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세교회는 사제들 외에는 읽을 수 없는 라틴어 성서만을 고집했다. ⓒGetty Image

오직 성서만(sola scriptura)

개혁교회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 가운데 하나는 성서를 배타적이며 최종적인 권위로 삼는다는 것이다. 이점은 성서의 권위에 대한 로마 가톨릭 교회의 견해와 비교할 때 명백하게 나타난다. 로마 가톨릭교회는 성서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지만, 성서와 나란히 교회의 교리전통, 교회의 결정 등을 중시하고 있다. 예컨대, 성서에서 발견되거나 추론되는 진리, 사도들로부터 전해져 왔지만, 성서에 없거나 성서에서 추론될 수 없는 진리, 하나님께서 사도들 이외의 사람들에게 계시하셨거나 최근에 계시하거나 영감을 주신 진리 등을 성서와 동등한 권위를 갖는 것으로 인정한다는 것이다.(1)

따라서 중세 후기의 핵심적 쟁점은, 교회가 성서에서 발견하거나 추론할 수는 없지만, 전해진 전승들 가운데서 그 권위와 사도적 진정성에서 정경(canon)과 동등한 것으로 추정되는 신념들을 회중에게 선포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그렇다고 했고, 마르틴 루터와 훌드리히 츠빙글리, 그리고 존 칼빈, 하인리히 불링거 같은 개혁자들은 성서 이외에 다른 어떤 계시의 원천이 있다는 것을 강하게 거부했다. “오직 성서만”의 구호는 성서 이외에 계시의 다른 원천들을 강력하게 비판하는 종교개혁 전체의 주제였다.

그런데 개신교 종교개혁 전통에서 이 “오직 성서만”의 원리를 일관되게 관철시킨 것은 개혁교회였다. 유감스럽게도 루터교회의 「일치신조」(1577)에서 자주 보이는 “하나님의 말씀과 아우구스부르크 신앙고백서” 같은 대구(對句)는 루터 이후에 루터교회가 다시 로마 가톨릭의 “숙명적인 이원론”(2)으로 회귀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교회가 성서에 명료하게 표현된 하나님의 말씀만을 교회의 선포의 단 하나의 규칙으로 승인한 것은 개혁교회의 신앙고백들이 공식화되기 이전의 확고한 원리였다. 1523년 1월 3일에, 취리히 정부가 그 달 29일에 대화의 장을 마련하고 영토 내의 모든 사제들에게 최초의 공식 논쟁에 참여할 것을 요구하는 포고문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거기서 그들은 츠빙글리의 출현과 함께 쟁점이 되었던 복음의 “충실하고 완전한” 설교의 문제에 관한 토론에서 츠빙글리와 그의 논적들 모두가 “신성한 성서에 따라서” 그들의 주장을 펴야 한다고 주장한다:

취리히 정부는 포고문에서 교회의 전통을 논쟁의 논거로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을 사전에 통보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1528년의 베른 논쟁의 초대장은 “이 토론에서 성서라고 일컬어지는 구약과 신약성서 이외의 다른 문서들은 어떠한 지위와 권위도 갖지 못할 것이다. 성서 홀로 성서를 설명할 것이며, 불명료한 구절들은 명료한 구절들이 해명하고, 조명해줄 것이다. 어떤 것이 참된 기독교 신앙의 수준, 안내, 토대, 그리고 유일한 심판자인지를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성서밖에 없다”(4)고 진술한다.

이것은 츠빙글리와 칼빈 등 개혁교회 개혁자들이 하나님의 말씀, 혹은 그리스도와 나란히 서 있을 수 있는 다른 어떤 권위를 결코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들은 “오직 성서만”을 신앙과 삶의 유일한 규칙으로 인정했다. 이러한 철저한 원리는 최초의 논쟁을 위해 수립된 토론의 규칙들에서 당당하게 선언되었고, 이것은 차후 개혁교회의 교리에서 기본적인 것이 되었다.(5) 「제네바 신앙고백서」(1536) 첫 문단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칼빈의 영향을 가장 분명하게 반영하고 있다고 평가받는 「프랑스 신앙고백서」(1559)는 “성서는 모든 진리의 척도이며 … 오직 모든 것은 성서를 따라서 검토되고, 규정되며, 개혁되어야 한다”고 선언한다.(6) 이와 같이 「벨기에 신앙고백서」(1561), 「제2 스위스 신앙고백서」(1566),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1647)가 모두 성서의 절대적인 권위를 강조한다.(7)

