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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가 되는 삶“나를 산 제물로 드리는 영적 예배”(로마서 12:1-5)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 승인 2021.10.04 21:47
▲ 그리스도를 대접하는 아이 ⓒGetty Image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나요? 평안은 새롭게 얻어야 하거나, 나에게 없어서 다른 곳에서 가져오는 것이 아닙니다. 평안은 언제나 우리 안에 있습니다. 평안이 내 안에 있음을 잊을 수는 있어도 결코 없어지지는 않습니다. 그렇기에 다시 선택하고 누리면 됩니다.

평안을 누리지 못하고 계시다면 그 이유는 나의 마음 밖에서 벌어지고 있는, 눈에 보이는 상황 때문이 아닙니다. 스스로 평안을 누리지 않기로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아니? 내가 평안하지 않기로 선택했기 때문에 평안을 누리지 못하는 거라고?’라고 반문하실 수 있습니다. 저의 대답은 언제나 “네”입니다. 밖을 보지 말고 내면, 마음의 자리로 돌아와 다시 선택해야 합니다. 내 안에 주어진 하나님의 선물인 평안을 선택하고 누리실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지난주 사랑과 용서, 평화를 위한 기도. 이런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기도라면 그 기도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사랑, 용서, 평화를 위한 기도 후에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해 ‘이 일로 나의 기도가 응답되어졌다.’는 믿음으로 의심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전진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신뢰, 믿음의 태도를 유지하여 기도에 응답 받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또한 소망합니다.

오늘은 창립38주년 기념 감사주일입니다. 교회가 창립되고 38년이 흘렀습니다. 저도 어느새 세 번째 드리게 된 창립기념 감사예배입니다. 교회 공동체가 지금까지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는 내적으로 또는 외적으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늘 평화로웠기 때문이 아닙니다. 수많은 어려움과 위기의 순간에 인간의 고집과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엎드리는 성도와 목회자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떠나지 않고 인내하며 자리를 지킨 성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교회 역사가 짧으냐, 오래되었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성도가 많으냐 적으냐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교회가 존재하는 동안 믿음의 공동체가 하나 되어, 하나님의 사랑을 교회 안과 밖에서 살아냈느냐가 중요합니다.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 교회의 존재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 초도제일 믿음의 공동체는 매해 성장하고 또 성숙해지고 있습니다.

제가 온 첫 해와 세 번째 해인 올 해를 비교하더라도, 더 많은 곳으로 사랑과 섬김을 확장했음을 볼 수 있습니다. 화재를 입은 곳, 수해를 입은 곳, 외국인 노동자, 해외 선교지, 국내 선교지 뿐만 아니라 이제는 새터민, 탈북한 분들에게 까지 섬김의 확장이 이루어지려 하고 있습니다.

코로나라는 어려운 시기 속에서 어느 한 분 교회를 떠나지도 않으셨습니다. “‘가까운 교회, 지역 교회’라서 그런 거 아닐까요?”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은 성도님 각자의 믿음의 결단 때문입니다.

저는 이 모든 일들에 하나님과 성도님들께 감사를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 초도제일 믿음의 공동체가 참으로 자랑스럽습니다. 하지만 지금에 만족하며 안주해서는 안 됩니다. 개인과 공동체는 계속해서 하나님께로 자라야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로마로 보낸 바울의 편지를 통해 한 발자국, 한 뼘 더 하나님께로 자라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본문을 보시겠습니다. “1  형제자매 여러분,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힘입어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이 드릴 합당한 예배입니다. 2 여러분은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도록 하십시오.”

자비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어서 바울의 말투가 부드럽게 느껴질 수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삶의 일부분이 아니라 전체를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는, 이쪽과 저쪽 모두에 발을 걸치지 말고 이제 한쪽에 서라는 결단을 요구하는 날 선 권면입니다. “계속 그렇게 살 겁니까?, 이제 하나만 하십시오!”와 같은 뉘앙스 입니다.

바울은 다음의 말씀을 통해 좀 더 구체적으로 접근합니다. “3 나는 내가 받은 은혜를 힘입어서, 여러분 각 사람에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스스로 마땅히 생각해야 하는 것 이상으로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분수에 맞게 생각하십시오. 4 한 몸에 많은 지체가 있으나, 그 지체들이 다 같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5 이와 같이, 우리도 여럿이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루고 있으며, 각 사람은 서로 지체입니다.”

