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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왜 성소수자에 대해 그렇게 무자비한가누군가를 정죄하기 위해 성서를 오독하는 것에 대해
김상기 박사(독일 뮌스터대) | 승인 2021.11.21 15:34
▲ 특정 한 두 구절을 무기 삼아 성소수자를 차별하고 배제하고 억압하는 개신교의 오독은 잘못된 것이다. ⓒGetty Image

성서는 특정한 관점이나 삶의 자리에 따라 서로 다르게 읽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은 이미 확립된 명제다. 권력자가 성서를 읽고 이해하는 것이 피압박자가 읽고 이해하는 것과 같을 수 없다. 성별의 차이도 성서 읽기에 영향을 끼친다. 여성의 관점에서 성서를 남성중심적 기록이라고 비판할 수 있다.

장애인의 관점에서 보면 비장애인의 성서 이해는 잘못된 것일 수 있다. 아이들의 눈으로 성서를 읽으면 어른들의 성서 읽기는 완고하기 짝이 없을 수 있다. 피부색도 그 때문에 차별과 억압을 당할 때 새로운 예수와 새로운 성서해석을 낳을 수 있다.

이처럼 독서층이 갈라질 때 힘의 불균형에 의해 소외·배제·억압을 경험하고 그 부조리를 깨닫는 층은 성서를 새롭게 통찰하고 변화를 이끌어낸다. 이 과정이 순탄할 리는 없다. 그렇지만 ‘새로운’ 층의 등장으로 성서는 기득권층의 해석 울타리를 벗어나게 되고 새롭게 조명된 진리로 그 층을 하나님의 나라로 이끌고 하나님의 백성임을 선언하는 하나님의 말씀임이 입증된다.

성서 본문에 대한 오독

이 같은 성서의 운동에서 제외되어야 하는 층은 없다. 소수자라는 이유로 소수자가 성서 해석 역사에 참여하는 것을 막을 권한은 누구에게도 없다. 다수의 힘이든 또는 옛 교리의 힘을 빌어 소수자들의 참여와 해석행위를 배척하려는 것은 바리새파적 무지의 소치이다.

목회자들을 비롯해서 기독교인들이 성서본문들을 들어 성소수자들을 차별하고 배척하고 정죄하는 것이 정당한가? 성소수자와 관련하여 인용되는 신약성서의 본문들은 로마서 1,26-27; 고린도전서 6,9-10; 디모데전서 1,9-10 등이다. 그런데 로마서 1,26-27을 18-31절의 맥락에서 29-31절과 함께 읽을 때 이 세 본문들은 배경이 각각 다름에도 어느 정도의 공통점을 보인다. 오늘날 동성애로 불리는 행위가 그 본문들에서 여러 가지 다른 행위들과 함께 언급되지만 특별히 더 심각한 것으로 다루어지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본문들의 비교는 오히려 그 반대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로마서 1,26-27은 동성애자들이 그 댓가를 이미 받았다고 하지만, 다른 것들에 대해서는 사형에 처해야 마땅한 것들이라고 한다. 또한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일들을 다룬다는 점에서 고린도전서 6,9-10과 비교할만한 갈라디아서 5,19-21에는 동성애자 항목이 나오지 않는다. 각 본문에 나오는 항목들이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고 이 점을 과소평가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각 본문들에 언급된 행위들 가운데 동성애 보다 일반적이고 보다 광범위하고 보다 심각한 문제가 되는 것들은 음행과 우상숭배이다. 우상숭배를 골로새서 3,5에 따라 이해하면 그것은 탐욕으로 바꿔 말할 수도 있다. 이를 염두에 두고 보다 넓은 의미의 탐욕을 음행이나 우상숭배와 나란히 놓아도 좋을 것이다.

이 가운데 음행은 모든 성범죄를 대표하는 말로 이해될 수 있다. 불행히도 이것은 “교회” 안에서도 자주 발생하는 심각한 문제인데도, “교회”는 이에 대해 말할 수 없이 관대하고 그때그때마다 적당히 무마하고 넘어가거나 가려고 한다. 그런데 왜 “교회”는 유독 성소수자들에게 그토록 무자비한가? 그들에 대한 차별과 혐오와 정죄의 언어를 거리낌 없이 사용하며 차별금지법 제정을 무조건 반대한다. 도대체 왜 그런가? 자신의 그와 같은 치부를 가리기 위해 그들을 속죄양 삼으려는 것인가?

더구나 성소수자에 대한 성서의 입장이 편견이라면 그에 근거한 주장들은 어떻게 되겠는가? 성정체성과 성적 지향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는 학계의 연구 성과들이 상당히 쌓여 있는 지금이다. 아직 정설로 완전히 자리매김 되고 통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까지의 연구 결과들은 신앙의 이름으로 무시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다.

그렇다면 성소수자들에 대한 태도는 바뀌거나 최소한 현재와 같은 차별적 태도는 유보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태도는 예수께서 당시 죄의 관점에서 시각 장애를 보던 일반 이해를 부정하고 그에 새롭게 접근할 길을 열어주신 것에서 지지를 얻을 것이다. 신앙은 무지와 독선의 다른 이름이 아니다. 새로운 인식에 자기를 양보하고 편견과 완고함을 거둬들일 수 있어야 한다. 끝까지 경계하고 거부해야 할 것들은 바로 음행과 탐욕과 우상숭배, 그리고 그에서 비롯되는 것들이다.

관련성서 본문들

로마서 1,26-27. 29-32: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그들이 이 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

고린도전서 6,9-10: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 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디모데전서 1,9-10: 아니요 오직 불법한 자와 복종하지 아니하는 자와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과 거룩하지 아니한 자와 망령된 자와 아버지를 죽이는 자와 어머니를 죽이는 자와 살인하는 자며 음행하는 자와 남색 하는 자와 인신매매를 하는 자와 거짓말하는 자와 거짓 맹세하는 자와 기타 바른 교훈을 거스르는 자를 위함이니

갈라디아서 5,19-21: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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