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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 성서 그리고 설교신정통주의의 성서이해: 칼 바르트를 중심으로 ⑷
최영 소장(기독교장로회 목회와신학연구소) | 승인 2021.11.27 15:50
▲ 칼 바르트의 책상 위에 걸려 있던 아이젠하임 제단의 십자가형 테이블. ⓒWikipedia

바르트가 자펜빌에서 『로마서 강해』를 집필할 때, 발견했던 것은 “그의 계시 안에 있는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 곧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이라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성서에서 계시하는 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 자신이다. 어떤 신적인 것도, 하나님과 같은 어떤 것도,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어떤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그의 계시의 내용이라는 것이다.(1)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말씀의 첫 번째 형태

이와 같이 바르트는 계시 안에서 하나님이 활동적으로 자신을 계시하신다는 것과 우리가 아는 유일한 하나님은 자신을 계시하시는 그의 계시 가운데 있는 하나님, 그의 말씀 안에 있는 하나님, 곧 우리에게 오시며, 우리 위에서 활동하시며, 우리를 불러 그 자신과의 책임적인 관계 속에 들어가게 하시는 바로 이 하나님이라고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그것은 하나님이 육신이 되신 말씀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계시하신다는 것과, 그리고 이 계시가 세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응답하는 공동체를 만들어낸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르트에 의하면 바로 이 하나님의 자기 계시, 곧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말씀의 첫 번째 형태이다.

이러한 계시에 대한 바르트의 이해는 19세기의 자유주의 신학과 로마 가톨릭 신학의 계시이해와는 명확히 구별된다. 우선 바르트에 의하면 자유주의 신학은 인간을 “만물의 중심과 척도와 목표”(2)로 삼고, 모든 신학의 주제들을 이해했던 점에서, 특히 하나님과 계시의 이해에서 인간과 인간의 상황을 그 출발점으로 삼았던 근대 신학의 전통을 물려받은 신학이다. 바르트는 이러한 신학의 기원이 중세 신비주의와 르네상스 인문주의에 있는 것으로 보고,(3) 데카르트에게서 그 고전적인 표현을 본다. 그리고 17세기 개신교 정통주의의 합리주의에서 이와 같은 경향이 나타났고, 이것이 계몽주의의 전통을 이어받은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에서 만개했다고 본다.(4)

바르트가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의 계시이해와 신학방법에 대해 반대하는 것을 보면 벌써 그의 로마가톨릭에 대한 반대를 예측할 수 있다. 가톨릭의 교리에 의하면, 교회는 성경과 사도들의 구전에 내포되어 있는 계시적 진리들을 “해석하고 교리를 결정하여 선포하도록” 그리스도로부터 권한과 권위를 부여받았다고 한다. 가장 큰 잘못은 교회가 하나님의 계시를 소유했다는 사실에 있을 뿐만 아니라 교회가 이 계시 진리를 주권적으로 제어할 수 있다는 데 있다.(5)

바르트는 이 두 전통 모두를 인간중심적 신학의 유형들이라고 본다. 다른 모든 인본주의 신학과 마찬가지로 위의 두 전통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자기 계시를 무시한다. 바르트의 입장은 확고하다. 즉 “우리는 오직 교회의 본질로서의 예수 그리스도를 표준으로 해야만 기독교적 언어의 참 내용이 무엇이어야 하고, 무엇이 기독교적 언어와 교리 이해에 이르는 참 길인 줄을 알 수 있다.”(6) 따라서 로마 가톨릭이나 자유주의적 개신교가 계시와 신학방법을 이해함에 있어서 충분히 취급하지 못한 내용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계시의 중심이며, 신학적인 작업의 중심으로서 모든 신학적 진술들의 표준이라는 점이다.

성서, 하나님의 말씀의 두 번째 형태

바르트에 의하면 하나님의 말씀의 두 번째 형태는 성서이다. 성서는 인간의 언어로 쓴 하나님의 말씀이다. 따라서 우리는 성서에서 하나님의 말씀뿐만 아니라 인간의 말도 듣게 된다. 그러나 성서가 인간의 문서로서 인간적으로 결정된 글이라고 해서, 성서를 인간의 종교적 체험을 기록한 문서라고 규정하면 안 된다.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은 성서의 본질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성서를 신체험 내지는 종교적 체험의 문서로 규정하는 오류를 범했다. 바르트에 의하면 성서는 인간이 기록한 문서이기 때문에 세상적인 형태를 지니고 있지만 그 본질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런데 바르트에 의하면 성서는 정적으로, 달리 말하면 그 자체로 하나님의 말씀은 아니다. 성서는 하나님의 영원한 존재 안에 내재하는 신성한 언어를 인간의 언어로 구현시킨 필사가 아니다. 이것은 인간의 말과 하나님의 말씀 사이에 잠재적인 동일성을 전제했던 17세기 정통주의의 오류이다. 그러나 바르트에 의하면 “성서는 참 하나님과 참 인간이며, 하늘에 있는 그 말씀인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지상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은 아니다.”(7)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르트에 의하면, 성서는 하나님이 그것을 그의 말씀이 되게 하는 한, 그리고 하나님이 이 성서를 통하여 말씀하시는 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서는 성령에 의하여 교회를 위한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증언이 되기 때문에 거룩하며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다.”(8) 말하자면, 성서는 하나님이 계속적으로 그것을 그의 말씀과 성령의 활동적인 현재와 조화시키고 그로써 그것을 그의 말씀으로 확언하고 활성화하며 그리고 실체화하는 사실에 의하여 우리에게 전달되는 하나님의 말씀이고 계속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인 것이다. 이와 같이 성령으로 성서의 기자에게 영감을 주신 하나님이 성령을 통하여 그들의 증언 속에 다시 현재하실 때, 우리는 성서가 하나님의 말씀임을 고백한다.

