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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묵히“셋방에서 시작된 복음”(사도행전 28:30-31)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 승인 2021.11.23 15:54
▲ Hans Sadeler, 「Saint Paul at Corinth with the Sailmakers Aquila and Priscilla」 (1580-1600년경 제작) ⓒGetty Image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나요? 평안은 언제나 우리 안에 있습니다. 그렇기에 어떤 상황에서도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평안을 선택하십시오. 주어진 평안을 누리십시오. 그리고 각자 있는 곳에서 불안과 근심에 쌓여 있는 이들에게 평안을 확장하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오늘은 교회력으로 ‘왕이신 그리스도 주일’입니다. 그리고 다음 주부터는 대림절이 시작됩니다. 대림절은 기다림의 절기입니다. 예수님의 탄생과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기간이기 때문입니다. ‘왕이신 그리스도 주일’로 교회력을 마감하며 ‘성탄’을 기다리는 ‘대림절’로 시작한다는 건 요즘과 같은 시기에는 더욱이나 그리스도인들에게 큰 의미를 줍니다.

‘왕이신 그리스도 주일’은 지금으로부터 96년 전인 1925년 당시 이태리의 국무총리 무솔리니가 스스로 최고 통치자를 뜻하는 '두체'라는 칭호를 사용하며 파시즘을 강화하였고, 독일과 전 세계를 공포로 몰고 갔던 히틀러의 폭력 앞에서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떨고 있었을 때에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의 진정한 통치자임을 상기시키기 위해 제정되었습니다.

처음 제정 되었을 때에는 예수님을 위해 살았던 모든 기독교인들을 기념하는 만성절(11월 1일)을 바로 앞둔 10월 마지막 주일에 기념했습니다. 기독교인들의 최고 통치자는 예수 그리스도임을 상기시키고 믿음으로 살다간 자들을 본받아 그들도 끝까지 믿음을 저버리지 않도록 격려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후 1970년 교회력의 마지막 날로 재배치하면서 지키게 되었습니다.

절망 속에서 세상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 이 땅의 진정한 통치자 되시는 예수님을 다시 기억하고 기념함으로써 믿음의 선조들은 두려움을 떨쳐 내고 다시 굳어진 무릎을 펴 굴복 당하지 않는 삶으로, 거룩하고 온전한 삶으로 전진했습니다. 

이런 기념 주일이기에 특별히 코로나19로 인한 여러 가지 상황들을 생각했을 때 오늘날 우리들에게 의미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전 세계가 혼란에 빠진지 2년이 다 되어가고 있습니다. 특별히 교회의 많은 리더들은 코로나19가 한국 기독교에 큰 타격을 주었다고 말합니다. 방역수칙으로 인해 예배당에 모여 예배드릴 수 없게 된 점. 이로 인해 성도수의 감소, 교회 재정의 감소 등등을 이야기하며 교회가 큰 타격을 입었다고 주장합니다.

지금은 위드 코로나에 힘입어 다시 예배와 교회 ‘회복’을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회복이 필요하다는 것은 무언가가 결핍되었거나 무너졌다는 의미를 가집니다. 저는 이런 부분에서 의문을 가지며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코로나19가 교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가져왔다는 판단에 동의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의 진정한 통치자임을 신뢰한다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일들에 대해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이 사람들의 기대와는 달리 당시 지배세력에게 잡히시고, 고문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리시던 때를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잡히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돌아가시는 과정 속에서 예수님을 따르던 이들과 제자들은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그리고 예수를 만나기 이전의 삶으로 다시 돌아갔습니다.

마태복음 26:56 “그러나 이 모든 일을 이렇게 되게 하신 것은, 예언자들의 글을 이루려고 하신 것이다." 그 때에 제자들은 모두, 예수를 버리고 달아났다.” 요한복음 21:2-3 “시몬 베드로와 쌍둥이라고 불리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제자들 가운데서 다른 두 사람이 한 자리에 있었다. 시몬 베드로가 그들에게 말하기를 ‘나는 고기를 잡으러 가겠소’ 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소’ 하고 말하였다. 그들은 나가서 배를 탔다. 그러나 그 날 밤에는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다.”

