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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일체에 대하여채수일 목사와 함께 하는 주제로 읽는 성경 ㊴
채수일 목사(경동교회) | 승인 2021.11.09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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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일체’, 곧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 그리스도, 성령은 세 위격(persons)으로 존재하면서, 동시에 본질(essence)은 한 분 하나님이라는 교리를 의미합니다.

그리스도교는 여러 가지 교리를 가지고 있지만, 그 가운데 어쩌면 삼위일체 교리야말로 가장 오랜 신학적 논쟁을 거쳤고, 지금도 완전히 일치된 의견을 보이지 않고 있는, 이해하기 어려운 교리입니다. 다른 문제는 삼위일체라는 단어가 성경에는 등장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고, 삼위일체(Trinity)라는 신학적 개념은 200년 경 라틴 교부였던 터툴리아누스에 의해 처음 사용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약성경 마태복음서 28장에,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대위임령,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마 28,19)는 말씀은 이미 초대교회 안에서 삼위일체적 신관이 알려져 있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또 요한복음서에서 ‘나를 본 사람은 아버지를 보았다’(요 14,9),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면서 자기의 일을 하신다’(요 14,10) 등의 말씀도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됨을 선언하는 말씀입니다.

삼위일체론은 비록 성경에 명시적으로 언급되지 않고 간접적으로 암시되었고, 후에 교리가 되었지만, 삼위일체론은 그리스도교 신론과 그리스도론, 성령론을 이해하는데 결정적으로 중요한 개념이면서, 그리스도교 신관을 다른 종교들로부터 구별하는 결정적인 신학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삼위일체 교리가 언제, 그리고 왜 형성되었는지, 그리스도교를 다른 종교와 구별 짓는 독특한 삼위일체 신관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 2 >

모든 교리와 신학이 그렇듯이 삼위일체론도 그리스도교의 정체성에 대한 도전에 대한 응답에서 시작되고 형성되었습니다. 삼위일체론은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인가? 그 분은 무슨 일을 하셨는가? 라는 그리스도론적인 질문을 중심으로 전개된 논쟁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의 관계에 대한 질문에서 비롯된 것이지요. 초대교회에게 가장 강력한 도전은 당시, ‘가현설’을 주장하는 이단에게서 제기되었습니다. 가현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현현으로 보는데,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하나님의 영이 예수님의 몸을 떠났다고 주장합니다. 하나님은 죽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삼위일체적 신론에 대한 도전은 유일신 신앙을 견지하는 유대교와 이슬람에서도 제기되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교가 세 신을 믿는다고 오해하면서, 삼신론은 신성모독이라고 주장합니다. 유대교와 이슬람은 예수님이 그리스도, 구세주이심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위대한 예언자, 지혜로운 교사라는 점에는 의견이 일치하지만, 예수님이 곧 하나님 자신이시다는 주장은 받아드리지 않습니다.

만일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시다는 주장을 수용하면,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고통받으셨을 때, 하나님도 고통을 받으셨어야 하고, 예수의 죽음과 함께 하나님도 죽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당시 이단으로 정죄된 ‘성부수난설’입니다. 그러나 신은 영원하고 불멸의 존재이니, 고통받거나 죽을 수 없다는 것이지요.

이런 이단들의 도전에 직면하여,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관계,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예수님의 관계, 그리고 후에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관계를 신학적으로 정립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성부, 성자, 성령, 세 위격(persona)은 서로 구별되면서도 본질이 같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각 위격 사이에 우열은 존재하지 않으며, 세 위격 모두 온전한 하나님이라는 것이지요. 성부가 성자를 낳았고, 성부에게서 성령이 발현하기 때문에, 하나이면서 셋이고, 셋이면서 하나인 존재가 삼위일체적 신론입니다.

그런데 일반적인 오해 가운데 하나는 삼위일체를 위계적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아버지에게서 아들이, 아들에게서 성령이 나오는 수직적 위계질서로 파악하는 것이지요. 이것을 신학적으로는 ‘역동적 군주신론’이라고 합니다. 역동적 군주신론은 성자가 성부와 동일본질인 것을 부인합니다. 예수님은 본래 인간이었고, 후에 하나님의 양자로 채택되었다는 것이지요. 이런 군주신론의 다른 문제는 가부장제를 정당화하고, 하나님과 성령의 여성성이 배제된다는 것이기에, 여성신학으로부터도 비판을 받습니다.

