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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가(출 20:7, 3:13-15; 마 7:21-23; 누가 13:25-27)십계명 다시 읽기 ⑷
홍인식 목사(에큐메니안) | 승인 2021.09.06 15:25
▲ 하나님의 이름을 왜 부르는지 우리 스스로 알아야 한다. ⓒGetty Image

저는 오랜 세월을 외국에서 살아왔습니다. 외국에서 살아가면서 느끼는 불편 중의 하나가 이름입니다. 한국식의 이름이 현지인들의 발음체계로는 발음하기가 상당히 어려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모음이 단순한 현지어에서 모음이 10개나 그것도 합성모음까지 하면 상당한 수의 모음을 자랑하는 한국어를 제대로 발음하는 것은 매우 힘듭니다. 그래서 현지인들이 한국식 이름을 발음하는 것을 보면 전혀 엉뚱한 이름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도 제 이름은 In Sik 으로서 비교적 발음하긴 쉬운 이름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어려워합니다. 그래서 현지인들의 편의를 위해서 저는 제 이름을 Daniel이라고 제 임의대로 만들어서 이들에게 가르쳐 주곤 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저를 Daniel이라고 알아왔습니다.

오래전 아르헨티나 연합신학대학교 ISEDET에서 박사학위를 공부하던 때였습니다. 구약 다니엘서 세미나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저를 가르쳤던 교수 한 분이 저의 이름을 물었습니다. 저는 자연스럽게 Daniel이라고 답변을 했습니다. 그러자 교수님이 저에게 ‘그것은 당신의 이름이 아닙니다. 나는 당신의 이름, 당신이 누구인지를 알 수 있도록 하는 이름을 알고 싶습니다’ 그러면서 이름과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를 다니엘서 세미나를 통하여 저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바벨론 사람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가서 처음에 한 일들이 이들의 이름을 바꾸어 주는 것이었습니다. 이름이 바뀌면 정체성의 혼란이 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며 그 문화에서 살던 사람이 바벨론 식의 이름으로 바꾸면 바벨론 식 종교와 문화에 자신의 정체성을 잃게 된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 강의를 들으면서 일본이 우리나라를 강점했을 때 왜 그토록 창씨개명을 강조했고 또한 왜 민족주의자들은 창씨개명을 끝까지 거부했는가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 강의 이후부터 저는 Daniel이라고 하는 이름을 버리고 제 이름인 In Sik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니까 Daniel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였을 때 그 이름을 듣는 사람들은 저의 정체성을 제대로 알지 못했고 저 또한 정체성을 분명히 하지 않고 정체를 모호하게 만들었구나 하는 반성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당시 살고 있었던 아르헨티나에서 한인들에게 되도록이면 서양식 이름을 지양하고 우리의 민족적 정체성을 분명히 하는 한국식 이름을 그대로 사용할 것을 권고합니다. 그것은 이민자로서의 우리 정체성을 현지에 알리고 현지사회에 다양한 문화의 존재를 알릴 수 있는 중요한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이민자에게 이름은 매우 중요합니다. 자신이 어느 민족과 어느 문화에 속해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리는 효과를 가져 옵니다. 이민자에게 이름은 내가 누구인가를 알리는 아주 소중한 문화적 자산입니다.

오늘 제3 계명은 이러한 이름에 관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말라는 것입니다. 구약에서의 이름은 현대에서 불리워지는 이름보다 더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구약의 이름은 한 사람의 모든 것을 운명적으로 결정짓는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이름은 그 사람의 삶 자체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제3 계명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말 것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함부로 부른다는 의미는 크게 세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첫째는 사용(私用)입니다. 인간이 자기 임의대로 부르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이 자기 좋은 대로 하나님의 이름을 규정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오용입니다. 잘못 된 사용의 뜻입니다. 세 번째는 남용입니다. 아무데나 그리고 아무 때나 너무 많이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말라고 경고하고 계십니다.

오늘 우리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어떤 식으로 부르고 있습니까? 주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것은 아닙니까?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전가의 보도 인 것처럼 모든 것에 있어서 주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은 아닙니까? 과연 오늘 우리들의 주님을 부르는 행위가 주님의 모든 것을 제대로 드러내고 있는 것일까요?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더러 주님, 주님 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다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간다.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에게 말하기를 주님, 주님,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 쫓고, 또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행하지 않았습니까? 할 것이다.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할 것이다.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나에게서 물러가라(마태 7:21~22)

위의 말씀은 우리에게 많은 혼돈을 주는 기록입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일을 행했던 사람들을 향하여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라면서 물러가라고 하는 예수님의 모습은 이해하기 힘듭니다. 이들의 문제는 어디에 있었습니까?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불렀다는 데 있습니다. 제 3 계명은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자들이 받을 엄한 벌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자들은 결코 죄 없다 함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이름을 함부로 사용하지 말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먼저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자기 개인적인 목적을 위하여 사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적인 용도로 그리고 자기 임의대로 하나님을 불러서는 안 됩니다. 전두환 정권 시절입니다. 군대의 힘으로 정권을 잡은 이들은 정당성에 있어서 가장 큰 빈곤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로부터 정당성을 부여 받고 싶어 했습니다. 그 때 등장한 것이 소위 조찬기도회라고 하는 기독교 목사들과 장로들의 ‘국가를 위한 조찬기도모임’입니다.

