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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놓으라염려함(마태복음 6:31-34)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 승인 2021.10.24 01:19

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오늘은 여러분께서 너무나 잘 알고 계신 예수님의 말씀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무엇을 먹고 마실지, 무엇을 입을지 염려하지 말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의 핵심은 말씀의 제목과 같이 ‘염려함’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염려하지 말라며 이 말씀을 전해주셨습니다.

마태복음 6장 25-34절의 말씀은 상당히 잘 짜여진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면서 말씀을 시작하십니다.

이후에는 두 가지 예가 나타납니다. 26절은 공중의 새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먹고 마실 것을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을, 28-29절은 들의 백합화를 통해 입을 것에 대해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을 전하십니다.

보통 마태복음을 기록한 공동체는 다른 복음서의 공동체보다는 조금 부유한 계층의 사람들로 구성되었을 것으로 판단합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본문에 대한 해석은 약간 달라질 수 있습니다만, 이 본문은 누가복음 12장에도 거의 똑같은 형태로 나타납니다. 따라서 마태복음 공동체를 향해 들려주신 말씀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본래 하셨던 말씀이 무엇인지를 먼저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예수님의 곁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던 사람들은 보통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앞에 나타난 주기도문에서 ‘일용할 양식’, 하루에 먹을 양식을 간구해야 할 정도로 어렵게 살아가는 이들이 예수님 말씀을 듣는 이들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이 대중을 향한 연설이 아니라 제자들 사이에서 전하신 말씀이라고 하더라도 상황은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쫓아다니던 제자 중에는 부유한 이들도 있었지만, 주요 제자 대부분 가난한 이들이었습니다.

이런 이들이 가진 고민은 목숨과 몸 그 자체에 대한 고민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먹을 것이 없어서 내일을 걱정하는 이들이었고, 입을 옷이 없어서 무엇을 입어야 할지 걱정해야만 하는 이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에게 여러 번 강조하여 말씀하십니다.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시기에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며 쫓는 이들에게는 하나님께서 모두 채워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오늘 읽은 본문의 마지막 구절,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니, 오늘의 괴로움은 오늘 끝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전 개역한글 성경에는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하라’고 되어 있었기 때문에 ‘오늘은 그만 걱정하고 쉬어라’라는 의미로 이해되었습니다만, 최근에 번역된 성경들은 모두 원문을 그대로 번역하여 ‘내일이 염려할 것이다’로 되어 있습니다. 염려하는 주체가 우리 자신으로 이해되었었다면, 본래 성경 원문은 그 주체가 ‘내일’이었다는 점입니다.

이 부분만 보았을 때, 누가복음 12장의 구성이 그 의미를 잘 전해주는 듯합니다. 누가복음 12장에서 오늘 본문 평행구절 앞에 놓인 말씀은 자신의 내일을 알지 못하고 재물을 쌓아 놓은 부자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내일을 알지 못합니다. 우리의 내일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섭리입니다.

그렇기에 내일이 염려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의 염려는 내일을 허락하시는 하나님께서 대신 하신다는 의미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너희는 오늘까지의 괴로움으로 충분히 힘들어하였으니, 이제 하나님께서 우리의 괴로움을 거두시고 염려마저 대신해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처음 선포하셨던 오늘의 말씀은 하루하루의 생명을 고민하며 살아가는 이들, 삶이 너무나 고통스러워 날마다 힘들어하던 이들을 향한 선포였을 것입니다. 더 이상 내일의 삶을 위해 염려하고 걱정하지 말라는 위로의 선포입니다.

그런데 복음서 안에서 이 말씀의 의미는 조금 더 확장됩니다. 이 말씀을 기록하고 있는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은 이 말씀 앞이나 뒤에 재물에 관한 이야기를 배치해놓고 있습니다. 마태복음의 경우 24절에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는 이야기를 먼저 한 후에 오늘 말씀이 나타납니다.

누가복음은 앞뒤에 재물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타납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 말씀에 앞서 나타난 말씀은 소유의 넉넉함을 쫓지 말라는 말씀에서 시작되어 자신이 죽을 운명임을 모르고 곡간을 채워놓는 부자의 비유입니다. 또 누가복음은 이 말씀의 끝에 소유를 팔아 구제하라는 말씀을 덧붙여놓습니다. 이와 함께 땅이 아닌 하늘에 보물을 쌓으라는 말씀이 붙어있습니다.

