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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육하고 번성하되, 서로 사랑하라?(창 9:1-7; 벧전 4:1-11; 마 25:14-30)창조절 일곱째 주일(10월17일)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 승인 2021.10.15 16:10

1.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비가 온 이후 날이 쌀쌀해졌습니다. 이제야 가을 느낌이 납니다. 지난주 말씀처럼 기후 위기가 심각합니다. 하나님 주신 창조 세계를 잘 보전해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창조절기 세본문 말씀은 모두 신앙인들이 어떻게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할지를 가르쳐 주는 삶의 자세에 관한 말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아름다운 세상을 잘 지키고 보전하며 주님 주신 사명을 올곧게 감당하는 신앙인의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지난주 말씀을 통해 우리는 감사의 삶이 참된 신앙인의 삶이었다는 것을 배웠다면 오늘 말씀은 주어진 달란트(재능)를 최대한 사용하여 생육하고 번성하되,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생육과 번성이 다른 피조물과 다른 사람들을 해치는 결과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사랑이 허다한 죄를 덮습니다. 이렇게 맡겨주신 달란트로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사랑하고 봉사하는 것이 바로 창조 절기를 올바로 지키는 신앙인의 삶입니다.

구약 말씀부터 볼까요? 지난주 말씀에서 이어지는 말씀입니다. 지난주 구약 창세기 8장 17절 말씀에, 비가 그친 후 하나님께서 방주 안에 있는 모든 혈육 있는 생물, 곧 새와 가축과 땅을 기는 모든 것들을 방주 밖으로 내보내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겠다고 말씀하셨죠? 여기에 인간은 배제되어 있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창세기 1장 28절에 주신 ‘생육하고 번성하라’라는 이 명령을 이제는 인간이 아닌 다른 피조물에 주신 것이라고 소개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구약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다른 피조물에게 주신 명령을 인간에게도 주십니다. 말씀을 볼까요?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바다의 모든 물고기가 너희를 두려워하며 너희를 무서워하리니, 이것들은 너희의 손에 붙였음이니라. 모든 산 동물은 너희의 먹을 것이 될지라. 채소 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창 9:1-3)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말씀하시며 ‘모든 산 동물’, 곧 ‘모든 움직이는 것들(콜 레메스)’을 먹이로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인간과 동물을 경쟁시킨 것일까요? 동물도 생육하고 번성하라, 또 인간도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명하십니다. 둘 다 번성하면 어떻게 될까요? 특별히 하나님은 홍수 이후에는 육식을 허락하셨습니다. 홍수 이전에는 씨 맺는 채소와 열매 맺는 나무를 먹을 것으로 주셨지만(창 1:29), 이제 홍수 이후에는 인간에게 모든 산 동물을 먹을 것으로 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잠시 홍수 이후 상황을 생각해 볼까요? 에덴동산과 상황이 너무 다릅니다. 모두 물에 잠겨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생존을 위해서라면 동물도 생육하고 번성해야 하며, 인간 역시 생육하고 번성해야 합니다. 따라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인간도 동물을 먹이로 삼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 인간은 (물론, 동물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살아있는 한 살기 위해 몸부림쳐야 합니다. 이것을 세상의 관점에서 보면 ‘본능’이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본능의 몸부림을 권면하는 것이 오늘 복음서 말씀인 달란트 비유입니다.

2.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 달란트 비유

‘달란트 비유’ 말씀은 너무 유명하죠? 그러나 이 비유가 나오는 맥락을 잘 보아야 합니다. 사실 마태복음 24-25장은 예수님의 마지막 설교에 해당됩니다. 그리고 이 마지막 설교의 주제는 심판입니다. 특별히 25장은 ‘천국 비유’의 말씀으로 ‘슬기로운 다섯처녀 비유(마 25:1-13)’, ‘달란트 비유(14-30)’, ‘양과 염소의 비유(31-46)’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달란트 비유의 교훈도 종말에 있을 심판을 다루고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아무튼 말씀에 나오는 달란트는 화폐의 단위로, 금 1달란트는 대략 33kg 정도입니다. 우리 돈으로 12억 정도가 되죠? 그러나 본문에서는 재능(talent)으로 유비할 수 있는데, 주인이 종에게 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재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재능을 잘 사용했는지 종말의 때에 판결하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구약의 말씀과 연관 지어 생각해 보면, 주인(하나님)이 종(우리)에게 주신 ‘생존하기 위한 본능’, ‘번성하기 위한 몸부림’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없다면 무익한 종이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볼까요?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두 달란트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마 25:14-18)

