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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시선은 무엇에 꽂혀 있을까“하나님 나라에 있을 것인가, 하나님 나라 가까이에 있을 것인가”(누가복음 12:28-34)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 승인 2021.10.26 00:39
▲ 일견 불공평해 보이는 달란트 비유. 우리의 시선이 달란트의 양에 고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Getty Image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한 주의 삶을 뒤돌아보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생각될지 몰라도, 분명하게 삶과 마음에 영향을 받은 많은 일들을 경험하며 살아왔습니다. 이런 여러 상황들 속에서 한 주간 평안하셨나요? 그리고 한 주간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라는 고백, 하나님을 향한 찬양을 하셨나요?

지난주 ‘찬양이 제사보다 낫다.’는 성경 구절을 들려드리면서 우리의 입술로 또는 마음으로 사랑과 감사를 끊임없이 고백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최선을 다해 반복적으로 단순한 이 고백을 할 수 있게 된다면 저와 성도님들의 마음에 꺼져가던 하나님을 향한 불씨가 다시 타오르게 되고,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는 힘과 능력도 생겨나는 줄로 믿습니다.

말씀을 듣고, 들은 대로 실천 해 본 사람과 실천 해 보지 못 한 사람이 경험할 수 있는 은혜의 차이는 엄청나게 큽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달란트 비유’를 보시면 주인이 여행을 떠나면서 세 명의 종에게 한 달란트,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를 각각 맡깁니다. 주인이 여행에서 돌아와 셈을 할 때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 받은 종은 자신이 받은 달란트를 이용해서 수익을 얻었다고 말하지만 한 달란트 받은 종은 그냥 땅 속에 묻어 놓았다고 말합니다.

언뜻 불공평하게 보이는 일을 주인은 합니다. 한 달란트 ‘밖에’ 받지 못한 종과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 받은 종의 시작점은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공평하게 달란트를 주지 왜 다른 양의 달란트를 주셨을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누가 더 많이 벌었느냐가 아닙니다. 어차피 능력에 따라 달란트를 주셨기 때문에 한 달란트 받은 사람에게 많은 수익을 기대하지도 않으십니다. 중요한 건 받은 달란트를 ‘사용 했느냐, 안 했느냐’에 있습니다.

주인은 한 달란트 받은 종의 달란트를 빼앗아 다섯 달란트를 벌은 종에게 주며 이렇게 말합니다. “가진 사람에게는 더 주어서 넘치게 하고, 갖지 못한 사람에게서는 있는 것마저 빼앗을 것이다. 이 쓸모없는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아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가는 일이 있을 것이다.”(마태복음 25:29-30)

이 이야기는 빼앗으려고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풍성히 경험하고 받으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도둑이 아닙니다. 노동력을 착취하는 못 된 사장도 아닙니다. 오히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행할 때 값을 후하게 쳐주시는 분, 더 주어서 넘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뭘 얼마나 이루었느냐가 아니라, 주신 것을 ’사용 했느냐, 안 했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렇기에 말씀은 듣고 행하여, 후하게 주시는 은혜를 경험할 수 있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도 듣고 따르는 삶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율법학자와 예수님 사이에서 질문과 대답이 오고 갑니다. 율법학자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에 자신의 생각을 덧붙여 말함으로써 자신도 이미 잘 알고 있다는 점을 어필합니다.

“28 율법학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다가와서, 그들이 변론하는 것을 들었다. 그는 예수가 그들에게 대답을 잘 하시는 것을 보고서, 예수께 물었다. ‘모든 계명 가운데서 가장 으뜸 되는 것은 어느 것입니까?’ 29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첫째는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우리 하나님이신 주님은 오직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30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뜻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여, 너의 하나님이신 주님을 사랑하여라.’ 31 둘째는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여라.’ 이 계명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32 그러자 율법학자가 예수께 말하였다. ‘선생님, 옳은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그밖에 다른 이는 없다고 하신 그 말씀은 옳습니다. 33 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자기 몸 같이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와 희생제보다 더 낫습니다.’”

제가 오늘 본문에서 성도님들과 나누고 싶은, 주목해고 싶은 말씀은 이 다음에 나오는 구절 34절입니다. “34 예수께서는, 그가 슬기롭게 대답하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 그 뒤에는 감히 예수께 더 묻는 사람이 없었다.”