분수에 맞게 생각하라는 말씀은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더 ‘충실’하라는 의미입니다. 자신의 일에 집중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일에 더 관심을 두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8절 말씀에 “권면하는 사람은 권면하는 일에 힘쓰십시오.”라고 기록된 것처럼 권면하는 사람은 따로 있습니다. 16절에는 “서로 한 마음이 되고, 교만한 마음을 품지 말라.”라고도 권면했습니다.

충고하고 싶고, 뭔가 말하고 싶더라도 그 순간 입을 닫고 먼저 하나님께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할 수 있다면 성도님들로 인해 우리 공동체뿐만 아니라 속한 어떤 공동체에서라도 그곳을 건강하게 세워가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습니다.

몸의 각 부분이 각자 다른 역할을 가지고 있듯이 공동체도 각자에게 맡겨진 역할이 다 다릅니다. 그렇기에 서로 존중하면서 조화롭게 한 몸을 이루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처럼 교회 공동체가 조화로운 한 몸을 이루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6절 이하의 말씀을 통해 권면합니다.

바울은 ‘존중’과 ‘사랑’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저는 존중과 사랑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방법이 용서와 이해에 있다고 말씀드리려 합니다. 당신을 용서했다고, 당신을 이해한다고 말하곤 합니다. 그런데 정말 상대방을 이해하고 용서했을까요? 용서했다고, 이해했다고 말 한 사람들이 여러 자리들에 가서 이미 용서하고, 이해했다고 한 일들을 계속해서 거론하는 모습을 볼 때가 있습니다. 계속해서 거론하는 사람은 진정으로 용서하거나 이해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 일을 다시 떠올리지 않는 사람, 거론하지 않는 사람이 진정으로 용서하고, 이해한 사람입니다. 저를 포함해서 우리 공동체가 더 성숙해지기 위해 지금 필요한 것은 진심으로 상대방을 용서하고 이해할 수 있는 마음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8:21-22에서 “그 때에 베드로가 예수께 다가와서 말하였다. "주님, 내 형제가 나에게 자꾸 죄를 지으면, 내가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하여야 합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일곱 번만이 아니라, 일흔 번을 일곱 번이라도 하여야 한다.”고도 말씀하셨습니다.

용서와 관련해서 좋은 글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요새 주식투자에 많이 열중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내가 20년 전에 미국 아마존 회사 주식에다 투자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하는 생각을 합니다. 아마존 주가가 230배 뛰었어요. 20년이 흐른 2020년에. 그런데 24년 전에 비해서는 2,400배 뛰었어요. 그래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냐면, ‘용서는 일찍 알아차리고 어마어마하게 뛸 곳에 투자하는 것이다.’라는 거에요.

내가 용서를 안 하고 24년이 지나면 똑같은 거에요. 똑같은 원망의 자리에 있는 거에요. 원망은 내 존재의 빛과 기쁨을 꾸준히 갉아먹어요. 용서, 그것이 자리 잡은 자리에서 생기는 고마움은 나의 빛과 기쁨을 꾸준히 쌓아가요. 20년 후의 차이는 명백해요. 우리가 용서에 영리하게 투자할 때, 사람들은 우리에게 끌려와요. 왜? 우리 안에 앙심이 없다는 것을 사람들은 능동적으로 느끼기 때문이에요. 아니 능동적이 아니라 본능적으로 느껴요. 동물도 느끼고 특히 아이도 느껴요. 알아요.

사람들은 우리 안에 어떤 꼬인 것이 있다는 것, ‘아니다’라는 것을 사람들은 다 알아요. 그래서 그것이 없는 사람들이 드물기 때문에 저절로 끌려와요. 결국 이 투자는 나의 미래의 투자만이 아니에요. 왜냐하면 나의 주변 사람들이 다 느끼게 돼요.

