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생활 칼럼
더러움이 사라집니다사자모 소리
장사모 | 승인 2021.09.08 22:58
▲ 세탁을 통해 옷을 깨끗하게 하듯이 우리의 삶의 세탁도 필요하다. ⓒGetty Image

“오늘은 어찌나 바쁘던지 하루 종일을 밖에 있었어요.”

고속도로를 달려 이른 아침 아이를 등교시키는 것으로 시작된 그의 외부 일정은 저녁 무렵 잠시 집으로 돌아와 쉴 틈이 생겼단다. 한숨 돌리며 쉬려 내게 전화를 걸었단다. 집사님은 날씨 좋은 날에 빨래를 하지 못하고 넘겨버려서 온 종일의 볕을 무척이나 아깝게 여겼다. 그도 나와 같은 전업주부다.

우리 집에는 세탁 건조기가 있다. 그러니, 덕분에 요즘과 같이 비 오는 날이 많은 때에 아이들이 오줌을 싸더라도 걱정하지 않게 되었다. ‘로봇청소기, 식기세척기, 건조기’는 살림에 톡톡히 도움을 준다 하여 젊은 아줌마들 사이에서는 ‘3대 이모님’이라 불리는 정도다. 가을장마로 연일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데, 잠깐 내비친 햇살은 반갑기도 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나도 빨래를 하였다. 바짝 잘 마른 빨래를 걷어 냄새를 맡아본 적이 있는가? 마치 꽃내음이라도 되는 듯이 기분을 좋게 한다.

세탁기와 건조기가 있다고 한들, 세탁이라는 한 단어로 응축된 전 과정은 그리 녹녹한 일이 아니다. 빨랫감은 세탁바구니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집안 곳곳에 보물찾기를 하듯 흩어진 세탁물을 모으고, 뒤집혀진 옷감을 바로잡아, 분리한다. 흰 옷과 색깔 옷의 구분은 기본으로, 소재에 따라 라벨에 표시된 세탁방법들을 꼼꼼히 확인한다. 옷감 손상이나 변형을 방지해야 하는 것들은 세탁망에 넣고, 단추와 지퍼를 잠그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일반적인 세탁기 빨래를 위한 기초 작업이다. 얼룩이나 찌든 빨래의 애벌 손세탁, 운동화 빨래 같이 제외되어 특수한 추가 과정들은 얼마든지 있다.

기계 세탁이더라도 그냥 막 돌리는 것이 아니라, 세탁물에 적절한 방법을 선택하여야 한다. 최신의 기종이어도 아쉬운 것은 시각 장애인의 경우는 사용이 매우 어려울 수밖에 없다. 다이얼을 돌려 다양한 기능의 모드를 선택하게 돼있다. 눈으로 확인하면서도 워낙 많은 기능이 있어서 잘 선택되었나 확인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다이얼을 돌리거나 버튼을 누룰 때에 음성 안내한다던지, 점자라도 있다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을 매번 생각한다.

빨래가 다 되면, 통에 파묻힐 정도로 깊숙이 몸을 숙여 한아름을 세탁기에서 꺼내어 담고, 빨래를 말리러 간다. 세탁기에 빨래가 돌아가는 사이에 나는 여유롭게 쉬었을까? 아니다. 이미 계획한 다른 일거리를 해야만 했다. 빨래를 하나씩 털어 펴서 건조대에 넌다. 빨래가 마르는 동안도 나는 쉬지 않았다. 생략된 과정을 포함한 일들을 하였다. 설거지가 그렇고, 청소가 그렇고 ….

집사님은 고단하였지만 그래도 계획된 바깥일들을 잘 처리하고 돌아와서 후련하단다.

“청소해서 묵은 때 벗겨낸 기분요?” 나의 말이 맞지만 그것은 뭔가 부족하다고 했다. ‘그럼, 베란다 청소한 것처럼이냐’고 재차 물었더니, 조금 비슷해졌다면서 깔깔 웃었다. 그런 후에 집사님이 표현한 청소는 어떤 청소인고 하니, “서랍을 뒤집어 탈탈 털고 정리한 것” 같단다. 청소하는 이는 안다 그것이야말로 진짜 깨끗하게 청소한 것이라는 사실을.

그렇다. 황급히 치우느라 깨끗해 보이도록 처박아 넣고, ‘언젠가 치워야지.’ 하는 그 서랍 말이다. 어떤 때는 한 방에 밀어 넣은 채로 문을 열지 말도록 당부하는 경우도 있으니 어찌나 공감이 되는 찰떡같은 비유이던지. 한바탕을 서로 크게 웃었다.

요사이 집사님은 거의 매일 내게 전화를 한다. 아침 설거지를 끝낸 뒤일 때도 있고, 청소를 시작하기 전의 막간일 때도 있다. 일상의 소소한 주제로 대화를 나눈다. 그런가하면, ‘신앙생활’, 더 와닿게 ‘교회생활’에서 느낀 여러 가지 경험과 생각들도 이야기 하신다.

오늘도 그런 대화가 이어졌다. 또래 여성들끼리 묶인 여자 성도들의 선교모임은 종종 갈등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교회 안에서 대면하여 계속하여 만남을 지속해야 하는 예배나 행사들은 어쩔 수 없었단다. 불편한 감정을 서랍에 밀어 넣듯 적당히 쌓여 묵혀지고, 자주 보는 관계가 뒤틀리지 않도록 서운함이 튀어 나오지 않게 방문은 단단히 잡는다.

거리두기로 인하여 교회를 나오지 않는 내지는, 않아도 되는 날이 많아져서 관계를 단절하였다. 심연으로 들어가니, 단독자로서 하나님 앞에 서는 경험을 오롯하게 할 수 있어서 좋단다. 끊어지면 안 될 것만 같고, 죽을지도 모를 것 같은 공포마저 있었던 것이 자유로울 수 있게 되었단다. 인간관계에서 빚어진 아픔들이 치유되었단다. 어쩌면 우리는 모든 관계에 대하여도 중독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얽히고설킨 관계들의 타래를 풀지 못하여 애태우기보다는 그 자리를 끊어내고 새로이 하여도 가능한 것 아니겠느냐 말이다.

나의 존재에 집중하여 다시금 새로이 되고 보니, 다른 사람들이 보인단다. 너그러이 대할 다름. 그 가운데 여유로이 존재하게 되었단다. 익숙한 모든 것에서 벗어나는 것! 그것이 다름을 이해하고 용납할 곁을 만들게 되었다는 코로나 팬데믹의 역설. ‘진리가 너희를 자유하게 하리라’는 말씀은 진정 실현 가능하게 되었다.

깨끗하게 빨아 말려보자. 뽀드득 씻어내자. 확 뒤집어 말끔히 정리해보자. 바깥일을 하고 돌아오는 남편들은 종종 그런 말을 한다지? “집에서 하루 종일 한 것이 뭐있냐.”고.

빨래하고, 설거지하고, 청소했다. 옷은 다 개어서 서랍에 있고, 그릇은 다 닦아서 그릇장에 있고, 쓰레기는 다 치워서 휴지통에 있다. 더러운 것은 다 버렸다. 이미 딱 정리를 끝내서 눈에 보이지 않아 모를 테니, 이해한다. 이미, 나에게는 모든 것을 새롭게 하는 힘이 있다.

빨래를 발레 하듯 해치우는 그런 우아한 몸짓의 고상한 수고 덕분이다. 일상의 평온함은 그렇게 유지된다. 눈앞에서 사라진 더러움을 찾아서 버리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장사모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장사모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김상옥로 30, 402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 홍인식  |  편집인 : 이정훈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홍인식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21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