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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년 만에 벗은 누명, ‘빨갱이 교사’NCCK, 9월의 주목하는 시선 2021
NCCK언론위원회 | 승인 2021.10.08 16:06
▲ 지난달 2일 오후 노태우 정권 당시 수업시간에 6.25 북침설을 교육했다는 이유로 교직을 잃고 수감생활까지 했던 강성호(가운데) 교사가 32년만의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고 청주지방법원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NCCK(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 이홍정) 언론위원회가 2021년 9월의 시선으로 <32년 만에 벗은 누명, ‘빨갱이 교사’>를 선정하여 발표했다. 32년 전인 1989년 5월, 전 언론이 대대적으로 보도했던 충북 제천지역 제원고등학교 강성호 교사(59. 현 청주 상당고교 교사)의 ‘6.25 북침설 수업’사건에 대한 재심 무죄 판결이 나왔다. 이 사건은 1989년 5월 28일 전교조 결성을 앞두고 이를 분쇄하기 위해 국가안전기획부(국정원의 전신, 안기부)가 주도한 치밀한 공안 조작사건 가운데 하나였다. 강 교사에 대한 용공조작 사건은 국가권력이 교육 현장에서 스승과 제자 사이에 지켜야 할 금도까지 짓밟으며 무자비하게 한 개인을 파멸시킨 잔혹한 국가폭력의 상징이다. 32년 만에 재심 법정에서 밝혀진 이 사건의 진실은 전교조로서도 오랜 기간 들씌워진, 북침설 가르치는 용공 단체라는 누명을 공식적으로 벗게 되었다는 역사적 의미가 있기에 선정했다.

지난 9월 2일 오후 2시, 청주지방법원에서는 권위주의 정권 시절 행해진 한 야만적 국가폭력 사건의 진실을 가리는 판결이 나왔다. 32년 전인 1989년 5월, 전 언론이 대대적으로 보도했던 충북 제천지역 제원고등학교 강성호 교사(59. 현 청주 상당고교 교사)의‘6.25 북침설 수업’사건에 대한 재심 무죄 판결이었다. 당시 28세 초년 교사였던 강성호 교사는 수업 도중 교육당국이 불러들인 경찰에 끌려가 국가보안법상‘반국가단체 고무찬양 혐의’로 구속됐다. 강교사가 받은 혐의는 수업 시간에 제자들에게 6.25전쟁은 북침’이라고 가르치고, 평양 시가지와 금강산, 백두산 등 북한 명승지 사진을 보여주는 방법으로 반국가단체인 북한을 찬양 미화했다는 내용이었다.

강 교사는 수사과정에서“6.25전쟁 북침설을 가르친 적이 없기에 천만부당한 누명이다”라고 소명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안기부 검·경 등 공안기관과 교육부 등 당시 노태우 정권 핵심부에서는 이 사건을 전교조 창립 저지를 위한 용공조작에 안성맞춤인 사건으로 기획하고 확대 재생산했기 때문이다. 강교사는 1989년 5월24일 수업하던 학교에서 끌려 나간 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돼 8개월 실형을 살다가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권위주의 정권 시절 법원마저도 이 사건의 진실에 제대로 접근하지 않았다. 함께 수업을 들은 600여명의 제자들이“강성호 선생님은 6.25 북침설을 가르친 적이 없다”는 내용의 탄원서를 냈지만 법원은 이를 배척했다. 대신 공안기관과 한통속이 된 교육 당국에서 조작을 통해 앞세운 제자 6명이 경찰에서 한 진술만을 토대로 유죄판결을 내렸다.

이 용공조작 사건의 여파로 노점상을 하며 큰아들 강성호를 교사로 길러낸 아버지는 충격을 받고 쓰러졌다. 강교사의 동생은 형의 구속에 신병을 비관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등 순식간에 가족이 풍비박산났다. 이후 그는 30여 년 동안‘빨갱이 교사’라는 주홍글씨를 단 채 살아야 했다.

강 교사는 진실을 밝히기 위해 2019년 재심을 신청했다. 재심을 맡은 청주지법은 2년여 동안 객관적인 자료와 증언들을 조사한 뒤 9월 2일 강 교사의 이른바 ‘6.25 북침설 교육’에 믿을만한 근거가 없다고 판시했다. 이에 따라 권위주의 정권 당시 법원이 그를 처벌한 국가보안법위반사건에 대해 32년 만에 ‘무죄’를 선고했다.