“너는 하나님의 나라에 있다.”고 말씀하시지 않고, “너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일까요? 지식만으로는 하나님 나라를 경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알고는 있기에 하나님 나라 가까이에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가까이 있는 것이지 하나님 나라 안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를 경험할 수 있는 사람,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 나라를 누리고 확장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누군가의 삶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미완성이 아닌 완벽한 설교 한 편을 듣고 본 것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삶 자체가 전도지가 되는 사람,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감동이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주중에 ‘유퀴즈’라는 방송 프로에 나온 김쌍식 씨라는 분이 방금 말씀 드린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분을 소개하는 방송을 보면서 제 눈에서 자연스레 눈물이 났습니다. 김쌍식 씨는 남해에서 빵을 만들고 파시는 분입니다. 1년6개월 동안 매일 아침 초등학생부터 대학생에 이르기까지 70-100여개의 빵과 야쿠르트를 무료로 나눠주고 있었습니다. 또한 8개 단체에 연간 2000만 원 가량의 빵을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그럼 이 분이 넉넉한 가운데 나누는 분이냐? 그렇지 않았습니다. “어릴 때 힘들게 자라서 그런지 주변 사람들이 나처럼 배고프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빵 봉사를 시작했다.”고 하셨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돈이 없어 어려울 때는 지인들에게 조금씩 빚을 지면서까지 빵 나눔을 했다고 합니다. 주변 사람들이 “이제 그만하면 되지 않았냐. 충분히 했다.”고 만류를 해도 빵을 나눠주지 않으면 아침을 굶게 될 아이들을 생각하며 계속 빵 나눔을 하셨다고 합니다.

유재석씨가 ‘가게도 본인 소유가 아니고, 경제적으로 어려우실 텐데 그럼 미래는 어떻게 하려고 하시냐?’고 질문했을 때 김쌍식 씨는 “전 아무것도 없어요. 혼자 사는데 돈이 필요한가요? 쓸 만큼만 있으면 되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분이 바라는 건 그저 아이들의 미소뿐이었습니다.

내가 주면 당연히 상대방에게 무언가를 받거나 요구하는 세상에서 바라지 않고 아낌없이 나누어 주는 이런 삶은 감동적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참 신기하게도 이런 분 곁에는 선한 사람들이 찾아오기 마련인가 봅니다. 어느 날은 젊은 커플이 찾아와서 100만 원이든 봉투를 건네고 가는가 하면, 자신은 없고 알바생만 매장에 있을 때 손님들이 찾아와서는 카드로 몇 만원씩 계산을 하고 간다고 하셨습니다.

이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 저분은 자신이 알던 모르던 이미 하나님 나라를 살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게 되었습니다. 아마 이 분의 이야기는 많은 교회들에서 이미 소개가 되었거나 이번 주에 많이 소개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럼 또 누군가는 이분의 삶을 듣고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겠다고 결심하지 않겠습니까?

바로 이런 삶이 믿지 않는 사람들을 향한, 우리가 흔히 말하는 그리스도의 편지된 삶이요, 성경의 겉표지이며, 전도지 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 가까이에 있지 않고, 하나님 나라 안에 있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지난 월요일 대진 어촌계에서 일을 하는 베트남 선원 열여덟 분들에게 성도님들이 모아주신 헌금을 전달하고 왔습니다. 금액만을 따지면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일지도 모릅니다. 제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성도님들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달란트를 이용해서 더 많은 달란트를 얻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풍성한 은혜를 경험하게 될 줄 믿습니다. 우리는 그냥 흘려보내는 겁니다. 그게 우리가 해야 할 마땅한 역할입니다.

빌립보서 4:15-20 “빌립보의 교우 여러분, 여러분도 아는 바와 같이, 내가 복음을 전파하던 초기에 마케도니아를 떠날 때에, 주고받는 일로 나에게 협력한 교회는 여러분밖에 없습니다. 내가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여러분은 내가 쓸 것을 몇 번 보내어 주었습니다. 나는 선물을 바라지 않습니다. 나는 여러분의 장부에 유익한 열매가 늘어나기를 바랍니다. 나는 모든 것을 받아서, 풍족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나는 여러분이 보내 준 것을 에바브로디도로부터 받아서 풍족합니다. 그것은 아름다운 향기이며,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제물입니다. 나의 하나님께서 자기의 풍성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영광으로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을 모두 채워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 영광이 영원히 있기를 빕니다. 아멘.”

사도 바울은 자신과 고난의 짐을 함께 진 빌립보 성도들, 즉 경제적인 도움을 준 당신들에게 하나님께서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주시리라 믿는다고 편지합니다.

얼마나 많은 양을 도왔냐, 얼마나 많은 곳을 도왔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맡겨진 일을 했느냐, 안 했느냐가 중요합니다. 곳곳에 사랑과 도움을 받지 못 한 구멍 난 곳들이 있습니다. 이런 구멍 난 곳을 우리가 받은 달란트만큼 메꾸어 가는 우리 초도제일 믿음의 공동체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우리를 비워 누군가의 빈 곳을 채운다면 하나님께서는 더 풍성하게, 더 잘 되도록 인도하시리라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지난주에 이어 다시 한 번 성도님들에게 권면합니다. 더 풍성하게 하실, 더 잘 되게 하실 하나님을 찬양하시는 성도가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라는 입술의 고백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십시오. 하나님 나라 가까이에 있지 마시고, 하나님 나라 안에 거하시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다시 한 번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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