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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는가“내 영혼이 주님을 기다립니다.”(시편 25:1-10)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 승인 2021.11.30 02:38
▲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을 기다리는 대림절이 시작되었다. 어떤 마음으로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는지 마음을 살펴야 할 때이다. ⓒGetty Image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한 주간 평안 하셨나요? 평안은 언제나 우리 안에 있습니다. 그렇기에 지금 평안 하냐, 평안하지 않느냐는 전적인 우리 자신의 선택 때문입니다. 평안을 택하셨습니까? 아니면 상황 속에 자신을 내버려 두기로 택하셨습니까? 평안을 선택하고 누리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강단에 크리스마스트리와 대림절 초가 장식 되었습니다. 교회 밖에도 성탄을 알리는 장식들이 곧 전시 될 예정입니다. 이런 장식들을 보며 사람들은 ’아, 이제 성탄절이 다가오는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은 해마다 다가오는, 새로울 것 없는 성탄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를 합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대림절이라는 기다림의 기간을 습관처럼 보내지 말고 의미 있게 보내기 위해 애써야 합니다.

축구용어로 ‘빌드업’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축구의 목적은 상대팀보다 더 많은 골을 넣어 승리하는 것입니다. 골을 넣기 위해 상대 골문으로 접근하는 과정을 빌드업이라고 표현합니다. 상대방의 압박을 무력화하고 공격을 전개하기 위한 일련의 움직임 및 패스 워크 등을 의미합니다.

대림절은 성탄이라는 골을 향한 일종의 빌드업입니다. 축구는 골을 넣기 위해 ‘패스’와 ‘작전’으로 빌드업을 한다면 우리는 성탄을 기쁨으로 맞이하기 위해 ’말씀’과 ‘묵상’으로 빌드업을 합니다. 대림절 기간 주일마다 전해드릴 말씀과 매일 묵상할 수 있도록 나누어 드린 묵상집을 통해 성탄이라는 목적지에 잘 도착하실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의 첫 구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주님, 내 영혼이 주님을 기다립니다.” 시편 기자는 영혼마저 무너질까 걱정하며 주님을 애타게 기다린다고 표현합니다. 이런 표현 들어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나 영혼까지 털렸어.’ 또는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샀어.’ 모든 것을 다 잃었거나, 모든 것을 다 걸었다는 표현입니다. 이런 의미들을 생각하면 오늘 시편 기자의 고백인 “주님, 내 영혼이 주님을 기다립니다.”는 마치 벼랑 끝에 다다라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상태의 절박한 사람의 표현처럼 느껴집니다.

뒤이어 나오는 구절들이 시편 기자의 어려움에 대해 말해주고 있습니다. “2 나의 하나님, 내가 주님께 의지하였으니, 내가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하시고 내 원수가 나를 이기어 승전가를 부르지 못하게 해주십시오.” 부끄러움을 당할 수 있는 상황, 원수가 승전가를 부를 만 한 위급한 상황입니다. 도움이 긴급하게 필요한 상황입니다.

삶이 심하게 흔들리며, 영혼마저 위태한 때이지만 시편기자는 주님을 기다리는 자들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최악의 상황에 다다르지 않을 것이라 말합니다. 단, 하나님께 정직한 자가 이런 은혜를 입는다고 말합니다. “3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은 수치를 당할 리 없지만, 함부로 속이는 자는 수치를 당하고야 말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주님을 함부로 속이는 사람들일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는 사람들, 하나님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이 바로 주님을 함부로 속이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척,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처럼 하는 사람들은 수치를 당 할 것이라고 시편기자는 강조합니다.

예레미야 33:14-16의 말씀에 “나 주의 말이다. 보아라, 내가 이스라엘 가문과 유다 가문에 약속한 그 복된 약속을 이루어 줄 그 날이 오고 있다. 그 때 그 시각이 되면, 한 의로운 가지를 다윗에게서 돋아나게 할 것이니, 그가 세상에 공평과 정의를 실현할 것이다. 그 때가 오면, 유다가 구원을 받을 것이며, 예루살렘이 안전한 거처가 될 것이다. 사람들이 예루살렘을 '주님은 우리의 구원이시다' 하는 이름으로 부를 것이다.” 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북이스라엘이 멸망당하고, 남유다마저 멸망당할 위기의 상황에서 예레미야는 ‘하나님이 지켜주실 것이다!’라고 말하지 않고 남유다도 무너져야 한다고 먼저 선포합니다. 무너지면 그 이후에 하나님이 다시 회복시켜 주실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시간이 흘러 남유다도 멸망해 나라가 완전히 사라진 뒤에 포로 신분이 된 유대인들은 방금 읽어드린 본문인 예레미야의 예언을 상기합니다.

