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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을 뛰어넘는 길과 방법“너희가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다”(사사기 6:1-10)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 승인 2021.12.14 16:10
▲ Julius Schnorr von Karolsfeld, 「Gideon’s Call」 (1860, Woodcut) ⓒWikipedia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나요? 저는 한 주간 많은 감정의 변화를 경험했습니다. 특히 ‘실망’의 감정을 크게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평안하지 못 했습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제 의도대로 일들이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결과를 좌지우지 하고 싶었던 마음이 결국 제 마음의 평안을 흔들었습니다. 하지만 지난 4일 대림절 묵상집에 나온 마태복음 10:5-8의 본문 묵상 내용이 저로 하여금 다시 평안을 선택하도록 도움을 주었습니다.

“5 예수께서 이들 열둘을 내보내실 때에, 그들에게 이렇게 명하셨다. 이방 사람의 길로도 가지 말고, 또 사마리아 사람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아라. 6 오히려 길 잃은 양 떼인 이스라엘 백성에게로 가거라. 7 다니면서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여라. 8 앓는 사람을 고쳐 주며, 죽은 사람을 살리며, 나병 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어라.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예수님은 더러운 귀신을 제어할 수 있는 능력과 온갖 질병과 허약함을 고칠 수 있는 능력을 제자들에게 주시고 파송하셨습니다. 특이한 점은 이방 사람의 길, 가까이에 있는 이웃인 사마리아의 고을로 가지 말고 이스라엘 백성에게로‘만’ 가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저는 이 본문을 비유로서 ‘자신의 밖을 치유하기 보다는 곧장 자신의 안인 내면으로 먼저 들어가 치료하라!’로 받아들였습니다.

마음이 흔들려 평안을 누리지 못했을 때, 다른 이들을 탓하고, 판단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내면이 아닌 외부로 시선을 두고 남 탓을 하고, 판단하며 보낸 시간은 더 제 마음의 평안을 빼앗아 가기만 했습니다. 그러던 중 이 말씀을 묵상했던 기억이 났습니다. 그래서 ‘먼저는 외부가 아니라 나의 내면을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치유할 수 있는 힘을 주시 듯 나에게도 스스로를 치유할 수 있는 힘을 주시겠구나.’ 하는 믿음으로 밖이 아닌 저의 내면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비로소 저는 다시 평안을 선택 할 수 있었습니다. 내 목소리를 죽이고, 내 의도를 내려놓는 것이 치유였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결과를 좌지우지 하고 싶었던 마음’이 문제였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결과를 좌지우지 하고 싶은 마음’이 왜 문제가 되나요? 하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결과’는 오로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나의’가 개입하려 하면 할수록 하나님이 무엇을 의도하고 계시는지, 이 일들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하시는지 듣지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나의 목소리에 집중하면 우리는 고통에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면 우리는 언제나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오늘 사사기 본문을 통해 깨달아 하나님의 목소리에 더욱 귀 기울이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1절의 말씀입니다. “1 이스라엘 자손이 주님께서 보시는 앞에서 악한 일을 저질렀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일곱 해 동안 그들을 미디안의 손에 넘겨주셨다.” 이 구절에서 ‘그들을 미디안의 손에 넘겨주셨다.’라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넘겨주셨다는 건, 하나님의 의지로 그렇게 하셨다는 점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런 말씀은 ‘하나님이 어떻게 그러실 수 있어?’가 아니라 삶은 하나님의 주관 아래 있음을 깨닫도록 합니다. 우리는 겸손해 져야만 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더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악한 일을 저지른 결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경험해야 했던 고통이 2-5절까지 말씀에 나와 있습니다. “2 미디안 사람의 세력이 이스라엘을 억누르니, 이스라엘 자손은 미디안 사람들 때문에 산에 있는 동굴과 요새에 도피처를 마련하였다. 3 이스라엘 자손이 씨앗을 심어 놓으면, 미디안 사람과 아말렉 사람과 동방 사람들이 쳐올라오는 것이었다. 4 그들은 이스라엘을 마주보고 진을 쳐놓고는, 가사에 이르기까지 온 땅의 소산물을 망쳐 놓았다. 그리고 이스라엘에 먹을 것을 하나도 남기지 않았으며, 양이나 소나 나귀까지도 남기지 않았다. 5 그들은 가축 떼를 몰고 장막을 가지고 메뚜기 떼처럼 쳐들어왔는데, 사람과 낙타가 이루 셀 수 없을 만큼 많았다. 그들이 들어와서 온 땅을 황폐하게 만들었다.”

악한 행위에 대한 대가는 컸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의 삶에서 몰아냈던, 잊고 지냈던 하나님의 이름을 다시 부르며 찾기 시작했습니다. 본문에 ‘마침내’라고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힘으로, 자신들의 지식으로, 자신들의 경험으로 무언가를 해보려 했지만 아무것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마침내’ 하나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빨리 깨달아야 합니다. ‘마침내’까지 가지 않도록 빨리 하나님 앞에 엎드려야 합니다.

