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2왕조 시기의 힉소스 벽화 ⓒ위키피디아

출애굽 연대 문제

출애굽 사건의 연대를 특정 하는 일은 상당한 어려움이 따릅니다. 어느 시대에나 공통적으로 제기되는 문제이기도 하지만, 성경이 진술하고 있는 사건에 대한 성경 외적 자료가 너무 부족합니다. 또 성경 자체도 그 시대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습니다.

이런 어려움으로 인해 지난 몇 주간 출애굽과 관련된 세 학자의 이론을 살펴보았습니다. 렌스버그는 요셉에서 모세에 이르는 성경의 이야기가 애굽 제19-20왕조, 람세스 왕조(Ramessid Period, 기원전 1295-1069년)에 속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야곱 가문을 애굽에 정착시킨 바로는 ‘세티Ⅰ(기원전 1294-1279년)’이고, 이스라엘 민족을 노예로 삼았던 이는 ‘람세스Ⅱ(기원전 1279-1213년)’, 출애굽 당시의 바로는 ‘람세스Ⅲ(기원전 1184-1153년)’라는 이론입니다.

크놀의 경우 애굽 제20왕조의 창시자인 ‘세트나크테(기원전 1186-1184년)’의 이야기를 통해 ‘모세’가 애굽 제19왕조 말 반란을 일으켰던 ‘이르수’였다고 주장합니다. 랍비 프란켈은 다양한 성경 본문 속에서 ‘애굽 노예 해방 사건’과 ‘광야 사건’이 별개의 사건으로 존재하고 있음을 주장합니다. 그의 주장은 마지막에 적힌 한 문장으로 잘 요약됩니다. ‘소수의 전승이 모두의 전승이 되었다.’

이런 최근의 연구가 보여주는 바는, 우리가 알고 있는 출애굽 사건이 연대기적 흐름 속에 놓여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여기에서 출애굽 사건이라고 말하는 것은 ‘애굽 이주–노예 생활–10가지 재앙–노예 해방–광야 유랑–가나안 정착’ 모두를 포함한, 성경으로 따지자면 「출애굽기」에서 「여호수아」까지의 내용을 모두 포함하는 표현입니다.

랍비 프란켈의 주장처럼 하나로 보였던 전승을 여러 개의 상이한 전승으로 구분할 수 있다면, 출애굽 사건의 역사적 실체를 밝히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수 있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크놀의 주장대로 ‘모세’가 ‘이르수’였다면, 그의 이야기와 노예 해방 이야기는 별개의 전승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르수’가 노예 해방을 이끌었다고 말해야 할지, 노예 해방 사건은 따로 있었고, 우리가 이 두 가지 사건의 역사적 실체를 각각 밝혀낼 수 있다고 말해야 할지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이런 꼬리에 꼬리를 무는 고민에 빠져있으면 출애굽 연대 추정 무용론을 주장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출애굽의 역사적 실체는 분명 존재했다고 봅니다. 또 우리가 출애굽의 정확한 시점을 아직은 명확하게 말할 수 없지만 적어도 특정 시기로 한정할 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지난 글, 「이스라엘 역사 알기 ㊺, ‘사사기는 이스라엘 역사 연대 추정에 도움이 될까’」에서 잠시 다룬 적이 있습니다. 이때 「사사기」와 출애굽 사건을 연결해서 생각해보았는데, 중요한 점은 사사 시대가 해양 민족의 침입보다 앞서 시작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사사기」는 분명 기원전 13세기 해양 민족에 의한 광범위한 파괴 행위 이후에 관한 이야기이며, 블레셋이라는 국가가 형성되던 시기의 이야기입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히타이트(성경에는 헷족속)가 몰락했던 기원전 1250년경 이후의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사사 시대의 시작점을 출애굽 사건의 마지막 시점, 가나안 정착 시점으로 확정할 수 있는가의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따라서 이번 글에서는 출애굽 사건에 관한 주요한 두 가지 경향을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두 가지 경향이라는 것은 출애굽 시기를 기원전 1280년경으로 보는 ‘늦은 연대 이론’과 기원전 1445년경으로 보는 ‘이른 연대 이론’입니다. 이 두 가지 이론을 굳이 ‘경향’이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이 이론들 안에서도 세부적으로 다양한 가설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기원전 13세기와 기원전 15세기 둘 중 하나를 따르는 학문적 경향이라고 보는 편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둘 중에 기원전 13세기에 출애굽이 있었다는 경향을 따릅니다. 하지만 제가 이런 주장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기원전 15세기를 따르는 이론들은 무엇이며, 여기에는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짚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기원전 15세기에 출애굽 사건이 있었다고 보는 이론들을 먼저 살펴보고, 그 후에 기원전 13세기에 관한 이론들을 살펴본 뒤, 출애굽 사건에 대한 연대를 한정해 보려고 합니다.