추종하던 예수가 사라졌으니 그야말로 “끝”이라고 모두가 판단했을 것입니다.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객관적인 모든 상황이 그렇게 판단할 수밖에 없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그것으로 끝이었습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끝이 아니라 온 인류의 구원을 향한 과정의 일부일 뿐이었습니다.

제자들의 판단과 그에 따른 행동들은 미숙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미숙함도 성숙해져가는 과정이었을 뿐입니다. 이 과정을 예수님이 주도적으로 이끌어가고 계셨습니다. 그렇기에 ’왕이신 그리스도 주일’인 오늘, 말씀을 듣는 가운데 이 땅의 진정한 통치자 되시는, 우리 삶의 주관자이신 주님께서 여전히 우리 개인의 삶과 공동체 그리고 교회를 인도하고 계심을 신뢰하실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오늘의 본문은 사도행전의 마지막 구절입니다. 짧은 두 구절이지만 이 두 구절이 기록되기 까지 사도 바울은 많은 위협을 겪어야만 했고, 많은 사건들을 경험해야만 했습니다. 이 가운데 자신이 스스로 선택한 경험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바울이 경험한 일들은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있었다는 점을 사도행전 전체의 본문을 묵상하며 알 수 있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수요예배 때 2년간 나누었던 사도행전 강해는 저에게 너무나도 큰 위로와 소망을 주었습니다. 매주 수요일마다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서 주관하신다는 깨달음을 반복해서 주셨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1-2장에 기록된 마가 다락방에서 시작된 오순절 성령강림사건은 이후에 벌어질 폭발적인 복음 운동의 시초가 됩니다. 로마 제국이 자신들의 영토를 계속해서 확장해 갔다면 같은 시간, 복음도 예루살렘에 갇혀 있지 않고 예루살렘을 넘어 이방나라들에 심어지고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1:13-14 “그들은 성 안으로 들어와서, 자기들이 묵고 있는 다락방으로 올라갔다. 이 사람들은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와 안드레와 빌립과 도마와 바돌로매와 마태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열심당원 시몬과 야고보의 아들 유다였다. 이들은 모두,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동생들과 함께 한 마음으로 기도에 힘썼다.” 사도행전 2:1-4 “오순절이 되어서, 그들은 모두 한 곳에 모여 있었다. 그 때에 갑자기 하늘에서 세찬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그들이 앉아 있는 온 집안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불길이 솟아오를 때 혓바닥처럼 갈라지는 것 같은 혀들이 그들에게 나타나더니, 각 사람 위에 내려앉았다. 그들은 모두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어서, 성령이 시키시는 대로, 각각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하였다.”

어떤 결과로 이어졌습니까? 사도행전 2:41 “그들은 베드로의 말을 믿고 세례를 받았다. 그 날에 새로 신도가 된 사람은 삼천 명이나 되었다.” 사도행전 2:47 “이것을 보고 모든 사람이 그들을 우러러 보게 되었다. 주께서는 구원받을 사람을 날마다 늘려 주셔서 신도의 모임이 커 갔다.”

그리고 사도행전은 오늘 본문에 기록된 셋방에서 복음을 전하는 사도 바울의 모습으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30 바울은 자기가 얻은 셋집에서 꼭 두 해 동안 지내면서, 자기를 찾아오는 모든 사람을 맞아들였다. 31 그는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아주 담대하게 하나님 나라를 전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일들을 가르쳤다.”

로마 제국의 핵심인 로마에서 여전히 미결수의 신분인 사도 바울은 셋방에서 하나님 나라 복음을 담대하게 가르쳤습니다. 힘과 강력한 군대로 상징되는 로마제국과 셋방에서 하나님 나라를 전하는 미결수 바울의 대비가 극명하게 이뤄지는 장면입니다.

이러한 대비는 하나님 나라는 힘과 돈과 권력으로 이뤄지지 않음을 알려주십니다. 숫자가 많고 적음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들, 순종하는 사람이 단 한 사람일지라도 하나님은 그 한 사람을 통해 자신의 나라를 이루어 가신다고 말씀하시는 장면입니다.

TV를 보다가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당신이 인플루언서이자 메신저입니다.” 당신이 어떤 삶의 배경을 가졌건, 당신이 어느 곳에 있건, 당신도 얼마든지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라는 의미입니다.

