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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고정과 허물기의 변증법퀴어성서주석을 이야기 하다 ⑸
유연희(한국퀴어신학아카데미 회장) | 승인 2021.09.13 15:42
지난 4월 무지개신학연구소가 『퀴어성서주석: I. 히브리성서』 (퀴어성서주석 번역위원회 옮김)를 출간했다. 출간 전부터 화제를 낳았고 출간되자마자 많은 이들의 환영을 받았다. 하지만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속된 말로 위험한 책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에 에큐메니안은 『퀴어성서주석』를 각 책별로 간단하게 소개하는 연재를 시작한다. 미래의 독자들에게 어떤 책으로 다가갈 수 있는지를 소개하는 차원이다. - 편집자 주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유연희이고, 연합감리교회 목사 및 한국퀴어신학아카데미 회장이고, 퀴어성서주석의 번역에 참여했습니다. 이 글은 퀴어성서주석 속 엘리자벳 스튜어트(Elizabeth Stuart)의 ‘잠언’ 소개 및 퀴어성서주석에 대한 총평입니다.

잠언 부분을 집필한 스튜어트는 현재 영국 윈체스터대학교의 부총장 권한대행이고, 퀴어신학을 가르칩니다. 여성신학이 등장했을 때 여성 학자들은 남성 학자들이 하는 학문에다가 여성학, 일반 인문학까지 잘해야 했던 것처럼, 퀴어신학자들은 이성애 신학자들이 하는 모든 학문에 퀴어학, 일반 인문학까지 잘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스튜어트가 성서학자가 아닌데 성서학 글까지 잘 쓰는 것을 보면 좀 부럽습니다.

비틀어 잠언 읽기

스튜어트는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의 『젠더 허물기』(Undoing Gender)에서 나온 ‘허물기’라는 퀴어 정치학의 관점으로 잠언을 읽습니다. 스튜어트에 의하면, 잠언은 무언가 근본적으로 고정하려는 시도와 무언가 허물고자 하는 힘이 서로 경쟁하는 공간입니다. 잠언은 포로기 이후의 문헌으로서 저자는 제국 속에서 소수인종으로 살면서 유대 문화와 종교 및 인종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자녀를 가르쳐야 한다고 설파합니다.

그래서 잠언은 근본을 강화하기 위해서, 생명을 주는 여자로 의인화된 지혜(호크마)를 도입합니다. 그런데 스튜어트가 볼 때 이 호크마는 오히려 근본을 허물고 있습니다. 호크마는 여장을 한 지혜로서, 과장된 인물을 연기합니다. 호크마는 주장하기를, 자신이 창조 이전부터 존재했고, 창조 때 주님과 함께 있었고, 아이나 숙련공처럼 하나님과 별개이지만 긴밀하게 연결되어 공존한다고 합니다(잠 8:22-23 참조).

그렇다면 확실하던 신성이 해체됩니다. 하나님이 한분 이상이고, 창조도 둘이 한 것이고, 하나님이 성전이 아니라 거리 모퉁이에서 외칩니다. 신은 더 이상 문화적 지각 변동 속에서 의지할 수 있는 안정적이고 단단한 기반이 아닙니다. 이 불확실성은 신의 부재 문제와 관련됩니다. 바빌로니아 포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삶이 불확실할 때 우리는 묻습니다. 하나님은 어디에 계신가? 신성의 불안정화는 ‘나’의 불안정화를 반영하는 동시에 촉발합니다.

그러면 잠언의 저자가 파멸과 영원한 죽음을 줄 뿐이므로 절대로 피해야 한다(잠 2:16-18; 5:1-23; 7:11-12; 9:13-18 참조)고 제시한 ‘이상한 여자’(이샤 자라)는 어떨까요? 호크마가 뜻밖에 그리 근본적인 고정과 전통적인 옳음을 제시하지 않기에 꼭 따라가야 할 여자가 아닌 것처럼, ‘이상한 여자’도 호크마의 대척점에 있지만은 않습니다. 잠언의 목적은 이 두 여자를 대조하는 것이 목적인데 뜻밖에 둘이 너무 닮았다는 점에 대해서는 클라우디아 캠프(Claudia Camp) 같은 구약성서 학자들이 이미 지적했습니다. 둘 다 시끄럽고, 자신감 넘치며, 공공장소에서 메시지를 선포하고, 자기 집에 와서 만찬을 즐기라고 초대하는 문란한 이방 여신인양 그려집니다.

스튜어트는 ‘이상한 여자’가 호크마와 동일인물이라고 봅니다. ‘이상한 여자’는 젊은 남자를 지옥의 입구로, 무지와 허물기의 상태로 데려가는 것으로 나옵니다. 무지와 허물기는 해체와 더불어 살기로 준비된 이들에게는 생명으로의 입구입니다. 호크마도 모두에게 그러한 상태를 제공합니다. 그녀는 인간 삶의 중심에 신성을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호크마는 신성으로의 신비로운 접근을 나타내고, 그 신비로운 경험 속에서 삶과 죽음, 빛과 어두움, 앎과 무지의 이원론이 해소되고, 인간성과 신성을 잇는 다리는 위험한 간극을 건너는 무섭고 불안정한 다리가 됩니다.

따라서 스튜어트는 신과의 신비한 만남으로서의 지혜를 온전히 경험하는 것은, 오직 호크마와 ‘이상한 여자’를 결합시켜 1인 2역으로 볼 때만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상한 여자’는 항상 지혜의 샘을 교란시키고, 항상 우리 자신을 허물고 해체하게 합니다. 또한 지속적인 사회 변화의 가능성과 새로운 미래를 막는 ‘근본적인 고정’의 압력을 거부하게 합니다. 스튜어트는 변화의 가능성을 가지려면 호크마와 ‘이상한 여자’에게 양다리를 걸칠 필요가 있다고 합니다.