성경에 나타난 연대들: 출애굽은 기원전 15세기에 일어났는가? ⑴

출애굽 시점을 기원전 1445년으로 보는 가장 큰 이유는 성경에 나타난 연대 때문입니다. 「열왕기상 6장 1절」은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기 시작한 때가 애굽에서 나온지 480년째이며, ‘솔로몬’ 통치 4년이라고 말합니다. 「열왕기」에 나타난 수치를 더했을 때, ‘솔로몬’ 통치 4년은 기원전 966년이고, 출애굽은 기원전 1445년이 됩니다.

또 「사사기 11장 26절」을 보면 자신들이 가나안 땅에 거주한 지 300년이 지났다는 사사 ‘입다’의 언급이 나타납니다. 이를 따라 봤을 때,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착은 기원전 1400년경에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실 ‘입다’의 300년 발언이 없었다 하더라도, 「사사기」에 기록된 수치들을 더하면 ‘입다’가 사사가 되기 전까지 319년이고, ‘입다’ 이후로 91년으로 합쳐서 410년이 사사들이 활동했던 기간이 됩니다.

저는 이미 이전의 글들에서도 언급했지만, 성경에 나타난 연대와 관련된 숫자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이 숫자들을 단순 합산하여서 이를 역사에 반영하는 것은 완전한 오류만을 만들어냅니다. 이스라엘 분열 왕조 시기를 다룰 때 말씀드렸지만, 숫자만 단순 합산했을 경우 남왕국과 북왕국의 연대조차도 어긋납니다.

또 성경에 나타난 숫자들은 과도하게 도식적입니다. ‘솔로몬’이 성전 건축을 시작했다고 말하는 통치 4년차는 ‘고레스 칙령’이 선포된 기원전 536년으로부터 480년 전입니다. 즉 출애굽에서부터 성전 건축까지 480년이고 성전 건축에서 바벨론 포로 해방까지 480년이라는 말이 됩니다. 애굽 노예 해방과 바벨론 포로 해방이 성전 건축을 중심으로 정확히 같은 기간만큼 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이런 도식적인 수치들은 창세기에 나타난 족보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출애굽은 창조 이후 2666년에 일어나며, 이는 한 세대를 100년으로 잡았을 때, 아담의 27대 후손에게 벌어진 일입니다. 이를 좀 더 자세히 보자면, 26대가 지나고 27대의 2/3 지점에서 출애굽 사건이 일어납니다. 이때 2666년은 4000년의 2/3 지점인데, 유대인들의 연대 자료들에 따라 추정해보면, 창조로부터 4000년 지난 시점에 마카베오 혁명이 일어나 성전 봉헌이 이루어집니다.

성경에 나타난 숫자들이 고대의 어떤 시점을 기준으로 하고 있지 않고, 성경이 기록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시기와 가깝거나 그보다 이후의 어떤 순간을 지향하고 있다면, 우리는 이 숫자들을 무조건 신뢰할 수만은 없습니다.

힉소스와의 연결: 출애굽은 기원전 15세기에 일어났는가? ⑵

「출애굽기 1장 8절」은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 애굽을 다스렸다고 말합니다. 일부 학자들은 이때의 ‘새 왕’이 새로운 왕조를 수립한 왕이라고 말합니다. 즉 ‘요셉’이 애굽에 정착한 시기는 애굽 제15왕조 시기이고, 이때는 애굽의 관점에서 봤을 때, 이방인인 ‘힉소스(Hyksos)’가 정권을 장악한 시대입니다.

▲ 힉소스인의 두상. 힉소스는 항상 버섯 머리로 표현된다. ⓒ위키피디아

최근 연구에 따르면, 힉소스는 애굽 제12왕조 후반에서 제13왕조 사이에 노예나 용병으로 나일 델타 지역에 정착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은 기원전 1650년 애굽의 정권을 잡고 제15왕조를 세워 약 100여년간 정권을 유지했으나, 제17왕조의 ‘카모세(기원전 1555-1550년)’와 그의 형제이자 제18왕조의 시초인 ‘아흐모세(기원전 1550-1525년)’에 의해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추방당하게 됩니다.

힉소스에 관해서는 이전에도 언급했습니다만, 힉소스를 「출애굽기」에 나타난 이스라엘 민족과 동일시 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또 「출애굽기 1장 8절」의 ‘새 왕’이 반드시 새로운 왕조를 수립한 왕이라고 보기에도 어려움이 있습니다. 「출애굽기 1장 6절」에는 요셉 시대의 사람은 이미 다 죽었다는 전제가 있습니다. 따라서 ‘새 왕’이 ‘요셉’을 모르는 일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집니다. 또 「출애굽기 12장 40절」은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 거주한 지 430년이 지났다고 말하는데, 430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닙니다.

