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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오징어 게임 하러 갔습니다!(창 8:13-22; 골 3:12-17; 눅 17:11-19)창조절 여섯째주일(10월10일)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 승인 2021.10.08 16:00

1. 코로나바이러스와 기후 위기

현재 전 세계를 뒤흔든 코로나바이러스가 작년에 이어 올해도 그 위세를 떨치고 있습니다. 감염자 수가 줄어들지 않고 있는데, 그 이유는 거리두기 피로감도 있지만, 백신 접종으로 인한 사망률 저하 효과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우리는 코로나와 함께 살아가는 세상, 곧 위드-코로나 세상을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늘 조심하며 안전에 유의해야 할 것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코로나바이러스 감염병은 인간의 탐욕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아름다운 세상을 우리 인간이 잘 보전하지 못한 대가입니다. 생태계를 파괴하고, 동물들이 사는 서식지를 침범하며 그들이 사는 곳을 없애버리고 집을 짓고 건물을 세우거나, 육식을 위한 농장을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 인수공통감염병(人獸共通感染病, Common infectious disease, 동물과 사람 사이에 상호 전파되는 병원체에 의하여 발생하는 전염병)이라고 동물들 몸속에 있는 코로나바이러스가 우리 인간을 숙주로 삼게 되었고, 결국 중국을 시작으로 전 세계로 이 바이러스가 변이를 계속하며 뻗어나간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심히 좋았던 아름다운 창조 세계를 무너뜨린 결과는 또 있습니다. 바로 기후 위기입니다. 이번 주가 10월 초순인데, 8월 말과 같은 늦더위였습니다. 10월 기온으로는 최고라고 합니다. 특히 제주도에는 열대야 현상까지 있었다고 하니, 날씨가 참 이상합니다. 계절이 혼란스럽습니다. 이렇게 생태계 파괴와 기후 위기의 결과는 참혹합니다.

오늘 세 본문 말씀은 이렇게 세상을 아름답게 창조하신 하나님의 천지창조 의미를 깨닫지 못한 이들, 또한 질병과 고통에서 구원해주신 하나님의 보살핌과 구원에 대한 감사가 없는 이들에 대한 말씀입니다. 복음서 말씀이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으로 병 고침을 받았으나, 감사를 잃어버리고 예수님께 돌아오지 않은 이들에 대한 말씀입니다.

따라서 바울 사도는 참된 신앙인으로 살아가려는 이들에게 필요한 영적 덕목을 제시합니다. 또한 새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덕목인 감사에 관해 중요하게 덧붙입니다. 그리고 구약의 말씀은 그 감사의 시작과 끝은 바로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임을, 홍수 이후 노아를 통해서 잘 보여줍니다. 먼저 복음서 말씀부터 볼까요?

2.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한 마을에 들어가시니, 나병환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소리를 높여 이르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보시고 이르시되,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눅 17:11-14)

간단한 말씀입니다. 나병환자 열 명이 예수님께 자신들의 나병을 고쳐달라고 요청하여 깨끗함을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 이후의 말씀이 중요합니다.

“그중의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의 발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눅 17:15-17)

▲ 열 명의 나병환자

사마리아 사람만 예수님께 돌아와 감사를 드렸죠? 예수님께서 그 사마리아 사람에게 나머지 아홉은 어디 있느냐고 묻습니다. 아마도 이들은 사마리아 사람이 아닌 것 같습니다. 유대인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의도적으로, 돌아와 감사를 드린 사람을 사마리아 사람이라고 강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사마리아 사람은 유대인들이 보기에 혼혈 민족이기에 이방인이라 취급합니다. 이제 병이 다 나았으니 사마리아 사람을 상종하지 않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이제 볼일 끝났으니 집으로 돌아간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오직 이 사마리아 사람만이 자신의 병 고침에 관해 예수님께 돌아와 감사를 드렸습니다. 이 말씀을 요즘 식으로 바꾸어 이야기하면, 안타깝지만, 예수님께 돌아와 감사를 드린 사람은 교회 밖, 곧 세상 사람들이고, 예수님께 돌아오지 않은 사람은 기독교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사마리아인에게 구원을 선포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눅 17:18-19)

2. <오징어 게임>

▲ <오징어 게임> 포스터

최근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지구촌의 화제가 되었습니다. 요즘 어디를 가나 <오징어 게임>이야기입니다. 국내 드라마 최초로 전 세계 넷플릭스 인기 순위 1위를 차지했기 때문입니다. <오징어 게임> 때문에 옛날 추억이 담긴 놀이와 문화가 유행하고 있습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설탕 달고나 모양 떼기’, ‘줄다리기’, ‘구슬치기’, ‘징검다리’, ‘오징어 게임’ 등. 추억이 새롭습니다. 특히 이 드라마 한 편 때문에 할리우드에 위협이 되고 있다는 분석도 있는데, 그만큼 한류 콘텐츠의 힘이 무섭습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한국 영화 및 TV 드라마 제작사 관련 주식이 향후 2~3년 동안 더 오를 것이라는 예측도 있습니다.(주식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오징어 게임에 나오는 6가지 게임

드라마의 줄거리는 간단합니다. 456억 원의 상금이 걸린 의문의 서바이벌에 참가한 사람들이 최후의 승자가 되기 위해 목숨을 걸고 극한의 게임에 도전하는 이야기입니다.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지만,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이 드라마에 나오는 기독교인의 모습을 빠뜨릴 수 없을 것입니다.

