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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교회 어때요?평안을 얻는 공간(로마서 12:9-13)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 승인 2021.11.14 12:06
▲ 아무런 조건 없이 사랑으로 교제하는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 교회이다. ⓒGetty Image
9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10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11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12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13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코로나 유행이 시작된 지 2년이 다 되어갑니다. 얼마 전에 아파트 게시판에 붙은 게시물을 보다가 1년 전부터 붙어있던 ‘마스크 착용 의무화’ 포스터를 보게 되었습니다. 꽤나 오래 동안 마스크를 착용했던 것 같은데 마스크 착용 의무화가 시행된 것이 작년 11월 13일이었습니다. 딱 1년 전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분명 우리의 일상을 바꿔놓았습니다. 코로나 치료제가 보급되고 상황이 나아진다면 다시 예전으로 되돌아갈 모습들도 있습니다. 사람들 간의 만남이나 해외여행 문화는 다시 예전처럼 이루어지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지 않을 부분들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대표적으로 예전과 같은 회식 문화는 거의 사라질 것으로 보입니다.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다시 극장을 찾는 사람들은 늘어나겠지만, 집에서 영화나 드라마를 시청하는 사람들이 크게 줄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넷플릭스나 디즈니+ 같은 OTT 사업은 계속 이어질 것입니다. 식당을 찾는 사람들은 다시 늘어나겠지만, 배달 문화가 사라질 것 같지도 않습니다.

작년 코로나 상황이 시작되었을 때, 회사에 다니던 한 친구가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사회가 완전히 뒤바뀐 것이 아니라 원래 차근차근 바뀔 모습들이 조금 일찍 바뀌게 되었을 뿐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이런 판단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코로나는 변화의 시기를 앞당겼을 뿐이지 코로나로 인해서 사회 문화가 송두리째 바뀐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급격하게 변한 것은 사회 문화뿐만이 아닙니다. 우리 교회들도 급격한 변화를 피할 수 없었습니다. 코로나 이전부터 교회의 위기, 한국 교회의 위기라는 이야기는 많이 해왔습니다. 대부분의 교단 총회에 보고되는 성도 감소세를 보며 4-5년 안에 작은 교회들부터 시작하여 폐교회나 합병 붐이 일어날 것이라는 예측들이 쏟아졌습니다.

그런데 코로나는 교회가 가지고 있던 몇 년의 유예마저도 빼앗아 갔습니다. 상당히 많은 교회는 코로나 이후 어려움을 이겨내지 못하고 쓰러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좋겠지만 어쩔 수 없는 분위기일 듯합니다.

교회가 쓰러져간다는 문제도 있지만, 교회 자체에 대한 문제, 예배의 형태에 대한 문제도 있습니다. 교회는 무엇인지, 어떤 예배가 올바른 예배인지 계속 고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코로나 초기 대면예배가 금지되었을 때 많은 목회자들과 신학자들은 이 문제를 고민했습니다.

당시에 예배는 무엇인지, 교회는 무엇인지에 대해 많은 글이 쏟아졌습니다. 이와 관련한 설교들도 많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제가 생각했을 때 아직도 지금 시대의 교회와 예배에 대한 명쾌한 정의는 내려지지 못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에 관한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는 것인지 애써 외면하고 있는 것인지, 교회와 예배에 관한 이야기들이 많이 보이지 않아서 조금 안타까운 생각도 듭니다.

지금 교회의 상황 속에서 예배는 무엇인지 고민스럽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대면예배가 어려웠을 때, 어쩔 수 없이 설교 영상을 만들어서 올리고 가정예배로 대체해서 예배를 드려왔습니다. 집에서 예배 영상을 보는 것을 예배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인지, 교회에 오지 않아도 하나님을 믿으며 살아간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인지, 저는 개인적으로 고민스럽습니다. 우리가 이미 이런 예배를 드려왔기 때문에 이를 무조건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배의 형태에 관한 문제를 넘어서 예배가 무엇인지를 근본적으로 따져보았을 때도 이런 형태의 예배가 잘못되었다고 말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로마서 12장 1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드릴 예배라고 말합니다. 이 이야기는 2절에서 의미가 분명해집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라.”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새롭게 변화되어 세상을 살아가라는 의미입니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 뜻에 맞는 삶을 살아가는 일 자체가 예배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사도 바울이 전한 것은 근본적인 신앙인의 자세입니다. 신앙인은 교회에 모여서 예배드리는 사람들이 아니라 삶에서 하나님의 뜻을 펼치며, 모든 삶을 하나님께 바치는 이들입니다.

이 말씀만 본다면 우리가 교회에 모여야 할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가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펼치고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하는 것이 예배라면 우리가 꼭 교회에 나와서 예배드릴 이유는 없지 않을까요?

