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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 세상에 거주하는 책임“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이사야 40:21-26)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 승인 2021.09.06 20:03
▲ 자신들이 당한 고통과 혼동 가운데 이스라엘은 질서를 부여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을 고백하게 되었다. ⓒGetty Image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나요? 평안은 조건 없이 하나님으로부터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입니다. 우리 안에 주어진 평안을 날마다 선택하고 누리시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며칠 전 강원일보를 보니 속초에 25층 이상의 고층 아파트 및 빌딩들이 70여 곳에서 우후죽순처럼 생기고 있어서 산과 바다의 조망 스카이라인 경관을 해치고 있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사실 이런 건물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면, 경관보다도 생태계가 심각하게 오염되고, 파괴되기 때문에 위험합니다. 이제는 사람 중심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되는 시대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람중심으로 이익과 손해를 따지며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도 인간의 끝없는 탐욕으로 인한 생태계 파괴로 발생했습니다. 자연이 스스로를 보호하고자 바이러스를 만들어냈기 때문입니다. 생태계 전체를 생각하지 않고 사람 중심으로만 생각한다면 코로나 바이러스로 끝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언제인가부터 외치고 있는 ‘기후위기’가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입니다.

광고시간에도 말씀드렸지만, 초도리 주민으로서 사고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시민으로서 사고해야 합니다. 또한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인간중심적으로가 아니라 생태계 전체를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런 생각과 방향성을 가지고 기도하고 실천하며 살아가는 것이 성경에서 이야기 하는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는 길입니다.

이번 주부터 ‘창조절’이 시작됩니다. 우리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신 목적에 대해 더욱 깊이 묵상하는 절기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은 ‘포로기’입니다. 다윗과 솔로몬으로 이어지던 하나의 왕국이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나뉘어졌고, 처음에는 북이스라엘이 앗시리아에 멸망당하고 나중에는 남유다 마저 바벨론에 의해 멸망을 당합니다. 성경에 기록되어진 찬란한 왕국은 사라지고, 폐허가 되어 점령당한 도시에 남은 자들과 포로로 끌려간 자들로 뿔뿔이 흩어지게 됩니다. 이 포로기가 오랜 동안 지속되다 보니 나라를 되찾는 것은 고사하고, 나라와 삶의 근간이었던 하나님을 향한 ’믿음’마저 유지하기가 쉽지 않은 형편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믿음’마저 잃어버릴 수 있는 상황이었기에, 자신들의 신앙을 다시 세우는 일들을 하게 되었는데요, 성경을 읽다보면 출애굽으로부터 사사시대, 왕정시대 그리고 포로기 시대를 지나면서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확장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포로기 시대에 와서 이들은 우리 민족을 넘어 이 세상 모든 민족의 하나님 그리고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으로 고백하게 됩니다.

초기에는 나라의 안전을 위해서는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하고, 외세를 의지하는 것은 큰 불순종이었고 그래서 나라가 위험해지면 자체적으로 해결될 수 있도록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이 기록되었다면, 포로기 시대에 와서는 이방나라의 왕을 택하셔서 도움을 주시겠다는 달라진 하나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이라는 민족 안에 갇혀 계셨다면, 자신들을 넘어 밖에서도 일하시며 역사하시는 하나님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이 성전 안에서만 나타나신다는 사고에서 하나님이 성전 밖 어디에서나 나타나신다는 사고로 인식이 확장된 것과 같습니다.

이사야 41:1-4 “1 섬들아, 나의 앞에서 잠잠하여라. 백성들아, 송사를 가져 오너라. 가까이 와서 말하여 보아라. 와서 함께 판가름하여 보자. 2 누가 동방에서 한 정복자를 일으켰느냐? 누가 그를 가는 곳마다 승리하게 하였느냐? 누가 민족들을 그에게 굴복하게 하였느냐? 누가 그를 왕들의 통치자로 만들었느냐? 그의 칼은 그들을 쳐서 티끌처럼 만들고, 그의 활은 그들을 흩어서 검불처럼 날리게 하였다. 3 그가 거침없이 질주하여 그들을 추격하니, 미처 발이 땅에 닿지도 않는다. 4 누가 이런 일을 일어나게 하였느냐? 누가 역사의 흐름을 결정하였느냐? 태초부터 나 주가 거기에 있었고, 끝 날에도 내가 거기에 있을 것이다.”

이사야 45:1, 4-5 “1 나 주가 기름 부어 세운 고레스에게 말한다. 내가 너의 오른손을 굳게 잡아, 열방을 네 앞에 굴복시키고, 왕들의 허리띠를 풀어 놓겠다. 네가 가는 곳마다 한 번 열린 성문은 닫히지 않게 하겠다. 고레스는 들어라! 4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부른 것은, 나의 종 야곱, 내가 택한 이스라엘을 도우려고 함이었다. 네가 비록 나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너에게 영예로운 이름을 준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5 나는 주다. 나 밖에 다른 이가 없다. 나 밖에 다른 신은 없다. 네가 비록 나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는 너에게 필요한 능력을 주겠다.”