며칠 전 2015년도에 평범한 여고생이 미국의 유명한 TV쇼에 출연했다는 방송을 보았습니다. 해외의 유명한 가수의 노래를 따라 부른 영상을 유투브에 올렸는데, 이 영상이 폭발 적인 반응을 얻게 되면서 초청받아 출연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 여고생은 유명한 가수도 아니고 배우도 아니고 정치가도 아니고 기업가도 아니고 심지어 유명한 유투버도 아니었습니다. 이런 흐름을 보면 어떤 기회가 되면 누구라도 유명해질 수 있고, 인생이 바뀔 수 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6년이 흐른 지금은 더욱이나 한 사람의 인생이 어떻게 변할 수 있는지 알 수 없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만든 드라마가 세계로 방영이 되어 유럽과 미국 사람들이 딱지치기를 하고, 달고나를 만들어 먹는 영상을 볼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나 이렇게 되는 것은 아니고 준비된 사람들만이 경험할 수 있는 일들입니다.

우리 초도제일교회도 하나님 앞에 바로 서기 위해 계속해서 지금과 같이 정성으로 예배드리고, 기도하며, 사랑하는 삶을 선택하며 살아간다면 앞으로 어떤 일이 우리 공동체를 통해 선한 영향력이 펼쳐질지 알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도 자신이 무언가를 계획하기 보다는 할 수 있는 일,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이런 바울의 순종의 삶을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들어 쓰셨습니다. 

초보 채소 장수가 있었습니다. 수레에 감자, 무, 토마토 등을 진열해 놓고 손님을 기다렸습니다. 채소 가게들이 많았기 때문에 단골이 없어 한산하기만 했습니다. 그때 한 노인이 말했습니다.

“신선한 채소를 판다고 써 붙여. 그래야 손님들이 오지.”

조언에 따라 남자는 상자 밑면에 큰 글씨로 '신선한 채소 팝니다.' 라고 써서 세워 놓았습니다. 그 표지판을 보고 한 사람이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굳이 신선한 채소라고 할 게 뭐야? 누가 상한 채소를 팔겠어?”

그래서 작은 종이를 오려 '신선한'을 가리고 '채소 팝니다.' 만 보이게 했습니다. 또 한 사람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말했습니다.

“그럼 이게 채소지 운동화야? 다 아는 사실인데 굳이 채소라고 써 붙일 이유가 없잖아.”

남자는 다시 '채소'를 가리고 '팝니다.' 만 남겼습니다. 그때 엄마 손을 잡고 가던 아이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놀렸습니다.

“당연히 파는 거 아냐, 엄마? 저 아저씨, 머리가 나쁜가 봐.”

남자는 창피해서 얼른 ‘팝니다.’ 마저 가렸습니다. 이제 누더기처럼 된 상자만 남았습니다. 고민하던 그는 한 지혜자에게 손님을 끌 묘책을 물었습니다. 이 지혜자가 조언했습니다.

“수레에 ‘신선한 채소를 팝니다.’라고 크게 써 붙이세요.”

이 예화를 쓴 시인은 이 글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세상에는 조언자들이 넘쳐납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조언은 길을 잃게 만듭니다. 왜냐하면 우리 자신의 길을 가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길을 가게 하기 때문입니다. 남의 길을 걷는 것이 곧 길을 잃는 것입니다.

- 시인 류시화씨의 페이스북 글

많은 이들이 이런저런 진단을 하고, 판단을 하고,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 해야 한다고 여러 갈래의 길을 제시 합니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런 판단과 말들로 우리 자신을 바라보는 일이 아닙니다. 누군가의 계획을 따라 가려고 하거나, 무리하게 어떤 일들을 계획하고 하지 않아도 됩니다. 다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사랑하는 삶을 선택하고, 행하면 됩니다. 이것으로 충분합니다.

계획은 하나님이 세우십니다. 우리는 그저 셋방에서 자신의 역할을 묵묵히 해낸 사도 바울처럼 우리 각자의 몫을 살아내면 그만입니다. 판단을 내려놓고, 사랑하는 삶을 계속해서 선택하고 살아내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그 삶에 하나님이 은혜와 복을 풍성하게 덧입혀 주실 줄 믿습니다.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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