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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도는 누가 들어주나사자모 소리
장사모 | 승인 2021.10.14 16:04
▲ 기도가 바리새인의 것이 되지 않기를 ⓒGetty Image

목사와 결혼하여 평신도에서 하루아침에 소위 사모님이 되었다. 결혼과 함께 직장도 그만 두었고, 가족과 친구를 떠나 새로운 삶의 터전이 된 외딴 산골의 삶. 도시에서 나고 자라 여태껏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것들에 적응하느라 바쁘기도 하였다. 한 달에 한 번씩 지역의 교역자들은 정기적으로 모여서 회의를 한다. 모임은 대체로는 부부가 동반하여 참석한다. 대개 남성 사역자들이어서 그 아내들은 회의 진행하는 동안 따로 모여 서로 교제를 나눈다. 비슷한 처지의 새로운 여성그룹에 소속되고 만난다는 것이 궁금하기도 하고 연대할 기대도 되었다.

남편을 따라 온 아내들은 1부 예배 순서가 끝나니, 삼삼오오 모여 이동하였다. 나도 어떤 분의 안내로 함께 자리를 옮겼다. 주최한 교회에서 준비한 다과를 내어 놓았다. 그 교회의 담임자께서 직접 구웠다는 빵을 비롯하여 정성스럽고 푸짐하게 차려졌다.

“사모님, 기도 한 번 해봐. 어디 잘하는지 들어보게.”
“네?”

지역에서 오래 목회 해 오신 목사님의 아내는 음식을 먹기에 앞서 기도로 일종의 신고식을 치르게 하였다. 당황하였기보다는 황당하였다. 비단, 서열을 만드는 그러한 모임 분위기만이 그러한 것이 아니었다. ‘기도를 듣는 분이 누구란 말인가?’ 듣는 분들에게 인정받을 만하게 기도를 잘 해내야 한다. 추상적인 미사여구와 은혜로운 상용구들을 잘 배열하면 되는 것이란 말인가?

“큰 사모님께서 어제….”
“네?”

남편이 부교역자로 사역하면서 교인들은 나를 ‘작은 사모님’이라고 불렸다. 다름 아니라 담임 목사님의 아내가 ‘큰 사모님’이란다. 어디 드라마의 재벌가 집안에서 시중드는 이들이 며느리들에게 부르던 호칭으로나 들어보았는데 말이다. 어디 그뿐인가, 한 교회에 있는 담임목사 며느리에게도 작은 사모님이란다.

이런 천태만상이라니…

“그런데, 사모님은 몇 살이세요?”

목사나 사모의 나이를 묻는다. 그런가하면, 교회의 성도끼리는 사적인 친분을 가지면 서로의 직분을 부르지 않고 교회 안에서도 언니나 형님이라고 칭하여 친밀감을 나타낸다. 이러한 행동에 대하여 적절한 것인가를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단순한 친밀감의 효과만이 아니라 나이로 서로의 질서를 만들어 권위에 따르도록 하니 수평적인 관계가 이루어질 수 없다.

교회 내 여성, 목사 아내로서 겪는 상호교차성은 패트리샤 힐 콜린스(Patricia Hill Collins)가 말한 지배의 매트릭스(matrix of domination) 또는 억압의 매트릭스(matrix of oppression)가 떠올려지는 거대한 뭉게구름을 만들었다. 교회의 구조에서 목사의 아내로서 존재하는 여성이 주체적일 수 없었다. 그 뿐만 아니라 남편에 의하여 획득하게 되는 부분적인 권력으로 다른 이들을 관리와 감독하는 상황의 경험은 안타까울 뿐이다. 내가 바로 말할 수 없는 자다. 교회에는 진정한 사랑과 화합의 결속이 어느 때에 가능하단 말인가!

정녕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가능하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폭력과 차별의 구조가 교회 안에서 진짜로 사라진 것이냐고. 교회는 세상보다 나은 것이냐고.

교회는 세상과 다르다는 차이를 차별로 치우치게 만들었다. 교회 안에 강권하여서라도 채우면 된다던 우리의 믿음은 접촉과 교류를 거부하는 방식의 간접적 표출을 만들었다. 고정관념을 반복하고, 혐오 발언의 직접적 표출도 서슴지 않는다. 또한, 그러한 개인과 집단차원의 언행으로 극단적 사회 갈등의 중심에 서있게 되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사회적으로도 재난 상황의 고난에 공동체성을 이야기하고 연대를 강조하는 말들이 많다. 개인들도 코로나 블루, 레드, 블랙에 까지 이르렀다는 부정적 감정들의 예방과 극복을 위하여도 명상이나 마음 챙김과 같은 영적 수행에 많은 이들은 큰 관심을 갖는다. 그리스도인의 영적 수행은 어떠한 상태에 있는 것인가 되물어 확인한다. 기도와 말씀으로 대표되는 영성훈련에는 그리스도인의 환대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교회에 교인들이 사라지는 것은 비단 코로나 때문인가? 코로나 때문이라고 핑계라도 댈 수 있다는 것에 다행한 감사는 아닐까 하는 안타까움의 고민들이 깊어진다. 식상함마저 느낄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에 대한 책임을 어찌할 것인가? 이제 와서 눈먼 양떼 취급하고 길들여 기르던 흩어진 양떼들을 향해 방목한단다. 흩어지는 성도가 되라면서 각자도생의 신앙성숙을 요청하고 있다.

아무쪼록, 성령에 매인 영적 공동체로서 교회의 건강한 회복을 위하여 간절히 기도한다. 우리가 등한히 여기고 간과하였던 사소한 모든 것들을 다시금 되짚어보자. 그것은 교회성장을 위한 것이 아니다. 대중의 관심을 갖게 하거나 교인들의 발걸음을 돌리게 하려함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아들)의 피로 산 교회를 통하여 이루시려한 뜻을 이루려함이다. 올바른 교회 공동체를 통하여 기쁘고 즐거운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길 바란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께 간구하며, 건강한 관계 매트릭스를 만들어 보자.

장사모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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