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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곁에 H씨[서울외국인노동자센터 웹진] 나란히 섬 41호
서울외국인노동자센터 | 승인 2021.12.02 15:42

‘오징어 게임’이 드러낸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그 가운데 알리가 주목받고 있습니다. 알리가 연기한 이주노동자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는 극 중에서 미등록 체류 상태에 놓여 있다가, 산업재해를 입고 보상을 받지 못합니다. 이러한 딱한 사정에 놓인 그에게 산재 적용이 가능한가란 기사가 나올 정도입니다.

이러한 이목이 우리 옆 알리들에게도 닿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인터뷰를 시작했습니다. 앞으로 만남이 미등록 이주민이 한 사람으로, 우리 이웃으로 드러나는 데에 작은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그 시작으로 우리 곁에서 21년째 머물고 있는 H씨를 만났습니다.

자신을 소개해달라는 말에 자신의 성과 이름을 이야기하는 H씨 표정이 굳어 보입니다. 인터뷰를 하자며 세워놓은 카메라 때문인지 긴장해 보이는 눈치입니다. 그리고, 대뜸 묻지도 않은 미등록 체류에 대한 준비된 듯한 말을 합니다. 딱딱한 인터뷰 보단, H씨와 대화를 나누고 싶어서 카메라를 껐습니다. 그로 인해, 본 글은 인터뷰 전문이 아닌 H씨가 들려준 이야기로 풀어갑니다.

2001년, 산업 연수생으로 찾은 한국

일자리가 없는 고향 사정은 H씨가 대학을 졸업해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의 형을 이어, 가족을 부양하는 이주노동자의 삶을 선택합니다. 그의 첫 직장은 대구의 섬유공장이었습니다. 하루 12시간씩, 낮과 밤을 교대로 일을 했습니다. 그 대가로 한 달에 60만원을 받았습니다. 같은 일을 하는 선주민의 월급 반 정도에 해당하는 금액은 연수생이라 가능했습니다. 이런 불합리한 현실에 여느 이주노동자처럼 직장 이탈을 결심합니다.

서울로 와 건설현장에서 일용직으로 하루 7만원씩 받고 일을 합니다. 일 하는 중에 허리를 다쳤지만, 보험이 없는 상태라 치료에 소홀했습니다. 그때 다친 허리 때문에 오늘까지 고생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섬유공장에 비해 더 많은 돈을 고향에 보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2002년, 유예된 출국

산업연수생 제도의 여러 문제로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이탈이 늘어납니다. 이에 정부는 이들의 자진 출국을 유도하는 대책을 발표합니다. 자진 신고를 하면 최장 1년간 출국을 유예한다는 말에 H씨도 참여합니다. 한시적 이긴 하지만, 정규화되면 불안함이 덜 할 것입니다. 직장을 구해서, 1년 동안 일 하다 고향에 돌아가자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그 결심이 오늘까지 미뤄지고 있습니다.

같은 고향, 선배에게 소개받은 염색공장 사장님과 마음이 맞아 20년째 한곳에서 일 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이주노동자와 둘이서 일을 하다, 지금은 혼자서 일합니다. 뜨거운 물에 냄새나는 화학 염료를 사용하는 일 특성상, 한국 사람과 일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렇게 하루 15~16시간씩 일을 했습니다.

2012년, 가족의 탄생

그렇게 10여년이 지나 서른이 된 그에게 같은 공동체 사람이 아내를 소개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가족을 이뤘고, 다음 해에 또 다른 가족을 맞이합니다. 행복했던 가정에 예견된 문제가 찾아옵니다. 그의 벌이에 비해 세 가족 살림살이가 녹록치 않았고, 미등록 체류 상태인 아들의 학업과 장래가 걱정되었습니다. 결국 그를 제외한 가족이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합니다.

