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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해질 수 있을까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삶(레위기 19,1-4; 빌립보서 3,12-16)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 승인 2021.11.25 15:50

우리는 어디에 있든 또 의식하든 못하든 보통 크고 작은 목표들을 설정하고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계획을 세우고 이를 실천에 옮깁니다. 이때 많은 경우 방해하는 일들이 있게 마련이어서 그 실천과정은 간단치만은 않습니다. 그래서 목표에 이를 수도 있고 이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다양한 경험들을 통해 우리의 삶은 더 충실해지고 여러 가지 의미에서 풍성해지기도 합니다.

또한 목표들은 각기 독립적이거나 일회적인 것도 있지만, 보다 큰 목표들에 통합되는 것이 보통입니다. 이 큰 목표들을 최종적으로 통합시킬 궁극의 목표라는 것이 우리 삶에 있을까요? 있다면 그것은 그에 이르는 수많은 과정들을 의미 있게 만들고. 그러한 것으로서 각 과정에 개입하여 방향타의 역할을 할 것입니다.

성서에서 우리 삶에 최종적 의미를 부여하는 궁극의 목표를 찾는다면, 우리는 오늘의 본문에서 그것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너희는 거룩하라! 이것이 바로 그 목표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이유가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나 야훼 너희 하나님이 거룩하니까 그리 되라고 하십니다.

사람이 과연 하나님처럼 거룩해질 수 있을까요? 가능해보이지 않는 명령처럼 들립니다. 그런데 이를 약간 바꿔 짧게 말한다면 ‘너희는 나처럼 거룩하게 되어라’일 것입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듯한 느낌이 들지 않습니까?

창세기 3장에서 뱀은 하와에게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하신 그 나무 열매를 먹으면 너희는 좋고 나쁜 것을 가릴 줄 아는 신적 존재들처럼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사람은 뱀이 준 정보에 따라 나무 열매를 따먹고 실제로 뱀이 말한 대로 되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도 인정하신 사실입니다. ‘보라, 사람이 우리들 가운데 하나처럼 좋고 나쁜 것을 가릴 줄 알게 되었다.’ 이것은 사람이 동산 밖에서 사는데 반드시 필요한 능력이지만, 사람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김으로써 얻게 되었다는 것이 불행이고 비극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인식능력을 말할 때 이 두 가지를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적어도 이 한 가지 측면에서 인간은 신적 존재들 가운데 하나처럼 되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러한 인간에게 하나님은 자기처럼 거룩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마치 그의 명령을 어긴 인간에게 과거를 청산하고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시는 것 같습니다.

물론 사람이 하나님과 똑같은 정도로 거룩해질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명령을 어김으로써 눈이 밝아진 사람이 나뭇잎으로 옷을 만든 것과 하나님이 그에게 가죽옷을 만들어주신 것은 하나님이 사람의 인식능력을 인정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인식된 문제의 해결과 관련해서 하나님과 사람의 능력이 크게 다름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거룩함에 있어서도 다르지 않겠지만, 사람은 거룩함을 자신이 지향해야 할 과제로 ‘인식할’ 수는 있지 않을까요? 다시 말해 벌거벗음을 보고 좋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처럼 거룩함의 부재를 좋지 않은 것으로 판단할 수 있지 않을까요? 거룩함의 정도에서 사람이 하나님과 같은 정도로 거룩해질 수는 없지만 하나님은 과거에 그러셨던 것처럼 아니 그 이상으로 사람의 거룩함을 인정하시고자 합니다. 나처럼 거룩하게 ‘되었다’고 말입니다. 하나님은 뒤에 자신을 가리켜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하나님, 더 적절하게는, 거룩하다고 여기는 하나님’이라고 하십니다(레 22,32). 이것은 거룩함이 이미 완성된 것으로 인정하는 것이 아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거룩함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의 예상과 달리 일상에서의 행위와 관계들로 표현되는 거룩함입니다. 우리는 레위기 19장을 4절까지만 읽었지만, 19장 전체가 이와 직접 관련됩니다. 우리가 읽은 3-4절은 십계명과 닮았습니다. 이것은 사람의 가장 기본적인 관계들인 부모와 하나님과의 관계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명령은 십계명이나 여기서나 똑같이 아이들이 아니라 성인들에게 하는 말입니다.

그러면 그들의 부모는 노년에 접어든 사람들입니다. 그러한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마도 경제적 이유 때문에 그럴 가능성이 가장 클 것입니다. 또 자기를 위해 우상을 만든다면 그것은 자기의 이익이나 자신의 안전을 위해 하나님을 다른 신으로 대체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계명을 어기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자기의 이익을 실현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이러한 행위들에 대한 평가가 헛된 것들에게 향하지 말라는 명령 속에 들어있을 것입니다. 헛된 것들은 우상들을 가리키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것들에 국한되지는 않은 것입니다. 헛된 것들은 탐욕의 표현들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탐욕을 위해 사람은 하나님을 떠날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을 수단이나 도구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자신조차 대상화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행태들과 관련하여 거룩함을 이야기한다면, 그것은 다른 사람들을 도구화하는 것을 멈추고 목적으로 대하라고 하는 명령이 될 것입니다. 5절 이하에 있는 모든 명령들도 이런 관점에서 보면 충분히 이해될 수 있습니다. 사람을 목적으로 대한다는 것은 그를 사랑할 때 실현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18절과 34절에서 이웃과 이주민/난민을 네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명령이 나옵니다.

사람이 이렇게 사랑할 때 하나님은 그를 거룩하다고 여기십니다. 하나님도 사람을 그렇게 사랑하셨습니다. 사람은 하나님께 목적이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거룩하다고 찬양합니다.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그들이 우리의 목적이 되고 사랑으로 그 목적이 실현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일회적인 행사가 될 수 없습니다. 일생동안 계속되어야 하는 삶의 태도이어야 합니다. 바울은 주님께서 그를 사로잡으신 목적을 위해 달려간다고 고백합니다. 그는 온갖 위기를 겪기도 하며 당시 세계를 끝까지 다니며 사도로 끝까지 살았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 목적에 이미 이르렀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손에 넣었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평생의 과제였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관계를 맺게 된 우리입니다. 바울이 말했던 그 목적이 하나님 앞에서의 거룩함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는 약간 다르지만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렇다고 말하며(고전 3,17),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고 권고합니다(롬 6,19). 베드로도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전에 알지 못할 때에 따르던 너희 사욕을 본받지 말고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고 레위기 본문에 의거하여 우리에게 권고합니다. 성화라고도 하는 거룩함이 우리의 최종 목표입니다.

이 목표 속에 우리가 살아가면서 세우는 크고 작은 목표들이 통합될 수 있기를 빕니다. 그러면 우리는 우리 삶의 마지막에 참 의미 있는 삶을 살았다고 고백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와 같은 삶의 여정이 우리 앞에 펼쳐지기를 빕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보고 우리에게 거룩하다 인정할 수 있게 되기를 빕니다.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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