달란트를 받은 세 사람이 나옵니다. 그러나 달란트를 남긴 두 사람과 그대로 묵힌 한 사람이 등장하죠?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그들과 결산할새,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마 25:19-23)

달란트를 남긴 두 사람에게는 주인이 칭찬합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 받은 종에게는 어떤가요?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맡겼다가 내가 돌아와서 내 원금과 이자를 받게 하였을 것이니라 하고,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마 25:24-28)

달란트를 그대로 묵힌 한 사람은 그 가진 달란트마저 빼앗깁니다. 여기서 ‘이자’에 초점을 맞추면 말씀이 삼천포로 빠집니다. 자산취득의 경제원리를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 곧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명령에 대한 응답입니다. 따라서 집주인의 결론은 오늘 창세기 말씀에 나오는 하나님의 뜻과 같습니다. 따라서 집주인은 이렇게 결론을 맺습니다.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마 25:29-30).”

3. 생존 경쟁과 그 한계: 경쟁하되, 피는 흘리지 말라!

이렇게 구약과 복음서 말씀은 생존 경쟁에 관한 말씀입니다. 주어진 능력을 발휘해 사명을 감당하라는 것입니다. 다시 구약 말씀으로 돌아가 볼까요?

“그러나 고기를 그 생명 되는 피째 먹지 말 것이니라. 내가 반드시 너희의 피, 곧 너희의 생명의 피를 찾으리니, 짐승이면 그 짐승에게서, 사람이나 사람의 형제면 그에게서 그의 생명을 찾으리라. 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면 그 사람의 피도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음이니라. 너희는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가득하여 그중에서 번성하라 하셨더라.”(창 9:4-7)

자, 무슨 말씀입니까? 생육하고 번성하되, 어떻게 하라는 말씀이죠? 좀 더 맥락에 맞게 말씀드리면, 경쟁하되, 어떻게 하라? 짐승과 경쟁하되, 고기를 그 생명 되는 피째 먹지 말라고 말씀하시죠? 인간의 생존을 위해 모든 산 동물을 다 주셨지만, 따라서 비록 인간이 생육하고 번성하기 위해 동물을 도살하고 죽일지라도, 생명은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물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소유물을 침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 표시로 피에 손을 대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유대인들은 피에 생명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렇게 생명의 권리가 하나님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피째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화여대 장윤재 교수는 이 부분을 해석하며 현대사회에서 ‘피째 먹지 말라’라는 말은 생명인 ‘동물을 학대해서 먹지 말라’는 뜻과 같다고 합니다. 이것은 ‘공장 식 축산’으로 기른 동물에게서 나오는 음식이 ‘피째 먹는 고기’이기 때문입니다.

▲ 공장 식 도축은 ‘피째 먹는 고기’

비틀즈의 멤버 폴 메카트니는 동물 보호에 관심이 많아서 채식을 선택했습니다. 현대사회에서 최초로 ‘고기 없는 월요일’을 제안한 메카트니는 “도축장 벽이 유리라면 우리는 모두 채식주의자가 됐을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도축장으로 끌려간 동물이 잔인하게 죽는 모습을 본 사람은 차마 육식을 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사실 사람들은 도축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저 슈퍼마켓 진열대 위에, 보기 좋게 놓여있는 고기와 먹방(시식 방송)을 통해 맛있게 요리된 음식만 볼 뿐입니다.

