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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짤’없는 하나님 사랑, ‘짤’ 있는 이웃사랑 2(삼하 23:13-17; 약 4:1-10; 마 10:34-39)창조절 열째 주일(11월7일)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 승인 2021.11.05 16:05

1. 세상에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오늘은 절기상 입동(立冬)입니다. 이제 겨울로 접어들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추운 겨울이 와도 우리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을 통해 더욱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는 지난 11월 1일부터 다니엘 기도회를 통해 추수감사주일 전까지 찬양과 기도, 또한 말씀과 간증 집회를 통해 다시금 예배를 회복하고, 찬양을 회복하고, 기도를 회복하고자 합니다.

사실 우리는 코로나로 인하여 지난 2년 동안 찬양과 통성기도가 부족했습니다. 찬양을 통해 마음 문을 열고 기도를 통해 다시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만나며 식어버린 사명에 열정을 회복하여야 할 것입니다. 다니엘 기도회가 그 중요한 계기입니다. 그 옛날 다니엘처럼 기도의 사람으로 변화되고 나라를 변화시키고, 미래의 비전을 통해 새로운 시대를 열어야 할 것입니다. 

물론 2021 다니엘 기도회의 단점도 있습니다. 말씀의 깊이가 없이, 기본적인 신앙의 도리를 반복적으로 이야기합니다. 기본이 중요하기에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나 바라기는, 말씀에 기초한 기도! 다른 종교를 비하하지 않으면서 하는 간증! 성도를 개인주의적이고 보수적 이데올로기에 매몰시키지 않는 설교! 찬양이 개인은 물론, 이 사회를 그리스도의 주권으로 변혁시키고자 하는 가사가 없음에 안타깝기는 합니다. 아무튼 1만 4천여 교회와 성도들이 분별의 영으로 다니엘 기도회를 통해 배울 건 배우고 버릴 건 버리기를 소망합니다. 아무튼 오늘 말씀처럼 사랑의 실천과 다니엘 기도회의 은혜를 통해 새롭게 변화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지난주 말씀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에는 짤이 없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물론 이웃사랑에는 짤이 있었죠? 이웃사랑에는 그 범위가 끝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원수 사랑의 계명이죠? 오늘 세 본문 말씀도 지난주 말씀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분위기가 약간 다릅니다. 겉모양만 보면, 사랑이 아니라, 싸움입니다. 화평이 아니라, 검을 이야기 합니다.

이렇게 성경은 다양한 관점과 가치관을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을 맥락과 상황 속에서 읽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맥락과 상황에 대한 이해 없이 읽어버리는 성경은 그 의미가 180도 달라질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지난주에 우리는 사랑의 구체적 내용과 결과, 그리고 그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를 살펴보았습니다. 구약의 말씀은 하나님 사랑의 구체적 내용과 그 결과에 대한 말씀이었죠? 곧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인애를 베푸시나,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에게는 당장에 보응하시며 멸하겠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리고 복음서 말씀은 이웃사랑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를 보여줍니다. 바로 원수까지 사랑하며 박해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기까지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따라서 서신서에서 사도 바울은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이러한 사랑의 계명을 위하여 자신이 사도로 택함을 받았다고 소개했습니다.

오늘 세 본문 말씀은 이러한 하나님 사랑에 대한 열정과 방법에 관한 말씀입니다.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은 하나님 사랑에 대한 열정을 소개합니다. 그리고 구약의 말씀은 하나님 사랑에 대한 방법을 다윗의 충성스러운 세 용사를 통해 보여줍니다. 마지막으로 서신서인 야고보서는 이웃사랑도 하나님 사랑이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곧 주 앞에서 낮아져야만 주께서 우리를 높이시고, 그 힘으로 우리가 이웃사랑을 실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먼저 복음서 말씀부터 볼까요?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가족을 원수로 여겨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만큼 열정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볼까요? 원수 사랑을 선포하신 예수님께서 이번에는 세상에 검을 주러 왔다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마 10:34-36) 

놀라운 말씀이죠?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라니요? 사실 오늘 본문 말씀인 마태복음 10장은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선택하여 전도 사역지로 파송하신 내용입니다. 열두 제자들의 명단을 언급하고 복음 전파자의 임무와 자세를 설명하시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 사랑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 사랑을 선포할 때, 적대자들과 마찰을 피하고 온유와 겸손으로 대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세상과 타협하거나 두려워하지 말라고도 당부하십니다. 그리고 여기서 세상은 아버지와 어머니, 곧 가족까지 속합니다. 이렇게 하나님 사랑에는 예외가, 곧 짤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마 10:37-38)
 
이렇게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 사랑의 계명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가족까지 원수로 여겨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말 그대로 하나님 사랑에는 짤이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구약 말씀은 다윗에게 생명 바쳐 충성한 세 용사를 소개하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을 보여줍니다.

