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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섭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한 줄기의 희망(열왕기하 25:27-30)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 승인 2021.09.05 15:26

27 유다의 왕 여호야긴이 사로잡혀 간 지 삼십칠 년 곧 바벨론의 왕 에윌므로닥이 즉위한 원년 십이월 그 달 이십칠일에 유다의 왕 여호야긴을 옥에서 내놓아 그 머리를 들게 하고 28 그에게 좋게 말하고 그의 지위를 바벨론에 그와 함께 있는 모든 왕의 지위보다 높이고 29 그 죄수의 의복을 벗게 하고 그의 일평생에 항상 왕의 앞에서 양식을 먹게 하였고 30 그가 쓸 것은 날마다 왕에게서 받는 양이 있어서 종신토록 끊이지 아니하였더라.

사무엘에서 열왕기에 이르는 역사서는 남왕국 유다 말엽에 편찬이 시작되어 바벨론 포로기에 이르러서 완성된 책입니다. 최소 100년에서 최대 200년에 걸쳐 편찬된 책이기 때문에 본문 뒤편에서 드러나는 시대 배경에 차이를 보일 때도 많습니다.

이런 차이점들은 사무엘-열왕기의 편찬 목적이 한 가지로 압축될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왕정 시대에 편찬된 부분들은 종교개혁을 통한 왕권 강화의 목적이 있었을 것이고, 바벨론 포로기에 편찬된 부분들은 포로민들을 결속하고 위로하려는 목적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도 책의 특성상 마지막으로 편집한 이들의 의도가 가장 많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사무엘-열왕기가 바벨론 포로민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기 위해 편집되었다고 말합니다. 특정 본문들은 그들을 향한 위로의 말씀이라고 설명합니다.

저는 당시 남왕국 유다 사람들의 삶을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인지, 타국에 포로로 끌려가서 살아가는 삶을 알지 못하기 때문인지, 사무엘-열왕기 안에서 들어있다는 위로의 말씀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미 나라가 멸망한 상황에서 과거 솔로몬이 누렸던 영광이 이들에게 어떤 위로를 줄 수 있을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부분들이 있는지 말씀을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그리고 열왕기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는 오늘 본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열왕기의 마지막 이야기인 열왕기하 25장은 처참하게 멸망한 남왕국 유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남왕국 백성 대부분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고, 유다 땅에는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세워놓은 그달리야와 함께 바벨론에 충성을 맹세한 이들만 남겨졌습니다. 어쩌면 이들이 남왕국의 명맥을 유지해나갈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달리야는 다윗의 혈족이라고 주장하는 이스마엘 세력에 의해 죽임당합니다.

그달리야를 죽인 이스마엘은 스스로 남왕국의 왕위에 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는 반란을 일으켰지만, 바벨론이 두려워서 남은 이들을 데리고 이집트로 망명해버립니다. 그의 반란은 남왕국 유다가 지속될 수 있는 하나의 가능성마저 파괴해버렸고, 남아있던 유다의 백성마저도 흩어지게 만듭니다.

열왕기하 25장 26절까지의 이야기는 남왕국의 완전한 괴멸을 말합니다. 이제 남왕국 유다라는 나라는 사라졌고, 그곳에 남아있는 이들도 없습니다. 남왕국 유다의 역사는 여기에서 끝맺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역사가는 이 뒤에 네 절을 덧붙입니다. 바벨론 포로가 된지 37년에 에윌므로닥이 잡아갔던 여호야긴을 석방하고 그를 포로로 잡혀온 다른 왕들보다 높여주었다는 이야기가 덧붙여집니다. 이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은 아닙니다. 1900년 초에 바벨론 지역에서 발견된 ‘여호야긴 배급 토판(Jehoiachin's Rations Tablets)’은 여호야긴이 다른 왕들과 다르지 않은 대우를 받았다고 증언합니다. 따라서 열왕기의 마지막 네 절은 실제 역사가 아닌 역사가의 바람입니다.

이 구절을 읽으면서 소설이나 영화의 엔딩 연출을 떠올리게 됩니다. 사무엘-열왕기를 영화에 비유해보자면, 이 영화는 보잘 것 없는 주인공이 역경을 이겨내며 성공에 이르는 내용으로 시작됩니다. 하지만 영화 중반부에 성공을 이뤘던 주인공은 점차 실패가 쌓여가면서 자신이 가진 것을 하나둘 잃게 됩니다. 때로 예전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몸부림쳐보기도 하지만 결국 주인공은 모든 것을 잃고 완전히 파멸하게 됩니다. 영화는 모든 것을 잃은 주인공 뒤로 작은 빛이 드리우는 장면으로 마무리됩니다.

▲ Antonio Puccinelli, 「The Jews in Babylonian captivity」 (1851) ⓒGetty Image

이런 영화를 누가 볼까 싶기도 합니다만, 영화의 결말은 열린 결말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주인공의 처참한 마지막만을 말할 수도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마지막에 드리운 작은 빛이 새로운 희망을 의미한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열왕기는 이렇게 아주 작은 빛을 비추며 역사서를 마무리합니다.

이 작은 빛 속에서 열왕기를 기록한 역사가들이 전하고자 했던 이야기는 하나님의 섭리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희망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유다의 멸망으로 끝나지 않는다. 지금은 작은 한 줄기의 빛밖에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다시금 희망을 빛을 비추셨고,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우실 것이라는 위로와 희망의 말씀입니다.

열왕기 역사가들이 보았던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삶 속에서 이런 빛을 비춰주십니다. 우리가 좌절했을 때, 절망했을 때, 너무나 힘들어서 주저앉고 싶을 때, 이런 빛을 비추십니다. 이때 그 빛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판단하는 일은 우리의 역할입니다. 어떤 분들은 지금의 어려운 상황으로 인해 빛을 못 보실 수도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빛은 보았지만, 그것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희망의 빛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여전히 주저앉아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섭리하심은 기적적인 대전환 속에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시는 방식은 어느날 갑자기 모든 문제가 뿅 해결되는 방식이 아닙니다. 아주 작은 도움으로 시작됩니다. 우리가 그것을 놓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굳건히 나아간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일이 하나둘 해결되어 나가도록 길을 이끄십니다.

그래서 빛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느끼신 분들은 희망을 발견합니다. 엘리야가 큰 울림이 아닌 세미한 소리 속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들었던 것처럼, 그 소리를 들은 엘리야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들고 일어설 수 있었던 것처럼, 작은 빛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한 이들은 다시금 하나님을 의지하여 일어설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너무나도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어려움이 결코 끝나지 않고 우리를 억누를 것처럼 느끼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하나님의 섭리하심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결코 홀로 남겨두지 않으시며, 우리가 좌절한 상태로 있도록 놓아두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희망을 빛을 언제나 우리에게 비추십니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우리에게 주시는 빛을 보시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그 빛을 보고 그냥 지나쳐버리지 않고 그곳에서 희망을 발견하시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분명 우리를 도우시며 인도하실 것입니다. 

열왕기 역사가가 마지막으로 남긴 이야기, “하나님의 섭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그 이야기를 기억하시며 날마다 하나님 안에서 희망을 품고 살아가심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며, 그 은혜와 평안을 누리시는 여러분 되시길 축원합니다.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joey8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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