“6 이스라엘이 미디안 때문에 전혀 기를 펴지 못하게 되자, 마침내 이스라엘 자손이 주님께 울부짖었다. 7 이스라엘 자손이 미디안 사람들 때문에 주님께 울부짖을 때에, 8 주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한 예언자를 보내어 말씀하셨다. "나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한다. 바로 내가 너희를 이집트에서 나오게 하였고, 종살이하던 집에서 너희를 이끌어 내었다. 9 내가 너희를 이집트 사람과 또 너희를 억압하는 모든 원수의 손에서 구하여 내었다. 내가 그들을 너희가 보는 앞에서 쫓아내었고 그 땅을 너희에게 주었다.”

하나님께 엎드리자, 예언자를 보내주셔서 무엇을 바로 잡아야 할지 알려주십니다. “10 그러면서 나는 너희에게 말하였다. ‘나는 주 너희의 하나님이다. 너희가 아모리 사람의 땅에서 살고 있으나, 아모리 사람의 신들은 섬기지 말아라.’ 이렇게 말하였으나, 너희는 내 말을 듣지 않았다.”

처음 1절에 나온 ‘악한 일’이란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았음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아모리 사람의 땅에 살고 있으나, 아모리 사람의 신들은 섬기지 말아라.’ 이 말씀을 듣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떻게 적용 될 수 있을까요? ‘너로 살고 있으나, 너 자신을 섬기지 말아라.’ 너희는 내 말을 듣지 않고, 너라는 우상을 섬겼다. 내 생각, 내 뜻, 내 목적, 내 경험 이라는 우상을 섬기고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시기 전에 유대인들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요한복음 1:45-46 “45 빌립이 나다나엘을 만나서 말하였다. 모세가 율법책에 기록하였고, 또 예언자들이 기록한 그분을 우리가 만났습니다. 그분은 나사렛 출신으로, 요셉의 아들 예수입니다. 46 나다나엘이 그에게 말하였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올 수 있겠소? 빌립이 그에게 말하였다. 와서 보시오.”

자신의 생각, 자신의 경험, 자신의 목적이라는 우상을 버리지 못한 이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박해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나사렛은 가난하고 작은 동네였습니다. 그리고 이방 땅과 가까이에 있어서 유대인들은 나사렛을 이방 땅으로 취급했고 그래서 나사렛 사람을 경멸과 조롱의 대삼으로 삼았습니다. 그렇기에 나사렛에서는 절대 선한 것이 나오면 안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방법은 어떻습니까? 바로 그곳에서 구원자가 나도록 하셨습니다.

어제 대림절 묵상집에 나온 마태복음 17:10-13의 말씀을 묵상하셨나요? “10 제자들이 예수께 물었다. 그런데 율법학자들은 어찌하여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합니까? 11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확실히, 엘리야가 와서, 모든 것을 회복시킬 것이다. 12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엘리야는 이미 왔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를 알지 못하고, 그를 함부로 대하였다. 인자도 이와 같이, 그들에게 고난을 받을 것이다." 13 그제서야 비로소 제자들은, 예수께서 세례자 요한을 두고 하신 말씀인 줄을 깨달았다.”

자신의 기준, 지식, 경험을 우상으로 섬기는 이들은 그렇기에 결코 예수님을 알아 볼 수 없습니다. 세례 요한을 알아 볼 수 없습니다. 이런 유대인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아 마침내 부르짖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특별히 말씀을 묵상하며 기도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지는 않지만 하나님은 늘 그렇듯 부르짖음에 응답하십니다. 우리가 잘 아는 기드온을 세우셔서 괴롭히던 자들을 몰아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내버려 두시지 않습니다. 깨닫게 하시고, 돌이키게 하셔서 삶을 회복하도록 인도하십니다. 그렇기에 다시 희망을 노래하며 기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애씀으로 나라는 우상을 벗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마지막으로 예배 첫 시작 때 읽어드렸던 시를 다시 읽어 드리면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그대의 밀실로 들어가라. 그리고 혼자 있으면서 문을 닫으라. 마음을 진정시키고 지정된 장소에 머무르면서 그대 내면으로부터 나Me에 의해 말해지는 나의 말씀My Words의 영Spirit 안으로 들어가 편히 쉬도록 하라. 연구하려 하지 말고, 지성을 가지고 이해하려 노력하지도 말라. 왜냐하면 그대가 내Me 안에서 편히 머물 때 내가 그대 내면으로부터 나와서 그대를 이해시켜 줄 것이니까.”
요란다, ‘해시계 옆에서 그대에게’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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