우리가 공격을 느꼈을 때, 즉각 용서하는 훈련을 하자. 즉각 용서함으로써 근원의 중심에 서 있고, 근원의 중심에서 그 공격을 제일 큰 사랑의 힘으로 다룰 수 있는 위치에 선다. 공격? 즉각, 용서!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힘들 거 같아요.’ 그 사람을 위하는 것이라면 힘들어요. 그런데 이게 어떤 투자인지를 안다면, 내 미래에 20년 후에 또는 10년 후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을 안다면, 왜 즉각 용서를 못 하겠어요? 나중에 10년, 20년 후에 왜 그때 투자하지 않았을까? 생각하지 말고 지금 알아차리고 지금 하라는 거에요.

그 변화는 확실해요. 이 투자, 안 비싸요. 안 비싸요. 뭐 백만 원, 천만 원, 1억도 필요 없어요. 비싸지 않아요. 그런데 그 차이는 아마존에 24년 투자한 것처럼 우리의 미래는 변해요. 24년 전 아마존 주식은 쌌어요. 어마어마하게 쌌어요.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이에요.”

- <삶의 예술학교 유진님의 서비스 중>

저와 성도님들 안에 누군가에게 꼬인 것이 있다면 용서해야 합니다. 용서한 척 하지 말고, 이해한 척 하지 말고, 진정으로 용서하고 이해해야 합니다. 섬기는 척, 사랑하는 척 하지 말고, 진정으로 섬기고 사랑해야 합니다. 이런 용서와 이해, 사랑이라는 투자는 저와 성도님들에게 생각지도 못 한 기쁨과 풍성한 은혜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이 투자가 우리 공동체를 더 조화롭고, 하나 되도록 이끌어 하나님의 선하심과 기뻐하심과 완전하신 뜻을 드러내도록 하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지난 번 영동 CBS에서 연락 온 것과 관련해서 기도요청을 성도님들께 드렸습니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는데 받으니 자신을 “영동 CBS의 OOO입니다.”라고 소개하시면서 두 가지를 제안하고 싶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한 가지는 자신들의 프로그램을 개편할 예정인데 프로그램에 함께 참여하는 부분을 상의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고 다른 한 가지는 찬양콘서트에 저희 가정이 참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공현진 감리교회 목사님이 두 번째 제안이었던 찬양콘서트에 저를 추천 했다고 말씀하시더라구요. 이 추천으로 피디님이 제 이름을 인터넷에 검색하게 되었는데, 마침 인터뷰 동영상을 보게 되었고, 동영상을 보면서 프로그램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되겠다고 마음먹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공현진 감리교회 목사님을 모르거든요. 이 때 제 아내가 저희 집 정수기 서비스 오시는 기사님이 공현진 감리교회 성도님이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이 기사님은 저희를 ‘좋으신 분들’로 아주 인상 깊게 기억한다며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아마도 이 기사님이 저희가 목사 가정인 것을 알고 공현진 감리교회 목사님에게 이야기했고 좋게 들으신 목사님이 추천하지 않았을까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목사라는 것을 온 동네가 알기 때문에도 그렇지만 저희 집으로 누가 오시던지 좋은 기억을 가지고 돌아가실 수 있게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구라도 주문을 하면 멀리서 오시기 때문에 식사비라도 챙겨드리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작은 사랑의 실천, 용서, 이해의 마음을 실천한다면 이 모든 일들이 우리가 알 수 없는 방식으로 돌아오게 되는 줄 믿습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무언가를 바라며 사랑을 실천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작은 사랑의 실천, 용서, 이해, 섬김 이 중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넘기시지 않는 줄 믿습니다. 

영동 CBS와 관련된 일이 어떻게 진행이 되건 저는 하나님께서 모든 일들을 통해 평화와 사랑을 전하고 실천하시는 일에 저와 우리 초도제일 믿음의 공동체를 사용하시리라 믿습니다. ‘이것으로 기도가 응답되었어!’라고 고백 할 것입니다.

우리 자신을 산 제물로 하나님께 드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산 제물로 하나님께 드린다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드릴 만 한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마음에서 거짓된 것, 악한 것, 욕망, 용서하지 못한 일 등을 내려놓고 비워진 그 자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채우며 하나님 앞에 나오는 사람이 산 제물이 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매일 공동체 안과 밖에서 가정에서, 일터에서 사랑을 실천하고 용서를 실천하고, 평화를 이루는 하나님이 기뻐 받으실 거룩한 산 제물의 삶이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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