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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르수, 애굽을 혼돈에 빠뜨린 자출애굽: 이야기 뒤편의 역사 ⑵
이스라엘 크놀 교수/이성훈 | 승인 2021.11.04 02:51
이스라엘 크놀(Israel Knohl) 교수는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교에서 성서학 분야 Yehezkel Kaufmann 교수로 재직하고 있고 Shalom Hartman 연구소 선임 연구원이다. 크놀 교수는 히브리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크놀 교수는 성서학 분야 연구자들에게 수여되는 Z. Shkopp 상을 받은 『The Sanctuary of Silence』와 『The Messiah before Jesus: The Suffering Servant of the Dead Sea Scrolls』 등을 포함 다수의 책들을 저술했다. 이번에 번역 소개하는 크놀 교수의 이 논문은 출애굽 이야기의 형성 및 역사성을 논증한 것이다. 번역에는 한신대 구약학 박사과정에서 연구 중인 이성훈 목사가 수고해 주셨다. - 편집자 주

역사 속에 이야기 위치시키기

애굽 제19왕조가 끝나갈 무렵, 세티 2세(유명한 람세스 2세의 손자)가 죽고, ‘시프타’(Siphta, 우리는 시프타가 세티 2세의 아들인지, 혹은 다른 어떤 관계에 있었는지 알 수 없다.)라는 이름의 소년이 강한 권력을 갖고 있던 레반트인 권력자인 베이(Bay)에 의해 차기 바로로 선택되었고,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 시프타의 샤브티(미라 형태의 작은 조각상) ⓒFondation Gandur pour l’Art, Genève

시프타는 5-6년(기원전 1197-1191년)간 왕위에 있었고, 그가 아직 10대일 때 사망했다. 그 후 세티 2세의 아내이자 여동생인 타우세르트(Tausert)가 2-3년(기원전 1190-1188년경)간 왕위를 차지했다. 그녀의 죽음으로 제19왕조는 막을 내렸고, 이전 왕족에 속하지 않았던 인물인 새로운 바로, 세트나크테(Setnakhte)가 왕위에 올라 제20왕조를 수립하였다.

많은 왕조 교체들과 마찬가지로, 이 왕조의 변화에도 갈등이 있었다. 이는 세트나크테와 그의 왕국의 극적인 상승을 이야기하는 두 개의 애굽 문서에 묘사되어 있다.

세트나크테 기념비

▲ 세트나크테 석비 ⓒ위키피디아

애굽 왕 바로 세트나크테는 수년 후 페르시아의 통치 아래 유다-이스라엘 병사들이 살았던 도시와 같은 곳인, 남부 도시 야베(Yabe) 혹은 엘레판틴(Elephantine)에 석비를 세웠다. 이 석비는 1971년에 발견되었으며, 이 석비는 세트나크테가 어떻게 애굽을 혼란으로부터 구했으며, 적들을 전멸시켰는지 묘사한다.

이 나라는 혼란에 빠졌고 애굽은 신으로부터 외면당했다/// … 그의 앞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자들, 그의 공포가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후에, 그들은 금과 은을 남겨두고, 매에게 쫓기는 작은 새떼처럼 달아났다.///… 그들은 애굽 지도부의 레반트인들을 전투에 끌어들이고자 돈을 주었다. 그들의 계획은 실패했으며 그들의 약속은 좌초되었다.

여기에서 우리는 “문제를 일으키는 자들”이 애굽에 살고 있었으며, 그들의 애굽 장악을 지원받기 위해 침략자로 외부세력을 고용하였다는 점과 그들이 지불하려던 금과 은을 세트나크테가 되찾았다는 점을 보게 된다. 이 석비는 더 나아가 그의 통치 2년차를 이야기하는데, 세트나크테는 애굽의 적들을 몰아내었고 참된 제의를 회복시켰다.

제2년 소무(Shomu) 두 달째 10일, 어느 나라에서도 그의 왕권에 반대하는 자가 없었다. 그들의 지도자들은 그의 보좌 앞에 나와 말하길, “이 나라의 주인이시여! 당신에게 기쁨이 있습니다! 이는 신이 예언하신 바입니다! 당신의 대적들은 더 이상 땅 위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군대나 병거의 힘은 당신의 아버지 세트(Seth)의 힘을 제외하면 존재하지 않습니다!” … 모든 성전은 열려있고, 제물들은 창고에 들어갈 준비가 되었습니다.