드라마에는 3명의 기독교인이 등장합니다. 모두 부정적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저는 이들이 오늘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께 돌아와 감사를 드리지 않은 나머지 아홉 명과 같다고 생각해봅니다. 먼저 서바이벌 게임에 참가한 244번입니다. 그는 목숨을 건 ‘징검다리 건너기 게임’에서 다른 사람을 밀어 떨어뜨린 뒤, 자신이 살았다고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리는 인물입니다. 다른 참가자들은 살았다는 안도감과 함께 다른 사람들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는데, 244번은 자신의 기도에 관해 이렇게 정당성을 부여합니다.

“우린 그들의 희생과 피로 또 하루를 살아남았다. 죄 많은 우리 모두를 대신해 내가 그들의 희생과 주님의 선택에 감사하며 기도를 올리는 것이다.”

▲ 244번 기독교인

‘값싼 회개’와 ‘싸구려 은총 신앙’을 정확하게 보여주는 인물입니다. 이것은 박제화된 기독교 회개 교리의 잔인한 민낯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통해 값없이 주신 은혜의 구원이 이렇게 희화화(戱畵化, 어떤 사물이나 사람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함)된 것입니다. 따라서 타인의 죽음과 고통을 자신의 감사로 여길 수밖에 없는 괴상한 기독교인이 탄생한 것입니다. 현재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며 사회적 약자 차별을 공식 선언한 어느 한국 개신교단, 여성 안수를 총회 석상에서 편협한 아집으로 공식적으로 반대한 교단이 바로 이러한 비정상적인 기독교인을 양성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244번은 종교적 이기심으로 똘똘 뭉친 인물입니다. 코로나 상황 속 한국 개신교인들의 모습이 이렇게 영화에 부정적으로 투영되어 있는 것입니다. 바로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는, 오늘 복음서 말씀에 나오는 그 아홉 중 한 명입니다.

▲ 아버지가 목사인 240번 지영

두 번째 아홉 중 하나인 인물은 240번 참가자인 지영이의 아버지입니다. 그는 목사입니다. 지영은 아빠에 관해 이렇게 말합니다. “직업으로 목사를 선택하고서 위선적인 삶을 살아가는 유형이다. 이런 부류라면 성령이 함께하지 않는, 그냥 나쁜 인간이다.” 지영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사연을 이야기합니다. ‘아버지는 엄마를 때리고, 또한 자신을 성폭행한 잔인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 일이 있고 난 후에는 매번 회개 기도를 하는 가식적인 사람이다.’ 그러던 어느 날 지영이 아버지는 그의 아내를 칼로 찔러 죽입니다. 참을 수 없었던 지영은 아버지를 칼로 찔러 죽였다고 말합니다.

자신이 믿고 의지해야 할 대상으로부터 배신당한 지영은 이렇게 아버지를 죽인 살인범이 되었으며 이제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무신론자가 된 것입니다. 결국 지영이 아버지인 이 목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자신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 하게 하는(마 23:13)” 서기관과 바리새인과 똑같은 인물입니다. 아니, 천국 문 앞까지도 가지 못하겠죠?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불타는 지옥 불일 것입니다.

마지막 인물은 드라마 끝에 등장하는 길거리 전도자입니다. 그는 오징어 게임 참가자는 아닙니다. 주인공 456번이 마침내 오징어 게임의 최후 승자가 된 이후, 게임 설계자들에 의해 눈이 가려지고 양손이 뒤로 묶인 채, 비 오는 거리에 버려졌을 때 등장합니다. 다른 행인들은 456번을 무시하고 지나가는데, 전도자는 다가와 주인공의 안대를 벗겨줍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모습일까요? 아닙니다. 전도자는 섬뜩한 모습으로 주인공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 믿으세요.” 이 장면이 굉장히 기괴하게 연출되어 있어서 혐오감을 줍니다. 안타깝지만 오늘 개신교의 모습이 이렇게 영화에 투영되어 있는 것입니다.

▲ “예수천당, 불신지옥”을 외치는 전도인

사실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은 “예수천당, 불신지옥!”이라는 말이 아니죠? 이 장면에서 만약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했을까요? 말없이 주인공에게 다가가 일으켜 주지 않았을까요? 이렇게 드라마는 우리 사회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서 ‘사회적 관계’를 상실한 기독교인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오늘 우리 사회에서 기독교인들은 ‘우물 안 개구리’입니다. ‘그들만의 리그’에서, ‘그들만의 방언’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이들은 세상과 소통하지 않고, 자신들만의 도그마에 빠져 있는 이상한 사람들입니다.

