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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믿음“나의 입이 종일토록 주를 찬양합니다.”(시편 71:20-24)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 승인 2021.10.19 16:07
▲ 저 깊은 수렁으로부터 주께서 우리를 건져 올리실 것이라는 그런 믿음이 필요하다. ⓒGetty Image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나요? 한 주간 주고, 용서하고, 사랑하는 삶을 살아보셨나요? 주고, 용서하고, 사랑하는 삶을 사는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어떻게 갚아 주시는지, 그 풍성한 은혜를 반드시 경험하게 될 줄 믿습니다.

한 걸음만 단 한 걸음만 발을 앞으로 내딛어 보시기 바랍니다. 눈에 보이는 변화가 없다고 느낄지 모르지만, 마음이 다르게 바라보고, 느끼고 있음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 경험이 바로 우리가 누려야 할 축복입니다.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와, 내가 이걸 해냈네.’, ‘와 내가 이렇게까지 해봤네.’라고 고백하며 서로 더 많은 은혜를 나누는 날이 속히 올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런데요. 종종 주고, 용서하고, 사랑하라는 말씀이 기억도 나고, 어떻게 해야 할지 알기도 하지만 실천하고자 하는 의지 자체가 없을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성령님께 도움을 구하라.’는 조언을 듣기도 하는데요, 어떻게 구해야 할지 구체적으로 들어본 적이 있으신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오늘 시편 본문을 통해 주고, 용서하고, 사랑하는 삶으로 한 걸음 내딛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나누고자 합니다.

먼저 시편 기자는 하나님이 온 세상과 우리 삶의 주관자이심을 고백합니다. 20절입니다. “주님께서 비록 많은 재난과 불행을 나에게 내리셨으나, 주님께서는 나를 다시 살려 주시며, 땅 깊은 곳에서, 나를 다시 이끌어내어 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다 이해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알고계시며, 분명한 계획과 방향성을 가지고 이끌고 계시다는 의미입니다.

시편 139:1-4은 하나님이 왜 삶의 주관자 되시는지 더 구체적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주님, 주님께서 나를 샅샅이 살펴보셨으니, 나를 환히 알고 계십니다. 내가 앉아 있거나 서 있거나 주님께서는 다 아십니다. 멀리서도 내 생각을 다 알고 계십니다. 내가 길을 가거나 누워 있거나, 주님께서는 다 살피고 계시니, 내 모든 행실을 다 알고 계십니다. 내가 혀를 놀려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주님께서는 내가 하려는 말을 이미 다 알고 계십니다.”

이미 다 알고 계시는 하나님, 모든 것을 살피시는 하나님, 생사화복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께서는 그럼 우리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 가고 계실까요? 오늘 본문의 시편 기자는 하나님이 이끌어 가시는 방향, 이 모든 계획의 끝에는 구원이 있다고 고백합니다. “21 주님께서는 나를 전보다 더 잘되게 해주시며, 나를 다시 위로해 주실 줄을 믿습니다.”

미래에 어떻게 되어있을지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습니다. 다만 확실한 것은 나를 전보다 더 잘되게 해주시며, 나를 위로 하시리라는 점입니다. 삶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은 은혜의 길로 구원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 각자의 삶을 은혜의 길로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는 줄 믿습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인생을 전체적으로 통으로 봐야지, 한 시점만을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하나의 사건을 경험하게 될 때 경험한 사건에 대해 ‘이것이었다.’라고 단정하면 안 됩니다. ‘에이, 뭘 하나님이 은혜의 길로 인도해!’라고 섣불리 판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 시점에서 경험한 사건은 또 다른 사건으로 또 다른 길로 이어지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저 이 모든 일들을 통해 어떻게 되어 있을지 알 수 없으나 ‘이전보다 더 잘되어 있겠구나, 위로 받겠구나.’ 하며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브라질 아마존에서 사역하시는 이진석 선교사님을 주중에 만나고 왔습니다. 어떻게 아마존에서 사역할 수 있게 되었는지 과정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진석 선교사님보다 앞서 아마존에서 사역하시던 선교사님 부부는 이진석 선교사님이 브라질로 가기 5-6년 전부터 후임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기도하며 자신이 속한 교단에 광고를 하고, 여러 사람들을 통해 추천도 받고 했지만 아무도 아마존으로 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진석 선교사님도 처음부터 브라질 선교를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고, 아는 분을 통해 브라질에 갔다가 선교사님 부부를 만나게 되면서 비전을 가지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기도 끝에 먼저 사역하시던 선교사님에게 자신이 아마존에서 사역하겠노라고 말하게 되었습니다.

5-6년 전부터 후임자를 위해 기도하면서 오랜 동안 후임자를 찾지 못했으면, 드디어 6년 만에 자발적으로 아마존에서 사역하겠다고 자처하는 목사가 나타났을 때 “하나님께서 드디어 후임자를 보내주셨다.”고 고백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전임 선교사님은 이진석 선교사님이 아마존에서 사역하고 싶다고 말했을 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정말로 당신이 이곳에서 사역할 적임자가 맞다면 하나님께서 우리 부부와 당신 부부에게 같은 사인을 주시리라 믿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네 분이 같은 사인을 받았다고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전임 선교사님은 같이 일해 보면서 또 생각해 보자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이진석 선교사님도 ‘이 자리가 꼭 내 자리다.’가 아니라 하나님이 인도하셨기에 내가 여기 있고, 또 언제라도 다른 곳으로 인도하시면 인도하시는 대로 따르겠다는 태도로 삶을 하나님께 맡기며 그저 감사로 사역했다고 하셨습니다.

