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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은 어디로부터 오는가의지하는 삶(고린도후서 1:7-10)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 승인 2021.10.17 16:05

7 너희를 위한 우리의 소망이 견고함은 너희가 고난에 참여하는 자가 된 것 같이 위로에도 그러할 줄을 앎이라 8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9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10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실 것이며 이 후에도 건지시기를 그에게 바라노라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우리에게 힘든 순간들이 닥쳐옵니다. 나이와 상관없이, 삶의 형태와 상관없이 사람은 누구나 다 힘든 순간들을 겪습니다. 이런 순간들이 삶에서 딱 한 번, 혹은 두세 번만 오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를 힘겹게 하는 순간들은 너무나 자주 나타납니다.

‘설상가상(雪上加霜)’이라는 말이 있듯이 힘든 일이 있을 때, 그보다 더 우리를 힘들게 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여러 가지 방식으로 그 상황을 헤쳐 나갑니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많은 사람은 그 힘든 순간을 어떻게 해서든 극복해나갑니다.

어렵고 힘든 일들은 어떻게 해서든 이겨나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순간을 거치는 과정은 분명 우리를 지치게 하고, 절망감이 들게 할 때도 있습니다. 우리가 어려움을 극복했던 기억들은 분명 삶을 살아가는 힘이 됩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이를 극복해가는 과정의 힘들었던 기억도 우리에게 남게 됩니다.

신앙적인 표현으로 바꿔보자면, 우리는 삶의 어려움을 하나님께서 극복할 수 있도록 이끄시며 도우신다고 믿습니다. 그렇기에 어려움을 이겨낸 기억은 하나님에 대한 신앙으로 이어지고, 하나님의 도우심에 감사할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어떤 어려움이 오더라도 다시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런 신앙은 모든 일이 해결된 뒤에나 생겨납니다. 어려움을 극복한 후에 이를 되돌아보면서 얻게 되는 신앙입니다.

그런데 어떤 결과가 있었는가가 전부는 아닙니다. 모든 일에는 과정이 있습니다. 어려움을 이겨나가는 과정 중에 느꼈던 마음들, 지금 하나님은 어디에 계신가, 내 아픔은 언제야 끝나게 되는가, 하나님은 왜 나에게 이런 어려움을 주시는가에 대한 기억들도 우리 안에 남게 됩니다.

이런 고민과 갈등, 어쩌면 욥이 했던 것과도 같은 고민은, 욥이 결국 하나님에 대한 깨달음을 얻었던 것처럼 우리의 신앙을 키우는데 도움이 될 지도 모릅니다. 신앙과 불신앙의 경계에서 고민하는 일은 우리가 바른 신앙을 키우는데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이런 고민이 필요할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많은 사람의 고민과 어려움을 들으며 이런 생각을 합니다. 어려움을 이겨나가는 그 순간에 우리의 마음은 슬픔과 아픔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슬픔과 아픔을 갖지 않을 수는 없을까? 어떤 신앙을 가질 때 우리는 모든 삶에서 평안을 누릴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사도 바울의 이야기를 통해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 그리스도인의 소망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에서부터 온다. ⓒGetty Image

고린도후서는 환난과 고난에 대해 언급하면서 시작됩니다. 초대교회는 실제로 외부적 고난을 겪어왔기 때문에 이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고, 삶에서 겪는 일반적 고난에 대한 언급일 수도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가 어떤 고난의 상황에 처했었는가를 우리가 고민할 필요는 없습니다. 교회 박해에 관한 이야기이건 개인의 삶에서 얻는 고난에 관한 이야기이건, 사도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그 모든 순간에 위로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자신이 겪었던 어려움을 이야기합니다. 이 환난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사도행전 19장에 나타난 에베소에서 겪었던 사건에 관한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혹은 고린도후서 11장 23절 이하에 나타난 수많은 고난의 사건들 중 하나에 관한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최근에는 이것이 외부에 의한 고난이 아니라 사도 바울이 가지고 있던 병에 관한 언급일 수 있다고 보기도 합니다. 힘겹도록 심한 고난, 살 소망이 끊어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다는 표현들이 박해의 상황보다는 심각한 병을 앓았다는 표현에 더 적합해 보인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어떤 고난을 당했는지는 오늘 나누고자 하는 말씀에서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제가 오늘 본문에서 조금 더 집중해서 보게 된 부분은 사도 바울 역시도 어려움에 처한 순간에 소망을, 희망을 잃었다는 점입니다. 그도 고통 속에서 괴로워했습니다. 그리고 임박해오는 죽음을 느끼며 모든 소망을 잃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시간을 겪으면서 사도 바울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이렇게 괴로워했던 이유, 소망을 잃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말합니다. 지금까지는 자기 자신을 의지하고 살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따른다고 말하며 하나님을 전파해왔지만, 그 역시도 어려움과 고통의 순간을 지나며 자기 자신을 의지하고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고 이를 고린도 교회에 전합니다.

이제 사도 바울은 자신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죽은 이도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을 의지합니다. 그렇기에 사도 바울은 더 이상 소망을 잃지 않습니다. 10절에 나타난 바와 같이 모든 환난이 닥쳐오더라도 하나님께서 건지셨고, 또 건지실 것이며, 이후에도 건지실 줄 믿기 때문입니다. 이런 믿음이 있었기에 7절과 같이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향해 말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소망은 견고합니다. 어떤 고난이 있더라도 하나님의 위로가 함께 한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신앙이 우리에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려운 순간을 이겨낼 수 있도록 도우시는 하나님, 극복할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와 동시에 우리는 위로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도 가지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어려움을 극복했다’는 결과만을 이루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 과정 속에서 우리가 힘들어하고 어려워하고 슬퍼한다는 사실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그렇기에 우리를 위로하시는 분이십니다.

저 자신의 경험에 의해서도 그렇고 여러 사람과 이야기하면서 느낀 점은 자신이 가진 아픔과 슬픔은 결국 자기 자신 밖에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누군가의 위로가 힘을 주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 위로가 모든 아픔을 감싸줄 수는 없습니다. 사람은 다른 사람을 온전하게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아십니다. 그렇기에 우리를 온전히 위로하실 수 있으신 분이십니다.

사도 바울이 이야기한 바와 같이 이런 위로는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이들에게 내려집니다.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살아가는 이들은 하나님의 위로를 받기에 어려운 순간에도 평안을 얻습니다. 또 결국 그 모든 어려움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겨낼 수 있습니다.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 우리를 위로하시는 하나님을 만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좋은 결과만 우리에게 안겨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 모든 과정에 함께 하시며 우리를 위로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어떤 순간에도 마음에 평안을 얻을 수 있게 감싸주시는 분이십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심으로 이 세상 살아가시는 모든 순간에 하나님의 위로를 받으시며 마음에 평안을 누리시는 여러분 되시길 축원합니다.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joey8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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