2.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오늘 구약 본문 사무엘하 23장 말씀은 사실 다윗의 마지막 말에 해당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과 맺으신 언약을 지키신 사실을 노래하는 장면과 그 뒤를 이어 다윗이 나라를 굳건히 통치해 갈 수 있도록 생명 바쳐 자신을 도와준 3인의 용사들을 회고하는 장면입니다. 말씀을 볼까요?

“또 삼십 두목 중 세 사람이 곡식 벨 때에, 아둘람 굴에 내려가 다윗에게 나아갔는데 때에 블레셋 사람의 한 무리가 르바임 골짜기에 진 쳤더라. 그 때에 다윗은 산성에 있고 그 때에 블레셋 사람의 요새는 베들레헴에 있는지라. 다윗이 소원하여 이르되,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물을 누가 내게 마시게 할까 하매” (삼하 23:13-15)

▲ 다윗의 세 용사

다윗은 블레셋과의 전쟁 중에 고향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물을 마시고 싶어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는 블레셋이 점령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진영에서 베들레헴까지는 20km 정도 되는 거리입니다. 따라서 다윗의 이 말은 고향에 대한 향수이고 블레셋으로부터 베들레헴을 다시 회복시키겠다는 의지입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를 들은 다윗의 세 용사는 생각이 달랐습니다. “세 용사가 블레셋 사람의 진영을 돌파하고 지나가서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물을 길어 가지고 다윗에게로 왔(삼하 23:16a)”습니다. 세 용사가 목숨을 걸고 물을 길어 왔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 물을 마시지 않고 하나님께 드립니다. 왜냐하면 세 명의 용사가 가져온 물은 물이 아니라, 그들의 피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볼까요?

“다윗이 마시기를 기뻐하지 아니하고 그 물을 여호와께 부어 드리며 이르되, 여호와여 내가 나를 위하여 결단코 이런 일을 하지 아니하리이다. 이는 목숨을 걸고 갔던 사람들의 피가 아니니이까 하고, 마시기를 즐겨하지 아니하니라. 세 용사가 이런 일을 행하였더라.”(삼하 23:16b-17) 

다윗은 이 물을 하나님께 드림으로 세 용사의 생명인 피를 하나님께 드린 것입니다. 자신의 목숨까지도 아끼지 아니하고 다윗을 위해 목숨을 건 충성스러운 세 용사의 마음을 알았던 다윗의 마지막 날 고백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사랑에는 우리의 목숨까지도 걸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마 10:39).”

이렇게 우리는 하나님 사랑에는 짤없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열정과 충성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면 됩니다. 그리고 이웃사랑에도 이러한 하나님 사랑에 대한 기본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오늘 야고보 사도는 그것을 우리에게 소개합니다.

3. 미·중 패권 전쟁

먼저 본문 말씀에서 야고보 사도는 이웃사랑이 잘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곧 다툼의 원인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정욕 때문입니다. 따라서 야고보 사도는 사람의 마음에서 분출하는 정욕으로 인해 빚어지는 죄악 된 삶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이 죄악을 범해 타락해버린 불의한 삶의 치유책을 제시합니다. 마지막으로 교만으로 인해 생기는 다툼을 이야기합니다. 말씀을 볼까요? 다툼의 원인을 이야기합니다.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약 4:1-3)

다툼의 본질을 잘 이야기 합니다. 이렇게 다툼은 개인 간에도 있지만, 크게 보면 국가 간에도 있습니다. 미 외교·안보·통일 분야의 싱크탱크인 연세대학교 문정인 명예교수는 『문정인의 미래 시나리오』(청림출판, 2021)에서 달라진 세계 질서와 안보 개념을 분석합니다. 먼저 코로나의 위기에 관해 이렇게 진단합니다.

