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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 신학에서 신정통주의 신학으로신정통주의의 성서이해: 칼 바르트를 중심으로 ⑴
최영 소장(기독교장로회 목회와신학연구소) | 승인 2021.11.06 15:50
▲ 칼 바르트 ⓒGetty Image

19세기 개신교신학의 시작이 1799년 F. 슐라이에르마허의 『종교론: 종교를 멸시하는 교양인을 위한 강연』의 출판과 일치한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이 신학의 종말에 대해서는 의견의 일치를 보기가 쉽지 않다. 1900년은 19세기의 마지막을 알리는 해이지만, A. 하르낙의 『기독교의 본질』의 출판과 함께 그 신학의 역사에서 절정을 이룬 해이기 때문이다. 이 놀라운 성취 때문에 19세기 신학은 그 소멸의 징조들에도 불구하고, 얼마동안 그 힘을 발휘하며 존재할 수 있었고, 1910년 무렵 일시적이고 부분적인 슐라이에르마허의 르네상스를 가능하게 했다.

세계대전과 함께 찾아온 자유주의 신학의 종말

그러나 19세기 신학은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더불어 종말의 징후를 보이기 시작했다. 1914년 8월 1일, 독일은 전쟁을 선포하였고, 93명의 독일의 지성인들은 빌헬름 2세의 전쟁정책을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들 가운데는 하르낙과 헤르만을 포함하는 당대 최고의 신학교수들 대부분이 들어 있었다.

바르트는 후에 이 전쟁 지지선언은 인간의 정신과 역사의 진보를 주창한 자유주의 신학의 파산을 알리는 신호였다고 말했다. 자유주의 신학은 인간의 타고난 선함과 완전 가능성, 그리고 낙관적인 역사적 진보에 큰 비중을 두고 있었는데, 결국 세계대전이라는 파국적인 사건을 일으키는 것이라면, 이런 것을 어떻게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바르트와 같은 일단의 젊은 신학자들은 하나님의 ‘타자성’을 강조함으로써 인간중심의 자유주의 신학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확신했다.

자유주의 신학의 종말과 변증법적 신학의 출발

바르트에 의해 시작된 20세기의 새로운 신학운동을 지시하는 두 가지 용어가 있다. 우선 독일어권에서는 ‘변증법적 신학’이란 용어가 사용되었다. 이는 특히 바르트가 『로마서강해』에서 ‘시간과 영원의 변증법’,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변증법’이란 용어를 사용한 데서 비롯되었다. 바르트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는 연속성이 있기보다는 대립이나 변증법적인 관계가 성립된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초기 바르트의 특징적 주장으로서 받아들여진다.

또 하나는 영어권에서 유래한 ‘신정통주의’라는 용어로서 바르트와 17세기 개신교 정통주의자들 사이에 유사성이 있다고 하여 만들어진 말이다. 바르트는 이 시기의 주도적인 개혁파 정통주의자들의 저서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여겨진다. 라인홀드 니버와 니처드 니버, 도날드 베일리, 존 베일리, 토마스 F. 토렌스, 또한 초기의 폴 틸리히 등이 신정통주의의 범주에 포함된다.

이들은 대부분 자기 자신의 독자적인 진로를 걸어갔지만, 현대 세계를 위하여 옛 개신교 정통주의의 핵심이었던 어떤 교리(성서)의 의미를 재발견하려고 했거나, 개신교 자유주의의 낙관적인 가설들을 비판했다는 점에서 신정통주의자들로 분류된다. 바르트는 이러한 신정통주의 운동의 가장 중요한 대변자로서 간주되었다.(1)

바르트는 신정통주의자였나

그러나 바르트의 신학에 신정통주의란 이름을 붙이는 것에는 주저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그는 개신교의 위대한 스콜라적 교의학자들의 정통신학을 집대성한 헤페의 『개혁교회 교의학』과 쉬미트의 『루터교 교의학』을 통하여 종교개혁의 정신을 새롭게 정립할 수 있었다. 또한 그의 『로마서강해』 초판 서문에서 그는 성서역사비판학과 성서 영감설 가운데 양자택일을 해야 한다면, 후자를 택하겠다고 말하기도 하였다.(2)

