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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윤리와 거룩 사이에 간극은 없다이웃을 사랑하라, 네 몸과 같이!(레위기 19:18, 34)
최형묵 목사(천안살림교회) | 승인 2021.11.17 23:45
▲ 6세기경 로사노 복음서의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 대한 묘사 ⓒWikiMedia

성결법전으로 불리는 레위기의 핵심은 거룩한 백성의 삶을 제시하는 차원에서, 한편으로는 제의적 규정들을 또 다른 한편으로는 매우 강력한 윤리적 규정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 두 가지 차원은 삶과 죽음을 동반한 생명의 질서 안에서 삶을 위한 길이 어디에 있는지를 일깨우는 취지를 지니고 있지만, 서로 달라 보이는 제의적 규정과 윤리적 규정이 각기 다른 영향을 끼쳤습니다.

안타깝게도 레위기는 한편으로 제의 종교를 절대화하고, 또한 율법주의를 강화한 영향을 끼칩니다. 그러나 동시에 레위기는 이웃 사랑의 보편성을 일깨운 가장 핵심적인 근거가 되기도 합니다. 착한 사마리아 사람 이야기(누가 10:25~34)에서, 한 율법학자가 예수님께 영생의 길을 묻자 예수님께서는 율법에 어떻게 기록되어 있는지 반문합니다.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여라.”(신명 6:5)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레위 19:18) 율법학자의 그 명답에 예수님께서는 그대로 하라고 이릅니다. 그러자 율법학자가 묻습니다.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 바로 그 물음에 대한 답이 착한 사마리아 사람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강도만난 사람을 돌보지 않은 제사장과 레위 사람, 그리고 그를 돌본 사마리아 사람을 대비합니다. 이 이야기는 당대 유대인들의 이웃에 대한 통념을 무너뜨리는 이야기이자 동시에 진정한 의미에서 보편적 사랑의 종교로서 그리스도교의 탄생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핵심적 근거로 삼은 것이 바로 레위기의 말씀입니다.

본문말씀은 공동체의 평화와 생명을 보장하기 위해 지켜야 할 여러 가지 정의로운 생활률을 제시하는 대목에서 핵심적인 말씀으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13절은 이웃을 억누르거나 착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규정하고 있고, 노동자의 임금을 체불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14절은 듣지 못하는 사람을 저주해서는 안 되고 보지 못하는 사람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15절은 재판의 공정성을 강조합니다. 16절은 남을 헐뜯는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되고 이웃의 생명을 위태롭게 해가면서 이익을 보려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17절은 동족을 미워해서는 안 되고 이웃의 잘못을 일깨워 바로 잡도록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18절 본문말씀은 한 백성끼리 앙심을 품고 원수 갚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하며 덧붙입니다. “너의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여라.” 34절은 외국인 나그네를 역시 “너희 몸 같이 사랑하여라.”고 말합니다.

“너의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여라.” 이 말씀에 대해 율법학자가 던졌던 물음을 환기해봅니다.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 그 이웃이 동족의 범위 내에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 범위를 벗어나는 것인지 하는 물음입니다. 사실 ‘이웃’이라는 말 자체가 그 미묘한 의미를 동시에 함축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 나와 가까운 사람을 뜻하는 동시에 또 다른 한편으로는 나와는 다른 타인이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레위기에도 그 긴장이 서려 있습니다. 18절의 말씀에서는 동족의 범위 내에 있는 것처럼 보인 반면 34절의 말씀에서는 명시적으로 외국인이라고 되어 있어 그 범위를 벗어납니다. 착한 사마리아 사람 이야기에서 예수님께서는 그 긴장을 완전히 넘어섭니다. 그야말로 동족으로 여기지 않고 따라서 이웃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 주인공을 진정한 이웃으로 선포합니다. 이로써 보편적인 사랑의 종교로서 그리스도교 신앙이 성숙해집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 이 말씀은 오늘 그리스도인에게 너무 익숙하기에 그 말씀이 갖는 충격을 쉽사리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나 사실 이웃은 그저 나와 가까운 어떤 사람이라는 통념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에게 그 범위를 넘어설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직감할 경우 그것은 충격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웃을 사랑하라.” 그것도 “네 몸과 같이!” 사랑할 만한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는 통념에서는 당혹스럽습니다.

그러나 본문말씀은 그 당혹스러운 사태를 넘어, 곧 자기세계를 넘어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세계로 나아갈 것을 일깨워줍니다. 그렇게 전적으로 낯선 타인마저도 자기 자신을 사랑하듯 대할 수 있을 때 하나님의 생명 질서가 구현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것이야말로 거룩한 하나님이 거룩한 백성 가운데 현존하는 징표가 된다는 뜻입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 이 말씀은 레위기의 한 가운데 박힌 가장 값진 보석이요, 그리스도교 신앙의 정수입니다.

그 핵심을 비켜가며 성서의 자구에 매여 불변의 규율로 삼고자 한다면 성서의 본뜻을 제대로 이해한 것이라 할 수 없습니다. 한국교회의 현실입니다. 레위기 17~20장에 이르기까지 수없이 많은 생활률은 주목하지 않고 특정한 성행위를 문제시하는 딱 두 구절(18:22; 20:13)만을 꼬집어 그것을 근거로 특정한 성적지향을 금기시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당대의 관념에서 특정한 성행위를 문제시하는 것일 뿐 성적지향과는 상관없습니다. 더 나아가 성서에 3,000번 이상 가난의 문제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것은 외면한 채 딱 네 군데(두 본문, 로마 1:26~27; 고전 6:9) 특정 성행위를 문제시하는 구절을 두고 성소수자를 정죄하는 근거로 삼는 것 역시 정당하지 않습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 이 말씀은 끊임없이 우리를 타인 앞에 내세우며, 그것은 동시에 끊임없이 하나님 앞에 서도록 요청하고 있습니다. 그 요청은 우리의 통념을 넘어 진정한 생명의 길을 찾으라고 촉구합니다. 내 앞에 다가오는 타인의 얼굴을 어떻게 맞이할 수 있느냐, 바로 거기에서 생명의 길이 판가름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그 길을 회피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최형묵 목사(천안살림교회)  chm1893@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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