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말씀의 잔치 Sermonday
Handicap이 있는 사회를 꿈꾸며(출애굽기 20:12)십계명 다시 읽기 ⑹
홍인식 목사 | 승인 2021.09.27 16:19
▲ 십계명 중 제5 계명은 단순한 가부장적 질서의 유지가 아니라 노년의 연약함을 짊어지고 살아야 하는 부모에 대한 보살핌이다. ⓒGetty Image

Sportsmanship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정정당당하게 승부를 가리는 정신을 말합니다. 요즘 와서 이 스포츠맨 정신이 거의 유명무실해진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정정당당하게 경기를 벌여 승자이던 패자이던 그 결과에 깨끗하게 승복하는 모습이 점차 사라지고 있음은 우리가 사는 사회의 미래를 위하여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닙니다. 삶에 있어서 sportsmanship의 회복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면 Sportsmanship의 가장 기본적인 정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여러 운동이 있지만 저는 골프가 sportsmanship의 기본정신을 가장 충실히 적용하고 있는 운동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공평성입니다. sportsmanship의 기본 원리는 바로 공평하게 경기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handicap 제도입니다. 어느 한 쪽이 유리한 조건이나 불리한 조건 혹은 조건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경기는 공평하지 않습니다. 무조건 똑같은 조건에서 경기를 하는 것이 공평한 것이 아닙니다. 조건을 고려하여서 경기를 하는 것이 공평한 것입니다. 골프의 handicap은 골프를 잘 못하는 사람(초보자)과 잘 하는 사람(숙련된 자)이 경기를 할 때 못하는 사람에게 ‘미리 따고 들어가는 점수’를 주는 것입니다.

그의 불리한 조건을 인정하고 그만큼 배려를 아끼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경기를 펼칩니다. 그래서 저는 golf야 말로 공평성에 기본을 둔 sportsmanship을 가장 잘 실천하는 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제가 잘 알지 못하고 있는 운동 중에서 골프보다 이 정신을 실천하는 운동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삶 속에서도 이 같은 handicap의 정신이 제대로 실천되어 질 수 있다면 세상이 얼마나 달라질까 하는 상상을 해 봅니다. handicap이 인정되는 사회를 꿈꾸어 보기도 합니다.

오늘 생각하고자 하는 제5 계명은 “부모를 공경하라”는 명령입니다. 그러면서 이 명령 뒤에는 일종의 보상이 뒤따라 기록되어 있습니다. 10계명 중에는 계명의 명령의 준수여부에 따라서 주어지는 열매에 대한 이야기가 두 번 나옵니다. 첫 번째는 경고성으로서 제2 계명입니다. 우상을 섬기는 사람에 대한 경고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가 오늘의 명령에 대한 보상의 약속입니다.

그러나 제5 계명에 대한 보상의 약속은 좀 더 구체적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요약하면 ‘부모를 공경’ 하는 명령을 잘 지키면 우리 모두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해 주신 이 땅위에서 오래 산다는 것입니다. 신명기에서는(5;16) 복을 받겠다고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부모공경’은 우리에게 행복한 삶을 보장해 준다는 것입니다. ‘부모공경’은 무슨 의미입니까? 부모에 대한 공경은 말고라도 부모와 자식 간의 세대차이로 인하여 세대 간의 갈등(inter-generational conflict)을 겪고 있는 오늘의 사회에서 이 말씀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요?

먼저, 우리는 이 계명이 지금까지 일방적인 측면에서만 다루어져 왔음을 지적해야 합니다. 특히 한국 교회와 같은 유교적인(공자의 가르침)문화에 젖어 있는 환경 속에서 오늘의 명령이 기독교적이고 그리고 당시 이 말씀이 선포되었던 사회적 환경을 무시한 채 주로 공자의 가르침의 측면에서만 이해되어 왔음을 지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계명을 부모에 대한 절대적인 복종과 의무를 강조하는 것으로 해석해 왔습니다.

그래서 이 계명이 어떤 경우에는 부모들의 자녀에 대한 경제적 의무강요를 위해서 사용되기도 하였고 또 자녀 편에서는 경제적으로 부담을 느끼면서도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억지로 시행하는 계명, 자기가 잘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행해야 되는 복을 받기 위한 전제적인 조건처럼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사실상 제5 계명을 유교적 그리고 윤리적인 차원 에서만 해석해 온 결과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구약적인 배경에서 제5 계명을 해석하고 오늘의 상황에 적용시킬 수 있을 것입니까?

먼저, 구약에서의 부모는 자녀의 아버지와 어머니라는 차원을 넘어서서 인생의 마지막 단계를 거치는 사람들, 그리고 현재는 생산능력과 그에 따라 경제 능력을 상실한 계층을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사회가 있기 하기 위하여 자신의 삶을 바쳤고 모든 정성과 힘을 다 쏟은 사람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쓸 힘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제5 계명은 이러한 사람들에 대한 존경(respect)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본 계명이 말하고 있는 것은 맹목적인 복종이(obedience) 아닙니다. 인생의 모든 힘을 쏟아 놓은 사람들에 대한 진정한 마음으로부터 우러러 나오는 존경의 태도입니다.

구약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였지만 오늘의 사회는 세대 간의 갈등이 큰 사회적 문제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제 인생의 말년을 보내는 세대들과 현 사회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세대 그리고 미래의 주인공인 청년 세대들 간의 세대 간 갈등은 심각한 수준에 도달하고 있습니다. 사회학적 연구에 의하면 현대사회에서의 세대 간의 대화는 단절되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현대 사회가 안정을 찾고 올바른 방향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세대 간의 갈등에 대한 해결책들이 강구되어야 할 것입니다. 세대 간의 갈등이 점차 심화 되면 오늘 우리의 사회는 큰 혼란을 겪게 될 것이고 오늘의 말씀처럼 우리들의 장수무강과 행복한 삶의 미래가 위협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오늘의 말씀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제5 계명은 젊은 세대, 생산과 경제 능력을 가지고 있는 힘 있는 세대들의 생산과 경제능력이 없는 노년 세대와 힘없는 세대를 향한 배려를 강력하게 촉구하고 있는 명령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젊은 세대들이 노년 세대들의 희생과 고생에 대한 인정이 앞서야 됩니다.