2016년, 가족 귀환

3살 된 아들이 인천공항에서 떠날 때 많이 울었습니다. 육회를 참 좋아했던 아이와 헤어진 지 벌써 7년째로, 함께 산 날보다 깁니다. 그 때로 돌아가면 같은 선택을 하겠냐는 물음에 “돈이 있어서 한국에 같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란 말이 돌아옵니다. 휴일도 없이 ‘집과 회사’만을 반복하던 그에게 가족은 어떠한 의미였을까요? 묻기도 전에, “사는 게 힘들어요”라고 덧댄 답변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회사나 사는 곳에서 체류 조건 때문에 불편했던 적은 없습니다. 다른 공장 사장님과 싸우다가 “고발하겠다”라는 해프닝이 벌어진 것을 제외하곤 말입니다. 다만, 조금 아파도 치료가 비싼 것이 힘들었습니다. 그렇게 20년 동안 한 회사에 머물렀으니, 고참이라고 불립니다. 일도 잘하고, 주변 공장 및 거래처 사람들과 다 친합니다.

2021년, 코로나19

코로나19 이후, 일이 줄어서 토요일과 일요일에 쉬고 있습니다. 쉬는 게 편치 않습니다. 장사가 잘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일 없이 회사에 앉아 있는 날이 미안해서, 슬쩍 고향에 돌아가겠다고 사장님에게 말을 하면 화를 냅니다. 내가 없으면 공장 문을 닫는다고 합니다.

H씨에게 소위, 불법체류자에 대한 선주민의 인식을 전합니다. 불법체류자는 선주민을 위협한다. 선주민의 일자리를 빼앗고, 범죄율을 높이고, 국가 재정 부담을 돋운다. 이에 멋쩍은 웃음을 지면서 “본인의 일을 대신할 한국 사람이 없을 거다, 범죄는 생각한 적도 없고, 자기도 세금을 내고 싶다.”고 합니다. 그리고, 벌금을 내서라도 한국에 머무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면 좋겠다고 합니다. 그러면 가족도 한국에 부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도 꺼내놓습니다.

스무 살 젊은 나이에 한국을 찾은 H는 이제 중년이 되었습니다. 고향에서 지낸 세월만큼 한국에 머물렀습니다. 고향에 계신 어머니와 통화 중에 가끔씩 한국어가 튀어나오곤 해서 어머니가 당혹해 하십니다. 처음에는 어머니와 가족에게 편지로 안부를 묻던 것이, 만원 짜리 전화 카드를 사용한 15분간 통화로 바뀌었습니다. 이제는 와이파이만 있으면 휴대폰으로 얼굴을 보며 이야기 나눌 수 있습니다.

20년 동안 한국이 많이 바뀌었다고 하는 H씨의 이야기에 그때를 떠올려 봅니다. IMF 외환위기 여파로 여전히 힘들어하던 시기입니다. 사람들이 금을 팔아 나랏빚을 갚던 기억이 무색하게, 오늘 우리는 이를 딛고 어엿한 선진국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놀랄 만한 발전에  우리와 함께  H 씨와 같은 이주노동자들이 노력했습니다.

오징어게임 제작사에서 아래와 같이 알리를 소개합니다.

“한국에 온 것은 가족과 함께 잘 살고 싶어서였다.”

알리처럼, H씨도 가족 때문에 미등록 체류 상태를 무릅쓰고 이 땅에 머물렀습니다. 그런데, 실상은 다릅니다. 가족과 ‘함께’가 아니라, 가족‘만'이라도 잘 살기 위해 가족과 생이별하고 홀로 이곳에 남았습니다. 덕분에, 모든 사람이 바라마지 않는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사는 일을 20년이나 미뤘습니다. 곱씹을수록 헛헛해지는 마음에 서둘러 이야기를 마치고, H씨와 식사를 청했습니다. H씨가 자주 가는 설렁탕 집에 가자고 합니다. 김치를 많이 먹고 싶을 때 찾는다는 그곳에 가기 위해 H씨와 함께 나섭니다.

지난 19일, 미국 하원에서 미등록 체류자에 대한 구제안이 통과되었습니다. 처음, 이들의 영주권과 시민권을 논의하던 바에서는 후퇴했으나, 10년 전, 입국 한 이들에게 5년간 추방유예와 노동 카드 및 여행 허가증 등을 부여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축소된 구제안이라 하나, 우리 사정엔 그저 부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H씨와 같이 정주화된 이들에 대한 국내의 정책은 여전히 단속, 구금, 그리고 추방에 멈춰있습니다. 이 땅에 머문 지 10년을 넘어 30년이 되어가는 정주자가 늘어가는 오늘, 이들에 대한 구제 정책을 내놓는 것이 인권에서도 선진국다운 면모가 아닐까요?

서울외국인노동자센터  contact@smw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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