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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조되는 두 개의 예정론 체계칼빈주의의 전개과정과 성서 ⑶
최영 소장(기독교장로회 목회와신학연구소) | 승인 2021.10.09 15:26
▲ 아르미니우스 초상화 ⓒGetty Image

물론, 누군가는 저주받은 자이며 멸망을 당할 사람이라는 생각이 칼빈에게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것이 그에게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결코 이 문제를 설교단에서 언급한 적이 없다. 그가 설교단에서 선포한 내용은 오로지 순전한 하나님의 은혜로써의 선택뿐이었다.(1)

그러나 칼빈 사후에 그의 예정론은 두 가지 대립적인 예정론으로 발전하게 된다. 하나는 칼빈의 후계자 베자가 주장한 ‘타락 전 예정론’이고, 다른 하나는 ‘타락 후 예정론’이었다. 타락 전 예정론은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인간들의 공적이나 잘못에 관계없이 선택할 자들과 배제될 자들을 미리 결정하셨다는 주장이다.

이에 반하여 타락 후 예정론은 하나님이 인류가 타락할 것을 미리 염두에 두시고, 그들 가운데서 어떤 자들을 선택하고 다른 자들은 배제하셨다는 주장이다. 달리 표현하면, 타락 전 예정론에서 예정의 대상은 아직 창조되지 않고 아직 타락하지 않은 인류였다. 타락 후 예정론에서는 이미 창조되고 타락한 인류였다.(2)

아르미니우스의 예정론

네덜란드 신학자 아르미니우스는 본래 베자의 제자로서 엄격한 칼빈주의자였다. 그러나 그가 고향 네덜란드에 돌아가 라이덴 대학의 신학교수로 활동할 때, 베자의 가르침을 반박한 코른헤르트의 저작에 맞서 칼빈주의 교리를 옹호하고 그를 반박하여 달라는 암스테르담 시장의 요청을 받고 그의 글을 읽던 중에 심경의 변화를 일으켰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생각보다 코른헤르트의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하고 ‘타락 전 예정론’에 문제를 제기하고, 보다 더 급진적으로 하나님은 믿을 사람에 대한 예지를 근거로 예정하셨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베자의 예정에 대한 신학적 접근은 연역적이고 종합적인 방법을 적용한 결과라고 보았다. 그는 올바른 신학방법은 귀납적이고 분석적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오래전에 이론적인 학문들은 종합적인 방법으로 전해져야 하지만, 실제적인 것은 분석적인 순서로 전해져야 한다는 방법과 순서의 스승들인 저 철학자들의 격언이 있었다. 그 때문에, 그리고 신학은 실제적인 학문이기 때문에, 그것은 분석적인 방법에 따라서 취급되어야 한다.(3)

또한 아르미니우스는 펠라기우스주의를 연상시키는 자유의지의 교리를 주장하기도 하였다. 격한 논쟁이 이어졌고, 아르미니우스는 정부에 회의를 소집해 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그는 회의가 소집되기 전에 죽고 말았다. 그가 죽고 나자 그의 주장을 추종하는 자들은 자기들의 신조를 다섯 항목으로 구체화시켜 1610년 「항의서」라는 이름으로 네덜란드와 서프리스란드 국회에 제출했다.

여기에 반대하는 칼빈주의자들은 「반-항의서」를 제출했다. 1611년에 헤이그에서 두 파당 사이에 회합이 열렸으나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1613년 델프트에서 모인 회의나, 1614년 그로티우스가 작성하여 화해를 촉구한 정부의 칙령도 아무런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4) 마침내 도르트(1618-19)에서 회의가 열렸고, 여기서 아르미니우스의 견해를 유죄판결하고 칼빈주의의 ‘5대 교리들’을 채택했다. 

대조되는 두 개의 체계들(5)

또 다른 반격

베자의 예정론에 반대하는 유사한 반응은 다시 방법론적인 이유들로 17세기 소뮈르의 프랑스 개신교 아카데미 내에서 나타났다. 베자의 영향 아래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삼단 논법의 논리학은 제네바 아카데미의 교과과정의 필수적인 구성요소가 되었다. 베자가 피에르 라무스의 아카데미 교수직을 거절한 것은 그의 논리학에서 분명히 나타나는 라무스의 반-아리스토텔레스적 프로그램에 대한 그의 적대감에 기초되어 있다.

