 사실을 다른 어느 누구보다도 각별히 강조했다. 칼빈의 강조점은 교회의 권위에 강조점을 두는 로마 가톨릭교회와 자기들 안에 거하는 성령에 강조점을 두는 재세례파를 겨냥한다. 성령은 하나님의 말씀과 끊을 수 없을 정도로 굳게 결합되어 있다. 성령은 새로운 교리를 계시하지 않고, 오히려 우리 마음속에 복음의 진리를 각인시켜준다.
(미주 9) A. E. 맥그라스, 박종숙 옮김, 『종교개혁 사상입문』 (서울: 성광문화사, 2002), 173-77.
(미주 10) A. E. 맥그라스, 『신학의 역사』, 284 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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