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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시대에 생각의 방향은 어디로자연과 함께 하는 축제(사 55,6-13; 마 6,29-34)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 승인 2021.09.23 15:51
▲ 정의의 실천이 자연과 인간이 함께 살 수 있는 길이다. ⓒGetty Image

한가위는 참으로 아름답고 복된 명절입니다. 풍성한 자연을 따라 덩달아 풍성해지는 사람들입니다. 자연의 힘과 자연의 축복을 만끽하는 때입니다. 한가위만 같아라고 말할 만큼 한가위는 우리에게 인상적인 절기입니다. 사람의 땀과 노력에 정직하게 응답하는 자연이기에 그렇습니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사람 때문에 온갖 고통을 겪으면서도 사람을 아직 저버리지 않고 있는 자연이 고마울 따름입니다. 자연이 아직 사람을 품고 있을 때 자연에 대한 사람의 태도가 달라져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시작은 바로 우리 생활 속에 있습니다. 자연과의 교류 방식인 우리의 소비 방식이 바뀌면 생산 양식도 바뀔 것입니다. 자연을 생각하고 자연의 부담을 줄여주는 소비 방식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사야 본문은 이스라엘의 특정한 상황을 전제하고 있지만, 본문이 그 상황에만 매여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자연과의 불화가 이스라엘의 현재 모습입니다. 자연의 질서는 이를 하나님이 비유로 사용할 만큼 견고해 보이지만, 자연의 모습은 가시나무와 찔레로 대표됩니다. 이런 부조화는 마치 아담에게 내린 벌 때문에 바뀐 자연의 모습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모습입니다.

처음이나 지금이나 자연은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힘을 갖고 있으면서도 언제나 사람 때문에 자기의 모습을 잃고 아파합니다. 그런데도 사람은 그때마다 자연에 미안함을 느끼고 삶의 태도를 바꾸려 하기 보다는 오히려 자연 앞에서 정복자처럼 행세하고 더 오만해지고 자연을 더 무시하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사람들에게 야훼 하나님을 만날 수 있을 때 야훼를 찾고 야훼가 가까이 계실 때 야훼를 부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멀리 계시지 않고, 사람들이 느끼는 것처럼 사람에게 등을 돌리고 계시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느끼며 오히려 하나님을 멀리 하고 하나님에게 등을 돌리고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사람이 그에게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계십니다.

문제는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부르고 하나님에게 돌아오는 것이 도대체 어떻게 하는 것이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의미를 조금의 오해도 할 수 없게 명확한 말로 밝혀 주십니다.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라. 이것이 하나님에게 돌아가는 조건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은 내가 왜 악인이고 불의한 자냐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악인과 불의한 자는 특정한 사람일 수도 있겠지만 하나님의 이 말씀을 듣는 사람들을 전체적으로 가리킵니다. 악인이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길과 다른 길을 가고 하나님과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에게 돌아간다고 하는 것은 자신의 길을 하나님의 길을 향해 정향시키고 자신의 생각을 하나님의 생각을 따라 바꾸는 것입니다. 하나님 중심적인 삶으로의 전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될 때 하나님은 용서하실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용서는 결코 무조건적인 것일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용서하시기 위해 모든 것을 준비하셨습니다. 그의 아들까지도 죽음에 내주실 수 있었습니다. 그의 아들을 믿는다는 것은 자신의 길과 생각을 하나님의 생각과 길의 방향으로 바꾸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길과 생각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요? 일상을 사노라면, 그 속에서 우리의 길과 생각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의식하기는 대단히 어려울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하나를 다 통제한다는 것은 사실상 가능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전체의 방향을 결정하고 전체 속에서 생각하고 길을 가는 것입니다.

강물은 계속 흐르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흐름은 다양합니다. 어떤 경우는 짧지만 마치 역류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흘러가는 방향을 오래 거스르거나 아예 바꾸지는 못합니다. 우리의 생각과 길의 방향이 하나님을 향해 흐르는 강과 같다면, 때로는 멈춘 듯 보이고 때로는 거꾸로 가는 것 같아도 곧 다시 강물의 흐름에 합류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때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하십니다. 그가 뜻하신 일이 반드시 이루어지고 형통하여 우리는 기쁨으로 가고 평화로 인도될 것이며, 산과 언덕들이 노래하고 모든 나무들이 손뼉 칠 것입니다. 자연이 이렇게 하는 것은 저주의 상징이었던 가시나무와 찔레 대신 땅에서 잣나무와 소귀나무가 자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사람은 자연 위의 존재가 아니고 자연과 함께 자연 안에 있는 존재입니다. 이 명백한 사실이 오랫동안 간과되거나 왜곡되어 왔지만, 그것은 성서의 변함없는 진술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저 세상은 저주가 걷힌 세상과 닮지 않았는지요? 사람과 자연이 하나 되고 함께 기뻐하는 세상입니다. 이를 본 성서의 기자는 참 행복한 사람입니다. 이를 듣고 이러한 세상을 향해 길과 생각을 바꾸는 사람이 하나님의 길과 생각과 궤를 같이 하는 사람이고 역시 행복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다른 말로 이와 동일한 말씀을 하십니다. 우리의 생각과 길을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정의를 향하게 하라고 강권하십니다. 이를 방해하는 것이 우리의 염려입니다.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를 염려하는 것은 일반적입니다. 그 문제가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쩌면 당연한 염려인데 하지 말라고 하면 너무하다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염려가 우리를 지배하면, 그 염려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창고를 짓고 창고를 채우기 위해 골몰하게 되고 그 결과는 하나님과 물신을 나란히 하게 되고 최종적으로 물신을 섬기게 됩니다. 나는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일의 염려를 오늘로 댕겨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렇게 할 수 있으려면, 자연을 먹여 살리시는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 하나님이 우리를 먹여 살리시리라고 신뢰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니까 하나님 옆에 물신을 두거나 아예 물신을 따르기도 합니다. 그런데 흥미 있는 것은 내일의 의식주를 염려하는 대신 하나님의 나라와 정의를 구하는 것이 바로 그 염려를 해소하는 길이 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정의의 한 단면을 우리는 이스라엘의 광야생활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때 이스라엘이 먹고 마시고 입는 것을 책임지셨습니다. 40년 동안 그들은 만나를 먹었고 바위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마셨고 옷이 낡지도 않았고 신발이 헤어지지도 않았습니다(신 29,6 참조). 그들은 적어도 이런 염려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신뢰하는데 이르지는 못했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하신 은총의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다면 그의 나라와 정의를 구할 수 있고, 이를 구하면 염려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의 정의가 실현된 그의 나라에서는 사람의 삶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자연은 넉넉함으로 사람의 삶을 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염려와 경쟁과 폭력을 대신해서 사람과 자연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 우리 가운데 뿌리를 내리고, 독점보다는 나눔이 분배의 방식이 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나라와 정의를 구하는 것이 곧 하나님에게로 향하는 것입니다. 악과 불의를 버리고 공평과 정의를 추구하기에 사람들은 하나님과 자연과 화해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위기의 시대에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정의를 구함으로써 위기 극복의 단초를 마련하는 우리가 되기를 빕니다. 우리의 염려와 불안으로 아이들에게서 미래와 세상을 앗아가고 파괴하는 일이 없기를 빕니다. 한가위가 주님의 나라와 그의 정의를 드러내고 자연과 함께 하는 축제의 시간이 되기를 빕니다. 또 이를 통해 한가위의 넉넉함을 미래세대에게 계속해서 물려주는 계기가 마련되기를 빕니다.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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