노년 세대들의 공헌에 대한 존경을 보여야 합니다. 존경 없는 부양은 의미가 없습니다. 그것은 겉치레 일뿐입니다. 그것은 우리들의 부모와 자녀들 양 쪽에게 부담이 되는 일입니다. 노인들의 얼굴에 깊게 패인 주름살에서 묻어 나오는 그들의 삶의 경험과 희생에 대한 인정과 존경이 있어야 합니다. 부모 공경은 오늘 우리 사회를 이끌어 온 모든 노인들에 대한 존경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노년세대에 대한 올바른 태도는 이러한 존경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세대 간의 갈등의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는 실마리를 찾게 될 것입니다.

부모공경의 제5 계명의 준수는 부모세대들에 대한 깊은 존경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부모세대로부터 배우겠다는 자세로부터 우리의 공경은 시작되어 집니다. 부모공경은 단순한 경제적 지원을 넘어섭니다. 존경으로부터 시작되는 공경은 세대 간의 갈등을 넘어서게 만듦으로서 우리 모두의 삶을 길게 하고 행복하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두 번째로 부모공경은 단순한 노년 세대에 대한 공경만은 아닙니다. 부모라는 개념이 대변하는 세대는 노년을 비롯한 이 시대의 힘없고 능력 없는 사람들, 약한 사람들입니다. 요즘의 사회는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이후 있는 자와 없는 자의 갈등이 심화되는 상황입니다.  있는 자와 없는 자의 갈등이 폭발 지경에 와 있습니다. 이러한 있는 자와 없는 자의 갈등이 해결도지 않고서는 우리의 사회는 늘 불안하고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환란 속에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바로 이 땅 위에서의 우리의 장수무강과 행복한 삶이 지장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시점에서 제5 계명은 없는 자와 약한 자에 대한 배려를 할 것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없는 자와 약한 자의 형편을 충분히 고려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결정을 내릴 때도 약한 자의 형편이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우리의 삶이 평안해질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약한 자에게 handicap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handicap을 적용하여 공평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의 신자유주의경제정책은 handicap 제도를 없애자는 것입니다. 모든 관세를 철폐하고 모두가 아무런 조건 없이 무제한 그리고 무한정 경쟁하자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것을 공평하다고 말합니다. 실력 있는 사람이 자기 실력을 무제한적으로 발휘하는 것이 공평한 것이 거기에다 제한을 두면 그것은 공평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말이 맞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믿는 이들에게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법칙에 의하면 그것을 공평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 나라에서의 공평한 것은 약한 자에게 handicap을 주고 경쟁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부모공경의 기본적인 정신입니다.

제5 계명은 믿는 이들의 삶의 원리와 정신을 가르쳐 줍니다. 그것은‘약한 자들에 대한 우선적 배려’ 입니다. 약한 자들에 대한 배려가 있는 여러 가지 사회적 갈등 요소들을 해결해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배려 없이 무제한 적인 경쟁만을 추구하는 사회는 수많은 갈등 요소들로 말미암아 결국 혼란에 빠지고 말 것입니다.

우리의 행동과 말은 주위에 있는 약한 자들에 대한 배려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나의 기득권을 포기함으로써 시작됩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어 인간세계로 오신 것(성육신의 사건)은 바로 이러한 약한 자들에 대한 배려에서 입니다. 그래야만 약한 인간들이 하나님의 뜻을 이해 할 수 있을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주님은 “나를 믿는 이 작은 사람들 가운데서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사람은 차라리 자기 목에 연자 맷돌을 달고 바다 깊숙이 잠기는 편이 낫다”(마태 18:6)이라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작은 자들에 대한 배려 없는 세상은 지옥과 같은 세상입니다. 작은 자들에 대한 배려가 없는 세상은 불행한 사회입니다. 작은 자들에 대한 배려가 없이 우리의 삶의 장수와 행복은 전혀 보장이 되지 않습니다.

제5 계명은 우리로 다시 한 번 우리의 노년세대에 대하여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갖도록 해 줍니다. 오늘의 우리를 있게 한 노년세대의 수고에 대한 존경과 감사가 없는 사회, 노년세대의 깊은 인생의 경험에 대한 인정과 존중이 없는 사회는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그러한 사회가 오래 지속될 수 없습니다. 제5 계명은 우리로 힘없고 약한 사람들에 대한 우선적인 배려를 하도록 삶을 교정시켜 줍니다. 힘없고 약한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없는 사회는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그러한 사회는 오래 지속될 수 없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면 우리의 삶이 길어질 뿐만 아니라 행복한 삶이 보장됩니다. 언젠가는 우리도 늙을 것이고 부모가 될 것입니다. 오늘 나는 강한 자로 살아가지만 언젠가는 나도 약한 자로 살아갈 날이 있을 것입니다. 서로 부모를 공경하면 우리 모두가 영원히 행복하게 오래 살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됩니다. handicap의 배려가 있는 세상에 대한 꿈은 믿는 모든 사람들의 공통된 꿈이어야 할 것입니다. handicap이 있는 세상의 꿈은 이루어 질 것입니다.

홍인식 목사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홍인식 목사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김상옥로 30, 402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 홍인식  |  편집인 : 이정훈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홍인식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22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