많은 교회 지도자들이 그저 대통령이 부른다고 가서 그를 위해서 기도하고 또 무력으로 정권을 장악한 불법적인 정권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찬양했습니다. 이것이야 말로 하나님의 이름을 개인적인 목적으로 그리고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예의 절정입니다. 오늘 우리는 나 자신의 행위를 만족시키기 위하여 하나님을 이용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것으로서 결코 하나님으로부터 죄 없다 함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

두 번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오용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잘못 이해하고 엉뚱한 곳에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요청을 들어주는 분이 아니십니다. 무조건 하나님의 이름으로 한다고 해서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한다고 해서 다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잘못된 사용은 우리에게 오히려 나쁜 결과를 가져다 줄 것입니다. 불법을 행하는 데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한국에 보면 경목이라는 직책이 있습니다. 군대에서 목회하시는 분을 군목, 병원에서 사역하시는 분을 원목, 그리고 경찰서에서 사역하시는 분을 경목이라고 부릅니다. 경목들은 다 경목증을 발급받습니다. 그런데 이 경목증이 여간 편리한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운전하다 교통법 위반으로 교통경찰에 적발 되었을 때 아주 요긴하게 사용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담당 교통경찰에게 경목증을 보이면 대부분 그냥 보내 준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러한 편리함을 때문에 몇몇 목사님들은 여러 경로를 통하여 경목증을 소지하려고 노력합니다. 저에게는 자신이 가진 경목증을 자랑한 분도 있습니다.

저는 상상해 봅니다. 교통 위반으로 적발되었을 때 경목증을 보여 주면서 그냥 풀려나는 모습을 말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정말 엉뚱한 곳에서 사용되어지고 있음을 봅니다. 그래 하나님이 겨우 교통법규 위반 한 것 봐주는데 쓰여지다니! 통탄할 노릇이 아닙니까? 하나님의 이름이 잘못 사용되어지고 있습니다.

세 번째로 하나님의 이름이 남용되어서는 안 됩니다. 아무 때나 아무데서나 함부로 불리워져서는 안 됩니다. 귀한 것을 너무 자주 사용하여 흔하게 되면 가치를 잃게 되는 것이 인생의 법칙입니다. 귀한 것의 가치를 몰라서 아무데나 아무런 목적으로 너무 자주 사용하게 되면 망가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이름도 마찬가지 입니다. 많은 교인들이 특히 믿음이 좋다고 하는 분들 중에 그런 현상이 많이 나타나는데, ‘주여, 주여’를 입에 달고 다니는 것을 봅니다.

한번은 온천탕을 갔습니다. 알다시피 온천탕에는 열탕도 있고 냉탕도 있고 아주 열탕(?)도 있습니다. 저는 뜨거운 것을 좋아해서 아주 열탕(?)에 들어가 있었는데 어떤 분이 그 탕에 들어오면서 심호흡을 하더니 ‘주여’ 하고 큰 소리로 치면서 들어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얼마나 놀랐는지! 아마 그 사람은 뜨거운 곳에 들어가니까 준비운동 삼아 그랬던 가 봅니다. 저의 얼굴은 조금 달아올랐습니다. 온천물의 뜨거움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래 고작해서 하나님의 이름이 뜨거운 열탕에 들어오는데 사용되다니’ 아마 그 분은 평소에도 늘 입에 ‘주여, 주여’를 달고 다니셨던 분이셨을 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남용하지 않기 위해서는 평소에도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그리고 가치 없이 부르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결코 죄 없다 함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이상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것에 대한 의미를 몇 가지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말라’라는 명령은 우리에게 또 다른 신앙과 삶의 원리와 정신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명예로움 혹은 품위”라고 표현하고자 합니다.

성서에서 이름은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나타내 준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을 드러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때 그러한 부름의 행위를 통하여 하나님의 모습이 드러나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믿는 이로서의 품위가 있어야 합니다. 믿는 사람들이 명예를 지켜 나갈 때 하나님의 이름을 제대로 부르는 것입니다.

우리말에 ‘이름에 걸맞게 살자’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민자로서 한국식의 이름으로 자신을 부르게 하는 사람들은 한국 이름에 걸맞게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품위를 지켜 나가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때는 하나님의 품위가 드러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은 명예로운 삶과 품위 있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입에는 ‘주여, 주여’를 달고 다니지만 명예롭지 못한 삶을 살아서는 주님의 이름을 더럽힐 뿐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은 품위와 명예를 지켜 나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품위와 명예를 지켜나가는 사람들이 거짓과 불의를 저지르면서 살아갈 수는 없을 것입니다. 죄 짓는 자리에 앉아 있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품위와 명예를 지키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헐뜯거나 모함하는 일에 끼어 들 수는 없습니다. 품위와 명예를 지키는 믿는 이들이 뇌물을 받고 흥정하는 그런 일에 끼어 들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오늘 한국 교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세계 최대의 교회를 자랑하는 우리들이 세계를 향하여 보여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숫자입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세계를 향하여 한국교인들은 품위와 명예를 지킴으로서 하나님의 이름을 귀하게 부르는 교회임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의 사회에서 기독교인들이 사람들을 향하여 보여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품위와 명예를 지켜나가는 모습일 것입니다. 우리들이 그렇게 함으로서 하나님의 이름이 귀하게 여김을 받게 될 것입니다.

저는 목사로 살아가면서 여러 목회에 대한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제가 목회하고 있는 교회의 교인들이 진정으로 품위와 명예를 지켜나가는 교인이 되는 것입니다. 품위 있는 교회, 명예를 귀하게 여기는 그런 교회, 그런 교회의 목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고 귀하게 부르는 그런 교회, 그런 교인들과 함께 목회를 하고 싶습니다. 우리 모두 그런 교회를 만들어 가십시다. 하나님의 이름을 귀하게 부르는 교회를 만들어 갑시다.

홍인식 목사(에큐메니안)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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