스튜어트의 퀴어 관점은 잠언의 본론인 명제잠언 모음집을 관찰하는 데서 더 잘 드러납니다. 잠언이 가부장제 가족을 배경에 깔고 있는 것을 문제시합니다. 독자가 아버지(또는 스승)의 지혜를 배우는 아들로 설정되는 것으로 시작해서, 어머니, 아내, 딸, 비혼 등에 대해 잠언은 전통적인 가족관을 강조합니다. 따라서 지혜로운 사람의 방식은 가부장적 가족과 연결되고, 지혜는 사회가 유지되고 단속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하는 명제입니다. 스튜어트에 의하면, 퀴어적 관점에서 볼 때 가족을 강조하는 구절들은 국가가 잠재적으로 허물어질 가능성에서 나온 두려움뿐만 아니라 종교적, 국가적 정체성의 시금석 중 하나인 가족도 허물어질 위기에 있다는 공포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해석될 수 있습니다.

스튜어트는 명제 잠언 부분에 생활에 대한 윤리 지침은 있어도 신학이 부재하다고 관찰합니다. 신성은 없고, 인간 화자가 권위 있는 목소리를 냅니다. 제한된 종류의 인간 경험으로 신을 대체함으로써 미래를 압류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퀴어 독자들은 잠언의 훈계를 받는 아들이 되기를 거부하고, 대신 까다로운 학생, 부모를 속썩이는 아들이 되어야 합니다. 퀴어 독자는 본문이 배제하려고 하는 자들, 대안적인 지혜 유형을 따랐던 사람들, 전통적인 가족 밖에 살고 다른 유형의 관계를 구성하는 이들을 애도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인간 윤리의 인질이 되고 그럼으로써 타자이기를 멈추는, 부재하는 신을 애도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퀴어 독자의 과제는, 본문의 억압에서 오는 우울감의 통제가 느슨해질 수 있도록 허물고 허물어지며, 본문과 탈아적 관계를 갖는 것입니다.

앞에서 보셨듯이, 스튜어트의 잠언 해석은 전통적인 주석이 아닙니다. 버틀러의 퀴어이론을 아는 독자들이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해석입니다. 성서학에 다양한 분야의 최근 이론을 적용하는 해석은 더욱 많아지고 있습니다. 독후감이란 일부만 마음대로 갖다 쓰니까 원글에 정의를 행하지 못합니다. 이 독후감이 에큐메니안 독자들께 직접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면 다행이겠습니다.

주석이 왜 이래? 성서주석을 넘어선 성서주석

퀴어성서주석의 저자들은 성서학의 논의와 전통적인 역사비평을 잘 알면서 거기에 페미니즘, 퀴어 이론, 해체, 유토피아 이론, 사회과학, 고고학, 유대 전통 등 많은 방법론, 관점, 자료를 활용합니다. 정보폭발 시대, 학제 간 연구 시대의 연구다운 접근입니다. 사실 성실하고 실력 있는 학자라야 새로운 것을 배우며 성서에 적용할 수 있겠지요.

퀴어성서주석은 학문적 글쓰기의 틀을 깨기도 합니다. 글의 전개 방식이 퀴어스러운 것입니다. 일부 저자들은 사생활에 해당하는 이야기와 학문적 논의를 번갈에 싣기도 합니다. ‘주석인데 이렇게 써도 되나’ 싶으면서도 ‘이렇게 쓰면 어때?’ ‘이렇게 쓸 수도 있지’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퀴어성서주석에는 영미권의 퀴어공동체 내부 이야기가 쏠쏠히 들어 있습니다. 퀴어공동체는 단일하지 않고 그 안에 사람, 논의, 논쟁점, 희망과 갈등, 연대와 분리 등 복잡다단함을 알 수 있었습니다. ‘주석에 이런 소소한 얘기들을 넣어도 되나’ 싶으면서도 ‘사실 이렇게 써야지!’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삶과 동떨어져 있는 양 학문하던 방식이 그간 얼마나 질타를 받았게요? 이 주석서는 더 많이 삶과 맞닿아 있는 학문을 하라는 도전을 합니다.

퀴어성서주석은 이렇게 학제 간 연구, 창의적인 글쓰기 방법, 삶과 닿아 있는 학문이라는 면에서 한국 성서학계에 좋은 자극을 줄 수 있다고 봅니다. 이 책은 하나도 무서운 책이 아닌데 책이 나올까봐 겁내고 협박까지 한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냥 이런저런 책 중 하나일 뿐이고, 학자들은 이보다 더한 얘기도 하며 갑론을박을 하니까요. 민중신학이 한동안 한국과 세계의 신학계에 신바람을 일으켰듯이 퀴어신학도 그런 신학 중 하나입니다. 한국적 퀴어신학이 개발되고 많은 연구가 나와서 세계에서 귀를 기울이면 좋겠습니다.

한국교회도 잠언처럼 한편으로는 진실이라고 굳어진 관념들과 ‘근본적인 고정’을 강조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허물기, 균열, 혼란이 공존하는 공간입니다. 소중한 전통은 간직하고, 불확실한 미래는 무지와 허물기의 상태 속에서 호크마와 ‘이상한 여자’에게 양다리를 걸치며 성큼 나아가는 것이 지혜로울 것입니다.

유연희(한국퀴어신학아카데미 회장)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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