이 예언에 근거해서 유대인들은 그분이 오실 날을 기대하며 기다립니다. 그분이 오시면 공평과 정의가 실현되는구나! 우리가 포로 신분에서 자유인이 되겠구나! 구원을 받는구나! 무너진 예루살렘이 다시 회복되는구나!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들의 기대와는 완전히 다른 메시아가 등장합니다. 바로 예수님입니다. 메시아가 왔다고 하는데 자신들의 삶이 변화가 전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나라를 되찾지 못했고, 포로 된 신분이고, 예루살렘은 안전한 거처가 아닙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예수가 메시아라는 사실을 부인합니다. 그들이 보기에는 메시아가 오셔서 하셔야 할 일들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이 기다리던 메시아의 상이 있었습니다. 이 메시아의 상에 예수님은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굳어진 이런 가치관이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들의 이상과 바램 때문에 예수님이 메시아임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저는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말씀에는 분명히 이 세상이 완전히 뒤바뀔 것처럼 예언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함에 대해 인정해야 함에도 마치 자신이 알고 있는 말씀에 의미가 전부인 것처럼 교만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20년 전, 10년 전에 들었던 해석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습니다. 이런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이 오셔도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 한 것처럼 알아보지 못하게 됩니다. 당시의 유대인이든 지금의 그리스도인이든 예수님이 자신들의 이상에 맞고, 가치관에 맞고, 자신들이 만든 틀에 딱 맞아 떨어지는 예수여야하기 때문입니다.  

며칠 전 첫째 산의가 다니는 공부방 선생님이 한 주간의 식단표를 부모가 모여 있는 단체 카톡방에 올려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식단표를 보시고 한 어머님이 “식단을 군에서 관리 하나 봐요?”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단체 카톡방에 “군인들이랑 먹는 게 같나 봐요? ^^”라고 답장을 남겼습니다. 남기고 나서 생각해보니 군대의 군이 아닌 고성군의 군인 것 같았습니다.

3년이나 흘렀음에도 여전히 서울 행정구역명인 시, 구, 동에 익숙하다보니 군이 행정구역의 군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던 것입니다. 제가 카톡을 남긴 후에 아무도 글을 남기지 않으셨습니다. 혼자서 얼마나 창피했는지 모릅니다.

자신의 경험, 자신의 지식, 자신의 가치관에 갇혀버리면 아무리 이야기해도 알아 듣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듣지 않으니 변화를 경험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시편 기자와 마찬가지로 고백해야 합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기다립니다.’

제가 가졌던 알량한 지식과 경험으로 다 해보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이제 주님의 말씀을 듣고 따라야 함을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기다립니다.’

“4 주님, 주님의 길을 나에게 보여 주시고, 내가 마땅히 가야 할 그 길을 가르쳐 주십시오. 5 주님은 내 구원의 하나님이시니, 주님의 진리로 나를 지도하시고 가르쳐 주십시오. 나는 종일 주님만을 기다립니다.”

스스로가 주님의 길을 아는 것처럼 여기지 마십시오. 스스로가 앞으로 가야 할 길을 아는 사람처럼 여기지 마십시오. 마음과 생각을 열어 종일 주님만을 기다리겠다고 한 시편기자처럼 배우기를 청하는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7절에 나오는 ‘내가 젊은 시절에 지은 죄와 반역’은 무엇입니까? 내 뜻대로 내 마음대로 살아온 삶을 의미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기에 시편 기자는 주님의 자비로우심과 선하심으로 나를 기억해 달라고 간청합니다. 그리고 죄인이 돌이키고 걸어가야 할 올바른 길을 가르쳐 달라고 요청합니다.

“6 주님, 먼 옛날부터 변함없이 베푸셨던, 주님의 긍휼하심과 한결 같은 사랑을 기억하여 주십시오. 7 내가 젊은 시절에 지은 죄와 반역을 기억하지 마시고, 주님의 자비로우심과 선하심으로 나를 기억하여 주십시오. 8 주님은 선하시고 올바르셔서, 죄인들이 돌이키고 걸어가야 할 올바른 길을 가르쳐 주신다. 9 겸손한 사람을 공의로 인도하시며, 겸비한 사람에게는 당신의 뜻을 가르쳐 주신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죄인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잘 안다고 하는 사람들, 자신이 언약과 계명에 능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들은 새 포도주를 담을 수 없는 옛 부대의 사람들입니다. 듣지 않기에 더 이상 배우기를 멈추었기에 사실은 하나님의 뜻대로가 아니라 자신이 좋을 대로, 자신의 취향대로, 자신에게 유리한 대로 행하는 사람들입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기다립니다.’ 옛 자아에 갇히지 않고 열린 마음으로 다시 주님을 만나고자 고백입니다. 이렇게 고백할 수 있는 성도는 결국 주님을 만나 오늘 본문의 마지막 구절처럼 ‘진실한 사랑의 삶’을 살게 될 줄 믿습니다. 

내 생각대로 주님의 언약과 계명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말씀하시는 언약과 계명을 지키는 성도가 됩니다. “10 주님의 언약과 계명을 지키는 사람을 진실한 사랑으로 인도하신다.”

대림절은 바로 이런 시편 기자와 같은 믿음의 태도로 보내야 합니다. 매일 말씀을 읽고 묵상하시면서 자신의 믿음을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이 기간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다시 만나는 은혜를 경험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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