그러나 그는 이미 정통주의자들의 신학방법과 계시이해, 그리고 성서관의 문제점을 간파하고 있었다. 그는 그 시대의 교의학마저도 이미 올바른 원천이 아니라 당대의 철학들로부터 취한 형태와 너무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정통주의의 영웅들은 고대와 중세 교회의 전통을 채택하려는 시도에서 하나님과 구원에 대한 개혁교회의 지식을 조만간 위태롭게 할 전제들을 지나치게 많이 도입했다는 것이다.(3)

그래서 그는 그들을 존경하지만, 특히 계시와 성서에 대한 이해만큼은 그들을 따르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들이 만들어낸 이해력의 도식적 체계로 계시를 완벽하게 통달할 수 있다고 했고, 특히 성서관에서 너무 극단적이어서 신비에 가득 찬 계시를 마치 하나의 간단한 지적 원리로 전락시켰기 때문이다. 따라서 바르트는 개신교 신학의 모든 발전은 16세기 개혁자들로부터, 그들의 성서주해를 통하여 다시 시작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에게 정통주의는 이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하나의 기착지에 불과했다.(4)

그는 사람들이 자신을 ‘신정통주의자’라고 부를 때 단지 웃을 뿐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그 자신에 대해 신정통주의자라는 낙인을 찍는 사람들은 어떤 편견에 사로잡혀 정통주의를 전혀 읽지 않았지만, 자신은 정통주의를 읽을 만큼 자유롭고, 또 그 결과 거기서 몇 가지 좋은 점을 발견해낼 수 있었다고 말한다.(5) 이런 점에서 그는 엄밀히 말하면 17세기의 정통주의를 재건시킨 ‘신정통주의자’는 아니었다.

그는 정통주의를 넘어 종교개혁의 정신을 새롭게 되살려낸 종교개혁 신학자였고, 성서와 복음의 진리를 새롭게 해명해낸 ‘성서적, 복음적 신학자’라고 불려야 할 것이다.(6) 그러나 일반적으로, 특히 영미권의 많은 신학사를 다룬 서적들은 바르트가 주도한 20세기의 새로운 신학운동을 지칭할 때 신정통주의라는 말로 통칭하였다. 그래서 여기서는 바르트를 신정통주의자로 분류하는 것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사람들이 바르트에게서 발견했던 정통주의적인 요소를 계시와 성서이해를 중심으로 살펴보고, 바르트가 어떻게 정통주의를 넘어 종교개혁의 정신을 되살려냈는지를 다음 글부터 살펴보려고 한다.

미주

(미주 1) Alasdair I. Heron, A Century of Protestant Theology(Philadelphia: Westminster Press, 1980)을 참고. 물론 바르트를 ‘신정통주의자’라고 부르는 것에 대한 강한 반발이 있다. 정승훈은 마르크바르트, 브루스 맥코맥 등의 바르트 연구를 토대로 오랫동안 북미의 학계를 지배하던 ‘신정통주의적 바르트의 해석’은 “바르트 자신이 서 있던 ‘신학의 실존’과 “사회주의적 실천” 혹은 “초기 저작을 무시하고, 그의 변증법의 사회적 측면을 무시해 온 허구에 찬 것”이라고 비판한다. 정승훈, 『칼 바르트와 동시대성의 신학』(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6), 21-51을 참고.
(미주 2) K. Barth, Der Römerbrief, tr. by E. Hoskins, The Epistle to the Romans(London: Oxford University Press, 1972), 1.
(미주 3) 칼 바르트가 추천사를 쓴, H. Heppe, Reformierte Dogmatik, 이정석 옮김, 『개혁파 정통 교의학』(서울: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2006), 11.
(미주 4) Ibid.
(미주 5) K. Barth, Letzte Zeugnisse, 정미현 옮김, 『마지막 증언』(서울: 한들, 1997), 36-7.
(미주 6) ‘성서적, 복음적 신학자’는 스코틀랜드의 바르트 해석자 T. F. 토랜스가 자신의 칼 바르트의 신학연구서에 붙인 제목이다. T. F. Torrance, Karl Barth: Biblical and Evangelical Theologian(1990), 최영 옮김, 『성서적, 복음적 신학자』(서울: 한들,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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