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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름의 능력사자모 소리
장사모 | 승인 2021.11.25 15:51

“저희 내년에 00아파트로 이사해요.”

분양받은 역세권 아파트에 입주하게 된단다. 함께 자리한 사람들은 주변 시세보다 수억 원이 저렴하여 ‘로또’라고까지 불리는 아파트 청약의 당첨을 축하했다.

69점. 그것은 4인 가족이 달성할 수 있는 최고점이다. 그러나, 당첨 최저 가점이 70점이 넘는 것은 물론하고 84점 만점자가 등장한다. 높은 점수의 당사자는 부양가족이 많은 세대주다. 왜냐하면 무주택 기간과 청약통장 가입기간은 누구든지 시간이 경과되면 만점 채우기가 가능하지만 청약가점 구성 요소 중 부양가족 만점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4인 가족으로 표준화한 주택의 기준 면적에서 대가족이 생활하기에는 불편하더라도 꿈꾼다. 아파트 청약의 당첨을.

새 아파트에 대한 기대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학수고대하여 30년이 되면 아파트값은 천정부지로 오르기 시작한다. 그것은 낡아 오래된 집, 그 안의 역사적 가치 때문이 아니다. 재건축을 위한 안전진단을 통과하기를 바라며 녹물이 나오는 것쯤은 감수할 수도 있단다. 도시의 주거 공간, 아파트는 단순히 편리하고 깨끗한 주거 공간으로 기능하는 것만이 아니게 되었다.

엊그제 만난 청년은 사는 아파트의 이름이 바뀌었다.

근처 아파트들도 모두 명칭의 변경을 앞두었단다. 작명에는 공식과 같은 것이 있다. 인근의 전철역 이름을 넣어서 역세권임을 드러내고, 신도시의 이미지를 살리기 위해 청라, 송도, 검단, 운정, 다산, 위례, 광교나 동탄 같은 지명을 넣는다.

거기에다 부동산 호재가 될 만한 것들을 추가하면 된다. 인터넷에서 떠도는 공감지수 높은 그 작명법말이다. 아파트 근처에 아무것도 없다면 더 퍼스트, 근처에 4차선 이상의 도로가 있는 곳은 센트럴, 강이나 호수가 있다면 레이크나 리버. 바다가 있으면 오션뷰 또는 마리나. 공원 근처는 파크뷰, 산이 있다면 포레. 전철역이 있을 때면 메트로. 인근에 학교가 있으면 에듀타운, 심지어 노후 건물이 많더라도 문제없다. 그 아파트에는 시티를 붙일 수 있으니까.

아파트 이름 바꾸기는 부동산 광풍이 몰고 온 신풍속이다.

도시의 교인들이 다니던 교회를 옮기는 가장 편한 방법은 이사를 하는 것이다. 다니던 그 교회를 그들은 왜 떠나려는 것일까? 한국 교회들은 “교회가 세속화 되어서는 안 된다”고 외친다. 그러나, 대안이나 대조 사회로서의 기능은커녕 맘몬과 권력에 더욱더 심취하여 왜곡된 신앙을 경주(競走)하고 있다. 인정하고 싶지 않겠으나, 교회는 이미 세속화 된지 오래다.

교회의 이미지를 바꾸기 위하여 교회 이름을 바꾸어 보면 될까? 아니면, 이전이라도 하면 될까?

지역을 담당하여 영원을 구원하려던 열정으로 교회 이름으로 ‘지역명’을 넣던 것은 이미 촌스럽게 느껴진다. 으뜸이 되기를 원하여 ‘제일’을 칭하는 교회들만 남아 제이, 제삼 교회들을 찾아보는 것은 어렵게 되었다. 교회도 부동산 논리와 다름없이 ‘중앙’에 있어야하고, ‘강남’에 있어야 한다면서 그렇게도 지어본다.

아파트만 브랜드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신도시에서 개척이라도 고려한다면, 대형교회의 네트워크이거나 이름이라도 걸쳐 입어 지교회와 같은 냄새를 풍겨야 한다는 사실은 정설과도 같다. ‘믿음’, ‘소망’, ‘사랑’을 넣어보아도 그 교회는 무엇을 믿는 것인지, 무엇에 소망을 갖는 것인지, 무엇을 사랑하는지 의문이다. ‘행복’을 넣어 이름 지은 교회들은 정녕 어떤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것일까? ‘하늘’을 이름하는 교회의 교인들은 공동체를 떠나지 않고 기쁨을 누리고 있나?

모든 교회가 성장을 꿈꾼다. 한국교회는 ‘대형교회’와 ‘대형교회를 꿈꾸는 교회’ 두 종류의 교회만 있을 뿐이라는 어느 목사님이 말은 귓전에 맴돈다. 대형이라 하는 것이 단순히 규모를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지향하는 바가 예수의 정신과는 맞닿지 않아 건강성을 상실함 때문이다.

교회의 성장과 부흥은 고사하고, 지탄받아 생존마저 위태로운 것이 오늘날 한국교회의 실정이다. 정작 비판하는 대부분은 내부의 들보가 아니라 외부 세상의 티끌인 경우가 많다. 게다가 교회의 문제를 지적하고 비판하는 것을 넘어서 대안과 해결책을 제시하며 실천하는 노력은 빈약하기 그지없다. 교회 안에 사람들의 말은 난무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희미하다. 텅 비어 요란한 말만으로는 말씀의 능력을 나타낼 수 없다. 자라날 수도, 쇠퇴한 것을 다시 일으킬 수도 없다.

폭설이 내린다더니 가뜩이나 미세먼지로 희뿌연 하늘이 더욱 흐리다.

신도시에서 출석할 새로운 교회를 찾는다는 교인은 인터넷 포털에서 지역 인근의 교회를 검색하였단다. 익숙한 교회의 이름들을 발견하여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려보고 있단다. 그런데, 갈만한 마땅한 교회를 찾는 것이 어렵단다. 바르고 건강한 예수정신을 지향하고 실현하는 교회. 아니, 일단 상식이라도 통하는 교회 말이다.

자본에 물들고 시장화, 세속화된 교회. 오히려 그것을 인정하는 것은 새로운 희망의 가능성을 갖게 한다. 불가능한 가능성. 어떻게 함께 나아갈 것인가? 우리 모두가 바로, 지금, 여기서 대답하고 나아가자.

교인들에게 새 아파트를 분양받은 것을 축하해 주고, 거주하는 아파트 값이 오른 것을 기뻐해 주는 사이. 적은 보증금, 빠듯한 집세로 살만한 마땅한 집을 찾는 것은 정작 더 희박해 지고 말았다.

돈은 없지만, 그 이름의 능력을 의지하여 믿음으로 구하면 가능할까? 구하는 대로 응답되면 좋겠다.

장사모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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