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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 이야기의 원형출애굽: 이야기 뒤편의 역사 ⑶
이스라엘 크놀 교수/이성훈 | 승인 2021.11.11 16:49
이스라엘 크놀(Israel Knohl) 교수는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교에서 성서학 분야 Yehezkel Kaufmann 교수로 재직하고 있고 Shalom Hartman 연구소 선임 연구원이다. 크놀 교수는 히브리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크놀 교수는 성서학 분야 연구자들에게 수여되는 Z. Shkopp 상을 받은 『The Sanctuary of Silence』와 『The Messiah before Jesus: The Suffering Servant of the Dead Sea Scrolls』 등을 포함 다수의 책들을 저술했다. 이번에 번역 소개하는 크놀 교수의 이 논문은 출애굽 이야기의 형성 및 역사성을 논증한 것이다. 번역에는 한신대 구약학 박사과정에서 연구 중인 이성훈 목사가 수고해 주셨다. - 편집자 주

두 이야기를 합치기

세티 2세 통치를 시작으로 시프타와 타우세르트의 통치기를 거치며 애굽은 쇠퇴했다. 기원전 1188년경 타우세르트가 확실한 후계자 없이 죽었을 때, 애굽은 내부 분쟁에 빠져들었다. 이후 “스스로 이룬 자”라는 뜻의 ‘이르수’라고 언급된 레반트 출신의 어떤 인물이 애굽 통치권을 탈취했다.

▲ 이르수 상형문자와 뜻

이르수는 애굽인들의 제의를 경멸했으며, 애굽 신들에게 제물 바치기를 금지했다. 이르수는 금과 은을 지불해 레반트 출신, 즉 시리아, 레바논 혹은 가나안 출신 사람들을 동맹군으로 불러들였다. 제20 왕조의 창시자인 세트나크테는 나라를 점령한 이 이방인과 그의 동맹군에 맞서 싸웠으며, 그들을 몰아내고 애굽 신들에 대한 제의를 재건하는데 성공했다.

이르수의 정체

그러면 이르수는 누구인가? 오랫동안 학자들은 이르수가 시프타를 왕위에 올렸던 강력한 레반트인 권력자 배이(Bay)일 수밖에 없다고 추정했다. 이 가설은 시프타와 타우세르트가 죽은 후, 애굽에서 가장 강한 권력을 가졌던 배이가 스스로 왕권을 차지하기로 결심했고, 그의 개인적 종교 선호에 따라 개혁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시프타가 그의 통치 5년째에 배이를 반역자로 처형했기 때문에 우리는 이 가설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알고 있다. 따라서 배이는 그의 사후 몇 년 뒤에 왕위를 찬탈한 이르수가 될 수 없다. 대신에 나는 이르수와 모세를 동일시해야만 하며, 성경 이야기에는 권좌에 오르는 이르수에 대해 설명하는 사라진 부분이 포함되어 있다고 제안한다.

토라의 모세와 세트나크테의 이르수

출애굽기 2장에 따르면, 모세는 이스라엘의 지도자였지만 바로의 딸에게 입양되어 왕궁에서 양육된다. 바로의 딸이라는 설정은 타우세르트를 기반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녀는 아마도 이복형제인 바로 세티 2세의 아내가 되기 전에 바로 메르넵타의 딸이었다. 세티 2세와 타우세르트 사이에는 유년기에 사망한 딸이 분명히 한 명 있었고, 다른 자식은 없었다.

▲ 제사를 지내는 타우세르트 부조 ⓒ위키피디아

모세는 애굽식 이름이고, 출애굽기에 따르면 그를 입양한 어머니에 의해 붙여졌다. 그 이름은 ‘아들’을 의미하는데, 람세스(태양신 라의 아들), 투트모세(지혜의 신 토트의 아들), 아모세(달의 신 라의 아들) 등과 같은 이름에서 볼 수 있는 애굽 신의 이름이 앞에 붙지 않기 때문에 특이하다. 따라서 모세는 그 누구의 아들도 아니다. 이는 해리스 파피루스에서 찬탈자를 “스스로 이룬 자”, 즉 누구의 아들도 아니라고 부르는 점과 상당히 잘 맞는다.

▲ 왕들의 이름 상형문자

비록 모세는 궁전에서 자랐지만, 그는 크하루(Kharru)에 속한 이르수와 마찬가지로 레반트 출신(히브리/이스라엘)의 이방인이다. 이 이중 정체성은 이르수의 부상을 설명하는데 도움이 된다.

타우세르트가 후계자 없이 죽었을 때, 모세/이르수는 스스로 바로의 왕위를 계승하여 오르기에 적합한 인물이라고 보았다. 이르수는 이를 실행하기 위해 애굽에서 지배당하는 이방인이었던 자기 백성들을 징집했고, 금과 은을 지불하고 외국에서 원군을 데려왔다.

애굽 내 반대 세력들 간의 권력 투쟁이 뒤따랐다. 모세와 패배한 그의 부하들은 애굽에서 추방되었고 가나안으로 떠났다. 이것은 또한 우리에게 이 탈출이 특정한 해, 세트나크테 통치 2년째인 기원전 1186년에 일어났음을 알려준다.

이야기의 두 가지 버전

이르수와 세트나크테 사이의 전쟁은 이와 관련된 모든 이들에게 트라우마를 남겼으며, 각 집단은 그것을 매우 다른 방식으로 기억했다. 애굽의 관점에서 보면, 애굽의 신들을 경멸하고 신성한 동물들을 도륙하면서도 애굽에 거주하던 이방인 집단이, 애굽을 점령하려고 시도했고, 심지어 애굽을 침략하기 위해 외부인들에게 돈을 지불했다. 그들은 잠시 동안 성공했지만, 강력한 애굽 출신의 장군이 반격을 이끌었으며, 질서와 적절한 제의를 회복하고 다음 바로가 되기 위해, 결국 이르수와 그의 크하루를 애굽 땅에서 몰아냈다.

이스라엘인들 또한 이 이야기를 기억하였다.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애굽인들은 이방인이라는 이스라엘의 상황을 이용해 그들을 지배하고 학대했다. 마침내 왕궁에서 성장한 모세가 일어나, 애굽인들과 그들의 신들이 자기 백성들을 대하는 방식을 파괴했다.

그는 백성들에게 숫양을 잡으라고 명령했는데, 이는 애굽인들에게 신성하게 여겨진 것이다. 이로 인해 그는 그들 자신의 신 야훼에 대한 참된 제의를 회복하였고, 이스라엘인들과 그들의 동맹과 함께 금과 은과 무기와 명성을 가지고 애굽 밖으로 행진했다. 이 사건으로부터 출애굽 이야기가 탄생했다.

이스라엘 크놀 교수/이성훈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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