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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는 현대적 동성애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퀴어성서주석을 이야기 하다 ⑷
장양미(이화여대 기독교학과 신약학 박사) | 승인 2021.09.06 15:31
▲ Ford Madox Brown, 「Ehud kills Eglon」 ⓒWikipedia
지난 4월 무지개신학연구소가 『퀴어성서주석: I. 히브리성서』 (퀴어성서주석 번역위원회 옮김)를 출간했다. 출간 전부터 화제를 낳았고 출간되자마자 많은 이들의 환영을 받았다. 하지만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속된 말로 위험한 책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에 에큐메니안은 『퀴어성서주석』를 각 책별로 간단하게 소개하는 연재를 시작한다. 미래의 독자들에게 어떤 책으로 다가갈 수 있는지를 소개하는 차원이다. - 편집자 주

“저에게 성소수자와의 상담 종료는 곧 죽음을 의미합니다.” 교회에 만연한 성소수자 혐오 문제를 다룬 어느 강연회에서 섬돌향린교회 임보라 목사님의 이 말씀을 듣는 순간, 눈앞이 캄캄하고 가슴이 먹먹해졌다. 청중 사이에서 터져 나온 외마디 얕은 비명과 일순간의 정적은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음을 알려주었다. 상담이 내담자의 자살로 종결된다는 증언 외에 우리가 성소수자 이웃과 함께 해야 할 다른 이유가 더 필요할까?

촛불혁명의 승리로 위기에 처한 극우 개신교 집단이 공산주의자, 종북좌파에 이어 성소수자와 이슬람교를 적으로 규정함으로써 다시 한 번 결집을 꾀하고 있다. 많은 교회들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성서에 근거하여 동성애와 성소수자를 비난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때 구약성서에서는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창세기 19장), 남성 간 성행위 금지 조항(레위기 18:22, 20:13의), 그리고 레위인의 첩 이야기(사사기 19:1-30)가 주로 인용된다. 성서에 근거한 동성애 공격의 부당성을 밝히고 이를 무력화하기 위해 사사기에 대한 퀴어적 해석이 긴급하게 요청되는 이유이다.

『퀴어성서주석』에서 데린 게스트(Deryn Guest)는 레위인의 첩 이야기(19:22-30) 외에 모압 왕 에글론을 죽인 사사 에훗의 이야기(3:12-30) 그리고 가나안과의 대결을 승리로 이끈 사사 드보라와 야엘의 이야기(4-5장)를 중심으로 퀴어 해석을 시도한다. 그는 사사기가 사사시대가 아니라 포로후기에 이스라엘 민족의 희미해진 공동체성을 강화하고, 이스라엘과 다른 민족 사이의 경계를 강화하기 위해 써졌다는 전제 아래, 처음 두 본문에서는 고대 지중해 세계의 남성 간 성폭력에, 나머지 한 본문에서는 여성 간 연대에 초점을 맞추어 주석을 진행한다.

여러 구약성서 학자들과 마찬가지로 게스트도 사사기가 성적인 풍자와 암시로 가득한 책이라는 데 주목하고, 언어학과 역사학, 문학 등의 방법론을 동원하여 에훗의 에글론 살해가 남성 간 성폭력과 관련되어 있음을 설득력 있게 주장한다. 예를 들어, 본문에서 자주 언급되는 에홋의 ‘손’(yad)은 동시에 ‘남근’을 의미하며, 그가 사용한 직선형의 쌍날 단검 역시 당시 흔히 사용되던 굽은 검과 달리 남근을 연상시킨다. 그 외에도 이 본문에 남성 간 성관계 혹은 성폭력을 연상시키는 단서는 많다. 말하자면, 에훗과 에글론의 만남은 비유적 강간 장면이라는 것이다.

게스트에 따르면, 레위인의 첩 이야기도 남성 간 성폭력의 맥락에서 볼 때 올바로 이해될 수 있다. 여기서 레위인을 내놓으라고 요구했던 불량배들은 쉽게 성욕에 굶주린 동성애자로 인식되었고, 그 결과 오랫동안 동성애에 대한 혐오를 강화하는 본문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불량배들을 남성 동성애자로 보면, 레위인 대신 그 첩을 윤간한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문제가 남는다.

고대 지중해 세계에 대한 연구는 당시 남성에 의한 남성에 대한 성폭력은 동성 간 사랑에 기초한 현대적 동성애와 아무 관련이 없으며, 가해자 남성이 아니라 피해자 남성에게 치욕을 안기는 폭력 수단임을 보여주었다. 게스트는 이를 근거로 기브아의 불량배들은 동성애자들이 아니라 남성 강간이라는 방식을 통해 기브아 출신이 아닌 레위인에게 수치를 주려 했으며, 이것이 실패하자 그의 첩을 윤간함으로써 그에게 치욕을 주었음을 밝혀냈다.

이것은 고대 지중해의 가부장제 사회에서 성관계에 내재된 권력관계에 대한 이해가 두 본문 해석의 열쇠임을 보여준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성기를 삽입하는 것은 남성의 우월한 지위를, 성기를 관통당하는 것은 여성의 열등한 지위를 상징하며, 이러한 맥락에서 남성에 의해 강간당하는 남성은 여성의 지위로 강등된다. 구약성서에서 남성 간 성관계를 금지한 것은 그것이 현대적 개념의 동성애이기 때문이 아니라 가부장제의 질서를 교란시키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남성 강간을 통해 사사 에훗은 에글론과 가나안 민족에 대해, 베냐민 지파에 속하는 기브아의 불량배들은 레위 지파에 대해 자신의 우월성을 드러내려 했다. 차이가 있다면 에훗의 행동은 하나님에 의해 승인되었고, 베냐민 지파의 동족에 대한 패륜은 벌을 받는다는 점이다. 구약성서가 남성 간 성관계 자체를 금지한다는 점(레위기 18:22; 20:13)에서 에훗의 행동이 정당화되기 힘들다는 반론이 제기될 수도 있다.