유대인의 왕과 제사장에게만 기름을 부어주셨는데, 이방 나라의 왕에게도 기름을 부어 세운다는 고백은 충격적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을 넘어서 온 세계를 주관하시며 역사를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말씀처럼 온 세계만물을 창조하시는 하나님으로 고백하게 됩니다. 특별히 이사야 본문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냐? 창조주 아니시냐?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고백의 패턴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21 너희가 알지 못하였느냐? 너희가 듣지 하였느냐? 태초부터 너희가 전해들은 것이 아니냐? 너희는 땅의 기초가 어떻게 세워졌는지 알지 못하였느냐? 22 땅 위의 저 푸른 하늘에 계신 분께서 세상을 만드셨다. 땅에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 보시기에는 메뚜기와 같을 뿐이다. 그는 하늘을, 마치 엷은 휘장처럼 펴셔서, 사람이 사는 장막처럼 쳐 놓으셨다. 23 그는 통치자들을 허수아비로 만드시며, 땅의 지배자들을 쓸모없는 사람으로 만드신다. 24 이 세상의 통치자들은 풀포기와 같다. 심기가 무섭게, 씨를 뿌리기가 무섭게, 뿌리를 내리기가 무섭게, 하나님께서 입김을 부셔서 말려 버리시니, 마치 강풍에 날리는 검불과 같다. 25 거룩하신 분께서 말씀하신다. "그렇다면, 너희가 나를 누구와 견주겠으며, 나를 누구와 같다고 하겠느냐?" 26 너희는 고개를 들어서, 저 위를 바라보아라. 누가 이 모든 별을 창조하였느냐? 바로 그분께서 천체를 수효를 세어 불러내신다. 그는 능력이 많으시고 힘이 세셔서, 하나하나, 이름을 불러 나오게 하시니, 하나도 빠지는 일이 없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은 무질서에 질서를 만들어 내십니다. 요즘엔 텐트도 편리하게 원터치 텐트라는 게 있더라구요? 접혀 있는 텐트를 허공에 던지면 한 번에 펼쳐지게 되어 있는 텐트입니다. 창세기에 기록된 하나님의 창조는 이처럼 한 번에 ‘빵’하고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순차적으로 질서 있게 이루어지고 있음을 창세기 1장 본문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설명 드린 하나님에 관한 자신들의 신앙 다시 세우기, 즉 ‘무에서 유를 만들고, 무질서에서 질서를 만드시는 하나님, 천지를 창조하시고 세상 모든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에 대한 고백은 나라를 잃고 포로로 잡혀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큰 위로와 소망이 되는 말씀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자신의 백성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은 어떤 세상을 만들어 가려고 하셨을까요? 이사야 11:6-9의 기록을 통해 하나님이 이루시고자 하는 세상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6 그 때에는,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새끼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풀을 뜯고, 어린 아이가 그것들을 이끌고 다닌다. 7 암소와 곰이 서로 벗이 되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눕고,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는다. 8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 곁에서 장난하고, 젖 뗀 아이가 살무사의 굴에 손을 넣는다. 9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서로 해치거나 파괴하는 일이 없다.’ 물이 바다를 채우듯, 주님을 아는 지식이 땅에 가득하기 때문이다.”

모든 생태계가 조화롭게 공존하고 있는 모습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서로를 해치지 않으면서 평화를 유지하는 모습입니다. 기존의 체제를 유지하는 것을 넘어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선언입니다. 자, 그렇다면 오늘날의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기후위기’를 살고 있는 오늘날의 우리는 무언가를 해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과 함께 이 모든 일들을 이루어 가시기 때문입니다.

시편 8:4-9 “4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님께서 이렇게까지 생각하여 주시며, 사람의 아들이 무엇이기에 주님께서 이렇게까지 돌보아 주십니까? 5 주님께서는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그에게 존귀하고 영화로운 왕관을 씌워 주셨습니다. 6 주님께서 손수 지으신 만물을 다스리게 하시고, 모든 것을 그의 발아래에 두셨습니다. 7 크고 작은 온갖 집짐승과 들짐승까지도, 8 하늘을 나는 새들과 바다에서 놀고 있는 물고기와 물길 따라 움직이는 모든 것을, 사람이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9 주 우리의 하나님, 주님의 이름이 온 땅에서 어찌 그리 위엄이 넘치는지요?”

창세기에서도 기록되어 있지만 하나님은 사람에게 자신이 창조한 세계를 다스리도록 청지기의 역할을 맡겨주셨습니다.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은 무질서한 상황에 질서를 만들어 가시고, 불가능한 일들을 가능하게 하십니다. 이런 선포를 통해 절망 가운데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로하시고, 다시 힘을 주셔서 일으켜 세워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세상을 만들어 가기를 원하셨습니다.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은 오늘날 우리의 삶에도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실 줄 믿습니다. 무질서한 삶에 질서를 만드시고, 우리의 손을 잡고 한 번도 상상하지 못한 새로운 세상을 창조해 가시리라 믿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도 우리의 역할을 다 해야 합니다. 히브리서 12:4에서 우리가 어떤 다짐으로 새 창조사역에 동참해야 할지 권면합니다. “4 여러분은 죄와 맞서서 싸우지만, 아직 피를 흘리기까지 대항한 일은 없습니다.”

그리고 이어 히브리서 12:12-13에서 이렇게 권면합니다. “12 그러므로 여러분은 힘없이 늘어진 손을 쳐들고 쇠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십시오. 13 그리고 바른 길을 걸어가십시오. 그러면 절름거리는 다리도 뒤틀리지 않고 오히려 낫게 될 것입니다.”

온 힘을 다 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았던 적이 있었나요? 삶의 어려움, ‘기후위기’라는 전 지구적인 문제 앞에서 이제 더 이상 손 놓고 무언가를 기다리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스스로가 힘을 내어 바른 길을 걸어갈 때 회복도 새롭게 창조된 세상을 사는 일도 가능해집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처럼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은 옛 삶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삶,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새롭게 창조된 삶으로 우리를 부르십니다.

창조절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며 사시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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