‘나를 전보다 더 잘되게 하실 하나님, 위로하실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 있다면, ‘이 일이 하나님의 응답이다, 아니다.’를 스스로 판단하지 않고 감사함으로 살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이처럼 “21 주님께서는 나를 전보다 더 잘되게 해주시며, 나를 다시 위로해 주실 줄을 믿습니다.”는 확신을 가진 그리스도인들 삶을 하나님께 의탁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은 이런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요?

22절입니다. “내가 거문고를 타며, 주님께 감사의 노래를 부르렵니다. 나의 하나님, 주님의 성실하심을 찬양하렵니다.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주님, 내가 수금을 타면서 주님께 노래를 불러올리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감사로 고백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여전히 더 잘되지 않았고, 위로도 받지 못했지만 나를 샅샅이 다 아시고, 삶을 주관하셔서 인도하실 하나님이시기에 먼저 감사의 노래를 부른다고 합니다. 지금도 성실하게 일하고 계실 하나님을 찬양하겠다고 고백합니다. 이 믿음의 태도가 지금 우리가 가져야 할 모습입니다. 

시편 69:30-31에도 “그 때에, 나는 노래를 지어,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련다. 감사의 노래로 그의 위대하심을 알리련다. 이것이 소를 바치는 것보다, 뿔 달리고 굽 달린 황소를 바치는 것보다, 주님을 더 기쁘게 할 것이다.”고 고백합니다.

우리의 입술로 감사를 고백하고, 찬양함이 얼마나 중요한지 시편은 반복적으로 이야기함으로 강조합니다. 시편 68:4 “하나님을 찬양하여라. 그의 이름을 노래하여라. 광야에서 구름수레를 타고 오시는 분에게, 소리 높여 노래하라.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며 그 앞에서 크게 기뻐하여라.”, 시편 68:19 “날마다 우리의 주님을 찬송하여라. 하나님께서 우리의 짐을 대신 짊어지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이시다.(셀라)”, 시편 69:3 “목이 타도록 부르짖다가, 이 몸은 지쳤습니다. 눈이 빠지도록, 나는 나의 하나님을 기다렸습니다.”

그럼 감사와 찬양의 고백은 언제 해야 할까요? 오늘 시편 본문은 ‘온종일’이라고 말합니다. 23절과 24절에 “내가 주님을 찬양할 때에, 내 입술은 흥겨운 노래로 가득 차고, 주님께서 속량하여 주신 나의 영혼이 흥겨워할 것입니다. 내 혀도 온종일, 주님의 의로 우심을 말할 것입니다. 나를 음해하려던 자들은, 오히려 부끄러움을 당하고, 오히려 수치를 당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 혀가 온종일, 주님의 의로 우심을 말할 것입니다.” 신약 본문인 데살로니가전서 5:17에도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신명기 6장에는 “집에 앉아 있을 때나 길을 갈 때나, 누워 있을 때나 일어나 있을 때나, 언제든지 가르치십시오.”라고 권면합니다. 성경에는 온종일, 쉬지 말고, 언제든지 하라고 권면합니다.

대체 어떻게 온종일, 쉬지 않고, 언제든지 찬양하고 기도 할 수 있을까요? 이 본문들에 대한 여러 가지 해석들이 있습니다. 저는 성도님들께 이렇게 권면합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를 매일 수백 번 아니 수천 번 고백하십시오.

감사와 사랑의 고백이 저와 성도님들의 영혼을 삶을 본문에 기록된 것처럼 흥겹게 할 것입니다. “23 내가 주님을 찬양할 때에, 내 입술은 흥겨운 노래로 가득 차고, 주님께서 속량하여 주신 나의 영혼이 흥겨워할 것입니다.” 구구절절하게 찬양해야 할 이유를 고백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단순하게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라고 고백하십시오.

시인이자 목사인 임의진 님은 한 칼럼에서 “이렇게 인간의 기도는 오로지 “키리에 엘레이손” 주님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오직 이 한마디면 족하지 않겠는가. 구구절절 말이 많아 무엇하리. 딱 부러진 한마디면 된다. 어두운 한밤중에 별들이 더 밝게 빛나듯, 시절이 어려울수록 주님의 보살핌도 극진하여라.

키리에 엘레이손. 우리는 주님의 돌보심을 바라고 기도하면서, 문제를 ‘내어 놓고’ 문제를 ‘내려놓아야’ 한다. 두려움과 불안이 지나쳐 내가 먼저 선수를 쳤다간 더 문제가 악화되고 꼬이게 된다. 주님께 먼저 의뢰하고 주님께 호소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그런 사람만이 선한 답을 얻을 수 있으리라.”(가톨릭뉴스)고 기록했습니다.

‘주고, 용서하고, 사랑하라’는 말씀이 기억도 나고, 어떻게 해야 할지 알고도 있지만 실천하고자 하는 의지 자체가 없을 때가 있다고 설교 처음에 말씀드렸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라는 단순한 이 고백을 반복해서 끈기 있게 고백할 수 있다면 우리의 영혼과 삶을 흥겹게 하면서 말씀을 실천하도록 이끌 것입니다. 여러 번 용서가 최고의 투자라고 말씀드렸지만, 이 단순한 고백은 최고의 투자를 할 수 있도록 만드는 투자금 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라고 고백하면 할수록 투자금은 늘어납니다.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인도하심 속에 있습니다. 이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후에야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는 고백을 드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감사와 찬양의 고백은 저와 성도님들의 삶을 더 풍요롭게 합니다. 그리고 주고, 용서하고, 사랑하도록 인도합니다. 나를 전보다 더 잘되게 하시며, 위로하실 하나님을 소망하며 마땅히 해야 할 감사와 찬양을 종일토록 고백하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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