“인간과 전염병의 조우는 인류 사회의 진화 과정에 내재해왔다. 그리고 전염병의 위협에 대한 우리의 망각이 깊어진 순간, 각종 전염병은 여러 형태로 되살아났다. 이번 코로나바이러스의 엄습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그러나 이번 코로나 사태가 불러온 충격은 아주 깊고 치명적이다. 그리고 이는 우리가 과거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점을 강력히 시사한다.”

▲ 미・중 패권 전쟁의 시작

그리고 이러한 코로나의 위기와 더불어 국제 외교에서의 위기도 언급합니다. 바로 미-중 틈바구니에서 우리가 어떻게 생존해야 하는가입니다. 문정인 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2021년 1월 20일,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한 조 바이든 대통령은 한국 정부에 계속 선택을 요구할 것이다. 미·중 관계가 신냉전 구도로 빠져들수록 미국의 선택 압력은 강해질 것이다. 미·중 관계가 악화하면 현상 유지 전략도 어렵다는 이야기다. 미국의 압력 때문에 중국을 버리고 미국에 전적으로 ‘베팅’할 수 있을까? 이미 지적했지만, 한국과 미국 사이에 중국의 위협에 대한 인식의 간극이 클 뿐 아니라, 미국에 전적으로 올인했을 때 그에 따르는 각종 위험과 비용을 미국이 담보해준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미국과 더불어 중국에 적대적으로 나가기는 힘들 것이다. 줄타기 외교가 갖는 실존적 딜레마다.”

▲ 포스트 코로나 5가지 시나리오

이후 5개의 가능 상황을 제시하며 각각의 장단점을 분석합니다.

① 현상 유지: 미국과 중국 사이 ‘느슨한 비대칭 양극체제’의 유지
② 성곽도시와 새로운 중세: 자급자족적 경제체제와 폐쇄 사회로의 전환
③ 팍스 유니버설리스: 패권주의의 종말, 유엔과 다자주의를 통한 세계 평화
④ 팍스 아메리카나 II: 세계경찰의 위상을 되찾은 미국 중심의 단극체제
⑤ 팍스 시니카: 빠른 경제 회복을 발판으로 세계 질서의 중심에 서는 중국

여러분들은 이 다섯 가지 중 어느 것이 가장 좋은 대안이라고 생각하나요?

4. 주 앞에서 낮추라!

자, 이렇게 국가 간 다툼으로 인해 이웃사랑은 쉽지 않습니다. 패권 국가들이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개인 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야고보 사도는 이러한 이들을 간음한 여인으로 부르며 이렇게 책망합니다.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 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너희는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냐?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약 4:4-6)

여기서 이웃사랑의 비결이 나오죠? 바로 겸손입니다. 낮아짐입니다.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것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이렇게 외칩니다.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약 4:7-10)

하나님 사랑을 통해 이웃사랑을 실천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두 마음을 품지 말고 마음을 성결하게 하고, 주님 앞에 겸손히 나아가면 주께서 우리를 높이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때 우리는 이웃사랑의 힘든 길을 헤쳐 나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현재 코로나의 충격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또한 미-중 신냉전 구도도 아직 굳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앞서 문정인 교수가 소개한 달라진 세계 질서와 안보 개념 다섯 가지 중, 어느 것도 정확한 대안은 아니지만, 그나마 ‘팍스 유니버설리스(세계의 평화)’가 괜찮아 보입니다. 미, 중 패권주의가 종말을 고하고, 유엔과 다자주의를 통한 세계 평화가 이뤄져야 합니다. 이것이 국제관계의 이웃사랑입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러한 혼란한 세계 질서를 바로잡을 기회의 시간이 지금 우리에게 주어졌다는 생각입니다. 코로나 이후 한국의 위상이 달라졌습니다.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평화와 미래는 지금, 이 순간 우리의 선택에 달린 것입니다. 이것이 대륙 세력과 해양 세력 틈바구니라는 지정학적 위치에 있는 한반도의 운명입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챙겨야 할 ‘말썽꾸러기 동생’(북한)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하나님 사랑에는 짤없이 충성하고 최선을 다하되, 이웃사랑에 있어서는 낮아짐과 겸손으로 모든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hak-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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