이 본문은 문제를 일으키는 자들과 레반트인들의 동맹이 통치하는 기간에, 어떻게 애굽 신들에 대한 제의가 사라졌는지, 그리고 세크나크테가 자신의 전쟁 또는 반란을 신들에 대한 제사 회복 운동으로 틀 잡았는지 강조한다. 이는 마네토의 주장과 애굽 신들에 대한 야훼의 전쟁이라는 성경의 묘사 모두를 연상시킨다.

이 기록은 문제를 일으킨 자들이 누구였으며, 이들이 애굽을 정복하는데 있어서 외부자인 레반트인들과 함께 하는 것을 왜 편안하게 느꼈는지, 명확하게 보여주지 않는다. 다행히 우리는 이 점에 대해 이와 똑같은 군사 행동을 묘사한 또 다른 기록으로 채울 수 있다.

해리스 파피루스

30미터에 달하는 해리스 파피루스는 현존하는 가장 큰 파피루스이다. 이는 세트나크테의 아들이자 그 나름대로 강력한 바로였던 람세스 3세 시기에 기록된 선전 문서이다. 이 파피루스는 애굽이 어려운 상황이었던 시기 세트나크테의 새 왕조가 수립한 것에 대해 말한다.

▲ 해리스 파피루스Ⅰ ⓒ위키피디아
너희는 들으라. 내가 백성들의 왕으로 있을 때 이룩한 은혜를 너희에게 알리려 한다. 애굽 땅은 버려졌었고, 모든 사람은 (자신의 기준에 따라) 제멋대로 행동했다. 그들은 또 다른 시대에 이르기 전까지 (신의) 대언자가 없었다. 애굽 땅에는 높든지 낮든지 자신의 동료를 살해하는 관료들과 지방 관장들이 있었다(ANET, 260).

애굽의 상태는 점점 나빠졌고, 결국 한 이름 없는 레반트인이 권력을 잡았다.

공허한 시간이 흐른 후 또 다른 시간이 찾아왔고, 그들과 함께 스스로 군주가 된(Irsw) 레반트인(kharru)이 나타났다. 그는 온 땅을 그의 앞에서 속국으로 삼았다. 어떤 사람은 그들의 재산이 약탈당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그의 동료들에게 합류했다.

이르수(Irsu, 스스로 이룬 자)로 묘사된 사람의 비호 아래에 있던 집단은 애굽 신들에 대해 경멸적인 행동을 했다.

그들은 신들을 사람처럼 대했으며 신전에 제물을 바치지 않았다.

신들의 아들로 묘사된 세트나크테는 애굽의 잘못을 바로잡고 애굽 신들에 대한 제의를 재건하기 위해 이 공허함 속으로 걸음을 떼었다.

그러나 신들이 자비를 베풀고 그 땅을 정상적인 상태였던 때처럼 정의를 세우고자 스스로 돌이켰을 때, 그들은 자신들의 몸에서 나온 아들을 세워, 그들의 위대한 왕좌에 앉아서 온 땅의 지배자가 되게 하였다. 왕에게 영생, 번영, 안녕이 있기를!… 레(Re)의 아들, 세트-나크트 메레르-레 메리-아몬(Set-nakht Merer-Re Meri-Amon). 왕에게 영생, 번영, 안녕이 있기를! 그가 격분하게 되었을 때 그는 케프리-세트(Khepri-Seth)였다. 그는 반란이 일어났던 온 땅에 질서를 가져왔다. 그는 애굽에 머물며 마음에 반감을 품은 이들을 죽였다. 그는 애굽의 위대한 왕좌를 정화하였다.

 

▲ 해리스 파피루스에 적힌 세트나크테의 상형문자

만약 이 두 개의 애굽 자료에 기록된 바, 즉 그 중 첫째는 문자 그대로 사건이 발생한 다음 해에 구성된 점과 우리가 이 시기에 대해 알고 있는 요소를 합쳐본다면, 우리는 제19왕조 말기와 제20왕조 초기에 발생한 것에 대한 밑그림을 제공할 수 있다.

이스라엘 크놀 교수/이성훈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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