▲ 19세기에 제작된 비엔나 Altlerchenfelder Church에 제단 뒤에 위치한 Holy Trinity 프레스코화 ⓒGetty 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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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일체가 그리스도교의 정통적인 신론으로 채택된 것은 325년에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소집한 니케아 공의회에서였습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관계에 대한 신학적 논쟁, 그 자체에는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황제는 신학적 다툼으로 교회들이 분열되는 것을 막고, ‘하나의 황제, 하나의 제국, 하나의 교회’라는 이데올로기를 정립하는데 더 관심이 있었습니다. 황제 편에 선 주교들은 ‘성자와 성부는 동일한 실체다’라고 결론을 내림으로써 분란을 종식시켰고, 동시에 삼위일체론의 기본개념을 정리한 것입니다.

니케아 신경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는 한 분이신 하느님을 믿는다. 그분은 전능하신 아버지이시며, 유형무형한 만물의 창조주이시다.

그리고 우리는 한 분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그분은 하느님의 외아들이시며, 아버지에게서 나셨으며, 곧 아버지의 신적 본체에서 나셨다. 하느님에게서 나신 하느님이시며, 빛에서 나신 빛이시며, 참 하느님에게서 나신 하느님이시다. 그분은 창조되지 않고 나셨으며 아버지와 한 본체로써 같으시다. 그분으로 말미암아 만물이, 하늘에 있는 것들이나 땅에 있는 것들이 생겨났다. 그분은 우리 인간을 위하여,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내려오시어 육신을 취하시고, 사람이 되셨으며, 고난을 받으시고, 셋째 날에 부활하시고, 하늘로 올라가셨으며, 산 이와 죽은 이들을 심판하러 오실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성령을 믿는다.

여기까지는 니케아 신경보다 일찍이 로마 교회에서 세례자 교육에서 고백된 “사도신경”과 내용이 비슷합니다. 그러나 니케아 신경의 마지막 부분에는 예수님의 인간성을 강조한 아리우스를 이단으로 정죄하고, 저주하는 문장이 덧붙여졌습니다:

“‘그분이 존재하지 않은 시대가 있었다’, ‘나시기 전에 존재하지 않았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또는 비존재에서 생겨났다거나, 다른 히포스타시스(Hypostasis, 본체) 또는 우시아(ousia, 본질)에서 존재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또는 하느님의 아들은 창조되었으며, 변할 수 있으며, 달라질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편교회는 저주한다.”

니케아 공의회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정치적 목적에서 소집된 회의였지만, 신학적으로 이단논쟁을 일단락하고 삼위일체적 신관을 정립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서방교회에서 정치권력이 교회와 신학적 문제에 깊이 개입하는 것을 정당화시키는 심각한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 4 >

초대교회의 삼위일체론은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단일성을 문제시하는 위험한 이단을 방어함으로써 형성되었습니다. 논쟁을 통해서, 논쟁의 과정에서 삼위일체 교리가 생성된 것이지요. 그리고 삼위일체론을 이론적으로 정립하기 위해, 철학적 개념들을 신학적으로 개조했던 것입니다.

그후 니케아 공의회, 콘스탄티노플 공의회를 거쳐, 성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해 어느 정도 정립된 삼위일체론은 현대 신학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논쟁적인 신학 주제입니다.

그러나 크게 보아 삼위일체론은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의 내재적 관계를 나타내면서, 동시에 한 분이신 하나님의 자기계시의 다양성을 나타낸다고 하겠습니다. 다시 말해 삼위일체론적 신론은 가부장적이고 위계적인 군주신론이나, 삼신론이나 범신론, 양태론이나 가현설 등을 극복하면서, 동시에 인간과 자연과 맺는 하나님의 관계의 다양성과 풍요로움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신론이라고 생각합니다.

삼위일체 교리는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본질적 통일성을 주장합니다. 이리하여 그리스도가 신적으로 이해될 뿐만 아니라, 하나님도 그리스도적으로 이해됩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없이 파악될 수 없으며,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없이 이해될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신을 계시하신 하나님, 성령을 통하여 자기 피조물과 사귐을 가지시는 하나님이시지요. 사귐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본질과 의도입니다. 하나님 자신 안에서 아들과 성령과 교제하시고, 인간을 그의 사귐 안으로 초대하시며, 자연과 인간의 세계 안에서 자신을 정의롭고 생명력 있는 공동체의 원형으로 삼습니다.

그러므로 삼위일체론적 신론은 중앙집권적 군주론적 신론이나, 일신론(一神論)과 달리, 민주적이고, 공동체적이며, 평등하고, 다양하고 풍요로운 생명 공동체를 가능하게 합니다. 왜냐하면 신적인 위격은 서로를 위하여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위하여 존재하고, 아들은 아버지를 위하여 존재하며,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을 위해 존재합니다. 이렇게 서로를 위하여 존재하는 삼위일체 하나님이 인간과 자연을 그의 내재적 사귐으로 초대하십니다. 그 초대에 응답하는 그리스도인은 그러므로 하나님과 이웃, 그리고 자연과의 사귐의 관계에 있는 것입니다.

채수일 목사(경동교회)  sooilcha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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