설교, 하나님의 말씀의 세 번째 형태

바르트에 의하면 하나님의 말씀의 세 번째 형태는 설교된 하나님의 말씀이다.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의 세 번째 형태가 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교회가 성례와 함께 이 두 수단을 통하여 하나님의 계시를 선포하도록 위임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설교된 하나님의 말씀은 철저히 계시 자체인 예수 그리스도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에 의존하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설교는 끊임없이 계시 자체인 예수 그리스도와 성서를 통해 자신을 수정해야 하고, 또한 예수 그리스도와 성서에 일치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바르트는 로마가톨릭과 19세기 신개신교의 설교에 관한 견해를 비판한다. 로마가톨릭은 하나님이 믿는 자들에게 은혜를 베푸는 수단은 무엇보다 성례라고 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설교를 부차적인 위치에 놓는다.

바르트는 하나님이 교회의 성례전들에도 현존하시지만 이 경우에 “은혜는 인격적이고 자유로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기 때문에”(9) 로마가톨릭의 전통적인 성례 교리를 반대한다. 다른 한편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은 설교를 설교자의 경건의 전개로 봄으로써 주관적인 방향으로 움직인다.

그러나 이처럼 설교가 설교자의 “자기해석”과 동일시될 때 설교는 와해되고 만다. 이럴 경우 설교자는 하나님의 자기 계시에 대한 성서의 증언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자유주의 신학은 설교가 하나님의 은혜로운 현존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된다는 사실을 상실한다.

바르트에 의하면 성서가 성령을 통한 하나님의 임재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 것처럼 설교자의 인간적인 말들은 성령을 통하여 오늘 여기서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이 된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하나님의 현존의 기적은 로마 가톨릭이 지시하는 대로 떡과 포도주가 물리적으로 성체가 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는 하나님이 그의 기쁘신 뜻을 따라 그의 종들의 말을 성화시키심으로 이들의 말이 인간의 말이면서 동시에 “하나님 자신이 이 말들 안에서, 그리고 이 말들을 통하여 자기 자신에 관하여 말씀하시는 것이다.”(10)

하나님의 말씀의 삼중적 형태는 차이가 있는가

바르트에 의하면 하나님의 말씀의 이 삼중의 형태 사이에는 어떤 큰 차이가 없다. 설교가 참으로 성서에 증거된 계시의 회상이 되고 성서의 증언에 복종하는 반복이 될 때 그것은 성서가 하나님의 말씀인 것과 다름없는 하나님의 말씀이 된다. 또한 성서가 참으로 계시를 증거할 때 그것은 계시 자체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와 같이 계시의 실제성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말씀이 됨으로써 성서와 설교는 한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가 된다. 물론 계시는 성서와 설교를 가능하게 하는 형식이다. 그러나 계시는 결코 추상적인 형식으로 우리에게 오지 않는다. 따라서 계시의 인식은 다만 간접적으로, 다시 말하면 성서와 설교에서 일어난다. 그러나 성서도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 되기 위해서는 교회에서 선포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바르트는 이와 같은 상호관계를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하나님의 계시된 말씀은 우리가 교회의 선포에서 받아들인 성서에서만 알 수 있거나 혹은 성서에 근거를 둔 교회의 선포에서 알 수 있다.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은 우리가 단지 선포를 성취시키는 계시로 말미암아 알거나 혹은 계시에 의하여 성취된 선포로 말미암아 알게 된다. 우리가 하나님의 선포된 말씀을 알려면 단지 우리가 성서에 증거된 계시나 혹은 계시를 증거하는 성서를 알아야 한다.(11)

미주

(미주 1) K. Barth, God in Action, tr. by E. G. Homrighausen and J. Friedli(Edinburgh, 1936), 9.
(미주 2) Karl Barth, Die kirchliche Dogmatik (Zürich: Theologischer Verlag Zürich, 1932-1938), ed., G. W. Bromiley and T. F. Torrance, The Church Dogmatics,Ⅰ/2 (Edinburgh: T&T Clark, 1963), 293. (이하 CD로 표기)
(미주 3) CDⅠ/1(1969), 34 이하.
(미주 4) K. Barth, Die Menschlichkeit Gottes, 1956, 전경연 옮김, “하나님의 인간성”, 『휴매니즘과 문화』(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64), 39-40.
(미주 5) CDⅠ/1(1969), 15.
(미주 6) Ibid., 42.
(미주 7) CDⅠ/2(1963), 513.
(미주 8) CDⅠ/2(1963), 457.
(미주 9) CDⅠ/1(1969), 75.
(미주 10) CDⅠ/1(1969), 106.
(미주 11) CDⅠ/1(1969), 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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