어쩌면 우리가 그리스도의 뜻을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모르기 때문에 교회에 나와서 배워야 한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인터넷을 통해 얼마나 많은 설교를 볼 수 있습니까? 어떤 본문이라도 인터넷에 검색해보면 설교문이나 설교 영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꼭 교회에 나오지 않더라도 인터넷이나 다양한 매체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배울 수 있을 듯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교회에서 모이는 이유, 교회라는 공동체의 의미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이어지는 사도 바울의 이야기 속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4-5절을 보면,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었고 각각의 지체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모여야 할 이유는 아닙니다. 우리가 모여서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었고 그 안에서 각각의 능력에 맞는 일을 하기에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어 한 몸을 이룬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는 우리의 모임이 추구해야 할 방향이지 우리가 모여야 할 이유 자체는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우리가 교회에 모여야 하는 이유는 그 뒤에 이어지는, 오늘 저희가 읽은 본문 안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도 바울은 거짓 없는 사랑을 형제에 건네고,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라고 말합니다. 여기에서 형제는 실제 가족보다는 교회 공동체 안에 속한 사람들을 의미할 것입니다. 물론 넓은 의미에서 실제 가족도 포함될 수 있을 것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편하게 있을 수 있는 곳을 찾게 됩니다. 세상 속에서 우리는 너무나 많은 생각을 해야 하고 고민을 해야 합니다.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우리의 업무들 속에서 고민은 끊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런 생각을 안 해도 되는 공간을 찾게 됩니다. 아마도 많은 분들에게 집이 그런 공간일 것입니다. 물론 때로는 집이 불편한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는 불편함이 없는 공간이 되어야 합니다. 서로 거짓 없이 사랑만을 주기에 상대방과의 관계를 고민할 이유도 없고, 관계들 속에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공간이어야 합니다. 저는 이것이 교회라는 공동체가 존재하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꽤나 오래된 게임이긴 합니다만 ‘리그 오브 레전드’라는 게임이 있습니다. 영어 알파벳을 줄여서 롤이라고 부르는 게임입니다. 예전에 중고등부 학생들에게 교회가 무엇인지를 이야기하면서 이 게임을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이 게임은 5명이 한 팀이 되어서 내가 선택한 캐릭터로 상대방 진영을 부수는 게임입니다. 싸움을 하다보면 체력이 떨어지기도 합니다. 이때 자신의 진영 제일 구석으로 오면 체력을 다시 채울 수 있습니다.

교회는 이런 곳입니다. 세상에서 지친 우리의 영혼을 다시 회복하는 공간입니다. 무엇이 우리의 마음을 회복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회복시켜줄까요? 말씀도 중요합니다만 성도님들 간의 사랑, 우리가 나누는 사랑이 우리의 마음을 회복시킵니다.

이런 사랑은 조건이 없는 사랑입니다. 세상에서 우리가 누군가를 좋아하고 만남을 갖을 때 분명 조건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유 없이 누군가를 좋아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내가 무언가를 얻을 수 있으니까 상대방에게 사랑을 주게 됩니다. 하지만 교회에서 나누는 사랑에는 조건이 없습니다. 그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의 지체로 모여 있기에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이루어지는 만남에는 고민도 없고 스트레스도 없습니다. 당연히 다툼도 없습니다.

이런 사랑을 나누는 공간이기 때문에 오늘 본문 12절이 말하는 바와 같이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고 견딜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이후에 사도 바울이 이야기한 항목은 사랑을 표현하는 구체적인 행동들입니다. 항상 기도하며, 부족한 사람을 돕고, 손님을 대접하기에 힘쓰는 일입니다.

저희가 가정예배로 드리고 있던 때에 교회는 기도하는 공동체이기 때문에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서로가 서로를 위해 기도한다면 교회는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우리가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일의 근간에도 사랑이 있을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기 때문에 서로를 위해 기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최근 많은 이들이 교회를 떠나갔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그 사랑의 나눔을 유지하고 있다면, 여전히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있다면, 이들이 세상에서 지쳤을 때 다시금 교회를 찾아오리라 생각합니다. 다시 마음의 회복을 바라며 교회를 찾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언론이나 이런저런 매체를 통해 보는 바와 같이 교회 안에 다툼의 소식을 듣게 되고, 조건 없는 사랑이 아닌 무언가를 얻길 바라며 관계를 맺고 있는 성도들의 모습을 사람들이 계속 보게 된다면, 이들은 결코 교회로 돌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교회는 더 이상 마음을 내려놓고 편하게 위로받는 공간이 아니라 또 다른 고민과 스트레스를 얻게 되는 불편한 공간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오직 조건 없는 사랑, 거짓 없는 사랑을 주고받는 공동체가 되길 원합니다. 누구라도 이곳에 있는 동안은 아무런 염려도 하지 않고, 서로의 관계를 고민하지도 않고 그저 평안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 되길 원합니다. 그리고 마음에 평안을 채우고 사랑을 채우고 다시 세상에 나갈 수 있는 공간이 되길 원합니다.

우리가 이런 공동체를 이루어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더 큰 사랑으로 채우실 것입니다. 내가 남에게 베푼 사랑보다 더 큰 사랑으로 우리 마음을 채우시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에 평안으로 가득 채우실 줄 믿습니다. 또 우리는 참된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게 될 줄 믿습니다. 서로 사랑합시다. 그리고 서로의 사랑을 받읍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참된 교회로 세워주실 것입니다.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joey8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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