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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 사건을 모르는 성경 저자들과 성경 본문들출애굽: 이스라엘 과거 대한 유일한 전승이 아니다 ⑴
랍비 데이비드 프란켈 박사/이성훈 | 승인 2021.11.17 23:55
▲ 시리아 사막의 베두인 천막 ⓒ위키미디어
랍비 데이비드 프란켈 박사는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교에서 모쉐 봐인펠트 교수의 지도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프란켈 박사는 The Murmuring Stories of the Priestly School(VTSupp. 89)과 The Land of Canaan and the Destiny of Israel(Eisenbrauns)을 포함 다수의 저작을 출간했다. 그는 예루살렘에 소재한 the Schechter Institute of Jewish Studies에서 대학원 학생들과 유대교 학생들에게 히브리 성서를 가르치고 있다.

토라는 우리에게 출애굽을 기억하고 가르치라고 촉구한다. 하지만 놀랍게도 몇몇 성경 구절은 이 사건을 알지 못하는 것으로 보이며, 또 다른 전승을 묘사한다. 하나님은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찾으셨다.

도입: 출애굽의 중심 역할

▲ 랍비 데이비트 프란켈 박사

출애굽은 성경이 가진 기억 속에서 명백하게 가장 중요한 사건이다. 예컨대 이것은 시내산 율법 수여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애굽에 내려가는 사건에서 예표되고(창12:10-20), 아브라함 언약(Covenant Between the Parts, ברית בין הבתרים, 창15:13-16)에서 그에게 예언되었으며, 이스라엘을 위한 하나님의 은혜로운 행위를 재진술하는 구절 속에서 계속 강조된다(신26:5-9, 수24, 시78,105,106,135,136, 겔20, 느9).

이스라엘을 애굽 종살이에서 해방시키신 하나님의 행위가 이스라엘의 충성을 요구할 권리를 갖게 되었다는 점을 암시하며, 하나님은 십계명에서 이스라엘에게 자신을 세상의 창조주가 아니라 출애굽의 하나님으로 소개하신다. 실제로 민수기 15장 41절에 따르면, 출애굽의 중요한 목적은 주께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모든 관계는 출애굽 사건에 기반한다.

출애굽의 중심 주제는 때로 대담한 신화적 이미지로 언급된다는 사실에 의해 강조된다(시77:12-21, 사51:10).

출애굽은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현재 관계의 기초가 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미래 구속 행위의 원형이 된다(사11:15-16, 43:16-20, 48:20-21). 의심의 여지없이, 이스라엘 역사에서 일어난 다른 어떤 사건도 성경 전승 속에서 중심 역할을 수행할 수 없다. 그러나 출애굽 사건을 모르는 것처럼 보이는 몇몇 성경 구절이 있다.

예언서들: 출애굽에 대해 모르는 것으로 보이는 성경 구절들 ⑴

민족들에 대한 예언: 애굽 심판의 누락

예언 문학에서 덜 알려진 장르 중 하나는 “민족들에 대한 예언”이다. 이 장르의 가장 유명한 예는 아모스서의 시작 부분에서 찾을 수 있다. 여기에서 예언자는 이스라엘의 여러 이웃 국가들이 특히 이스라엘과 다른 국가들에 대해 저지른 죄에 대한 파멸을 선포한다. 여러 나라, 특히 모압에 대한 멸망을 선포한 발람의 네 번째이자 마지막 예언(민24:15-24)은 이 장르에 속하는 또 다른 본문이다.

이 장르에 속하는 몇 개의 본문들은 애굽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주로 애굽이 이스라엘에게 신뢰할만한 동맹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 점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보복을 선포한다.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애굽을 향한 하나님의 보복에 대한 모든 예언 신탁(사19, 렘46, 겔29,30,31,32)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혹독한 노예로 지배당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한 차례도 언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예언들의 강조점은 애굽의 죄악의 죄악이기 때문에 출애굽에 대한 침묵은 상당히 눈에 띈다. 또 이러한 예언들은 하나님께서 애굽인에게 행한 위대한 이적을 암시하지도 않는다.

에스겔: 두 번째 애굽 심판?

애굽에 대한 에스겔의 신탁들은 유다의 마지막 날에 속한다. 예언자는 애굽이 신을 자처하고 하나님께서 정하신 심판 도구인 바벨론에 대항하려는 오만한 시도로 인해 애굽이 멸망할 것이라고 선포한다. 에스겔 30장 19절에서 하나님은 “내가 이렇게 이집트를 심판할 때에야 비로소 그들은 내가 주인 줄 알게 될 것이다(새번역).”라고 말씀하신다. 이 구절은 출애굽기 본문(출7:4-5, 12:15, 14:18)과 같은 언어를 사용하지만, 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과거에 이미 애굽을 심판하셨고, 그들에게 자신이 주임을 알게 하셨다는 언급은 없다.

에스겔 32장 7-8절은 하나님께서 애굽 위에 있는 하늘의 빛들을 덮으실 것이며 그 백성들을 흑암으로 감싸실 것이라고 선포한다. 역시 “내 백성이 애굽에서 노예로 지낼 때 내가 했던 것처럼”과 같은 진술은 빠져있다. 마찬가지로 연대가 불명확한 12소예언자 중 한 명인 요엘서는 하나님께서 유다의 죄로 인해 끔찍한 메뚜기 재앙을 보내실 것이라고 말한다. 이 재앙과 그것이 초래할 땅의 파괴라는 긴 묘사에 비추어볼 때, 애굽에 있던 메뚜기 재앙에 대한 어떤 암시도 없다는 점이 눈에 띈다.

▲ 메뚜기 재앙, Holman Bible 삽화, 1890 ⓒ위키피디아

때때로 성경의 이야기가 애굽인의 재앙을 다시 언급할 것이라는 점을 우리가 발견하게 됨에 주목하라. 이런 맥락으로, 엘리 시대에 있었던 블레셋과의 전쟁 이야기에서 블레셋 사람들은 언약궤가 전쟁터에 나타난 것을 보고 말했다. “누가 저 강력한 신의 손에서 우리를 건질 수가 있겠느냐? 그 신들은 광야에서 온갖 재앙으로 이집트 사람을 쳐서 죽게 한 신들이다(삼상4:8, 새번역).”

블레셋 사람들이 언약궤를 차지하고 죽음과 파괴에 시달린 후, 그들의 제사장들과 예언자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달래야 한다고 권했다. “왜 여러분은 이집트 백성과 이집트의 왕 바로처럼 고집을 부리려고 합니까? 이집트 사람이 이스라엘 사람을 가게 한 것은, 주님께서 그들에게 온갖 재앙을 내리신 뒤가 아니었습니까?(삼상6:6, 새번역)” 만약 블레셋 사람들과 그들의 제사장들이 애굽에 대한 재앙을 상기시킨다면, 왜 실제로 애굽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이야기한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은 동일하게 말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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