▲ 진열대 위의 고기와 먹방

간디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왜 사람들은 건물이나 예술 작품과 같은 인간의 창조물을 파괴하면 ‘야만 행위’라고 비난하면서 신의 창조물을 파괴하면 ‘진보’로 치부하는가?” 물론 여기 신의 창조물은 동물도 있지만, 같은 사람도 있죠? 따라서 오늘 본문 말씀에서 하나님은 사람이 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사람들끼리 경쟁하되, 피를 봐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구약과 복음서 말씀은 생존 경쟁과 더불어 그 한계를 정해 주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게 하지 말라는 것이죠? 그러나 이러한 한계를 넘어선 인간의 경쟁으로 인해 짐승들이, 피조물이, 지구촌 곳곳 사람들이 신음하고 있습니다.

4. 툰베리의 외침과 소말리아 해적의 탄생은?

▲ 포스터 <그레타 툰베리>와 목양실 창 씨글래스 작품, 툰베리 책

지난 26회 부산국제영화제 기간(2021.10.06.~2021.10.15.) 동안, 환경에 관심이 있는 청년들이 기획한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환경 전시회도 있고, 영화 상영도 있었습니다. 특히 바다에 던져진 병이 깨져 동그라미 형태로 변한 유리 조각으로 작품을 만드는 시간도 있었는데, 그것을 씨글래스(sea-glass)라고 합니다. 저도 만들어 목양실 창문에 달아 놓았습니다. 영화는 다큐멘터리 영화 <그레타 툰베리>(2021년 6월 개봉) 상영이 있었는데, 툰베리는 여러분이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스웨덴의 환경 운동가죠?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이 2019년 올해의 인물로 선정한 인물입니다. 2003년생이니, 우리 나이로 18살입니다.

▲ 등교 거부 시위를 시작한 툰베리와 유엔 기후 회의 참석을 위해 태양광 요트로 대서양을 건넘

영화는 2018년, 15살이던 툰베리가 학교에 가지 않고 스웨덴 국회의사당 앞에서 기후 위기 대책을 마련해 달라며 1인 시위를 벌이는 것으로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매주 금요일, 학교에 가지 않고 시위하는 툰베리에게 언론이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툰베리가 말한 기후 위기에 관한 내용이 이내 언론 보도를 타고 전 세계로 퍼져나갔습니다. 이후 유럽과 미국, 아시아, 아프리카 대륙에도 수많은 그레타 툰베리들이 나타났습니다.

130여 개 나라에서, 많은 학생이 기후를 위한 ‘학교 파업, 결석 시위(school strike)’를 이어갔습니다. 2019년 9월 28일에는 전 세계 700만 명이 거리로 나와 기후 위기의 심각성에 대해 경고했습니다. 그런데도 세상은 변하지 않았죠? 툰베리의 경고 이후, 작년과 올해 코로나바이러스가 경고하자, 사람들은 사태의 심각성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습니다. 환경 파괴뿐만이 아닙니다. 유럽과 북미 대륙은 아프리카와 아시아를 착취하죠?

▲ 소말리아 지도

여러분, 소말리아를 아십니까? 아프리카 대륙 동부에 ‘아프리카의 뿔’이라고 불리는 뾰족하게 튀어나온 나라입니다. 영화 <모가디슈>(2021)가 소말리아 내전 상황을 그려주었는데, 모가디슈는 소말리아의 수도입니다. 우리에게 소말리아는 2011년 대한민국 어선 삼호주얼리호가 소말리아 해적들에게 억류된 적이 있었죠? 그렇게 소말리아는 해적과 내전의 나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잠시 소말리아 지도를 보면, 소말리아는 ‘ㄱ’자 모양으로 형성되었는데, 아덴만 밑으로 긴 해안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해산물이 많이 잡힙니다. 그런데 소말리아 사람들은 해산물을 잘 먹지 않습니다. 대신 유럽으로 수출합니다. 따라서 해산물은 소말리아 사람들에게 식량과 생필품을 사들일 수 있는 소중한 천연자원입니다.