강성호 교사의 재심 무죄는 오랜 세월 국가 폭력의 고통 속에서 진실을 밝히기 위해 악전고투해온 한 교사의 숭고한 인간 승리라 할만하다. 게다가 이 사건은 이후 교육 현장과 역사에 미친 영향과 비중을 생각하면 개인적인 억울함을 신원했다는 점 이상의 큰 의미가 담겨 있다.

강 교사 구속 이후 역대 정권의 수사 정보기관과 교육 당국, 보수 언론, 그리고 일부 정치세력은 걸핏하면 이 사건을‘전교조 용공화’의 상징 사례로 활용했다. 보수 진영 일각에서 전교조에 대해 덮어놓고‘6.25 북침설을 가르치는 단체’라는 거짓 프레임을 씌운 계기가 바로 이 사건이었다. 따라서 32년 만에 재심 법정에서 밝혀진 이 사건의 진실은 전교조로서도 오랜 기간 들씌워진, 북침설 가르치는 용공 단체라는 누명을 공식적으로 벗게 되었다는 역사적 의미가 있다.

안기부와 교육부가 짬짜미한 국가폭력

‘6.25 북침설 교육 사건’은 1989년 5월 28일 전교조 결성을 앞두고 이를 분쇄하기 위해 국가안전기획부(국정원의 전신, 안기부)가 주도한 치밀한 공안 조작사건 가운데 하나였다. 당시 안기부와 검찰, 교육부는 전교조에 대한 비난 여론 조성을 위해 용공 조작을 통해 희생양 삼을 교사들을 물색했다. 이 과정은 안기부가 총괄 기획하고 교육부와 시도교육청, 그리고 일선학교 교장이 유기적으로 역할 분담하는 구조로 이뤄졌다.

이 과정에서 전국적으로 젊은 교사 3명의 타깃이 됐다. 5월 22일 서울 인덕공고 조태훈 교사(당시 33세), 이틀 뒤인 24일에는 충북 제원고 강성호 교사(28세), 그리고 전교조 결성식을 이틀 앞둔 26일에는 경북 영주 동산여중 이수찬 교사(33세)를 각각 좌경 용공 교사로 지목해 이틀 간격으로 국가보안법위반혐의로 구속했다. 이들 교사가 수업 시간에 가르친 북한 바로알기 교육은 대개 국가보안법위반죄(고무찬양)으로 둔갑했다.

안기부와 검찰은 이 과정에서 세 교사의 구속 시기를 치밀하게 조율했다. 언론공작을 통해 각 사건마다 시차를 두고 대대적으로 보도하도록 유도해 전교조 거부감을 극대화하려는 대국민 심리전도 병행했다. 이 같은 사실은 당시 안기부가 작성한 전교조 분쇄공작 관련 존안 문건을 통해 드러났다.(2007. 국정원 과거사위 발행 <과거와 대화, 미래를 향한 성찰. 노동편>).

강성호 교사는 바로 권위주의 정권 공안기관의 이런 거창한 기획 과정을 거쳐 전국 언론의 십자포화를 맞으며 전교조 용공화의 상징으로 구속됐던 것이다. 강 교사가 구속되자 문교부는 이 사건을‘참교육의 실상’이라는 자료집으로 만들어 전국 초중고교와 학부모에게 배포하는 등 조직적으로 전교조 용공매도에 대대적으로 활용했다.

교육부는 다음 수순으로 전국 시도교육청에 일제히 공문을 내려 보냈다. ‘전교조 교사 식별법‘을 제목으로 한 공문은 참교육을 내걸고 출범한 전교조 가입 교사에 대한 식별 요령을 친절하게 열거했다. ’촌지 받지 않는 교사‘ ’학급 문집이나 학급 신문을 내는 교사‘ ’학생 상담을 많이 하는 교사‘ ’지나치게 열심히 가르치려는 교사‘. 이런 코미디 같은 문제 교사 식별법으로 전국의 초중등 교사 1527명이 무더기로 파면 해임됐다. 정부는 당시 교육개혁과 교육민주화를 주장하던 전교조 교사들에게 국가안보를 저해하는 체제 전복세력이라는 불온 딱지를 붙였다.

사제지간에 감시와 고발, 공안교육의 원죄

강 교사에 대한 용공조작 사건은 국가권력이 교육 현장에서 스승과 제자 사이에 지켜야 할 금도까지 짓밟으며 무자비하게 한 개인을 파멸시킨 잔혹한 국가폭력의 상징이다. 특히 이 과정에서 사제지간의 정도를 누구보다 지켜야 할 교육당국이 보인 처사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다. 당시 교육부와 일선 교육청, 그리고 학교장은 비교육적인 사건 날조와 신고를 서슴없이 유도하고 악용했다.