애굽의 자료들: 출애굽은 기원전 15세기에 일어났는가? ⑶

이와 함께 출애굽 시점에 대한 근거로 제시된 것이 ‘꿈의 석비(Dream Stele)’ 또는 ‘스핑크스 석비(Sphinx Stele)’로 불리는 ‘투트모세Ⅳ(기원전 1400-1390년)’의 석비입니다.

▲ 꿈의 석비 ⓒ위키피디아

이 석비에는 ‘아멘호텝Ⅱ(기원전 1427-1400년)’의 장자가 재앙으로 인해 죽자, 장자가 아니었던 ‘투트모세Ⅳ’가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고 추측할 만한 장면이 나타납니다. 위의 사진은 ‘아멘호텝Ⅱ’가 스핑크스에게 자신의 아들을 제물로 바치는 장면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으로부터 10가지 재앙을 받았던 바로는 아멘호텝Ⅱ가 되며, 마지막 재앙으로 인해 그의 아들이 죽게 되었다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해석은 일부 신학자들의 해석일 뿐입니다. 이 석비를 만든 사람은 ‘투트모세Ⅳ’입니다. 최근의 역사학자들은 이를 ‘투트모세Ⅳ’가 무력으로 형제들을 몰아내고 왕권을 장악한 사실을 감추기 위해 세운 것으로 해석합니다.

이전에도 종종 언급되었던 ‘메르넵타 석비(Stele of Merneptah)’도 기원전 15세기를 지지하는 자료로 언급됩니다. 이 석비는 애굽 제19왕조의 ‘메르넵타(기원전 1213-1203년)’에 의해 세워진 석비로, 여기에는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이때의 ‘이스라엘’이 국가를 가리키고 있는지, 어떤 무리를 지칭하는 표현인지는 분명하진 않지만, 이 석비는 팔레스타인 지역에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집단이 있었음을 확인해줍니다.

일부 학자들은 이 석비의 글씨를 ‘이스라엘’이 아닌 지명인 ‘이스르엘’로 읽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만, 이와 상관없이 ‘메르텝타 석비’에 ‘이스라엘’이 등장한다고 해서 그것이 기원전 15세기에 출애굽 사건이 있었다는 증거가 될 수는 없다고 봅니다. 광야 40년을 포함한다고 해도 기원전 15세기에 출애굽 사건이 있었다면, ‘메르넵타 석비’가 세워지기까지 50년의 여유 기간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기간동안 팔레스타인을 통치했던 ‘람세스Ⅱ(기원전 1279-1213년)’는 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알지 못했는가의 문제가 제기됩니다. 저는 ‘메르넵타 석비’는 기원전 15세기 이론을 지지하는 자료가 아니라, 오히려 기원전 13세기 이론을 지지하는 자료라고 생각합니다.

애굽 자료 중 기원전 15세기를 지지하는 증거로 사용되는 또 하나의 자료는 ‘아르마나 서신들’입니다. 그 중에서도 자주 사용되는 내용은 ‘예루살렘의 압두헤바’가 보낸 서신에 나타난 ‘하비루(Hapiru/Habiru)’ 또는 ‘아비루(Apiru/Abiru)’입니다. 이 용어는 성경에 등장한 ‘이브리(Ibri)’와 상당히 유사합니다.

‘아르마나 서신들’은 ‘아멘호텝Ⅲ(기원전 1390-1352년)’에 각 지방에서 애굽으로 보내진 서신들로, 조금 넓게 본다면 ‘아멘호텝Ⅳ’ 시기까지 속한 편지들입니다. ‘하비루’와 ‘이브리’의 유사성은 기원전 14세기에 히브리 민족이 가나안에 정착해 있었다는 증거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연구들에 따르면, ‘하비루’는 여러 지역에 걸쳐 사회적으로 소외당한 집단들, 특히 이방인 종이나 용병들을 지칭하는 표현으로 밝혀졌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때로 ‘하비루’에 속해 있었을 수는 있지만, ‘하비루’가 이스라엘 민족이 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아르마나 서신들’에 나타난 ‘하비루’는 국가나 지파 동맹을 이루기 전의 이스라엘 민족이라는 증거가 될 수 없습니다.

기원전 15세기를 지지하는 더 많은 이론이 있겠지만, 중요하게 다뤄지는 이론들을 집중해서 살펴보았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기원전 13세기를 지지하는 이론들을 살펴보고 그 이론들이 가진 문제도 함께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또 모든 이론이 완벽하지 않음에도 제가 기원전 13세기로 출애굽 시기를 한정하려는 이유를 적으려고 합니다.

이성훈 목사(한신대 구약학 박사과정)  joey8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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