예수님의 본래 말씀이 목숨과 몸에 대한 실제적인 고민에 대한 말씀이었다면, 복음서는 이 말씀에 재물을 쌓기 위해 노력하지 말라는 의미를 덧붙여놓았습니다. 더 많은 재산을 위한 고민을 금하는 초대교회 공동체의 지침이라고 생각합니다. 늘 드리는 말씀이지만, 이런 의미의 확대가 복음서 저자들의 잘못이거나 말씀 왜곡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청중의 범위가 확대됨에 따라 말씀의 의미도 확대된 것이며, 그렇기에 지금 우리에게도 넓은 의미로 전해질 수 있다고 봅니다.

▲ 욕망의 크기만큼 염려도 커진다. ⓒGetty Image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삶에서 가지고 있는 두 가지 고민을 모두 보게 됩니다.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삶의 고민과 그저 살아가는 것 이상을 바라기에 생기는 고민입니다. 복음서는 분명히 잉여 자본에 대해서 좋게 보진 않습니다. 하루하루 충족된 삶 이상으로 누리고 살아가는 모습이 올바르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상당히 발전했습니다. 우리는 대부분 내일 먹을 게 없어서 고민하지 않습니다. 더 맛있고, 더 건강한 음식을 먹기 위해서 고민합니다. 입을 게 없어서 고민하지 않고 더 좋은, 추위나 더위로부터 몸을 더 잘 지켜줄 수 있는 의복을 사기 위해서 고민합니다.

물론 우리가 삼성 Z플립3을 사려고 고민한다거나 아이폰 13을 사기 위해서 고민한다고 하면 그것은 삶 자체와는 전혀 관계없는 고민이긴 합니다만, 우리가 그저 먹을 음식이 아니라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서 고민한다고 해서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예수님 시대와 지금은 분명 다릅니다. 그렇기에 그 시대보다 더 많은 것을 바라며 고민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대가 발전했다고 해서 우리의 모든 고민이 물질적인 것에 집중하는 것은 아닙니다. 발전한 사회이기 때문에 다들 돈 걱정만 하면서 돈을 쫓으며 살아가는 것처럼 말하지만 그 이면에는 결국 하루하루 삶에 대한 걱정과 고민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저마다 하루하루의 삶에 대한 고민이 있습니다. 그 고민의 본질은 과거 예수님 시대의 사람들과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 33절 말씀,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라는 말씀에 집중해서 생각한다면, 저는 여러분께 어떤 말씀도 전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바를 하나님께서 어디까지 용인하시며, 어디까지 채워주시려는지 저는 모릅니다. 우리가 Z플립이 가지고 싶다고 고민하고 염려하면 하나님께서 그 염려를 아시고 Z플립을 주시려는지 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오늘 말씀 처음에 이런 이야기를 드렸습니다. 오늘 본문의 핵심은 ‘염려함’에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고자 했던 말씀의 핵심은 우리가 고민하는 것들, 먹고 마실 음식, 입을 옷을 하나님께서 쨔잔 하고 주신다는 점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선포하신 말씀은 우리가 지금까지 충분히 괴로워했으니 이제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만을 따르며 그 염려를 내려놓으라는 것입니다. 마음의 괴로움을 이제 그만 내려놓으라는 말씀이십니다. 그렇기에 오늘 말씀은 마태복음 11장 28절에 나타나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라는 말씀에 연결될 수도 있습니다.

세상을 살면서 우리의 염려, 고민은 사라지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아무리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아간다 말하지만, 하나님께 간구함으로 마음에 평안을 얻는다고 말하지만, 실상 우리의 고민은 끊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또 내일을 염려하며 살아갑니다. 그 염려가 우리 삶에 놓인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게 해줄지도 모릅니다. 걱정한 만큼 준비했기에 힘든 순간을 적절히 이겨낼 수 있는 힘이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 우리의 염려는 우리를 지치고 힘들게 만듭니다. 끊이지 않는 염려로 삶이 멈추게 될 때도 있습니다. 보통 우리는 할 수 있는 일로 염려하기보다 할 수 없는 일로 인해 염려하기 때문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이라면 그 염려 하나님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맡긴다고 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는 그 염려가 남아있겠지만, 그 순간에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내일 일을 걱정하지 말아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맡아서 할 것이다.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에 겪는 것으로 족하다.”(새번역)

하나님의 나라를 쫓는 여러분, 하나님의 의를 쫓는 여러분께 하나님께서 그 염려하던 모든 일 이루어주실 줄 믿습니다. 그 모든 염려 내려놓을 수 있도록 함께 하실 줄 믿습니다.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joey8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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