비록 제네바의 아리스토텔레스적 패턴이 유럽 전역의 많은 개혁교회의 아카데미들에서 채택되었을지라도, 라무스의 논리학은 소뮈르의 개신교 아카데미에서 전수되었다. 그리고 일반적인 것에서 특수한 것을 연역하는 것을 거절하는 이 논리학을 기초로 하여 후기 소뮈르의 학자들, 예컨대 모제 아미로는 정통적인 예정 교리의 토대에 도전했다.

베자에 의해 발전된 예정 교리에 대한 이러한 도전들 아래에 있는 것은 파두아 학파에서 유래되고 그 위에 기초된 것으로 인식된 방법론적인 전제들에 대한 비판이었다.(6) 하이데거(J. H. Heidegger), 제른너(Lukas Gernler), 튜레틴 등이 주도하여 작성한  「스위스 일치신조」(1675)는 이러한 발전에 대한 칼빈주의자들의 불안을 말해준다.

미주

(미주 1) 요아킴 스태트케, 정미현 옮김, 『장로교의 뿌리』 (서울: 만우와 장공, 2009), 134.
(미주 2) 바르트에 의하면 두 가지 입장들이 모두 다 사변적이지만, ‘타락 전 예정론’이 ‘타락 후 예정론’보다 바로 이해된 예정론 본래의 의미에 가깝다. 왜냐하면 ‘타락 전 예정론’에 의하면, 하나님은 그가 세계를 창조하실 때 사용하신 것과 같은 전능과 선하심과 지혜로서 인간의 구원과 멸망에 대하여 또한 결단하셨다고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창조와 화해가 함께 고려되고 있고, 둘 다 하나님의 한 구속의 의지와 한 신적 본질(예수 그리스도)에 귀결된다. 그러나 바르트는 당시의 신학자들 다수가 주장한 반대 이론인 ‘타락 후 예정론’은 전형적인 스콜라적 궤변이라고 주장한다. 그것은 하나님이 세계를 창조하시고 보존하실 때의 그의 선하심과 지혜가 한 편에 있고, 그것과 나란히 인간의 구원과 멸망을 위해 결단하는 특수한 선과 의가 따로 있다고 주장하며, 창조와 화해를 분리시키기 때문이다. 이 타락 후 예정론은 구원을 죄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으로서, 즉 ‘계획 A’ 실패한 뒤에 ‘계획 B’를 실행하는 것과 같은 일종의 응급조치 또는 구속적인 수리작업으로 보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그 당시 로마 가톨릭교도, 루터파들이 보기에는, 그리고 어떤 개혁교회 신학자들에게는 타락 전 예정론의 하나님은 독단적으로 어떤 자들을 구원하고 다른 자들은 저주하는 악마의 외양을 지닌, 유죄판결하기 위하여 인간을 창조한 하나님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들은 타락 전 예정론이 하나님을 죄와 악의 창시자로 만든다고 비난하기도 하였다. K. Barth, “Evangelium und Gesetz”, 전경연 편역, 『은총의 선택 및 복음과 율법』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90), 10-11, 48 이하.
(미주 3) Arminius, ‘Private DisputationⅡ’, in Works vol. 2, 319, A. E. McGrath, A life of John Calvin (Cambridge: Blackwell Publishers Inc., 1996), 216에서 재인용.
(미주 4) Philip Schaff, Creeds of Christendom, 박일민 옮김, 『신조학』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2000), 159-160.
(미주 5) Loraine Boettner, The Reformed Faith (Presbyterian and Reformed Publishing Company, 1983), 24 이하. 오늘날 칼빈주의 신학자들은 이 5대 교리들이 실제 어느 정도로 칼빈의 주장을 ‘넘어서 더 가는지’에 대해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다. 어떤 이들은 이러한 발전을 유익한 것으로 보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그러나 칼빈주의의 이 5대 교리는 개혁교회들에 구체적인 신학적 정체성을 주었다. 오늘날 칼빈주의자들은 그 차이의 다양성을 보이면서 이 5대 교리에 동의하기도 하고 동의하지 않기도 한다.
(미주 6) A. E. McGrath, A life of John Calvin, 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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