▲ 수에즈 운하와 아프리카 지도

지도의 위쪽을 볼까요? 유럽에서 인도를 가기 위해 대서양을 빙 돌아가는 길(21,400km)이 있고, 수에즈 운하를 지나서 가는 길(11,472km)이 있습니다. 운하를 통해 가는 길이 절반 정도 단축됩니다. 따라서 수에즈 운하는 한 해 평균 3만 척 이상의 배가 다니는 교통의 요지입니다. 이 수에즈 운하는 아덴만을 지나서 가죠? 아덴만 바로 밑이 소말리아입니다.

유럽인들은 소말리아 해안의 치안이 엉망이라는 점을 알고 소말리아 인근 해변을 제집 드나들 듯 드나들며 불법조업을 했습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배들은 자국에서 발생한 산업 폐기물을 소말리아 앞바다에 쏟아부었습니다. 당연히 바다가 오염됐고 해산물의 씨가 말라갔습니다. 해산물을 잡아야 생계를 유지하는 소말리아 사람들은 죽음의 위기에 내몰렸습니다.

견디다 못한 소말리아 어부들이 직접 해상 치안에 나섰습니다. 이들은 단체를 조직하고 무기를 빌렸습니다. 불법조업과 폐기물 투기를 일삼는 유럽의 배들을 직접 단속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소말리아 사람들은 유럽 배들을 단속하는 것보다, 그들의 배에 실려 있던 상품을 빼앗거나, 인질을 잡아 되파는 것이 더 큰 돈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렇게 소말리아 해적이 생긴 것입니다. 2009년 이후 전 세계 해적 사건의 절반이 소말리아 인근에서 벌어진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러한 한계를 넘어선 인간의 경쟁으로 인해 피를 흘리신 분이 있습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피 흘려 돌아가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베드로 사도가 오늘 본문에서 그 말씀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볼까요?

5.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는 죄를 그쳤음이니,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벧전 4:1-2)

예수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다고 합니다. 한계를 넘어선 경쟁의 결과, 끝없는 욕망과 더러운 정욕을 따른 결과,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입니다. 따라서 이제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믿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권면합니다.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향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따라 행한 것은 지나간 때로 족하도다. 이러므로 너희가 그들과 함께 그런 극한 방탕에 달음질하지 아니하는 것을 그들이 이상히 여겨 비방하나, 그들이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기로 예비하신 이에게 사실대로 고하리라. 이를 위하여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이는 육체로는 사람으로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을 따라 살게 하려 함이라.”(벧전 4:3-6)

지나간 때, 곧 과거에 그렇게 살았다면 이제는 제대로 살라고 합니다. 자, 다시 말씀의 전체 주제로 돌아가 볼까요?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생명은 하나님께 속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짐승과 사람의 생명이 하나님께 속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인간이 인간을 학살하고, 또한 인간이 짐승의 생명을 존중하지 않고 ‘공장식 축산’으로 무자비하게 학대하고 잡아 죽인 결과는 무엇일까요? 이렇게 번성한 결과는 무엇인가요?

바로 기후 위기와 국가 간의 불평등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구원의 방주에서 나와 세운 문명입니다. 우리가 만든 세계의 불의한 질서입니다. 그리고 이 문명의 불평등과 불의는 반드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베드로 사도는 우리에게 이렇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벧전 4:7-10)

지금은 노아 때와 같지 않습니다. 이미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했습니다. 아니 땅이 더 이상 인간의 탐욕을 수용할 수 없습니다. 너무 욕심이 많습니다. 필요 이상으로 육식을 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서로 피를 흘리며 이 세상을 <오징어 게임>과 같은 지옥으로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국가와 국가 간에도 그렇습니다. 따라서 베드로 사도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당부합니다. 이것은 툰베리의 외침이자, 아프리카 소말리아 사람들이 유럽 사람들의 오만과 탐욕으로 인해 해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는 생존의 절규입니다.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벧전 4:11)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hak-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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