4. 무엇을 하든지,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 좋은 사람이 되기보다, 먼저 참된 인간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참된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사도 바울은 오늘 서신서 말씀에서 골로새 교회 교인들에게 참된 그리스도인, 곧 새 사람이 갖추어야 할 영적 덕목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서신서 말씀을 볼까요?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골 3:12-14)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신앙인의 덕목으로 이야기합니다. 또한 온전하게 매는 띠인 사랑을 더 하라고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평강이 있어야 합니다. 감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골 3:15-17)

이렇게 예수님을 힘입어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참된 신앙인, 곧 새사람의 시작과 끝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구약의 말씀은 이렇게 감사를 드린 사람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바로 노아입니다. 참된 신앙인의 삶의 모습입니다. 구약 말씀으로 넘어가 볼까요?

5.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받으시고

“육백일 년 첫째 달, 곧 그달 초하룻날에 땅 위에서 물이 걷힌지라. 노아가 방주 뚜껑을 제치고 본즉 지면에서 물이 걷혔더니, 둘째 달 스무이렛날에 땅이 말랐더라. 하나님이 노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는 네 아내와 네 아들들과 네 며느리들과 함께 방주에서 나오고 너와 함께 한 모든 혈육 있는 생물 곧 새와 가축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 이끌어내라. 이것들이 땅에서 생육하고 땅에서 번성하리라 하시매”(창 8:13-17)

▲ 동물들에게 생육하라 번성하라 명하신 하나님

홍수 사건은 잘 아시죠? 40일 동안 비가 내려 온 땅의 모든 것이 다 물에 잠깁니다. 그러나 당대에 완전한 자요, 의인이었던 노아와 그의 가족은 구원을 받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땅 위에 물이 걷힌 이후의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방주에서 나와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말씀하시죠? 따라서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합니다.

“노아가 그 아들들과 그의 아내와 그 며느리들과 함께 나왔고 땅 위의 동물 곧 모든 짐승과 모든 기는 것과 모든 새도 그 종류대로 방주에서 나왔더라. 노아가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과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제물을 취하여 번제로 제단에 드렸더니”(창 8:18-20)

▲ 미켈란젤로 <노아의 번제>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 천정화

노아가 방주에서 나오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자기와 가족을 위한 그 어떤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제사 가운데, 가장 드리기 힘든 번제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이것은 노아가 그만큼 하나님을 사랑했다는 뜻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번제란 짐승의 안과 밖을 하나도 빼지 않고 모두 각을 뜨고 씻어 조금도 남김없이 온전히 불태워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입니다(레 1:3-9). 이러한 번제의 의미는 자기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린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헌신이자, 하나님 앞에서 철저히 자기 자신을 부인하는 제사입니다. 사실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바로 이러한 번제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받으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다시 멸하지 아니하리니,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창 8:21-22)

조금 놀라운 말씀입니다. 축복의 말씀인 것 같은데, 저주의 말씀으로 들립니다. 아니, 저주의 말씀이지만 축복의 말씀인가요? 아무튼 모호한 말씀입니다. 먼저 축복의 말씀으로 볼 수 있는 것은 번제물의 향기를 받으신 하나님께서 다시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중요하죠? 사람들에게 복을 주신다는 말씀이 아니라, 사람의 죄로 말미암아 땅을 심판하지 않겠다는 말씀입니다.

앞서 창세기 8장 17절 말씀에도 비가 그친 후 하나님께서 방주 안에 있는 모든 혈육 있는 생물, 곧 새와 가축과 땅을 기는 모든 것들을 방주 밖으로 내보내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겠다고 말씀하셨죠? 인간은 배제되어 있습니다. 창세기 1장 28절에 주신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이 명령을 이제는 인간이 아닌 다른 피조물에게 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이어지는 말씀이 이제는 이해가 됩니다.

사람은 어려서부터 그 마음의 계획이 악하다고 말씀하시죠? 성악설(性惡說)의 근거로도 볼 수 있는 말씀인데, 이렇게 우리가 악한 사람이기에, 하나님께서는 “땅이 있는 한, 뿌리는 때와 거두는 때, 추위와 더위, 여름과 겨울, 밤과 낮이 쉬지 않고 오(창 8:22, 공동번역)”는 세월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어 성경은 ‘땅이 있는 한’이라는 말씀을 ‘땅이 참고 인내하는 동안(As long as the earth endures)’이라고 번역했는데, 매우 중요한 말씀입니다. 만약 땅이 참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지금 코로나바이러스와 기후 위기로 경험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 마음의 근원은 이렇게 악합니다. 하나님도 이것을 아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사랑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어 십자가에 희생시키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권세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우리의 악함 때문에 하나님을 멀리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께 나와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보아야 합니다. 십자가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렇게 우리는 예수님께 돌아와 감사하며 참된 회개를 통해 하나님께서 주신 창조 세계를 잘 보존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또 어디로 가십니까?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세상의 욕망을 따라 오징어 게임을 하러 가시나요? 그러지 마시고, 하나님께 나아오십시오.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진정 감사의 제사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감사의 제사를 드림으로 주님의 참된 제자, 새사람이 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hak-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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