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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음에 심으려고 하신 법하나님은 한결같은 사랑으로(예레미야 31,1-6; 마가복음 8,1-10)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 승인 2021.11.17 16:45
▲ Bartolomé Esteban Murillo, 「The Miracle of the Loaves and Fishes」 (1667-1682) ⓒWikipedia

지금까지 인간의 역사는 불행하게도 결코 밝지 않습니다. 전쟁으로 대표되는 어두운 역사는 반복되었고 ‘좋다’고 말할 수 있는 평화의 시기는 그다지 많지 않아 보입니다. 물질문명의 진전과 함께 개인의 자유 역시 확장되어 왔으나 이에 반하는 일들도 함께 증대되어 왔습니다. 새로운 형태의 억압이 광범위하게 행해지고 불평등이 확대되고 자연 약탈과 파괴로 기후위기가 초래되었고, 또한 새로운 질병의 출현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때문에 지금은 지구의 미래가 불확실할 정도로 위기가 심각해졌습니다.

그런데도 이러한 길을 계속 간다면, 인간은 어리석거나 우매한 존재일 것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놓고 보면 매우 현명한 것 같은데, 전체적으로는 그렇다고 말할 수 없으니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실상이고 한계일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에게 미래가 있을까요? 어떻게 해야 보다 밝은 미래를 맞이할 수 있을까요? 이러한 물음들이 우리를 짓누르는 요즈음입니다.

그렇다고 이에 대한 직접적인 답변을 하려는 것은 아니고 또 하려 한다 해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다만 그에 이르는 길이 있을지를 묻고자 함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고 약속했지만 그들의 역사로 이를 배반했습니다.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겠다고 하셨던 하나님은 인내하시며 오랫동안 그 관계를 유지하려고 애를 쓰셨지만,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삶의 태도를 끝까지 고집한 탓에 하나님의 노력은 성과를 얻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분노하신 하나님에게 심판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분노를 그의 폭풍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분노가 얼마나 컸던가를 이로부터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심판당한 이스라엘에게 때가 오면 나는 이스라엘 모든 지파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폭풍이 일 듯 분노하셨던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실 수 있을까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비록 이스라엘을 그들의 죄와 불의 때문에 벌하셨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과의 오래된 그 약속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이에 따라 그들과의 관계를 복원하려고 하십니다. 어쩌면 이스라엘은 그 관계에 관심을 기울인 적이 없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무엇 때문에 그 관계를 복원하려고 하시는 것인지요? 복원시키신다 해도 또다시 그 관계는 파국에 이르지 않을까요? 이스라엘의 역사를 알면 누구나 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관심이 없는데 하나님만 홀로 그러시는 것 아닐까요? 다분히 그래 보입니다.

하나님은 그 이스라엘에게 과거를 연상시키는 말로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안식을 찾아 나섰을 때 멀리서 그들을 찾아와 그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자기를 찾기 전에 멀리서부터 그들을 찾아오신 하나님입니다. 그 이유는 복잡할 리 없습니다. 마치 탕자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던 아버지가 멀리서 그를 보고 달려가 끌어안았던 것과 같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계약을 맺기 훨씬 전부터 그들의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은 그가 심판하신 이스라엘에게 이렇게 말씀하심으로 이스라엘에 대한 속마음을 드러내셨습니다. 그 때가 언제인지 알 수는 없지만, 하나님은 그와 같은 마음으로 다시 한 번 이스라엘과 관계를 시작하시려고 하십니다. 이를 가리켜 하나님은 그들에 대한 사랑이 영원하며 한결같다고 하십니다. 그들의 배반에도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이며 그들을 심판했음에도 흔들리지 않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그 사랑에는 이유가 없습니다. 다만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있기만을 바라는 마음이 전부입니다.

하나님은 망한 이스라엘에게 지친 몸을 일으켜 세우시고 힘을 주셔서 흥겹게 춤출 수 있도록 하시겠다고 하십니다. 심판당한 그들의 마음이 돌아설까요? 자신들의 잘못 때문이었다고 하나님께 용서를 빌까요? 설령 그렇게 하고 하나님 앞에서 춤출 수 있다 하더라도 그게 얼마나 오래갈 지는 장담할 수 없는 일일 것입니다. 역사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이스라엘은 과거로 돌아갈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똑같은 역사가 반복되어도 좋으시다는 것일까요? 이런 경우에도 하나님의 한결같은 사랑을 이야기 하면 그 사랑은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를 피할 다른 길을 모색하십니다. 그때가 되면 사람들의 마음에 그의 법을 새겨주심으로 그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게 할 것입니다. 다시 하나님을 알아라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말할 필요가 없게 하실 것입니다. 이렇게 맺어진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는 다시 과거와 같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이렇게 이루실 것이기에 하나님은 그 사랑이 한결 같다고 하십니다. 바로 이 사랑이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는 흔들릴 수 있어도 하나님의 그 사랑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우리는 넘어질 수 있어도 하나님은 그 사랑으로 우리를 일으키시고 우리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그 사랑이 우리를 그 관계 속에 머물게 하고 그 사랑으로 우리가 새로워지고 그 사랑이 우리 가운데서 열매 맺기를 빕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 때는 그의 아들 예수에게서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죽음으로 우리 가슴에 하나님의 그 사랑의 법이 새겨졌습니다. 그 사랑이 우리 삶의 동력이 되고 우리를 사랑으로 이끌어갑니다.

그의 사랑을 오늘의 본문은 특별한 방식으로 보여줍니다. 예수 주변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거기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보도되지 않지만 병을 고치고 말씀을 가르치시는 것이 보통 하시던 일이므로 여기서도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덧 사흘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 사흘은 몸의 병이 낫고 말씀으로 마음이 풍성해지는 기쁨의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먹을 것이 떨어졌습니다. 언제 떨어졌는지 모르겠으나 그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문제가 될 정도였으니 식사를 건너뛰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식사도 문제가 되지 않을 만큼 사람들이 예수께 몰입했던 시간입니다. 예수께서는 배고픔도 잊고 그와 함께 있는 그들 때문에 불쌍한 마음이 되었고, 그들이 돌아갈 길이 염려되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예수께서는 전에 있었던 오병이어의 기적을 여기서 재현하십니다. 제자들이 가지고 있던 것은 떡 일곱 개와 작은 물고기 몇 마리가 전부였습니다. 그것들을 수 천 명의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셨습니다. 모자라지 않았습니다. 그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기적의 나눔을 가능케 했습니다. 불쌍히 여기는 예수의 마음이 나눔의 기적을 통해 그들의 마음에 전달되고 심어졌을 것 같습니다. 그들 속에 자리 잡은 예수의 마음이 그들을 변함없는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 들어가게 했을 것입니다. 그들이 나눠받은 것에는 이처럼 떡과 물고기뿐만 아니라 예수의 마음도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심으려고 하신 법이 바로 이 마음속에 있는 것 아닐까요? 그의 마음에 사랑의 법이 있습니다. 그의 나눔에 배려와 정이 있습니다. 그의 말씀에 생명의 법이 있습니다. 이 마음이 있다면, 위기 앞에서 보다 밝은 미래를 향할 길을 열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마음이 우리의 마음이 되어 하나님의 한결같은 사랑 가운데 살아가기를 빕니다. 그의 마음속에 있는 하나님의 법으로 한결 같은 평화와 기쁨 나누시기를 빕니다.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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