개혁교회는 이렇게 처음부터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만이 진리이며, 그 진리는 오직 성서에만 담겨 있고, 따라서 모든 교리는 성서의 표준에 따라 측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개혁교회는 이 성서의 토대 위에 교회와 사회의 모든 제도와 법규를 근거시키려고 하였다. 이것이 이른바 종교개혁의 형식원리라고 일컬어지는 개혁교회의 ‘성서원리’이다. 바르트는 이러한 근거에서 성서원리를 “교회의 사활이 달린 조항”이라고 하였다.(8)

칼빈의 영감론

개혁자들에 의하면 앞서 확인하였듯이 성서만이 진리의 유일한 척도이다. 그것은 어떤 특수한 전통에 의하여 해석된 성서, 혹은 어떤 이론을 입증하기 위해 선택된 성서의 일부분, 혹은 성서의 말씀과 혼동될 수 있는 과거나 현재의 경건한 사람들의 교리가 아니라 성서 그 자체, 곧 전체 성서(tota scriptura)를 말한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질문이 가능하다. 어떻게 우리는 성서가 하나님의 말씀이며, 유일한 진리이고, 따라서 우리의 신앙의 확실한 규칙과 모든 진리의 척도가 된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는가? 칼빈은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을 하나님이 성서의 저자라는 사실에서 찾는다. 그에 의하면 성서의 권위에 대한 지식은 하나님이 그 저자라는 지식과 하나가 된다.

칼빈에 의하면 이러한 확신은 “성령의 내적 증거”(testimonium spiritus sancti)에 의해서 우리 안에 확립된다. 성서영감에 대한 칼빈의 결정적인 진술은 다음과 같다. 

성서는 “자증하며”, 인간의 증명과 이성에 의해 보증될 수 없다(Inst.Ⅰ.7.5). 만약 우리가 성서를 믿을만하다고 생각한다면, 그때 그것은 우리 자신이나 다른 어떤 자들의 판단이 아니라 우리의 판단을 하나님 자신의 판단에 복종시킬 때이다. 이것은 칼빈에게는 신비적인 미지의 것에 대한 떨림이나 비합리주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오히려 그는 우리의 인식을 위한 근거들, 즉 다른 ‘이성들’을 필요로 하지 않는 ‘최고의 이성’, 다른 ‘진정성의 표지들’을 필요로 하지 않는 ‘진리’, 계시와 별도로 우리에게 나타날 수 없는 ‘느낌’을 진술한다(Inst.Ⅰ.7.5). 사실, 성서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진술은 하나님 자신이 자유로운 은혜를 통하여 입증하지 않는다면, 달리 증명할 방법이 없을 것이다. 만일 그 진술이 하나님 자신이 아닌 다른 어떤 것에 의해 입증될 수 있다면, 어떻게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일 수 있겠는가?

이 칼빈의 영감론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영감 혹은 계시는 성서의 저자들과 우리에 대한 하나의 단일한 무시간적 혹은 동시적인 하나님의 행위이다. 우리와 성서의 저자들 사이에서 질문되고 대답되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은, 그들이 안에 있고 우리가 밖에 있는 것처럼, 실제로는 그들과 우리 사이에 있는 성령의 독백이다.(9) 이것이 바로 칼빈이 성서영감론을 전개하는 맥락이었다.

그러므로 칼빈이 성서의 권위를 전개시키는 맥락은 성서의 문자가 아니었다. 칼빈은 하나님이 그의 성서적 증거들과 그 증거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동시적으로 부여하는 자기 증거의 계시에서 하나님의 말씀의 확실성을 찾았다. 이것은 칼빈이 성서의 신적인 권위에 대한 증거를 인간의 이성과 판단이 아닌 다른 어떤 장소, 곧 “성령의 내적 증거”에 근거시켰다는 것을 말해준다(Inst.Ⅰ.7.4).

왜냐하면 “성서의 확실성이 성령의 내적 확신 위에 세워질 때에만, 비로소 성서는 하나님의 구원하는 지식을 궁극적으로 일으킬 수 있게 되기”(Inst.Ⅰ.8.13) 때문이다. 「프랑스 신앙고백서」(1559) 제4조에서 칼빈은 명확하게 말한다. 우리는 이 특별한 책들을 성령의 ‘증거’와 ‘내적 증거’에 근거하여 교회의 다른 문서들과는 구별되는 정경으로 인식한다.(10)

최영 소장(기독교장로회 목회와신학연구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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