그러나 사사기의 저자가 포로후기에 과거를 돌아보며 이스라엘 왕권의 기틀을 다신 다윗의 적수였던 사울과 그가 속한 베냐민 지파에 대해 반감이 있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베냐민 지파 출신 에훗의 행동에 대한 불온한 진술들이 이해가 된다. 사사기의 저자는 에훗의 승리를 반쪽짜리 승리로 남기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게스트가 앞선 두 본문을 통해 고대 지중해 가부장제 사회의 남성 간 성폭력에 내재된 사회정치적 함의를 밝혔다면, 사사 드보라의 이야기를 통해서는 여성 간 연대를 통해 가부장제를 전복하는 유쾌한 상상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그는 구약성서 전반에 걸쳐 여성들의 역사적 활약이 억제되어 서술되고 있으며, 당시 여성에 의한, 여성에 대한 기록이 전무하다시피 한 상황에서 상상을 통해 사라진 틈을 메우는 작업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본문에서는 드보라와 야엘 사이의 직접적 관련성이 드러나지 않지만, 둘 다 가나안의 장군 시스라를 무너뜨리는 대업에 동참했다는 것은 두 여성 사이의 긴밀한 연대의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러한 해석은 레즈비언-페미니스트 이론과 퀴어 이론이 이스라엘의 구원사에서 여성들이 담당한 주체적이고 능동적 역할을 더 예민하게 포착하고 더 밝히 드러낼 능력이 있음을 보여준다.

게스트는 사사기에서 동성애에 관련된 본문들을 뚝 끊어다가 무조건 성소수자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는 우를 범하지 않는다. 그는 기존의 주요 연구들과 충실하게 대화하는 가운데 새로운 정보와 방법들을 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사사기의 저술 배경과 전체 맥락 안에서 중요 본문들에 대한 퀴어 해석을 시도한다. 그녀의 본문 해석, 특히 남성 간 성폭력과 관련된 본문 해석이 동성애에 대한 찬반과 상관없이 논리적이며 설득력이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나아가 그는 에훗의 행동이 하나님의 승인을 받았다고 해서, 레위인의 첩의 죽음이 암묵적으로 남편의 뜻을 거스른 여성이 받은 벌로 그려진다고 해서 그것을 당연히 여기지 않는다. 성폭력은 어떤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윤리적 입장을 분명히 밝힘으로써 그리스도인들이 신의 이름으로 폭력을 정당화하거나, 성소수자와 여성이 본문을 읽으며 겪게 될지 모를 트라우마를 간과하지 않는다. 성실한 연구와 풍부한 근거로 퀴어 해석을 뒷받침하고, 신의 이름과 성서의 권위에 눌리지 않고 끝까지 윤리적 문제를 제기하는 것, 그의 퀴어 연구의 강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물론, 사사기를 포로기 이후 이스라엘 민족의 정체성 강화를 위해 써진 ‘허구’로만 보아야 하는지, 드보라와 야엘, 두 여성의 연대에 대한 상상적 독해의 구체적 내용이 지나치게 현대적 관점에서 이루어진 것은 아닌지 등에 대해서는 논의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이것이 이 연구의 가치를 떨어뜨리는가? 그렇지 않다. 논의와 논쟁이야말로 학문의 본질이며, 신학적 차원에서는 하나님과 나누는 대화이다.

예수는 하나님의 법을 받들어 모시던 바리새인들로부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라는 비난을 들으면서까지 율법을 넘어섰다. 바울은 만민족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맞이하기 위해 유대인의 정체성의 근간인 음식법을 초월했다. 예수와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과 법을 시대와 상황에 따라 새롭게 해석하고 실천하는 본을 몸소 보여주었다.

단, 기준은 명확했다. 그 시대의 힘없고 병든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야 한다는 것이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성적 지향 조항을 포함한다는 이유로 아직도 국회에서 계류 중인 2021년 한국 사회에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예수의 제자로서, 바울의 본을 따르는 신도로서 그리스도인이 품어야 할 사회적 약자는 누구인가? 퀴어 해석의 정당성은 여기서 확보된다.

사사기까지 갈 것 없이 이 책 첫 장의 헌사만 읽어도 가슴이 울렁거릴 것이다. “퀴어”(queer)는 본래 “나는 곧 나다”(출 3:14)라는 특이한 이름, 퀴어적 이름을 지닌 “해방의 신”이 주신 “특별한 소명”이라는 첫 문장을 읽는 순간, 우리의 마음에 성령의 바람이 불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성소수자의 해방에 동참하라는 거부할 수 없는 하나님의 명령 앞에서 느끼는 전율일 수도, 아니면 이 책이 이제까지 내가 고수한 동성애 반대 입장을 바꿀 것 같다는 두려움에서 오는 떨림일 수도 있다. 성령 앞에서 떨리고 불안한 마음을 붙잡고 기도하자. ‘영’으로도 기도하고 ‘이성’으로도 기도하자.(고린도전서 14:15) 그 기도 끝에 오늘 우리가 새롭게 맞아들여야 할 하나님의 자녀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장양미(이화여대 기독교학과 신약학 박사)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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