강성호 교사는 대체 시골 학교에서 무엇을 가르쳤기에 대표적인 좌경용공 교사로 지목된 것일까. 1989년 초 강 교사는 충북 제천시 제원고등학교에 갓 부임한 28세의 초임교사였다. 낯선 제천 땅에 부임해 일본어를 가르치던 강성호 교사는 신임 교사로서 매사에 열성적이었다. 때마침 노태우 정부에서도 남북화해를 기치로 내걸고 겉으로는 민족동질성 회복을 강조하던 때였다. 이런 시대 분위기에 발맞춰 그는 틈틈이 북한 바로알기 수업도 했다. 주로 일본인 기자가 발간한 사진첩 속 평양 시가지와 금강산 백두산의 모습을 수업시간에 보여주며 통일이 되면 아름다운 산천에 자유롭게 갈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마침내 5월 24일, 강 교사는 수업 중 교장실에 호출되었고 대기 중이던 경찰은 다짜고짜 분필가루가 채 가시지 않은 강교사의 손에 수갑을 채웠다. 강 교사를 불법체포해 대공분실로 연행한 경찰은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6.25 북침설을 가르치고 북한을 미화 찬양한 혐의를 인정하라고 강요했다. 그는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맞서며 자술서 작성을 거부했다. 그러자 경찰은 몇몇 학생들을 불러 대질시켰다.

자정이 지나 학생 3명이 조사실로 들어왔다. 모두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자라 잦은 결석과 사고를 치는 등 학교 당국에 약점이 잡힌 아이들이었다. 그들은 고개를 들지 못한 채 학교장과 담임이 시키는 대로 북침설을 들었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학생들을 압박해 거짓 혐의를 들씌워 교사를 고발했다. 경찰은 압수수색영장도 없이 수업 중이던 그를 불러내 인신을 감금한 뒤 포승줄과 수갑을 채워 제자와 대면시키는 등 교육현장에서 가장 소중한 덕목인 인륜마저 저버린 행태를 보였다.

당시 제원고등학생 600여명은 “강성호 선생님은 6.25가 북침이라고 가르친 일이 없다”는 탄원서를 써서 법원에 제출했다. 또 강교사 석방을 요구하며 수업을 거부하는 등 적극 반발했다. 하지만 법원은 진실을 말하는 제자 600여명의 탄원서를 배척하고 학교당국에 약점이 잡혀 거짓 증언을 한 6명의 진술만을 채택했다. 재판 과정에서 검찰이 증인으로 세운 학생 중 2명은 북침설 수업을 들었다는 4월 11일과 북한 미화 수업을 들었다는 4월25일 각각 결석한 사실이 밝혀져 검찰 기소 내용은 무리한 조작으로 드러났다.

지난 9월 2일 드디어 재심 무죄 판결이 나오면서 강 교사는 지난 32년 동안 억울하게 뒤집어쓴 빨갱이 교사라는 누명을 벗었다. 그는 오랜 세월 거짓으로 스승을 고발한 제자들과 상처도 보듬고 화해하는 만남을 늘 꿈에 그렸다. 그러나 재심을 진행하는 동안 현실의 벽은 여전히 높다는 점을 절감했다고 한다.“북침설을 가르쳤다고 거짓 증언했던 일부 제자들이 재심 법정에서 학교당국과 경찰의 강요와 유도로 그런 진술을 했다고 고백했다. 평생 몹쓸 죄를 짓게 만든 그들(교장, 담임, 경찰)을 죽는 날까지 원망하며 살 거라는 문자를 보냈더라”.

강 교사는 무죄를 받아 억울한 누명을 벗었지만 거기서 끝난 게 아니다. 이 사건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책임자들, 즉 당시 안기부 및 검 경관계자, 교육감과 학교장 등 가해자들은 아직도 내가 뭘 잘못했냐는 듯 반성 없이 살아가고 있다. 당시 경찰을 학교로 끌어들인 제원고 교장은 이 사건에 대해 “당시 나는 아무 결정 권한이 없었고, 사전에 교육청에서 나를 불러 이미 조치를 해두었으니 시키는 대로 하라고 해서 지시대로 따랐을 뿐”이라는 요지의 입장을 내놓았다. 재심 무죄 판결 이후 강성호 교사는 유은혜 교육부총리를 상대로 이 사건에 대한 교육부의 공식 사과를 요구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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